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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 네비게이션-133화 (134/139)

기연 네비게이션 133화

“사도련주가 나머지 두 개의 근원을 가지고 있더라고, 덕분에 부족했던 두 개의 근원을 차지해서 한 단계 진일보할 수 있었지.”

그 말과 함께 태천이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자 태천의 손안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뭉쳐졌다.

짧은 시간, 그것도 손을 쥐었다 편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힘이 내재된 구 하나가 만들어지자 일행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약간 더 강해졌다는 게 아니라…….”

“어, 벽을 하나 넘었다.”

기껏해야 깨달음 하나 정도를 얻은 줄 알고 있던 천동은 태천의 말에 잠시간 태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내 태천의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깨닫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 생…… 생…….”

“생사경 맞으니까 그만 떨어라. 땅 무너지겠네.”

“이게 진정하게 생겼냐!!!”

무림 역사상 단 세 명밖에 밟지 못한 경지를 태천이 밟았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였기에 더욱 어이가 없었다.

생사경이 어떤 경지인가?

길고 긴 무림 역사에서도 단 세 명밖에 도달하지 못했고, 그들은 대종사라고 불리며 각자의 문파를 거대문파로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런 그들과 태천은 이제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런 것에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이니 주변에 있는 이들이 더욱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태천은 지금 머릿속엔 생사경이든 자연경이든 관심이 없었다.

지금 태천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분이라…….’

자신을 신이라고 소개한 사내가 말한 그 녀석, 그리고 유기혁이 말한 그분.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태천이 자신의 숙적을 생각하며 귀를 닫고 있을 때, 고요한 사도련을 조용히 빠져나가는 인영이 하나 있었다.

* * *

탁탁탁!

“허억…… 허억…… 괴물 같은 새끼…….”

사도련을 몰래 빠져나간 인영은 다름 아니라 태천에 의해서 한쪽 팔이 잘린 혈인이었다.

태천에게 한쪽 팔이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혈인은 분노를 불태우기는커녕 태천에게서 멀리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태천의 말과 태천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기운 때문이었다.

‘망할! 반박귀진이라니!’

반박귀진.

일정 이상의 경지에 도달하면 기를 내부로 발산하는 것이 아닌 내부로 갈무리하는 경지였다.

그리고 그 경지는 다름 아니라 생사경이었다.

혈인이 이 정보를 알고 있는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교주님과 똑같아…….’

바로 그의 주인이자 지주인 혈교주가 다름 아니라 생사경의 고수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혈교주와 똑같이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태천의 모습에 복수는커녕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도망치던 혈인은 이내 사도련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욱…….”

자리에 주저앉은 혈인이 가쁜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바뀐 하늘에 혈인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확히는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시커먼 먹구름들이 하늘을 가린 것뿐이었다.

다만 그뿐이었다면 혈인이 고작해야 먹구름 따위에 관심을 주진 않았을 것이다.

혈인이 먹구름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다름 아니라…….

“어딜 그렇게 급히 가고 있어?”

먹구름과 함께 나타난 태천 때문이었다.

* * *

콰릉-

번쩍이는 벼락이 숨을 고르고 있는 혈인의 주위로 마구잡이로 떨어졌다.

콰릉- 콰릉-

교묘하게 혈인 주위에 떨어지는 벼락 다발을 보면서 태천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그리 도망을 가고 그래? 우리 할 얘기가 남지 않았나? 몸의 대화 말이야. 응?”

“……괴물 새끼.”

“에이, 괴물은 너희들이지.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고 온 세상을 피로 물들이겠다는 너희들 사상이 더 괴물 아니야?”

“이익……!!!”

태천의 말에 혈인이 분통이 터지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지만 몸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말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벼락 다발은 혈인이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혈인의 주위에 떨어지고 있는 벼락이 혈인을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박살 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벼락의 감옥 안으로 태천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신기하게도 떨어지는 벼락들이 태천의 몸에 닿자 마치 빗방울을 맞은 것 마냥 원래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하던 대화를 해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태천이 주먹을 꽉 쥐었다.

“몸의 대화를 말이야.”

그와 함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주위를 가득 채웠지만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에 묻혀서 사라졌다.

* * *

“형님, 어딜 그리 급히 다녀오신 겁니까?”

“어, 아무것도 아니야. 잡을 놈이 있어서.”

“누구 도망친 사람이 있었습니까? 사도련의 잔당?”

“아니, 혈인.”

“아~ 혈인이요…… 예? 혈인이 왔었습니까?”

태천의 말에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기려던 호섬은 고개를 퍼뜩 치켜들고 태천에게 물었다.

“응, 그래서 방금 죽이고 오는 길이다.”

“……그게 그렇게 쉽게 말할 일이었습니까?”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동급의 무인이었던 혈인을 무슨 오늘 밥 먹었어 같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태천의 모습에 호섬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태천이 생사경에 올랐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고개를 내젓고는 수긍했다.

‘하긴…… 이젠 생사경인데…… 현경 정도의 무인이면 뭐…….’

이젠 호섬도 대수롭지 않게 혈인에 대해서는 넘겨 버렸다.

“그래서 가서 죽이기만 했습니까?”

“아니, 정보 좀 얻어보려고 했지. 그런데 끝까지 입은 안 열더라고.”

