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범인을 알아내다
개봉의 중앙에 자리 잡은 장소.
다섯 명의 거지 소년이 대저택들이 모여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우와, 여기가 하림 형 집이라고요?”
팽유도는 저택에 들어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행 모두 남하림이 남천상국의 삼남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개봉에 이런 대저택을 매입한 줄은 몰랐다.
“형, 진짜로 부자구나.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하하, 녀석. 이제 농담도 할 줄 아네.”
시끌벅적하게 내원을 지나자 본채에서 나온 양삼이 남하림을 맞이했다. 그의 옆으로 깔끔하게 씻은 동진부가 함께 나왔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양삼을 따라 동진부도 얼른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슥슥.
남하림은 어제와 다르게 밝은 표정을 짓는 동진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좀 괜찮아졌네. 잘 지냈어?”
“네. 고맙습니다.”
남하림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함께 온 네 사람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누군지는 알겠지?”
“도련님의 동료분들이지 않습니까.”
“맞아.”
양삼은 나이가 어려 보이지만 그가 모시는 남하림의 동료들에게 두 손을 모으며 예를 취했다.
스윽.
이휘연은 본채로 들어서면서 무인들 사이에 서 있던 준극남에게 눈길을 주었다.
‘누구지? 제법 예리한 기를 가졌어.’
“휘연 형, 이 사람은 준 호위이고, 우리 식구야.”
“…….”
이휘연은 준극남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선 일행은 자리에 앉았다.
양삼은 동진부의 뒤에 서서 가볍게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도련님, 진부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남하림은 동진부를 보았다.
“무슨 할 말이 있어?”
“그날 저녁에…… 저녁에…….”
겨우 열 살 정도의 아이가 밝히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였다.
“괜찮아. 천천히 이야기해도 된다.”
양삼은 떨고 있는 진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부드럽게 안았다.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 아버지가 저를 불이 꺼진 아궁이 속에 숨겨주고 나가다가…… 나쁜 사람들에게 그만 목숨을 잃었어요.”
동진부의 아버지는 황안촌장의 밑에서 일하던 관리인이었다.
“나쁜 놈들이 몇 명인지 봤어?”
“……세 명요. 불을 지르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숨어 있는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을 찾아 죽였어요.”
“혹시 그들의 얼굴을 봤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는데…… 제가 숨은 곳으로 온 남자가 돌아설 때 목을 봤어요. 이상한 동물 모양의 문신이 보였어요.”
남하림은 울지 않기 위해 꾹 참고 있는 동진부를 토닥였다.
“됐어. 이제 그만해도 된다.”
동진부의 말을 들은 남하림은 그날 저녁에 일어났던 상황이 그려졌다.
분위기가 무거웠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원한 관계가 아니라 어떠한 목적이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어떻게 할까?”
남하림이 네 사람을 보며 물었다.
황안촌에서 화재 현장에 다녀온 뒤 동진부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솔직히 호기심이 강했다.
하지만 사건의 정황을 알면 알수록 일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겁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물러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맞아. 완전 나쁜 놈들이잖아. 시체들을 보니 어린아이들까지 죽였어.”
“나도 유도와 무독의 뜻과 같아.”
남하림은 마지막으로 이휘연을 보았다. 그는 일행 중에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이번 일은 위험할 것 같다. 살인자의 무공을 봐서는 보통이 아니야. 만일 지금 그들과 맞서게 된다면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이휘연의 걱정은 다른 게 아니라 그들과 싸우게 될 네 사람의 목숨이었다.
“형은 자신 있잖아요. 안 그래요?”
“…….”
이휘연은 그를 똑바로 보는 남하림의 눈과 마주쳤다.
“이길 수 있다.”
“나도 자신 있어요.”
스윽.
남하림은 나머지 세 사람을 보았다.
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피식.
이휘연은 겨우 열다섯밖에 안 된 네 명의 소년들을 보았다.
“모두 정상이 아니군. 하긴 그러니 개방으로 왔겠지.”
“그건 형도 마찬가지라고요.”
다섯 명은 황안촌 사건을 끝까지 조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무독, 아까 필요한 게 있다고 했잖아. 양 총관에게 말하면 구해줄 거야.”
“알겠어.”
남하림은 다른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혹시 개인적으로 필요한 건 없어?”
“검 한 자루 구할 수 있나?”
이휘연은 무당의 검법을 익혔다. 맨손으로 싸울 순 없었다.
“알겠어요.”
“하림 형, 저도 도가 있으면 좋겠어요. 조금 가벼운 걸로…….”
“그래, 구해보도록 할게.”
스윽.
당무독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이왕 부탁하는 김에 몇 가지 독을 만들 재료도 있으면 좋겠는데…… 어렵겠지?”
