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건에 따라가다
협의문을 나서는 남하림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한 달 동안 별렀던 일을 쉽게 해결했다.
‘어찌 알고 이렇게 딱 맞춰서…… 히히히.’
현재 하림의 거처는 임시방편으로 지은 상태였다. 물론 다른 개방 제자들이 지내는 움막에 비한다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궁궐 같지만.
하나 급하게 짓는 바람에 하림의 마음엔 들지 않았었다.
그동안 쭉 제대로 지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윗선에서 허락해 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사이에도 하림은 포기하지 않고 주작남지를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냈다.
‘저들은…….’
협의문에 가까워지자 남하림의 눈에 한곳에 모여 있는 사내들이 보였다.
백한묵의 호위였던 준극남과 그의 수하들이었다.
백한묵의 호위를 때려치운 준극남은 개봉을 떠나기 전 남하림을 만나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나를 기다린 모양이군요.”
“그렇소이다.”
준극남은 한참이나 나이가 어린 남하림을 정중하게 대했다.
“일단 걸을까요?”
“아…… 네.”
뒤에서 궁금해하는 협의위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준극남이 남하림의 뒤를 따랐다.
‘…….’
작은 뒷모습의 등.
하지만 백한묵과 다르게 남하림에게서는 거인의 향기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협의문에서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한 남하림이 준극남과 마주 섰다.
“무슨 일인가요?”
“공자께서 저에 대해서 했던 말이 진심인지 묻고 싶었소이다.”
“무슨?”
“백한묵에게 말하기를, 제 능력은 황금 두 냥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하…… 그것 때문에 찾아왔어요? 맞아요. 쪼잔한 백한묵은 사람을 볼 줄 모르죠. 호위를 때려치운 것 같은데 잘하셨어요. 더 좋은 조건으로 알아주는 곳을 찾아보세요.”
“만일 공자께서 본인의 능력을 사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것보단 생각하시는 액수를 말해보세요. 자신의 능력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잖아요.”
“…….”
남하림의 눈빛은 열다섯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월봉으로 본인과 수하들까지 합친다면 금 석 냥 정도가 적당할 것 같소이다.”
“그런가요? 좋아요. 혹시 무엇을 할지 계획이 있나요?”
“없소이다.”
준극남은 백한묵의 호위를 그만둔 뒤 다른 일을 맡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니면 더는 목숨을 걸고 호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내 밑에서 일할 생각이 있나요? 금 한 냥 더해서 한 달에 넉 냥이라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
금 넉 냥이라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일반 평민 중에서 많이 버는 자의 수입도 한 달에 은 두 냥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금 넉 냥이라면 최소한 은 팔십 냥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준극남은 남하림의 배포에 놀랐다.
“어때요? 계약할래요?”
“…….”
“월봉은 선불로 하죠. 아마 그 쪼잔한 놈은 후불로 했을 게 분명해요.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신의가 있어야 하죠. 본 남천상국에서 계약은 무조건 선불로 계산해요.”
준극남은 남하림이 어떤 연유로 개방 제자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남천상국 셋째 아들이란 것은 백한묵의 수하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중원에 떠돌던 소문처럼 남천상국은 누구나 취직하고 싶어 하는 직장인 듯했다.
척.
준극남은 포권을 하는 동시에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공자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잘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따라오세요.”
“네. 공자님.”
* * *
준극남은 대저택으로 들어서면서, 허리를 숙이며 남하림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하는 사내를 보았다.
“여기 내 집이야.”
“…….”
개방 제자가 개봉에서 대저택을 소유하는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누구지?’
남하림을 맞이하던 양삼은 주인과 함께 온 십여 명의 사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양삼, 오늘부터 함께 지낼 호위 무사들이야.”
“언제 사람들을 알아보셨습니까?”
두 사람은 현무북지 일을 처리하면서 옆에서 도움을 줄 무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양삼이 곧장 호위들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내 좌우명이 궁즉통(窮卽通)이잖아.”
“알겠습니다. 월봉은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알잖아.”
양삼은 모시는 주인의 성향을 잘 알았다.
“얼마로 정했을 것 같아?”
“음. 보아하니 금 석 냥 정도면 되겠는데, 도련님의 성향으로 봐서는 한 냥을 더해 넉 냥으로 정한 것 같습니다.”
양삼의 말에 조용히 서 있던 준극남의 눈빛이 변했다.
‘저자는 뭐지?’
