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5화 (6/328)

5. 삼결제자 구타사건

남하림은 막항을 기절시킨 후 거처로 돌아가면서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작남지에서 정신을 잃고 실려 나오는 막항을 그의 상관 증보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게 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이보게, 장지. 사건이 터졌어.”

“무슨 사건?”

“못 들었는가? 그 녀석이 막항을 완전 개 패듯이 패서 얼굴이 개차반이 됐다고 하더군.”

“누가 팼다는 거야?”

“그놈, 뭐냐, 이번에 새로 들어온 녀석. 밉상 있잖아?”

“남하림이?”

“어. 맞아, 그 녀석. 크크크, 이번에 제대로 사고를 친 모양이야. 위에서 지금 난리도 아니야.”

그는 무엇이 재밌는지 침을 튀기며 들었던 이야기를 장지에게 쏟아냈다.

“그 녀석이 막항을 팼다고?”

장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막항은 삼결제자였다. 무공도 그에 맞게 강했다.

‘뭐야?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될 텐데?’

“그놈은 무결이지 않아?”

“무결 맞지. 그러니깐 사건이지. 무결이 감히 삼결제자를 개박살 냈으니깐 하극상은 물론 완전 파문이지. 안 그래?”

“물론 파문은 맞는데, 막항이 그놈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어. 그렇지. 그게 왜?”

‘이 돌대가리가?’

그런 일은 일어날 리가 없었다.

“아. 됐네.”

장지는 더 묻지 않았다. 입만 아플 뿐이었다.

“쩝. 여하튼 지나가다가 들었는데 윗분들은 이번에 그 녀석을 제대로 쫓아낼 수 있으니 잘됐다고 했다네.”

그의 말대로 큰 사건임이 틀림없었다.

“그 녀석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지?”

“당연히 형옥에 갇혀 있을걸?”

“지저분한 것을 싫어하는 놈이 형옥이라…… 후후후.”

장지는 웃음이 나왔다.

이미 개방에서 남하림에 대해 모르는 거지는 없었다.

십만개방도(十萬丐幇徒)란 말이 있듯 동문이라도 가까이 있지 않으면 서로에 대해 까맣게 모를 정도로 너른 개방에서, 남하림에 대해 모르는 거지는 이미 한 명도 없었다.

* * *

드르릉.

퓨우.

세상 편하게 잔다.

남하림은 규율당 형옥에서 하루를 보냈다.

막항과의 일이 벌어진 후 거처로 돌아오자마자 형개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곧장 형옥으로 끌려왔다.

드르르릉.

이번에는 코고는 소리가 더 길었다.

“저 녀석 보게?”

멀리서까지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형옥장 감장천이 어이없는 시선으로 바닥에 누워 있는 남하림을 보았다.

형옥을 맡은 지 십 년.

그동안 규율을 어긴 개방의 거지들이 수없이 형옥에 들어왔다.

형옥에 들어오면 죄를 지었거나 아니거나 첫날은 거의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예 자기 방이군.”

감장천이 창살 가까이 다가섰다.

형옥 바닥에 깔아놓은 푸른빛의 비단 천.

감장천은 그 위에 누워 잠을 자는 남하림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비단 천을 가지고 다닐 줄은…….’

소문대로 특이한 녀석이 맞았다.

‘생긴 건 귀엽네.’

예전에 사귀었던 그녀와 결혼을 했다면 요만한 아들이 있었을 것이었다.

번쩍.

그때 깊은 잠에 빠진 줄 알았던 남하림과 눈과 마주쳤다.

‘헉!’

그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뭘 쳐다보시나요?”

‘…….’

감장천은 할 말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그게…… 밥 때가 된 것 같아서 깨우려고 했지.”

남하림은 여전히 누워 있었다.

“생각 없어요. 안 먹어요.”

“왜 안 먹는다는 거지?”

“더럽잖아요. 수저를 제대로 씻은 게 맞나요? 많은 사람들이 입에 넣고 빨고 했던 것을 어떻게 입에 넣어요.”

“여기에 들어온 지 한 끼도 안 먹었잖아. 그러다 죽어.”

“차라리 죽죠. ……근데 제가 못 먹고 죽는다면 상당히 피곤하실 겁니다.”

감장천도 이 녀석이 누구의 자식인지 잘 알았다.

“근데…… 일어나서 나하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배가 고파서 일어날 힘이 없어요.”

‘망할 녀석.’

그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말 시키지 마세요. 힘들어요.”