“아니. 괜찮아. 양 총관이라면 다 구해줄 거야. 능력이 좋거든.”
“아…… 그렇구나.”
모든 시선이 바로 양삼에게 집중됐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황했을 테지만 양삼은 아무렇지 않았다.
늘 있던 일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내일까지 구해놓도록 하겠습니다.”
* * *
덜컹.
문이 세차게 열렸다.
일장로 장두철은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하림이 이노오오옴-!”
방에 들어선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어서 나오지 못할까?”
내부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썰렁.
‘…….’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놈이 또 어디로 사라졌지?”
이틀째 무공 수련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처음엔 하루 정도는 빠질 수 있지, 하고 너그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틀 연속 오전 수련에 나타나지 않자, 장두철은 손수 남하림을 잡으러 왔다.
“잡히기만 해봐라. 혼쭐을 내줘야겠어. 대체 무슨 짓을 하기에 수련에도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군!”
장두철은 콧김을 뿜으며 밖으로 돌아섰다.
“뭐야. 이건.”
그러다 안쪽 문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았다.
사부님께.
제자 남하림, 잠시 볼일이 있어 외부에 다녀오겠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설향주를 서너 병 구해서 가지고 갈게요.
“설향주?”
한 입 마시면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최고급 술이었다.
워낙 비싸서 주향마저도 돈을 내야 맡을 수 있다는 술이 설향주였다.
“흐음…… 뭐…… 바쁜 일이 있으면 잠시 빠질 수도 있지.”
장두철은 문에 붙은 종이를 떼서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돌돌 만 뒤 손안에 감추었다.
* * *
탁자 위에 물건들이 하나둘 쌓였다.
이휘연이 부탁한 검.
팽유도가 원했던 도.
그리고 당무독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독충들과 약재들이 놓였다.
“봤지? 양 총관의 능력이라면 못할 게 없다니깐.”
남하림은 뿌듯했다.
척.
이휘연이 탁자에 놓여 있는 검을 잡았다.
‘음…….’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좋았다.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당겼다.
스르르릉-
거침없이 나오지만,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는 부드러웠다.
“나쁘지 않군.”
“마음에 드는 모양이네요.”
“고마워. 좋은 검이다.”
“나도 좋아요!”
팽유도도 마찬가지로 손에 든 도가 마음에 들었다.
슥슥.
당무독은 탁자에 놓인 재료들을 하나씩 살폈다.
“최상급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간단한 독은 만들 수는 있겠어.”
“독을 만든다고?”
“간단해. 난 피부가 약해서 손으로 직접 만질 순 없지만, 옆에서 누가 도와주면…….”
“내가 도와줄게.”
“고마워, 철각. 그럼 우선 시체에서 나온 독이 무슨 종류인지 알아볼게. 어디 조용한 곳 없어?”
“양 총관이 안내해 줄 거야.”
당무독과 성철각은 곧장 양삼을 따라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팽유도는 당장에라도 움직이고 싶었다.
“형, 이젠 뭘 하죠?”
“무독이 어떤 독인지 알아낼 때까지 기다리자. 쉬고 있어.”
스윽.
이휘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몸을 푸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어! 그럼 나도…….”
팽유도도 이휘연을 따라 내원으로 내려갔다.
휙휙.
스슥-
두 사람은 서로 떨어진 채 검과 도를 휘두르며 수련을 했다.
한참을 지켜보던 남하림의 뒤로 양삼이 다가왔다.
“멋진 솜씨입니다.”
무공을 펼칠 수는 없지만 남천상국에서 많은 호위 무사들의 수련을 보았기에 양삼의 보는 눈은 남달랐다.
무당파의 검은 새롭게 개안을 하는 듯했다.
양삼의 시선이 이번에는 팽유도를 향했다.
“역시 하북팽가의 도법을 펼치기엔 몸이 왜소한 듯합니다.”
“그렇지? 그래도 다른 건 정말 똑똑한 애야.”
“도가 무겁고 길어서 거추장스러워 보입니다. 도 때문에 몸의 움직임이 막히는 것 같습니다.”
“……흠.”
남하림은 한참 동안 팽유도의 동작을 쳐다보았다.
‘차라리 도를 반으로 자르면 좋지 않을까?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만약 안 되면 새로 구해주면 될 뿐이다.
“유도야, 잠깐만.”
남하림이 내원으로 내려섰다.
“형, 무슨 일이세요?”
“혹시 그 도(刀)를 반으로 자르면 어떨까?”
“네에?”
“한번 잘라보자. 안 되면 다시 구해다줄게.”
“알겠어요.”
남하림은 도를 건네받아 이휘연에게 넘겨주었다.
“형, 혹시 대충 반 정도 자를 수 있어요?”
