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거지가 되다
하아.
도착을 하긴 했다.
언제 나갈지 모르지만 십 년간 몸을 담아야 할 곳.
개방은 무구한 역사를 지닌 문파 중 한 곳이었다.
한때 중원 최고의 무공으로 최정점에 이른 무림걸황의 신화를 가졌던 방파.
특히 무림걸황이 펼친 강룡십팔장의 무공은 중원 최고의 장법이었다.
‘그래도 제법 한가락하던 곳이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개방은…….
‘답이 없어. 이건…… 완전 거지 소굴이잖아.’
눈앞에 보이는 건 대평야.
그리고,
거지들뿐이다.
‘이 아까운 땅에 뭣들 하는 짓인지.’
찐득.
어제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지나가야 할 땅바닥은 물컹거리는 진흙 바닥이었다.
새하얀 가죽 신발.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다.
“저어…… 도련님.”
이십 세 초반의 사내, 충복 양삼은 몸을 떨고 있는 주인을 보았다.
주인보다 다섯 살 많은 양삼은 남하림이 열 살 되는 해부터 모셔왔다.
“양삼. 이게 꿈은 아니겠지?”
“죄송합니다.”
“하아. 내 나이 열다섯. 하늘은 너무 큰 시련을 주는구나.”
남들이 그 말을 들었다면 애늙은이라고 말을 했겠지만 양삼만큼은 아니었다.
오 년 동안 옆에서 모신 어린 주인은 너무나 똑똑했다.
“도련님, 소인이 개봉에 집을 구한 뒤 연락을 하겠습니다.”
“알겠어. 수고해. 가봐.”
“조심하십시오.”
“어.”
남하림은 한없이 제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라면…….’
진흙 바닥 속에서 단단하게 보이는 바닥을 찾았다.
슥.
한 발을 살짝 내디뎠다. 그런데 단단한 게 아니라 한 번도 밟지 않았던 바닥이었다.
“으아아악!”
남하림이 비명을 내질렀다.
‘내 신발이……!’
하얀 신발 바닥 위로 미세하게 묻은 진흙 자국이 커다랗게 보였다.
찔끔.
눈가에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돌아갈래.’
이런 거지 같은 곳에서 십 년을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두고 봐. 조만간 그들이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내겠어.’
남하림은 입술을 세게 다물며 다짐했다.
툭.
“뭐야, 이 자식.”
그때 누군가 어깨를 건드리며 하림에게 짜증을 냈다.
‘…….’
스무 살 정도의 거지가 아래위로 하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편 남하림과 부딪친 이결제자 아지현은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개방 앞에 서 있는 놈이 최고급 비단옷에 머리카락은 청포 기름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넌 뭐야?”
남하림의 눈에 누런 이가 보였다.
휴우.
말조차 섞기 싫었다.
“가시오.”
“뭐? 가시오? 이 새끼가 미쳤나?”
아지현은 어이가 없었다.
나이도 많아봤자 열다섯 정도.
영락없이 있는 집안의 싸가지 없는 자식 놈이 틀림없었다.
“…….”
남하림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으레 그랬듯 코를 실룩거렸다.
“야. 아버지가 첫날부터 사고는 치지 말라고 해서 참는다. 그냥 꺼져줬으면 좋겠는데.”
아지현은 동료 거지들을 보았다. 그들도 똥 씹은 표정이었다.
“이 새끼가 눈에 보이는 게 없나?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까불고 있어?”
“어디긴. 거지 소굴이지 않나요?”
“…….”
남하림의 말에 주위에 있던 개방의 거지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하! 하하하! 완전히 미친놈이구만. 미친놈에겐 몽둥이가 약이지.”
휙.
아지현은 허리에 찬 타구봉을 뽑으며 내리쳤다.
따악.
남하림의 어깨에 타구봉이 닿았다.
‘…….’
순간 아지현의 눈이 커졌다.
건방진 놈이 육성의 내력에도 끄떡없었다.
“너…… 지금 나 때린 거야?”
“…….”
“거지 새끼가 어디 더러운 물건을 나한테 대는 거야? 안 그래도 신발이 빠져서 미치겠는데.”
꽈악.
