소설리스트

걸황무적-18화 (19/328)

18. 쌍사혈괴를 잡자

관왕묘(關王廟) 주위를 외조백단 개방 거지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스스스.

부단주 지원후는 소리를 최대한 줄이며 우창의 곁으로 다가섰다.

“단주님, 관왕묘 안에 삼혈사랑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놈들은 우리들이 미행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

“전혀 모를 것입니다.”

“수고했다. 근데 왜 여기에서 멈추지? 좀 더 가까이 포위를 하는 게 좋지 않겠나?”

“더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삼혈사랑의 수하들이 관왕묘 곁에 모습을 숨기고 있습니다.”

부단주 지원후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번 일을 한꺼번에 마무리 지으려면, 삼혈사랑과 청부 의뢰자를 동시에 잡는 게 가장 최선의 상황이었다.

관왕묘를 습격하기도 전에 매복이 들켜 삼혈사랑이 도망간다면 두 번 다시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었다.

“음…… 용의주도한 놈들이군.”

“그런 듯합니다.”

“어쩔 수 없군. 최대한 가까이 가서 그놈들이 상대를 만나고 있을 때 빨리 덮쳐야 한다.”

“네. 언제라도 덮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좋았어.”

우창의 시선은 관왕묘를 향해 뻗어 있었다.

* * *

“약속 시간은?”

“아직 멀었어.”

“그런가?”

강박은 조급함이 밀려왔다.

반시진 동안이나 관왕묘에서 기다렸다.

평상시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젠장…… 왜 이리 늦지?’

그는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반각이 더 지났다.

“이놈이……!”

“허허, 조금 늦는군.”

인상을 쓰고 있는 강박과 달리 허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때였다.

스르륵-

관왕묘 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강박은 안으로 들어선 백의인을 보며 짜증을 냈다.

“약속 시간이 지났소이다.”

“사람이 어떻게 매번 정확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소. 살다 보면 늦을 수도 있지 않겠소.”

백의인은 건방진 표정을 지으면서 웃었다.

‘죽일 놈이.’

강박은 어이가 없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백의인에게 받아야 할 것이 있었다.

강박은 애써 인상을 펴며 참았다.

“그래, 당신 말대로 늦을 수 있지. 잘 알겠소이다.”

“이해를 해주니 고맙소.”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먼저 강박이 입을 열었다.

“흐음, 모든 일이 끝났으니 마저 볼일을 끝내고 헤어지는 게 좋겠소.”

“그렇지요. 남아 있는 볼일을 끝내야지요.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소이다.”

“…….”

강박과 뒤에 있던 두 명의 동료. 허적과 임전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한 가지 문제라니?”

강박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나왔다.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 달라 부탁을 했었소이다.”

“황안촌에 대해서 아는 자는 이제 중원에 없소.”

“후후후.”

벡의인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강박은 그의 얼굴을 보며 눈치챘다. 그는 남은 잔금을 주기 위해 만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이거…… 참. 삼혈사랑이 이런 수모를 당할 줄은 몰랐군.”

살인청부의 세계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한 패가 자신들이었다.

“이봐. 우리가 모르는 줄 아나 보지?”

“무엇을 안다는 것이오?”

“네놈의 주인.”

“…….”

“크크크크, 어이가 없군. 네놈들은 삼혈사랑을 동네 잡일 따위를 처리하는 삼류로 본 것 같은데…… 오늘 실수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강박의 입가에 살소가 점점 피어올랐다.

백의인은 잠시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변했다.

“알고 있었군. 멍청한 살수 놈들인 줄 알았거늘. 제법 이름깨나 있는 놈들이라 머리는 있군.”

“이 새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뒤에 선 허적이 버럭 화를 냈다.

“후후, 본인이 한마디 하면, 머리 나쁜 놈들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점이지.”

딱!

백의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뒤로 두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박을 포함한 삼혈사랑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해갔다.

백의인의 앞으로 나타난 두 명의 인물.

관왕묘 전체를 감싸고도 남을 만한 사기(邪氣)가 쏟아져 나왔다.

“당신들은 누구요?”

강박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분들은 공자님께서 특별히 모셔온 분이시다.”

백의인이 옆으로 물러났다.

스으으으-

두 명의 인물이 앞으로 나섰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들의 발바닥 아래로 붉은 기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강박의 눈이 커졌다.

‘이건…… 홍조보(紅照步)!’

중원 무림에서 홍조보를 펼치는 사파무림인이 바로 떠올랐다.

“쌍사혈괴(雙死血怪).”

“크크큭, 제법이군. 삼혈사랑의 이름값을 하는데. 단번에 알아맞히다니.”

“당신들이 왜……?”

쌍사혈괴의 사인괴와 혈인괴는 사파무림 백 위에 드는 절정급의 무인이었다.

사인괴는 여전히 살기를 내뿜었다.

“이유? 그런 건 없어. 죽일 놈이 있다고 해서 온 것뿐이니까.”

“그대들이 북방상국의 명을 받을 줄은 몰랐소.”