남하림을 모시는 하인쯤으로 생각했는데, 그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준 호위. 인사해. 양삼이라고, 내 모든 것을 처리하는 총관이야. 오면서 말했지만 준 호위의 임무는 양삼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소신이 목숨을 걸고 양 총관님을 호위하겠습니다.”
척.
양삼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양삼이라고 합니다. 성함이……?”
“준극남이라고…… 합니다.”
“준 호위님이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준극남은 양삼과 손을 잡으면서 그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양삼, 잠시 의논할 일이 있어 왔어.”
“알겠습니다. 준 호위와 먼저 들어가 계시면 바로 정리를 하고 따르겠습니다.”
* * *
반각 후.
양삼이 일을 정리한 후 본채로 들어왔다.
“의논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주작남지에서 지낼 집을 지어야겠어.”
“잘됐습니다. 그동안 고민이 많으셨을 텐데 허락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현재 거처하고 있는 집이 작아서 새로운 집 마련에 하림의 고민이 많았다.
“어. 방금 법개님께 허락받고 바로 오는 길이야. 근데……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입니까?”
“혼자가 아니라 다섯 명이 지내야 할 것 같아.”
“다섯 명이라니.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저번에 내가 말했잖아. 나처럼 개방 거지가 되기 위해 네 사람이 더 왔다고. 방주께서 다섯 명이 함께 지내야 집 짓는 걸 허락해 준다고 했어.”
“음……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들과 함께 지내면 많이 불편하실 것입니다.”
“어쩔 수 없잖아. 혼자 지내는데 집까지 짓겠다고 하면 허락을 안 해줄 텐데.”
“알겠습니다. 도련님께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언제부터 일을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십 년 정도 무리 없이 지내야 하니 알아서 해줘.”
“다른 건 없습니까?”
“같이 생활하는데 나 혼자 따로 먹을 수는 없잖아.”
“그럼 식사 준비를 오 인분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옷도 비단은 부담스럽다고 하니 일반 천으로 깔끔하게 서너 벌씩 맞춰야겠어.”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주작남지에 지을 건물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다.
“아 참.”
양삼은 갑자기 생각난 게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어제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난고현에 있는 황안촌에서 촌장의 집이 완전히 불에 탔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온 개봉이 시끌시끌했다.
“불조심하지 않고…… 쯔쯔.”
“촌장 부부는 물론, 그곳에 있던 아이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죽은 채로 발견된 모양입니다.”
“안타깝네. 양삼도 식솔들에게 항상 주의시켜. 알겠지?”
“알겠습니다. 근데 소문으론 촌장의 식솔들과 하인들은 불에 타서 죽은 게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한 관계에 의해 누가 죽였다는 뜻이야?”
“네. 그런 듯합니다.”
“쳇.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나중에 범인이 누군지 밝혀지면 알려줘. 궁금하니깐.”
남하림의 호기심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가야겠어. 수고해.”
벌떡.
준극남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신이 개방까지 모시겠습니다.”
“준 호위는 여기에 있어. 알아서 갈게.”
“아닙니다. 소신이…….”
“괜찮아. 거지가 호위까지 데리고 다닌다고 하면 안 봐도 또 난리 날 거야. 준 호위는 불 지른 놈들이 돌아다닐지도 모르니 양삼을 잘 부탁해.”
“네. 명심하겠습니다.”
남하림은 가볍게 손을 든 후 밖으로 나섰다.
* * *
다다다다-
스무 명 정도의 거지들이 협의문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허리에 백색의 매듭이 둘러져 있었다.
이들은 개방의 외조당으로, 외부 무림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임무를 맡은 부서였다.
백색의 매듭은 세 개의 청홍백단 중 외조백단의 표식이었다.
선두에서 달려오는 외조백단의 단주 우창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황안촌에서 일어난 사건.
언뜻 개방과는 연관이 없는 듯 보였으나, 황안촌은 속각(粟殼)을 재배하는 마을이었다.
속각의 관리는 관에서 맡고 있었지만, 시중으로 함부로 유통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임무는 관할 영역 안에선 개방이 맡아 했다.
스윽.
남하림은 옆으로 슥 물러섰다. 외조백단이 그냥 지나갈 줄 알았다.
‘……?’
그런데 갑자기 외조백단의 움직임이 멈췄다.
옆으로 물러서 뒤돌아섰다고 해도 남하림의 비단 천 거지 복장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남하림.”
비단옷을 두른 개방 거지는 십만개방도 중 딱 한 명밖에 없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인가?”
“밖에 볼일이 있어 갔다 오는 길인데요.”
“거지 후보생이 함부로 밖에 나돌아 다닐 수 있는 모양이지?”