“…….”

스윽.

남하림은 바닥을 기는 굼벵이처럼 천천히 몸을 반대로 돌렸다.

‘이래서 상부에서 쫓아내고자 하는구나.’

몇 마디 나눈 사이에도 화가 불쑥 튀어나오려 했다.

덜컹.

그때 형옥의 문이 열렸다.

미간에 힘이 바짝 들어간 굳은 인상.

규율당 소속의 두 명의 형개가 어깨에 힘을 주며 들어섰다.

그들은 형옥의 절차를 무시하며 형옥으로 곧장 들어섰다.

“무슨 일이오?”

“형옥장,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지?”

두 명의 형개 중 한 명.

구레나룻이 진한 형개, 그가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냈다.

감장천은 기분이 살짝 나빠졌다. 그가 형개라 하지만 감장천은 그보다 먼저 입방을 한 선배였다.

“두경, 방금 무슨 짓이라 했는가?”

“그렇소. 죄를 지은 놈이 반성은 하지 않은 채 옥에서 하는 짓거리를 보시오.”

“비단 천은 내가 준 게 아니다. 그리고 난 옥에 갇힌 죄인을 지키기만 하면 될 뿐이지, 이놈이 비단에 파묻혀 잔다고 해도 상관할 이유가 없다.”

“쯔쯔,. 이래서 좋은 보직을 못 맡는 모양이군.”

“두경, 말이 심하군.”

“뭣이 심하다는 것이오? 사실대로 말을 했을 뿐인데.”

‘이 새끼가?’

같은 규율당 소속이지만 형개들은 형옥장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형옥장은 눈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에라도 부딪힐 것 같은 분위기였다.

“두 분, 싸우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싸우세요.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어요.”

돌아서 누워 있던 남하림의 목소리가 들렸다.

휙.

형개 두경은 쇠창살 너머로 고개가 돌아갔다.

“이놈이…… 방금 뭐라고 했느냐?”

“귀가 안 들릴 정도의 나이는 아니시지 않나요?”

여전히 돌아누운 채다.

빠직.

형개의 이마에 힘줄이 끊어지는 듯했다.

차아앙.

두경은 쇠창살을 차며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똑바로 안 일어나?”

남하림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돌아섰다. 그리고 얼굴이 벌겋게 변한 두경을 똑바로 보았다.

“다시 말해보지? 뭐라고 했지?”

“시끄러우니 밖에 나가서 싸우라고 했어요.”

“너 이 새끼가…… 죽고 싶은 것이냐?”

피식.

남하림은 짧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를 보며 말했다.

“정말로 저를 죽이고 싶으신가요? 자신이 있다면 모를까, 괜히 겁주지 마세요. 하나도 겁 안 나요. 뭐, 어쩌면 앞으로 십 년 동안 거지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네요.”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두경은 남하림의 시선과 마주쳤다.

열다섯밖에 되지 않는 녀석.

그는 남하림의 집안 배경에 대해 잘 알았다. 집안 배경을 믿고 세상이 마치 자신의 것인 줄 아는 놈들.

눈앞에 있는 이놈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근데 그것보다 더 또라이였다.

‘이 새끼는 미친놈이다.’

* * *

용두방주를 포함한 개방의 주요 인물들이 굳은 표정으로 각자의 통나무 의자에 앉았다.

무결제자가 삼결제자 턱을 깨뜨려 중상을 입힌 사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하극상이 방 내에서 일어났다.

영충은 이번만큼은 절대로 봐줄 수 없다면서 파문시켜야 한다고 날뛰었다.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소이다! 심사는 무슨 심사를 또 한다 말이오? 모든 정황을 보고도 모르겠소이까?!”

“이보게, 추개. 흥분을 가라앉히게. 자네 말대로 잘못했다면 쫓아내야겠지만 그 아이의 말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더 들어볼 것도 없네!”

“허허, 자네는 왜 그리 급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가? 만일 무작정 파문시켰다가 나중에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할 텐가? 그 아이가 일반 아이인가? 혹시 모를 파장이 있다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가?”

“법개. 겨우 그런 문제 때문에 그 녀석을 두둔하는 것인가? 물론 방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최소한의 자금이 필요한 건 알겠네. 근데 그 자금이 없다고 해서 개방이 어려워지는 건 아니거늘 자네에게 실망이군!”

“추개. 내 말을 오해한 것 같네. 나를 그런 속물로 생각했다니 오히려 자네에게 더 실망이네.”