백옥색보다 환한 손.
여인의 손도 이보다 곱지 않으리라.
남하림은 타구봉을 잡고 있는 아지현의 손을 잡았다.
‘욱……!’
아지현은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
“아악! 이 미친놈이!”
“그래, 나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십 년 동안이나 이곳에 있으려고 하겠어?!”
퍽.
남하림은 왼손으로 아지현의 턱을 갈겼다.
“커억!”
아지현은 고통 섞인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철퍼덕!
아지현이 바닥에 쓰러지는 충격에 진흙탕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
척! 척! 척!
비단옷과 백옥빛의 얼굴까지 진흙이 튕기며 묻었다.
“으아아악! 아아아악!”
개방의 정문에서 울려 퍼지는 괴성.
바닥에 쓰러진 아지현조차도 멍한 표정으로 남하림의 비명과 절규를 들었다.
‘우와…… 진짜 미친놈이다…….’
* * *
터덜터덜.
인생을 포기한 듯한 걸음걸이.
남하림은 시무룩하게 진흙에 잠긴 자신의 신발을 보았다.
‘두 달 동안이나 공을 들여 구했는데.’
처음 가져온 날 잠시 신은 것 외에는 이번이 처음으로 신고 나온 날이었다.
‘아끼면 똥 된다고 하더니…… 진작 자주 신고 다닐걸.’
후회가 막심했다.
하루 종일 빨아도 원래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다 왔다.”
중년 거지는 걸음을 멈추었다.
돌아선 그의 허리에는 육결의 매듭이 달려 있었다.
법개 위한소.
남하림을 개방에 오게 한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었다.
짙은 눈썹.
크지도 작지도 않는 적당한 코.
두꺼운 입술은 강인한 느낌을 주었다.
“허허허, 뭣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느냐. 안에 들어가면 방주님께 인사를 해야 하거늘.”
남하림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이 녀석아. 괜찮으냐?”
“이게 괜찮게 보이나요?”
“음.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이는구나. 문제가 있느냐?”
남하림은 순간 울컥해서 따지고 싶었지만 따질 기운이 없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힘이 빠진 목소리가 나왔다.
“전…… 지금 진짜로 죽고 싶어요. 온몸이 가렵고 두드러기가 올라온 것 같다고요.”
“이런, 큰일이구나. 어이할꼬.”
소문에 의하면 그 친구의 세 아들 중 막내가 가장 똑똑하다고 했다.
다만 한 가지가 거슬리는 내용이 있었는데.
#NAME?
“어이하긴요. 제가 거지 팔자는 아니라는 거죠.”
“허허허. 어디 거지 팔자가 타고났더냐? 나중에 씻을 수 있도록 해주마. 조금만 참아라.”
“됐어요. 그냥 이대로 있다가 가려워서 죽을래요. 오다 보니 흐르는 개천가에서 씻던데, 설마 저도 거기에서 씻으라는 말은 아니시죠?”
“흐음…….”
“그럴 줄 알았어요. 내 인생이 십오 년 만에 종칠 줄은 몰랐네요.”
‘허허허…… 이런 녀석이었구나.’
시무룩한 모습으로도 따박따박 대꾸하는 걸 보니 어디 가서 기죽지는 않을 놈이었다.
“두드러기가 나도 당장은 안 죽느니라.”
“…….”
남하림은 그를 노려보았다.
사람 좋은 얼굴이 부처처럼 웃고 있었다.
“그렇지. 조금 있다가 방주님께 인사를 드릴 때 말이다, 허허.”
위한소가 분명 자신이 법개의 신분임을 가르쳐 주었건만, 하림은 계속해서 아저씨라 부르고 있었다. 꼴을 보니 방주에게도 아저씨라 부를 판이었다.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요?”
“맞다. 방주님이신데…….”
한순간 위한소의 대답이 흔들거렸다.
번쩍.
남하림의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방주님 마음에 안 들면 입방을 못하는 건가요?”
순간 맞다고 대답할 뻔한 법개는 겨우 표정을 유지하며 남하림을 보았다.
개방이 어떠한 곳인가.
협의지로를 행하는 자.
개방으로 오라!
구파일방 중 일방으로 대문파다.