“크큭,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가? 거기서 북방상국이 왜 나오지?”

“…….”

삼혈사랑에 살인을 청부한 곳은 분명 북방상국.

그런데 쌍사혈괴는 북방상국의 이름을 부인했다.

‘그럼…… 왜?’

강박은 북방상국과 상관도 없는 그들이 나타난 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훗, 멍청한 놈들.”

백의인은 그의 표정을 지켜보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고는 쌍사혈괴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크큭, 걱정 말게.”

사인괴는 양쪽 허리에서 두 장 정도 길이의 사혈절편을 꺼내 들었다.

쉬이이익-!

허공을 가를 때마다 뱀이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를 냈다.

강박은 다급한 목소리로 관왕묘 밖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무리가 관왕묘를 향해 뛰어 들어왔다.

“내가 장사꾼 놈들을 믿을 수 없어 혹시나 준비를 했지.”

백의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쌍사혈괴가 강한 것은 알지만, 삼혈사랑과 이십 명의 무리들을 보자 저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크크크큭, 잡놈들이 많이도 모였군. 이런 놈들로 본인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인 것을.”

“크하하하, 사인괴, 이 정도는 돼야 싸울 맛이 나지 않겠나?”

혈인괴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먼저 나섰다. 그의 손에는 혈부가 들려 있었다.

파앗.

그러고는 앞으로 내리치듯 혈부를 휘둘렀다.

“요걸로 이놈들의 머리를 깨부수면 정말 재미있겠어.”

혈인괴는 입맛을 다시며 강박의 앞으로 천천히 걸었다.

꿀꺽.

강박은 다가오는 혈인괴의 압박을 받으면서 침을 삼켰다. 그리고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모두 덤벼라!”

타앗.

우르르르.

이십 명이 동시에 쌍사혈괴를 향해 달려들었다.

“큭큭, 불나방 같은 놈들이군.”

부우우웅-

쉬이이이익-

허공을 가르는 혈부와 사혈절편.

쌍사혈괴가 가공할 무력을 휘두르며 적 이십 명을 밀어붙였다.

“으악!!”

* * *

근처에 숨어 있던 이십 명의 무리들이 빠르게 들어간 뒤.

우창은 갑자기 관왕묘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는 긴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뭐지?”

“우 단주님, 싸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싸움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자신들의 임무는 관왕묘에서 삼혈사랑을 잡는 것이었다.

그들과 청부를 의뢰했던 인물 사이에서 느닷없이 싸움이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외조백단으로 삼혈사랑 정도는 충분히 싸우지 않고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누구와 싸우고 있지?”

“그건…….”

부단주 지원후도 알 수 없었다.

‘아, 진짜 뭣들 하는 거야?’

남하림은 망설이고 있는 우창을 보며 답답했다.

“단주님, 그놈들이 죽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해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삼혈사랑을 죽여서 살인멸구를 할 생각인가 봐요.”

“뭣이?”

“그놈들이 죽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우창은 고개를 돌려 남하림을 보았다.

‘맞다. 그럴 수도…….’

벌떡.

우창은 자리에서 일어나 명을 내렸다.

“부단주, 당장 관왕묘를 쳐들어가서 삼혈사랑의 신병을 확보한다.”

“네, 알겠습니다.”

둥둥둥!

지원후가 관왕묘로 달려가면서 허리에 찬 표주박을 내리치기 시작하자, 동시에 외조백단의 개방 거지들도 함께 표주박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오호. 멋있는데…….”

남하림은 일사불란하게 관왕묘로 달려가는 일단의 무리를 보며 평소와 다른 개방의 모습에 조금 감탄이 나왔다.

“위험하니 네놈들은 여기에 있도록.”

“알겠어요.”

우창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관왕묘를 향해 달려갔다.

뒤에 덩그러니 남은 다섯 명.

팽유도가 남하림을 보며 물었다.

“하림 형, 어떻게 하지?”

“저기에 가고 싶구나?”

“……헤헤.”

남하림은 이미 팽유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도 가야지. 재미있는 구경을 놓칠 수 없잖아.”

“앗싸!”

“근데 조심해야 해. 이건 실전이야.”

“알겠어.”

남하림의 말에 네 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볼까?”

남하림은 조심스럽게 관왕묘를 향해 내려갔다.

* * *

콰아아앙!

우창은 대소를 터뜨렸다.

“모두 멈춰라.”

“…….”

관왕묘 안이 언제 싸웠냐는 듯 조용해졌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

서 있는 인물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는 인물들.

‘저놈들이 삼혈사랑이겠군. 그럼 이들은……?’

피를 흘리며 제대로 서 있을 힘조차 없는 다섯 명과 살기를 내뿜는 두 명의 인물, 그 뒤로 백의인이 보였다.

“개방의 화자(花子)들께서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혈인괴는 우창을 보며 짧게 포권을 했다.

우창은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자는……!’

손에 든 혈부.

마귀가 그려진 독특한 모양과 뱀처럼 생긴 손잡이.