‘…….’

영충의 인상이 굳어졌다.

위한소의 설명이 이어졌다.

“난 그 아이의 배경에 대해서 말을 한 게 아니네.”

“그럼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본 방이 오래전에 있었던 일로 생색을 내면서 무엇 때문에 각 문파에 협조 공문을 보낸 것인가? 부끄럽지 않던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난 속으로 치욕스러웠네.”

“…….”

“그 많은 곳에 방주님의 친필 서신을 보냈지만 현재 몇 명이나 왔는가? 남천상국밖에 없네. 물론 여러 곳에서 보낼 것이라 답장을 받았지만 언제 올지 확신을 못하지 않나? 그런데 지금 개방에 들어온 남하림마저 내보내고자 하네.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디에서 본 방에 인재를 보내주겠는가?”

“법개, 자네 말은 잘 알겠네. 근데…… 그 녀석이 인재라는 말인가?”

“당연히 인재이지. 그 녀석이 인재가 아니면 누가 인재겠나? 무공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녀석이 본 방의 삼결제자와 싸워 이겼네.”

“…….”

영충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때 밖에서 형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결제자 남하림을 끌고 왔습니다.”

“들어오라.”

덜컹.

문이 열리며 두 명의 형개 사이에서 남하림이 들어왔다.

‘……그래도 저 녀석만큼은 안 된다.’

뻔뻔해 보이는 남하림을 보고 다시 열이 오른 영충이 소리쳤다.

“무릎을 꿇어라!”

스윽.

남하림은 대꾸도 없이 무릎을 꿇었다.

‘…….’

하지만 위한소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남하림을 보면 조용하게 영충의 말에 따를 리 없었다.

용두방주 오종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우리에게 할 말은 없느냐?”

“없어요.”

“허허, 본 방주는 네가 직접 모든 일을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

“제가 설명한다고 해도 믿지 않을 분들이 있으시니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막항은 제가 다치게 했으니 방규대로 처리해 주세요.”

영충은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사실 영충은 하림이 여기로 끌려오면 하극상은 사실이 아니라며 날뛸 거라 예상하고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근데 남하림은 순순히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방주님, 이 녀석도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스윽.

위한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개, 내가 물어봐도 되겠소?”

“알겠네.”

영충은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허락했다.

위한소는 남하림을 보며 물었다.

“네가 막항은 다치게 했다는 것은 알겠다. 근데…… 왜 다치게 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

“굳이 그것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남하림은 고개를 숙였다.

‘아, 진짜. 그냥 빨리 끝내세요. 뭘 그리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네.’

남하림은 형옥으로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기회다.

개방에서 빠져나갈 기회가 찾아왔다.

내 잘못은 없다.

파문을 당해도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께 억울함에 대해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역시 이상해. 이 녀석…… 설마?’

위한소는 평소와 달리 가만히 있는 남하림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정말로 할 말이 없느냐?”

“네.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그 말은 네가 잘못을 시인한다는 뜻이더냐?”

“잘못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무결인 제가 삼결제자와 싸웠다는 걸 문제 삼지 않으셨나요?”

“…….”

위한소는 자신의 물음은 은근슬쩍 넘어가는 남하림의 대답에 점점 더 의아해졌다.

‘이상한데?’

하림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선 인정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남하림. 다시 묻겠다. 삼결제자인 막항을 때린 잘못을 인정하는가?”

“제가 막항을 기절시킨 부분은 죄송해요. 아랫사람인 제가 넓은 아량을 베풀어야 했는데 욱해서 다치게 한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그 말은 인정을 한다는 말이더냐?”

법개 위한소는 눈을 부릅뜨며 남하림을 보았다.

“몇 번 말씀을 드리는 건지 모르겠네요. 선배를 다치게 한 죄, 방규가 설령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허허, 지금 나하고 말장난을 하자는 것이더냐?”

“법개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이것 또한 방규대로 처리해 주세요.”

남하림의 눈동자에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이…… 녀석. 정녕 개방에 들어오기 싫다는 것이더냐?’

위한소는 남하림이 삼결제자 막항을 기절시켰다는 소식을 들은 후 놀랐다.

열다섯의 나이.

상승의 무공을 익힌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막항이 아무리 방심을 한들 요행으로 이길 수는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무엇인가를 그가 숨기고 있는 듯했다.

덜컹.

그때, 문이 세차게 열렸다.

영충이 고개를 돌리면서 소리쳤다.