아무나 입방할 수 없다.
물론 지금은 입방하려는 인재가 없어 허덕이고 있지만.
“허허…… 못 할 수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특별해서 잘 모르겠구나.”
“……알겠어요.”
거참 재미있는 놈이었다.
위한소는 남하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느낌이 왔다.
방주께 함부로 말을 했다가는 입방도 못 하고 쫓겨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인재 하나가 더 중요하다.
살살 달래야 한다.
“하림아. 중원에서 네 아버지의 위명이 얼마나 높은지 아느냐? 방주님께서도 약속을 금같이 여기는 그분을 존경하신단다.”
“그 정도로 높은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
“들어가죠. 다리 아파요.”
“허허허, 알겠다. 들어가자꾸나.”
위한소는 허허 웃으며 살살 남하림의 기분을 맞춰주고는 방주실의 문을 열었다.
* * *
텅 빈 공간.
눈에 보이는 건 가장 높이 걸려 있는 현판이었다.
협의(俠義).
협(俠)을 행하고 의(義)에 산다.
반원을 그리며 둘러앉은 개방 장로들.
그들 가운데에서 용두방주 주양걸 오종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남하림은 고개를 돌려 개방 장로들을 보았다.
‘뭐야……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네.’
하나같이 살면서 한 번도 머리카락을 감지 않았는지, 하림의 눈에 떡이 진 머리카락과 누런 거지 옷을 입은 채 앉은 그들은 모두 똑같아 보였다.
“이놈! 무엇 하느냐? 방주께 인사를 드리지 않고.”
치켜 올라간 눈썹.
규율당 당주 추개 영충은 방주실에 들어온 뒤 멀뚱히 서 있는 남하림을 보며 소리쳤다.
“누가 방주시죠?”
‘아이고, 이놈이 결국.’
법개 위한소는 내심 깜짝 놀랐다.
“아니, 이놈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개 맞듯이 맞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어디서 함부로 말을 하느냐?”
“맞긴 뭐가 맞습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이시는 겁니까?”
“크억, 이, 이, 싹수없는 놈이…… 네놈은 집에서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지 않은 모양이구나!”
휙.
소리를 지르는 영충을 보던 남하림은 고개를 홱 돌렸다.
‘이놈이……!’
영충은 순간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주까지 모인 자리가 아니라면 당장 달려가 목을 비틀어 버렸을지 몰랐다.
“이놈! 왜 고개를 돌리느냐?!”
“부모님 욕하는데 누가 기분이 좋겠어요? 자리가 자리라서 그냥 참는 겁니다.”
“크으윽……!!”
추개 영충은 숨이 넘어갈 듯했다. 그의 손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네놈…… 오늘 죽을 줄 알아라!”
휘릭.
영충은 허리에 찬 타구봉을 내리쳤다.
따악!
남하림의 어깨에서 딱딱한 소리가 울렸다.
‘이놈이…….’
그의 눈이 커졌다.
영충의 삼 성 내력을 실은 타구봉.
무공을 모르진 않을 것이라 여기긴 했으나 남하림은 영충의 삼 성 공력을 가볍게 무시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뜬금없이 한 대 맞자 하림은 기분이 나빠졌다.
“네놈을 교육하고자 한다!”
“이봐요, 거지 아저씨. 누가 누구를 교육한다는 건가요? 난 지금까지 맞으면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요즘 시대에 어디서 무식하게 때리며 교육을 하나요?”
남하림의 한마디.
개방은 무식하다는 뜻이었다.
휘익-
영충은 타구봉을 하림의 머리 위로 떨어뜨렸다.
차악.
하지만 타구봉은 남하림의 머리 위에서 딱 멈췄다.
‘헉…… 이걸?’
이번에는 오 성의 공력이었다.
“한 번은 예의상 맞아줬는데…… 두 번은 아니잖아요.”
“이놈이…… 놓지 못할까?”
영충의 얼굴이 붉어졌다.
“크하하하! 남천상국에 걸걸한 인물이 나왔군.”
팔뚝에 붉은 줄을 찬 중년 거지.
용두방주 오종은 목청껏 웃음을 터뜨렸다.
남천상국(南天商局).
