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129화
“이거 이거 정도 무림의 별을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젊어 보이는 생김새에 태천은 의아해하면서도 포권을 하면서 인사를 했다.
그가 아무리 사파라지만 배분 자체는 까마득하게 위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은 자신들이 숙이러 왔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젊으신 모습에 살짝 당황했습니다만, 역시 사도련의 련주님답습니다.”
“하하하! 이거 절 너무 띄워주시는 것 아니십니까? 이래 봬도 여든이 넘었습니다.”
련주의 말에 태천이 움찔했다.
‘여든? 그런데 저 얼굴이라고?’
여든이라는 나이와는 다르게 얼굴은 태천 자신과 동갑으로 보일 정도로 젊어 보였기에 태천이 의아해하자 유기혁이 껄껄 웃으면서 태천의 호기심을 풀어주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니 반로환동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반로환동 덕분인지 제 몸이 전성기 시절로 돌아와 있더군요. 아마 부맹주께서는 젊은 나이에 높은 경지에 오르셔서 반로환동을 못 겪으셨나 봅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반로환동을 겪은 사람을 눈앞에서 보니 태천은 신기해하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태천 자신과 동급인 현경의 극에 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언제 갑자기 싸움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희가 왜 이곳에 왔는지는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예, 혈교를 처단하기 위해 세를 불리러 저희 사도련까지 오셨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역시 사도련의 정보력은 어마어마하군요. 그러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바깥에 있는 마차에는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 또한 준비되어 있습니다.”
태천의 공손한 말투와 제물 얘기에 유기혁은 신음 소리와 함께 턱을 괴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싫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셔도 됩니다만?”
완곡한 거절에 태천이 싸늘한 눈빛을 날리자 유기혁은 껄껄대며 웃다가 이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깥에 있는 마차에 실려 있는 금은보화 따위는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당신, 아니, 당신 몸 안에 있는 근원의 힘이죠. 그러면 피차 편하게 죽어주시겠습니까?”
유기혁의 그 말과 함께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태천을 향해 쏘아짐과 동시에 태천의 일행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휘오오오! 스걱!
유기혁이 날린 칼날과도 같은 바람에 정면에서 그 공격을 막아낸 태천의 앞섶이 찢겨나갔다.
다행히도 금강불괴인 태천의 몸에 상처를 낼 정도로 강력한 공격은 아니었는지 공격을 맞은 태천 본인은 상처 하나 없이 말짱했다.
하지만 유기혁이 한 공격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태천이 이를 으득 갈면서 말했다.
“……그 힘을 어디서 얻은거지?”
“너도 나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분께 들어서 알고 있다. 용의 힘이라…… 정말 매력적인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래, 매력적인 힘이지. 인외의 힘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으니깐 말이야. 하지만…….”
콰릉-
말을 하던 와중 태천을 손을 휘저어 벼락을 떨어뜨려 유기혁을 공격했다.
하지만 벼락이 떨어진 자리에는 흙무더기가 존재했다.
그리고 벼락가 사라지고 나자 흙무더기가 무너지고 그 안에서 유기혁이 걸어 나왔다.
두 개나 되는 근원의 힘이 유기원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태천의 얼굴에는 놀람이 감돌았다.
“……어떻게 용들이 너에게 근원의 힘을 준 거지? 분명 용들은…….”
“그래, 악인에게 이런 힘을 줄 리가 없지. 그래서 빼앗았다. 물론 내가 뺏은 건 아니고 그분이 뺏으셨지. 그분의 힘은 이미 인간의 범주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분은…… 신이다.”
말을 하는 유기혁의 얼굴에 맴도는 존경에 태천은 인상을 찌푸렸다.
“……근원을 가지고 있던 용들은 어떻게 됐지?”
“그것들? 시체를 해부해서 잘 사용하고 있는데? 왜, 너도 필요한가?”
그리 말하면서 유기혁은 자신의 장포를 펄럭여 보였다.
그런 장포에는 은백색의 비늘들이 촘촘히 수놓아져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용들의 본모습을 본 적이 있는 태천이기에 그 장포에 수 놓인 비늘들이 누구의 비늘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용들이었다.
죽어서까지 수모를 겪는 모습에 태천이 격분해 하면서 유기혁에게 달려들었다.
“애송이 오랜만이군.”
“……?!”
콰앙!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에 태천이 의아해함과 동시에 태천은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느끼면서 저만치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커헉…….”
움푹 들어간 복부를 내려다보면서 피를 한 움큼 토해낸 태천이 자신에게 공격한 이를 쳐다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혈…… 인……?”
태천을 공격한 이는 다름 아니라 혈교의 삼대고수, 아니, 이제는 이대고수 중 하나인 혈인이었다.
태양궁에서 염화연에게 당해 도망을 쳤던 그가 여기 사도련에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에 태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기혁이야 가지고 있는 근원의 수도 태천 자신이 더 많았고, 거기에 경지는 비슷했기에 어느 정도 승리를 점칠 수 있었지만 거기에 혈인이 더해지자 태천이 이길 확률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젠장, 모두 도망…….”
급격히 떨어진 승산에 태천이 동료들에게 도망을 치라고 말하려 했지만…….
채앵! 채앵! 챙 챙 챙!
이미 동료들은 각자의 급수의 맞는 적들과 이미 싸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억지로 몸을 빼려 하면 그것이 더 위험했기에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최악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태천은 검은 피를 퉷 하고 뱉고는 화룡도와 천마검을 빼 들었다.