“감히 어떤 놈이 함부로 들어……!”

그는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일장로 항걸 장두철이 한 손으로 고개 숙인 거지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왔다.

씨익.

그의 누런 이빨을 보이면서 남하림과 시선을 마주쳤다.

‘앗, 저 할아버지가?’

의미심장한 항걸의 눈빛.

뭔가 틀어지는 듯한 오싹한 느낌이 하림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짜악.

장두철은 잡고 온 거지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꿇어.”

털썩.

그에게 잡혀온 거지.

박응은 힘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항걸님, 무슨 일이십니까?”

“추개,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타악.

장두철은 꿇고 있는 그의 머리를 때렸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불어.”

‘…….’

영충의 얼굴이 굳어졌다. 주작남지에서 일어났던 사건 전말에 자신이 모르는 무엇이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박응은 고개를 숙인 채 모든 일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막항이 말을 하기를, 건방진 놈은 비 오는 날에 먼지 나도록 맞아봐야 한다면서 남하림을 반쯤 병신으로 만들어놓자고 부추겼습니다.”

“저 녀석이 네놈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더냐?”

장두철은 화가 났다.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그냥…… 하는 짓이 보기 싫다고 해서.”

“그만. 네놈은 모든 책임을 막항에게 떠넘기는군. 더 이상 들을 필요 없다.”

‘아…… 이!’

남하림은 기운이 빠져나갔다.

당장에라도 쫓아낼 것 같았던 분위기는 이미 변한 뒤였다.

“하하하. 이 녀석아, 고맙지? 나중에 한턱내라.”

“으아악!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제발 가만히 있어주세요!”

남하림은 뒤로 누운 채 발버둥을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눈물이 찔끔 나왔다.

“…….”

그 모습을 본 개방의 걸출한 장로들은 어이가 없었다.

처음엔 멍하게 있던 장두철은 호탕하게 웃으며 남하림을 덥석 안았다.

“크하하하, 정말 물건이구나. 방주, 이놈은 내가 데리고 가마. 앞으로 이놈에게 손대는 놈 있으면 죽을 줄 알아. 알겠지?”

“이…… 이 거지 할아버지가! 놔요! 썩은 내 때문에 죽을 거예요!”

“크크크., 넌 절대로 개방에서 못 나갈 테니 그리 알고 있어.”

“아 씨! 이 거지 할아버지 좀 누가 말려주세요!!”

스윽.

그러나 장로들은 장두철과 그에게 꼼짝없이 안긴 남하림을 두고 하나둘씩 사라졌다.

“에이…… 괜히 시간만 뺏겼네.”

투덜거리는 목소리는 덤이었다.

* * *

콰아앙.

“뭣들 하는 짓이야!”

영충은 책상을 내리쳤다.

“죄송합니다.”

안용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일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죄송하다면 끝날 일이야? 어떻게 된 일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파악.

영충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서류를 그대로 던졌다.

종이들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막항, 그놈이 먼저 기강을 잡기 위해 건드렸다고 하던데?”

“아…… 하. 죄송합니다.”

“아하, 죄송? 알고 있으면서 나에게 보고도 안 했다는 거야? 미쳤어? 체벌의 목적으로 무결제자를 건드릴 수 없다는 방규를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그게…… 그 녀석들이 훈계를 한다는 게…….”

“정신 나간 놈들이…… 지금 나를 놀리는 거야? 훈계를 하겠다는 놈들이 주작남지에 왜 데리고 가는 거야?”

“죄송합니다. 제가 처리를 하겠습니다.”

“처리하긴 뭘 해? 당장 그 세 놈 모두 처넣어.”

“…….”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나?”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당장 시행하겠습니다.”

“됐어. 가봐.”

슥.

안용은 굳은 표정으로 그의 면전에서 물러났다.

“망할…….”

남하림을 쫓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던 게 실수였다.

평소였다면 확신을 한 뒤 움직였을 것이다.

‘성급했다. 어린놈에게 당했어. 내가 미끼를 덥석 물도록 말도 없이 기다리다니.’

이젠 놈에게 더 손을 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추개는 남하림이 알면 답답해서 가슴을 탕탕 칠 생각을 하며 중얼거렸다.

“항걸님께서는 그놈이 뭐가 좋다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지 모르겠군. 어휴, 거지 같은 놈이…….”

‘아니지.’

추개 영충은 방금 자신의 말을 부정하는 듯 빠르게 말을 바꾸었다.

“싸가지라고는 하나도 없는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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