떨어지는 벼락에 손가락 하나하나, 발가락 하나하나가 터져나가도 비명만 지를 뿐 혈교에 관한 정보는 단 하나도 얘기하지 않던 혈인의 모습을 기억해낸 태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만큼 혈인은 죽는 그 순간까지 혈교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형님 이제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이제 폐허가 되어버린 사도련의 성을 보면서 호섬이 묻자 태천은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이내 불을 만들어내면서 호섬에게 말했다.

“호섬아.”

“예?”

“좀 춥지 않냐?”

“예, 뭐 좀 바람이 많이 불긴…… 형님?”

약간 쌀쌀한 날씨에 춥다고 말한 호섬의 말에 태천이 싱긋 웃었다.

“그렇지?”

“자…… 잠깐만!!”

화르륵…….

호섬이 말리기도 전에 태천의 손 위에서 활활 타오르던 청염이 폐허에 옮겨붙었다.

그리고 옮겨붙자마자 어마어마한 속도로 폐허를 집어삼키는 청염을 보면서 태천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일행을 바라봤다.

“그럼 돌아가자. 뭐, 사파 애들을 못 얻은 건 아쉽지만…… 그래도 얻은 건 있으니까 뭐라고 하진 않겠지.”

그 말을 끝으로 태천은 마차에 올랐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뭔가 빠진 것 같다?”

마차에 올라탄 태천이 무언가 빠진 것 같다는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보자…… 철현이 나 그리고 풍신님이랑 형님 친구분…… 맞는데요?”

“그런가? 그럼 맞나 보지. 가자 그럼.”

호섬의 말에 태천은 그러려니 하면서 마차의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맹……!”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냐?”

“부맹주님!!!”

“아…… 맞다. 쟤가 있었구나.”

그 말과 함께 태천이 마차 문을 벌컥 열고 외쳤다.

“어여 와!”

그리고 달리는 마차의 뒤에는 총채주가 열심히 달리면서 태천을 부르고 있었다.

“부맹주님!!!”

* * *

그렇게 사도련에서 일들을 겪고 태천은 빠르게 배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온 태천 일행을 보고는 경성표국주가 깜짝 놀라 하며 직접 일행을 맞이했다.

“아닛! 대협? 어떻게 벌써 오셨습니까?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그런데 왜 마차는 그대로……?”

분명 사도련에 마차와 함께 안에 든 여러 가지 금은보화를 건넨다고 했었는데 멀쩡히 가지고 돌아오는 모습에 표국주가 의아해하자 태천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부쉈습니다.”

“예?”

“사도련을 부숴버렸다구요. 이제 사도련에 돈 안 내도 되겠네요. 좋겠다.”

탁탁-

그리 말하면서 태천은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표국주의 어깨를 탁탁 쳐주고는 빠르게 배에 올라탔다.

그렇게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표국주는 이내 태천의 말을 깨닫고는 부리나케 태천을 쫓아갔다.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대혀어어어업!!”

표국주가 그렇게 태천의 뒤를 쫓아 배를 오르는 순간 배는 거대한 소음을 내면서 출발했다.

* * *

사도련을 박살 내고 경성표국의 배로 다시 돌아온 태천은 거세게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갑판 위에 서 있었다.

“하아…… 이걸 맹주에게 어찌 말한담.”

사도련을 무림맹에 집어넣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나온 것과는 다르게 아예 사도련을 박살 내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단 5명으로 사도련을 부숴버릴지 누가 상상이나 하겠느냐마는 말이다.

그런 고민거리를 가지고 바람을 쐬고 있는 태천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부맹주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

바로 경성표국의 표국주였다.

그리고 드디어 표국주는 태천이 무림맹의 부맹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태천 본인이 말해준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걱정거리라기보단……이 일을 어떻게 맹주님께 전해야 할지…….”

사실 사도련을 박살 낸 것은 어찌 보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무림맹에 속한 이들 대부분, 아니, 모두가 사도련을 적대하고 싫어했기에 사도련이 몰락한 것을 알면 모두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할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랬기에 이제 혈교와의 담판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사기가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물론 현경의 극에 달한 고수와 수십 명이 넘는 화경급 고수 그리고 여러 명의 현경의 고수를 얻지 못한 것은 뼈아팠으나 어차피 혈교 쪽에 넘어간 이들이었기에 그대로 혈교에 힘을 실어줄 뻔한 것을 막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흐음…… 저는 장사치에 불과하기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표국주의 말대로 표국주는 무림에 반 정도 몸을 담고 있는 표국을 운영하면서도 무림맹의 증표나 부맹주의 표식 등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무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적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성표국이라는 전 무림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표국을 일구어냈다는 점에서 그는 충분히 대단한 인물이었다.

대단한 뒷배경이나 튼튼한 자금력과 강력한 무인 없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린 그의 실력은 가히 현경급 고수 그 이상의 재능이었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뭐라도 말해주시죠. 아니면 내킨 김에 같이 무림맹이라도 가시겠습니까?”

“정말 그래 볼까요?”

“예? 정말 그러셔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표국주의 의외의 대답에 오히려 놀란 것은 질문을 한 태천 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표국주는 무공에 무자도 모르는 이였고, 거기에 이미 경성표국이라는 어마어마한 표국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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