“저 거지 후보생 아닌데요.”
“…….”
우창은 허벅지 아래로 늘어뜨린 남하림의 일결 자루 매듭을 보았다.
‘일결? 벌써?’
반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일결제자가 되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일결이라고 해서 함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장로이신 사부님께 사전에 말씀드렸고 방주께서도 허락하셨어요.”
“확실한 것이냐?”
“직접 물어보세요. 아니면 사부님께 가서 어떤 분이 거짓인지 아닌지 물었다고 여쭈어볼게요. 혹시 성함이?”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이더냐?”
“아니, 제가 어떻게 알아요? 얼굴도 처음 보는데.”
그를 몰라보는 남하림을 보면서 우창은 화를 벌컥 냈지만, 사실 서로 처음 마주 보는 사이였다.
“난 외조백단주 우창이다.”
“그렇군요. 그럼 우 단주님이 직접 사부님께 제가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보세요. 전 그만 갈게요.”
귀찮은 표정을 짓는 하림의 모습에 우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놈이…… 어른이 말을 하는데 어디서 함부로 인상을 쓰느냐?”
“괜히 소리를 지르시잖아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
우창은 뭔가 꼬투리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남하림을 살폈다.
“바쁘지 않으세요?”
“남하림. 할 일 없는 것 같은데 따라와.”
외조백단주의 권한으로 일결제자를 임시로 차출할 수 있었다.
추개 영충을 존경하는 우창에게 남하림은 언젠가 한 번쯤 손을 봐야 할 녀석이었다.
남하림은 소문을 들으면 들을수록 개방을 무시하는 놈이었다.
즉흥적인 결정이었지만 개방이 무림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
‘개방을 무시하는 꼬맹이. 중원에서 본 방을 얼마나 대단하게 대하는지 보여주마.’
남하림은 뜬금없이 따라오라는 우창의 말에 되물었다.
“네에? 저 바쁜데요?”
“잔말이 많다. 그냥 뒤에서 조용히 따라와서 본 방이 어떤 일을 하는지 봐라.”
‘…….’
우창의 부릅뜬 눈을 보니 자신을 보내줄 것 같지 않았다.
“알겠어요. 가요, 가. 근데…… 어디에 가는 건가요?”
“그냥 따라와라.”
“너무하시네요. 어차피 알게 될 텐데 알고 가면 편하잖아요.”
“이 자식이…… 왜 이리 말이 많아?”
“시끄러우면 그냥 돌아갈까요?”
“이 녀석이…….”
대화를 하면 할수록 화가 난다던 소문도 십분 이해가 되었다.
“한 번만 더 조잘거리면 입을 막고 데리고 갈 것이다. 알겠지?”
“알았어요. 조용히 따라갈게요.”
남하림은 외조백단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저어…….”
하지만 가만히 있진 않았다.
남하림은 앞서가는 외조백단원을 살며시 불렀다.
휙.
그 또한 인상을 쓰며 남하림을 매서운 시선으로 짐짓 노려보았다.
하지만 남하림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우리 어디 가는 건가요?”
“진짜로 웃긴 녀석이군.”
반직문은 겁이라곤 없는 남하림을 보면서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황안촌에 가는 길이다.”
“…….”
황안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미 양삼에게 들었다.
“거긴 왜요? 큰불이 났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그 정도야, 저도 귀가 있다고요. 정보 하면 개방 거지잖아요.”
피식.
반직문은 웃음이 나왔다.
“근데 개방에서는 남의 집에 불난 것도 참견하는 건가요?”
“하긴 네놈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지.”
“뭔데요?”
“황안촌에서는 속각을 재배하고 있어. 그곳을 촌장이 관리하지.”
“속각이라면…… 양귀비를 말하는 건가요?”
“맞다. 속각은 함부로 유통되면 안 되기에 본 방이 관과 함께 관리하고 있지. 그곳 촌장이 죽었으니 당연히 본 방에서 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
“아하.”
남하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각이라.’
북방상국의 사업 중 하나.
중원오대상국 중 나머지 사대상국은 북방상국의 아편 사업을 계속 의심했지만, 그들은 매번 오리발을 내밀었다.
다른 상국에서 증거를 찾기 전에 항상 한 발 앞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속각을 관리하던 집안의 멸문.
개방에 밀려 사업 손해가 막심한 북방상국.
‘잘하면 북방상국에서 아편에 손을 댄다는 증거를 잡을 수 있겠어.’
순간 남하림의 눈동자가 빛나며, 호기심이 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