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134화
거기에 지금 태천이 타고 있는 배처럼 거대한 배도 있으니 강 같은 것들을 건너는 것도 별문제가 없고 말이다.
거기에 경성표국의 표사나 표두 같은 이들도 만만치 않은 이들이었다.
표사들은 대부분 절정의 무인이었고 표사들을 이끄는 표두는 최절정의 무인인 데다가 그런 표두들을 이끄는 총표두의 경우에는 무려 화경의 무인이었다.
물론 요즘 태천이 주로 만나는 이들의 경지들이 최소 화경이어서 그 의미가 조금은 퇴색되기는 했지만 화경급의 고수는 어느 문파를 가든 장로급 대우를 해준다.
거대문파에 속하는 구파마저도 말이다.
일개 총표두로 있을 이는 아닌 것이다.
즉, 그만큼 표국주가 그만한 신뢰와 인망 그리고 그들을 부리는 두뇌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예. 뭐, 재미로 하는 일이니까요.”
“재미요?”
재미로 전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표국을 운영한다는 표국주의 말에 태천은 기가 찼다.
그게 과연 재미로 해서 될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표국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거 제 이름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제 이름은 주태겸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태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젊고 유능한 표국주는 황실의 핏줄이었기 때문이다.
“……황실 분이셨군요.”
“하하하, 뭐…… 내놓은 자식이긴 합니다만…… 그렇습니다.”
황실의 핏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표국주의 말들과 경성표국이 어떻게 지탱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황실의 핏줄답게 똑똑한 머리를 가졌다.
또한 내놓은 자식이라지만 황제의 자식인 만큼 가진 자산은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고 황제도 아무리 내놓았다지만 자식은 자식.
험난한 강호에 홀로 버려두기는 어려웠을 테니 금의위 수준의 무인을 곁에 붙여 두었을 것이고 그 무인이 아마 총표두일 것이다.
거기에 그 혼자 보내진 않았을 테니 아마 표두급의 인물들도 대부분 황실 소속의 인물일 터.
강한 표두와 총표두가 있으니 그 아래에 강한 표사들이 모이는 것이 당연한 일었다.
거기에 최절정과 화경급의 고수들의 가르침까지 받으니 최강의 표국이 탄생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경성표국을 거대 표국을 키우는 것은 비단 그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태겸의 뛰어난 머리 또한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태천은 주태겸의 재미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말인데…… 정말로 제가 무림맹에 가도 되겠습니까?”
무림맹에 책사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 *
태천과 일행 그리고 경성표국의 인물들을 태운 배는 열심히 달린 끝에 안전하게 육지에 도달했다.
배가 육지에 닿자 마차부터 시작해서 물품들을 차례차례 내리고는 태천은 주태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정말로 오실 생각입니까? 표국주님 같은 책사가 와준다면야 저희 무림맹 입장에서는 좋은 일입니다만…… 표국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 하나 없다고 폭삭 망할 정도로 저는 표국을 허술하게 키우진 않았습니다.”
“하아…… 알겠습니다.”
끼이익-
농담 삼아 던져본 말에 이렇게 될 줄은 태천도 상상조차 못 했지만 어찌 되었든 무림맹에게는 좋은 일이었고 태천에게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랬기에 태천은 한숨을 쉬면서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고, 열린 마차 문 안에서는 일행들이 밝은 미소로 주태겸을 맞이해 주었다.
“이제 표국주님도 우리 일행인 겁니까? 저희 이제 돈도 많네요?!”
“쯧, 우리가 돈이 부족했던 적이 있기는 했었냐? 속 터지는 소리 그만하고 자리에나 앉아라. 표국주님도 여기 앉으시죠.”
“끌끌끌, 또다시 젊은 아이가 들어왔구만. 들어보니 황제의 핏줄이라고? 제대로 운을 타고난 아이구나.”
“어서 오시지요.”
각자 다른 환영 인사였지만 그래도 담긴 의미는 다 같았다.
주태겸을 축하해 주는 것 말이다.
자신을 축하해 주는 태천 일행의 모습에 주태겸도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그리 말하면서 주태겸은 마차 안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렇게 태천의 일행에 황제의 핏줄이 하나 추가되었다.
“그런데 나는 네 동생 혹은 형을 죽였는데 괜찮겠어?”
일행이 되자마자 말을 놓는 태천의 모습에 주태겸은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주태발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차피 저는 그와 배가 다른 이복형제입니다. 그리고 형제의 정 따위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완벽하군.”
일행에게 생길 균열 발생의 여지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태천은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새로운 동료를 태운 마차는 다시 무당으로 향했다.
* * *
마차를 타고 무당으로 돌아온 태천은 곧장 청운자에게 향했다.
그런 태천을 청운자는 밝게 맞이하면서도 의아해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다시 가져온 마차 때문이었다.
“오! 부맹주! 어서 오게나. 그런데 내가 듣자 하니 가져간 황금 등과 마차가 고스란히 그대로 왔다던데…… 설마 사도련은 맹에 오기를 거절한 겐가?”
비슷하지만 틀린 청운자의 질문에 태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거절한 건 맞지만…….”
“맞지만……?”
“사도련은 망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사도련이 망하다니?”
사도련이 아무리 사파들의 모임인지라 욕을 많이 먹고 죽어 마땅할 놈들이라고 하지만 그걸 실천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사도련이 강했으니까.
간단한 이유였다.
힘으로 돌아가는 무림답게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키려면 그 정의를 관철시킬 힘이 필요했다.
힘이 뒤따르지 않는 정의는 강한 힘 앞에 무너질 뿐이었다.