“알겠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공이 들어있지 않는 도검은 그저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이휘연은 돌 틈에 도를 밀어 넣은 뒤 강하게 힘을 주며 내리쳤다.
뚝.
도신(刀身)이 반으로 잘리며 반도가 되었다.
“괜찮겠어?”
“잠깐만요.”
휙. 휙.
팽유도는 반도를 받아서 휘둘렀다.
처음과 다르게 짧지만 묵직하면서도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앗. 좋아요. 이런 느낌 처음이에요!”
사촌형제들이 펼치는 무공을 보면서 늘 부러워했던 소리,
오랫동안 세가에서 수련했지만 한 번도 내보지 못한 소리였다.
“형, 고마워요.”
“하하, 뭐 이 정도로…… 다행이네. 마음에 들어서. 다시 수련해 봐.”
“알겠어요.”
팽유도는 도법을 펼치면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한 시진이 지났다.
들뜬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찾았다.”
당무독과 성철각이 다가왔다.
“그놈이 쓴 독을 알아냈어.”
“오우, 정말?”
“칠향사의 독을 한 달 동안 말린 후 독주(毒蛛)의 종류인 삼음주에서 뽑아낸 침에 발라 만든 맹독으로, 독문에서는 칠음독(七陰毒)이라고 해.”
“말만 들어도 겁나네.”
“중원 무림에서 칠음독을 제조할 수 있는 문파는 많아. 근데 칠음독 같은 특별한 맹독은 잘 만들지 않아.”
“왜?”
“칠향사는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삼음주는 거의 한 지역에서밖에 나지 않거든. 하북의 무운현인데…… 그곳에 독진각이라는 독문이 있어.”
“어떻게 그런 것을 알아?”
“내가 독을 만지진 못해도 웬만한 서적들을 다 읽었거든. 독에 관해 읽은 서적들은 전부 외우고 있어.”
“너어…… 머리 좋구나.”
“머리만 좋으면 뭐 해. 직접 만지지도 못하는데. 만지면 두드러기가 나서 안 돼.”
“그래도 대단한데. 혹시 네 가문 사람들도 알고 있어?”
“당연히 모르지. 괜히 말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여하튼 수고했다. 일단 범인들의 범위가 좁혀졌어.”
황안촌 사건을 일으킨 살인자 세 명.
그들의 특징을 모두 알게 되었다.
“음…… 우선 그놈들이 누구인지 알아봐야 하겠지?”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긴. 중원 무림에서 사람 찾는 데 개방보다 뛰어난 곳이 어디 있어?”
* * *
대롱대롱.
남하림의 두 손에서 술병이 흔들거렸다.
“사부니임.”
남하림이 장로전에 들어서며 장두철을 불렀다.
“들어오너라.”
드륵.
남하림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킁킁.
장두철의 콧구멍이 실룩거렸다.
‘오호…….’
남하림의 손에 든 술병에서 머리를 혼미시킬 주향이 느껴졌다.
“이 녀석아. 대체 요즘 어딜 싸돌아다니는 것이냐?”
“그러게요. 저는 거지가 되면 할 일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거지도 되게 바쁘네요. 우선 여기 설향주를 받으세요.”
“요게 설향주가 맞느냐? 이 귀한 술을 어디서 구했느냐?”
“사부님이 술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예전부터 구하려고 수소문했어요. 아쉽지만 요것밖에 못 구했어요.”
덥석.
장두철은 남하림을 안아 들었다.
“요…… 귀여운 것! 네가 복덩어리구나.”
“사부, 숨 막혀요.”
“아아, 미안.”
남하림은 술병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장두철을 보았다.
그사이 장두철은 술병을 두고 좌우로 왔다 갔다 움직였다.
‘음…… 이것을 어디에 두지? 사방에 눈독을 들이는 술귀신들이 눈치채면 빼앗기는데…….’
“휴우…… 여기면 괜찮겠지.”
장두철은 설향주를 숨긴 뒤 안심했다.
“사부님.”
“어, 왜,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를 보는 남하림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 보였다.
“네. 할 말이 있어요.”
“중요한 이야기냐?”
“네.”
“…….”
장두철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거지 생활이 싫어 남천상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막을 수 없었다.
“무엇이냐? 본 방의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
“마음에 들지는 않죠. 근데 그건 아니에요.”
“어흠, 그럼 무엇이냐?”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어요. 사람을 찾고 싶어요.”
“사람을 찾는다고? 하긴 본 방이 사람 하나는 잘 찾지. 어떤 놈이냐?”
“네. 아주 나쁜 놈이 있어요.”
남하림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장두철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두철의 눈이 평소보다 두 배로 커졌다.
‘허얼…… 이놈, 지금까지 뭐 하고 다닌 게야?’
장두철은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