중원 오대 상국 중 한 곳.
중원 각지의 성마다 지국과 총국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부유했다.
“이놈아. 내가 여기 방주다. 오랜만에 웃긴 놈이 왔군.”
오종은 하림의 건방진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개방의 거지라면 틀에 박힌 것보다 적당히 자유분방한 성격도 필요했다.
“방주님이신가 보네요.”
“하하하! 그래, 반갑다. 올해 열다섯이라 들었다. 맞느냐?”
“알면서 왜 물어보세요?”
남하림의 대답에 영충은 또다시 부들거렸다.
“네 이놈……! 방주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똑바로 하지 못할까?”
“아, 진짜, 왜 자꾸 끼어드세요. 여기는 방주님이 말씀하시면 아랫사람들이 중간에 끼어들어도 문제없는 모양이죠?”
“크크크크. 망아지 같은 놈이 들어왔구만.”
오종의 옆에 앉은 거지 노인.
개방에서 가장 나이 많은 개방 일장로 항걸 장두철은 가느다란 눈이 웃음으로 더욱더 가늘어졌다.
‘이놈…… 물건이야. 무공도 제대로 익히면 좋은 물건이 될 것 같은데…….’
장두철은 남하림이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방주, 이놈을 내게 주면 안 되겠나? 재미있으니 가르칠 맛이 나겠군.”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제가 물건인가요? 달라고 하게. 자꾸 그러면 저 집에 갑니다.”
“클클클, 아 미안하네. 네놈이 재미있어서 말이다. 물건처럼 달라고 안 하겠으니, 어떠냐. 나하고 지내보겠느냐?”
“사양하겠습니다. 전 남 밑에 지내는 것을 싫어해요.”
“크크크크, 정말 재밌는 놈이구나.”
방주실에 모인 개방의 인물들은 남하림을 보면서 호불호가 단번에 갈렸다.
오종은 서 있는 남하림을 보며 물었다. 입방 조건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개방의 제자가 된다고 했으니 입방에 대해서 말하겠다. 우선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빈 몸으로 들어와야 한다.”
“잠깐. 전부 기부를 한다는 게 무슨 말이죠?”
“개방의 제자는 청빈한 가운데 협과 의를 행하는 바, 돈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건…… 사기인데요? 그럼 전 개방 거지 안 합니다. 십 년 동안만 거지 생활하는데 모든 걸 기부하면 진짜 거지가 되는 거잖아요. 미쳤어요?”
“…….”
남하림의 말에 적막감이 맴돌았다.
“크크크크, 하하하하하!”
장두철은 뒤로 넘어가며 배를 잡았다. 개방 방주의 면전에서 미쳤냐고 외치는 열다섯 살 꼬맹이.
칠십 년을 살면서 이보다 웃긴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허어…… 이거, 참. 남 국주가 감당할 수 없는 걸물을 보냈구만.”
오종은 싸가지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남하림을 보면서도 욕심이 났다.
일단 개방 제자는 무공도 무공이지만 구공(口攻)이 세야 했다.
“법개, 한 가지 물어보겠네.”
“네. 방주, 무엇입니까?”
“이 녀석 말대로 개방의 제자로 지내는 시기가 십 년이지 않나. 굳이 있는 재산까지 사회에 기부하지 않아도 되겠지?”
“개방에 들어올 때 사회에 기부하는 것도 방규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가? 음…… 그러면 왜 그런 말이 있었는가?”
“그거야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입방을 한 개방 제자들 중 부자가 없었습니다.”
“흠. 그렇군. 알겠네.”
방주는 남하림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방금 들었지? 기부 안 해도 된다고 하는군. 혹시 궁금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물어보게.”
“정말로…… 제가 개방 거지가 되면 거지 옷을 입어야 하나요?”
“뭐, 거지니깐 거지 옷을 입어야겠지? 왜 입기 싫은 모양이지?”
“…….”
남하림은 잠시 생각했다.
“거지 옷이 정해져 있어요?”
“음…… 딱히 없다고 본다. 다들 알아서 입고 다니더군.”
“그럼, 제가 원하는 옷을 입어도 되는 모양이죠?”