“……이길 각오는 있어서 덤빈 거겠지?”
“당연, 네놈에게 당한 태양궁에서의 일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으득.”
그때의 기억을 상기하는지 혈인은 이를 으득 갈면서 분해했다.
그만큼 혈인은 그 일이 있는 뒤로 교내에서의 입지가 반 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아마 태천이 혈천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혈천 혹은 혈지에게 잡아 먹혔을 것이다.
혈천을 태천이 죽임으로써 혈교주가 직접 내부다툼을 금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혈인은 이곳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덤벼.”
“오냐, 이 애송이 자식아!”
그 말을 기준으로 혈인이 두 주먹을 말아쥐고 태천에게 쇄도했다.
달려오는 혈인의 주먹에는 핏빛의 강기가 맺혀 있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온 혈인은 그대로 주먹을 들어 태천을 후려쳤다.
하지만 천마검과 화룡도를 교차시켜서 주먹을 막아낸 태천은 물의 근원을 이용하여 빙하천류공을 사용해 거대한 얼음덩어리 만들어서 혈인에게 날렸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얼음덩어리를 주먹질 한 번으로 반으로 갈라버린 혈인이 태천에게 다시 달려들려고 했지만…….
“……애송이 자식, 어디 갔어?”
“네 뒤다, 이 새끼야.”
빙하천류공으로 시선을 끌고 혈인의 뒤를 점한 태천이 그대로 화룡도를 휘둘러 혈인의 오른팔에 생채기를 냈다.
그리고 그 생채기에서 피어난 화룡의 불꽃이 서서히 혈인의 전신을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팔부터 시작해서 몸통으로 올라오는 불꽃을 보던 혈인이 입을 앙다물더니 자신의 손날로 오른팔을 잘라냈다.
“크아아악!”
“오, 결단력 빠른데? 그래도 빨리 죽어줘라. 내가 좀 바빠서.”
“이 애송이 자식이!!!”
태천의 이죽거림에 팔을 잘린 고통에 몸부림치던 혈인이 핏대를 세우면서 태천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태천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런 태천의 천마검이 혈인의 목을 쳐 내려고 할 때였다.
빠드득!
바닥에 솟아오른 흙으로 만들어진 가시에 태천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면서 가시를 피해냈다.
가시에 공격을 허용했다면 혈인을 잡을 수 있었을 테지만 팔 하나 정도는 내줘야 했을 것이다.
거기에 출혈까지 감수하면서 싸우기에는 유기혁은 버거운 상대였다.
“이놈…… 이노오옴……!!”
잘린 팔 주위의 혈도를 짚어서 점혈을 한 혈인이 태천을 보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태양궁에서의 복수를 하기는커녕 된통 당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서려는 혈인을 그의 옆에 선 유기혁이 막았다.
“최고의 몸 상태에서 못 이겼던 상대에게 지금 달려들 생각이십니까?”
“크으으윽…….”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기에 혈인은 반박은 하지는 못했지만 몸은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어서 부들거렸다.
그런 혈인을 태천이 신경을 박박 긁기 시작했다.
“쫄려? 쫄리냐? 이길 자신 있다더니 그 정도였어? 쯧쯧쯧. 그러니 태양궁에서도 그렇게 발리고 혈교에서도 까이고 여기에 와서는 팔까지 잘리지.”
“이이…… 애송이 새끼가!!”
태천의 신경을 긁는 탁월한 솜씨에 혈인은 부들부들 몸을 떨어대더니 이내 태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한쪽 팔이 없기에 무게 중심도 제대로 맞지 않아서 속도는 전보다 줄었고 휘청거림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대는 태천에게 매우 쉬운 상대였다.
“고맙다. 두 명 한꺼번에 상대하기 힘들었…… 이런 씨!”
타닷!
흥분을 참지 못하고 달려는 혈인의 모습에 감사해 하면서 태천이 화룡도를 재차 휘두르려고 할 때, 혈인과 태천 사이에 거대한 토벽이 솟아올라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 모습에 태천이 짜증을 내면서 토벽을 만든 장본인인 유기혁을 바라봤다.
“안 치워? 너는 나중에 죽여줄 테니까 이건 치우지?”
“저 사람은 그분의 소중한 장기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죽을 장기말이 아니지.”
“쯧, 그러면 니가 뒈지면 되겠네!”
화르륵-
말과 함께 태천이 발을 구르자 청염의 파도가 유기혁을 덮쳤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유기혁이 당황하면서 토벽을 만들어 몸을 감싸려고 했지만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크기와 양에는 한계가 있는지 전과는 달리 유기혁은 전신을 완벽하게 감싸지 못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크아아아악!!!”
용의 비늘로 만든 장포를 덮고 있는 등은 상처가 없었지만 전면부에는 청염에 의해 끔찍한 화상을 입었다.
피부가 녹아내릴 정도의 화상에 평정을 가장하던 유기혁의 가면이 산산조각 났다.
“이…… 망할 애송이가 그분의 대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고 봐주었던 기어오르는구나!!”
“봐달라고도 한 적 없으니 들어와!”
그 말과 함께 유기혁과 태천은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 * *
“저쪽은 살벌하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둘 다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군요.”
천동과 마주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니라 유기혁의 부관인 김효성이었다.
그리고 유기혁의 부관인 만큼 그는 사도련에서 유기혁 다음가는 실력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