그랬기에 청운자는 태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아함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런 청운자에게 태천이 설명을 해주었고, 태천의 설명을 다 들은 청운자의 얼굴에 놀람이 가득했다.
“그…… 그게 사실인가? 자네가 사도련을 무너뜨렸다는 게?!”
“예, 맞습니다. 뭐, 실제로는 저랑 제 일행들이 함께했다는 게 맞겠죠.”
이건 실제로 낮추는 게 아니라 사실이었다.
태천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지만 자신과 동급의 무인 둘과 싸우면서 다른 현경의 무인이나 화경의 무인들과는 싸울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어찌 되었든 련주는 애초에 혈교의 편이었습니다. 그러니 미련을 버리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에휴, 어찌 되었든 이건 좋은 일이기도 하니 내가 알아서 소문을 내도록 하겠네. 그런데…… 자네 무언가 달라진 것 같군. 풀풀 풍기던 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가 않아. 혹 자네 련주와의 대결에서 무슨 피해라도 있었나?”
자신을 걱정하는 청운자의 모습에 태천이 껄껄 웃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오히려 득을 얻었습니다.”
“득? 득을 얻을 게 있었나?”
본디 현경, 아니, 화경만 되어도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이미 밟아 봤기에 알고 있는 청운자는 태천이 설마 생사경에 올랐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궁금해했다.
그리고 그런 청운자에게 태천이 작게 속삭였다.
“저…… 생사경에 올랐습니다.”
“새…… 생사경!!!!!”
그리고 그와 함께 세상에 생사경의 무인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 * *
“정말로 할 생각인 겐가?”
“네,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무림맹을 만든 것이니까요.”
맹주실에서 묵묵히 태천의 말을 듣던 청운자는 입을 열고 한숨을 토해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자네의 말대로 우리가 모인 이유가 바로 그거니까. 그리고 생사경에 올랐다면 그런 자신감도 이해가 되네. 나야 화경 중입에도 오르지 못했기에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하게. 자신이 가장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할 때라네.”
청운자의 걱정 어린 조언에 태천은 씨익 웃으면서 그 말을 부정했다.
“전 위험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 위험…….”
“제가 가장 위에 서지 않았으니까요.”
“그 말은 설마?”
예상치 못한 태천의 말에 청운자 두 눈을 부릅뜨고 태천에게 설명을 요구했고, 태천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제가 아는 사실만 말씀드리자면 혈교주도 생사경의 무인일 겁니다. 그리고 그분이라고 불리는 자가 있습니다.”
“그분?”
“예, 사도련주도 그렇고 혈인도 그분이라고 부르더군요. 현경의 극에 달한 이들에게 그분이라는 존칭을 받을 정도인 데다가 가진 무위도 어마어마하더군요. 용과 싸워서 이겼으니 말입니다.”
“크흐음…….”
태천의 말에 청운자가 놀랐는지 헛기침을 하면서 표정을 다스렸다.
청운자가 진정하자 태천은 이어서 설명했다.
“그런 상황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분이라는 자는 자연경의 무인으로 추정됩니다.”
“자, 자연경? 그러면 우리에게 승산이 없는 것 아닌가? 자네와 같은 생사경의 무인이 혈교에도 있고 거기에 자연경까지 있으면…….”
“하지만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마 그분이라는 자는 못 끼어들 겁니다. 제가 혈교주를 잡기 전에는 말입니다.”
신이라는 자의 입에서 나온, 인과율이라는 말 덕분에 그분이라는 작자가 앞에 나타나진 못한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경의 무인이 아무런 제약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면 진즉에 이 세상은 멸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급인 자연경의 무인이 나타난다면 말이 달라진다.
태천은 아직은 단언할 수 없지만 혈교주를 잡게 된다면 자신도 자연경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자신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후우! 자네에게 생각이 있겠지……. 알겠네. 그럼 자네의 말대로 하지. 그리고!”
“그리고라니요? 뭐 더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었습니까?”
“자연경의 무인을 내 밑에 둘 생각이 나는 전혀 없네. 처음 만들어질 때야 얼마 차이가 안 났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자네는 절대 내 밑에 둘 수는 없네. 이것만은 물러설 수 없어.”
“……알겠습니다.”
“그럼 받게나.”
완고한 청운자의 말에 태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청운자가 던진 맹주의 인장을 받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밖에서 뵙도록 하죠. 맹주님……. 아니, 이제는 부맹주님이신가요?”
“큭큭큭……. 잘 부탁하네. 현 맹주.”
태천은 책상 위에 자신의 부맹주 인장을 올려놓고 맹주실을 나섰다.
* * *
청운자에게서 맹주의 인장을 받은 태천은 곧장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향한 태천은 현재 무당산, 즉 무림맹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을 싸그리 모았다.
하급 무사부터 시작해서 구파의 장문인 혹은 세가의 가주들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태천의 말에 거대한 대회의장에 모든 무림맹의 일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들과 각 문파와 세가에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즉, 여기에 모인 이들이 무림맹, 나아가서 정도의 모든 힘이었다.
그런 그들을 앞에 두고 가장 상석에 앉은 태천의 입이 열렸다.
“이번에 신임 맹주 직을 맡게 된 전 부맹주 강태천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태천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태천의 그런 폭탄 발언에 다른 이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전 맹주이신 청운자 님은……?”
“그분께서 직접 건네신 인장입니다. 믿기 힘드시다면 직접 청운자 님께 물어보셔도 됩니다.”
“모…… 못 믿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조용히 들었던 손을 내리는 사내에게서 시선을 돌린 태천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