“그건……. 그래도 단체 생활인데 최소한 모양은 비슷해야지 않겠는가.”
“알겠어요. 모양만 같으면 된다는 말이네요.”
오종은 법개 위한소를 보았다.
끄덕.
위한소는 고개를 움직였다.
“그렇다고 하는군. 또 물어볼 게…….”
“잠은 어디서 자요? 저기 거지 움막에서 자는 건 아니죠?”
“하하하, 어디서 자고 싶은가? 개방 제자라면 잠 잘 곳도 알아서 지어야 하네.”
“그럼 제가 어떻게 만들어도 상관 안 하겠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오종은 별생각 없이 허락했다. 그의 대답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줄은 모른 채.
“알겠습니다. 나중에 필요한 게 있으면 또 물어볼게요.”
“하하하하, 이제 끝난 모양이군. 그럼 본 방의 제자가 되겠느냐?”
“아니, 아직은 아니죠. 방금 한 말을 서면으로 작성해서 남겨야 해요. 요즘 같은 세상에 말로 한 약속을 어떻게 믿어요.”
“…….”
오종과 개방의 인물들은 또 한 번 말이 사라졌다.
오직 한 명, 일장로 장두철만이 바닥을 구르면서 소리 내며 웃었다.
“크하하하! 하하! 하하하! 암, 아무도 못 믿지!”
“참…… 거지 할아버지, 시끄러워요.”
“엥? 내가 시끄럽다고? 크크크크.”
장두철은 또 한 번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저…… 놈을……!’
황당한 표정을 짓는 개방의 인물 중 영충의 시선만이 오직 노여움으로 가득했다.
슥슥슥.
남하림은 백지 위에 계약서를 적어 내려갔다.
#NAME?
하나. 재산은 그대로 둔다.
하나. 옷은 모양만 같으면 된다.
하나. 숙소에 대해서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하나. 구걸을 하든 안 하든 식사도 직접 해결한다.
하나. 세수와 목욕을 하는 데 관여하지 않는다.
위 다섯 가지 조건은 방규를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능할 것이며, 만일 이들 다섯 조건을 제재할 경우 그 즉시 입방이 아닌 것으로 원천무효가 될 것이다.
‘됐다.’
남하림은 붓을 내려놓고 두 장의 계약서를 용두방주 오종의 앞에 내밀었다.
“인장을 찍으세요.”
“허허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구나. 그런데 섭섭하군. 내가 믿음이 안 간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니…….”
“원래 사는 게 그래요. 사람은 믿지만 돈이 거짓말을 하듯, 상황을 믿지 못하는 것이죠. 일할 때 서로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서로 좋은 거예요.”
“허허허, 역시 상가의 핏줄이라 요런 방면에서는 모르는 게 없구만?”
오종은 대수롭지 않게 계약서를 읽어 내렸다. 방규를 벗어나지 않는다니 크게 문제 될 것 같지 않았다.
오종은 두 장의 계약서에 엄지를 꾹 눌렸다.
찌익.
그의 인장 아래 남하림도 인장을 찍었다.
“자, 한 장 받으세요. 오늘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겁니다.”
“그럼 다 된 것이냐?”
“그런 것 같네요.”
“그래? 후후후.”
오종의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그럼 입방식을 제대로 하기 전에 간단한 의식을 치러볼까?”
“……?”
휙휙.
네 명의 개방 장로들이 남하림을 둘러싸며 잡았다.
이장로 충걸개는 오른팔.
삼장로 몽공은 왼팔.
사장로 노홍조는 오른발.
오장로 유훈석은 왼발.
스윽.
꼼짝도 못 하는 남하림의 앞으로 가장 먼저 오종이 다가왔다.
그는 입안에 오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하림의 눈이 커졌다.
‘헉? 뭣들 하려는 거야?’
“시작합시다. 방규의 전통에 따라 이놈을 개방의 제자로 맞이합시다.”
카아아악.
퉷. 퉷.
수십 개의 침이 하림의 발등 위로 날았다.
“으아아아악!! 사람 살려!!!”
마지막 위한소를 끝으로 남하림은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법개는 쪼그리고 앉아 쓰러진 남하림의 상태를 살폈다.
“허허…… 기절했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