“쌍사혈괴의 혈인괴가 아니신지?”

“크크크, 개방에서 본인을 알아볼 줄은 몰랐소이다. 혹시 그대는 누구인지 알 수 있겠소?”

“외조백단을 맡고 있는 우창이라 하오.”

“오호, 우 단주시구려. 반갑소이다.”

혈인괴는 다시 한 번 더 포권을 했다.

“근데 우 단주께서 화자들을 이끌고 오신 이유가 있소이까?”

“범인을 찾고자 왔소이다.”

“범인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소.”

척.

우창은 반대편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는 삼혈사랑을 가리켰다.

“저들이 바로 황안촌장을 죽이고 불을 지른 범인들이외다.”

“오오, 그게 정말이오? 이놈들이? 금시초문올시다. 확실한 것인가?”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만 조사한 뒤 그대들에게 돌려주겠소이다. 무슨 이유로 이들을 죽이고자 하는지 모르지만, 잠시만 미루어주시면 고맙겠소.”

우창은 말을 하는 동시에 손짓을 하며 지원후에게 삼혈사랑을 확보하도록 했다.

후다다닥.

외조백단원들이 빠르게 삼혈사랑을 포위하듯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백의인이 소리쳤다.

“두 분께서는 저놈들을……!”

척.

사인괴가 그의 말을 도중에 막아섰다.

“허허, 조용히 기다리게나. 걱정 안 해도 되네.”

“……네. 알겠습니다.”

백의인은 그의 말에 바로 물러났다.

스스스-

사인괴는 홍조보를 펼치며 우창의 앞으로 다가섰다.

“이보시오, 우 단주. 본인은 사인괴라 하외다.”

“…….”

“우리가 먼저 저놈들을 확보했으니 그만 돌려주는 게 무림의 예가 아닌가 싶네.”

무림의 불문율은 타인의 싸움에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우창은 순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사인괴의 말대로 개방은 물러나야 했다.

“만일 이유 없이 나선 일이라면 개방은 오늘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게요.”

사인괴의 신형에서 뻗어 나온 살기가 우창을 압박했다.

‘젠장…….’

우창은 관왕묘에 쌍사혈괴가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들이 나타난 기척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사파백위의 무공은 상상하지 못할 실력이었다.

개방에서 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인물은 천하개벽의 네 무력단주와 몇 개 당주 외에는 없을 정도였다.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그만 물러나는 게…….”

우창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일 때였다.

“이유가 명확한데요.”

어린 목소리가 사인괴의 말문을 막았다.

‘헉……?’

그 목소리에 관왕묘에 모여 있던 많은 인물들 중 가장 놀란 이는 우창이었다.

“네놈이 여길 어찌 들어온 것이냐?!”

“밖에서 보고 있으니 목소리가 안 들려서, 이왕 듣는 김에 안에서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허어.”

사인괴는 다섯 명의 어린 거지들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깔끔하게 빗어놓은 머릿결.

비단으로 만든 거지 복장.

몸에서는 여인네가 쓰는 듯한 향긋한 향내가 나는 소년 거지.

그 뒤로 왜소한 등에 잘려 나간 반도를 멘 거지.

허리에 한 자루 검을 찬 거지.

어깨에서 사선으로 가방을 메고 있는 거지도 있었다.

“저놈들도…… 개방의 거지인가?”

사인괴는 우창을 보며 물었다.

우창은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맞소. 본 방의 제자이외다.”

“크하하하! 개방이 미쳤구만. 이런 놈들을 개방으로 처받는 것을 보면.”

우창은 얼굴이 붉어졌다.

“아저씨가 말 한번 시원스럽게 하시네요.”

사인괴의 대소가 중간에 끊어졌다.

“뭣이? 방금 아저씨라고 했느냐?”

“그럼 할아버지라고 불러드릴까요? 노안이긴 하네.”

“이 자식이……? 본인을 놀리는 것이냐?”

“다들 꼭 사실대로 말을 하면 놀린다고 하더라고요. 좀 더 사실대로 말을 해 볼까요?”

“…….”

“눈이 튀어나온 게 꼭 사마귀처럼 생겨가지고.”

화악.

사인괴는 순간 혈압이 치켜 올랐다.

사십 평생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쉬이익-

사혈절편이 뻗으며 남하림의 가슴을 노렸다.

채애애앵!

사혈절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어라…… 이것들 봐라.”

사인괴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남하림의 앞을 검으로 간단히 막아선 이휘연을 보았다.

“형, 고마워.”

“별거 아니군.”

그리고 남하림은 옆으로 나와 손짓으로 사인괴를 가리켰다.

“사마귀 아저씨, 별거 아니셨군요. 근데 어린앨 상대로 비겁하게 기습이나 하다니. 안 쪽팔리세요?”

남하림의 말과 표정을 보는 사인괴의 손이 부들 떨렸다.

쌍사혈괴의 심기를 건드리는 남하림.

사인괴의 한 수를 간단하게 막아낸 이휘연.

‘저 녀석들이…….’

우창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