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126화
그런 셋의 뒷모습을 보면서 태천은 자신의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마차가 있는 곳에서 수련 중인 천동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음? 태천이냐? 아까 들어보니 무슨 폭음이 들리던데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온 거냐?”
“아니, 수적 놈들이 나타나서 돌멩이 좀 던져줬다.”
“……돌멩이를 던져서 그런 폭발음이 난다고? 나는 무슨 벽력탄이라도 터진 줄 알았다.”
“너도 가능할걸? 돌멩이에 강기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돼. 돌멩이가 버틸 수 있는 한계 이상의 힘을 담으면 얼마 안 가서 그 돌멩이가 터질 거야. 그러면 내가 한 것처럼 되는 거지. 어때? 쉽지?”
“……그런 게 쉬운 건 너뿐일 거다. 일단은 그것도 수련해 보긴 하마.”
“그래그래. 그리고 수적 놈들 채주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언제나 느끼는 건데. 왜 언제나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지? 우린 분명 사도련을 향해 가는 거 아니었나?”
“겸사 겸사지. 어찌 되었든 수적들 때문에 장강 주변에 백성들이 고통 받고 있는 거잖아?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좀 도와주지 뭐. 나중에 황제한테 생색도 낼 수도 있고.”
“뒤가 주인 것 같다만…… 알겠다. 무리의 장은 너니까.”
“오냐, 난 들어간다.”
“그래. 나는 하던 수련이나 마저 해야겠다.”
그 말과 함께 천동은 멈췄던 수련을 다시 시작했고, 수련에 열성적인 천동을 보면서 태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마차 문을 열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마차 안에서는 풍신이 홀로 앉아서 대작을 하고 있었다.
“왜 혼자서 그러고 계십니까?”
“네가 철현이와 호섬이를 불렀으니 그렇지.”
“아…… 그러면 제가 대신 대작해 드리겠습니다.”
“그거 좋지. 그런데 주위가 소란스럽던데 무슨 일이 있었나?”
풍신의 말에 태천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수적 놈들이 설치기에 손 좀 봐주고 왔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래서 이왕 공격한 김에 총채주라는 녀석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총채주라…… 나도 한 번 만나본 적이 있지.”
“호오, 그렇습니까? 그자는 어떻습니까?”
“아마 다시는 못 볼 거야. 내가 죽였거든. 그때가 아마……서른 살 즈음이었나…….”
“…….”
풍신의 섬뜩한 말에 태천은 조용히 자신의 잔에 있는 술을 홀짝이면서 풍신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 태천의 모습에 풍신이 허허 웃으면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허허허, 그런데 총채주가 있는 곳은 어찌 알고……?”
“아! 좀 직책이 높아 보이는 놈 하나를 잡았습니다. 그 녀석을 데리고 표국주님이 가셨으니 아마 지금쯤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표국주님과? 그거 위험한 것 아닌가?”
“그럴까 봐 호섬이랑 철현이를 붙여두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드시지요.”
그리 말하면서 태천이 빈 잔에 술을 따르자 풍신은 빙그레 웃으면서 술을 받았다. 물이 배에 부딪히는 소리를 노래 삼아서 둘은 술을 비워나갔다.
* * *
쾅!!
“X발! 지금 뭐라고 그랬어? 니들 처 돌았냐? 한 명한테 처맞고 도망쳐왔다고? 니들이 그러고도 내 부하냐? 엉? 그냥 뒤져라, 뒤져!”
퍽퍽퍽!
“켁…… 켁켁켁! 총채주님! 총채주님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쇼! 그리고 그놈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뭐? 인간이 아니야? 그러면 뭐 용이라도 되냐? 지랄을 해라 지랄을!”
부하의 말에 총채주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도망쳐 온 부하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그런 총채주의 모습에 다른 이들은 벌벌 떨면서 말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 총채주에게 얻어맞던 부하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총채주의 다리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그…… 그자가 돌멩이를 던졌습니다!!”
“돌멩이? 그건 또 뭔 개소리야?”
“그…… 돌멩이를 던지니까 벽력탄이라도 터진 듯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물기둥이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또…… 그자는 물 위를 걸어 다니고 허공을 걸어 다녔습니다!”
부하의 말에 그제야 총채주는 발길질을 멈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부하에게 되물었다.
“그게 사실이야? 너 지금 살겠다고 구라치는 거면 진짜로 넌 물고기 밥이 뭔지 경험하게 될 거다. 사실이야?”
“ㅇ…… 예! 사실입니다! 딴 애들한테도 물어보십쇼!”
그 말에 총채주가 주위를 쓰윽 둘러보자 같이 도망쳐온 이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두 명도 아니라 전부 다 사실이라고 증언하자, 총채주는 이마에 내 천 자를 그렸다.
‘X벌…… 돌멩이를 던져서 벽력탄 정도의 파괴력을 내는 것도 모자라서 물 위를 걷고 허공까지 걸었다고? 이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총채주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사파, 즉 사도련 내에서도 돌멩이 내공을 담아서 벽력탄 수준의 파괴력을 내는 무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소수지만 분명 그런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물 위를 걷고 허공을 밟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사도련주가 그러한 무위를 보인 적이 있다고는 하나 그건 소문이었다.
이렇게 증인들이 존재하지 않는 소문.
그렇기에 총채주는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니들 대가리는 끌려갔다고?”
“ㅇ…… 예! 저희 형님이 지금 그 사악한 놈에게 끌려가서 무슨 고초를 받고 계실지…….”
“쯧, 어차피 수적질하다 보면 그런 일들은 다 각오하면서 하는 거지. 그런데 그놈이 우리 위치를 알고 있나?”
“예, 아마도 알고 계실 겁니다. 평소에도 총채주님이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면 엄청 떠벌리고 다니셨군요.”
“이런 시…….”
그의 말에 총채주가 욕을 내뱉을 때, 바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총채주는 들어라!! 너희는 포위되었다! 지금 당장 나와서 목숨을 구걸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목소리의 주인은 태천이었다.
* * *
“저…… 대협, 명색이 장강을 지배하는 총채주라는 자가 있는 곳인데 그렇게 선전포고를 하셔도 되는 겁니까?”
“표국주님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나서도 호섬이와 철현이 선에서 정리될 겁니다. 그리고 그 둘이 깨져도 그닥 염려하실 필요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
표국주의 걱정 어린 물음에 태천은 피식 웃으면서 그런 표국주를 안심시켜주었다.
아무리 장강을 주름잡는 수적들의 우두머리와 그들의 본거지라지만 호섬과 철현 이렇게 둘만 해도 어디 가서 보기 힘든 현경의 무인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들이 진다?
그래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그 둘의 말고도 현경 중입의 무인인 천동과 풍신이 도사리고 있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라도 그 둘마저 지더라도 최종 보스인 태천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러면 대협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럼요, 그럼요. 저만 딱 붙들어 매십시오. 그러면 표물들도 지키고 돈도 지키실 수 있으실 겁니다.”
“예예…….”
태천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표국주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그런 표국주를 뒤로한 채, 태천은 뱃머리에 오연하게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또다시 소리쳤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지금이라도 나온다면 목숨이라도…….”
그리고 그와 함께 장강 한가운데에 있는 섬에서 우락부락한 거한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제…… 제가 이놈들의 우두머립니다!”
“그래?”
총채주는 대머리에다가 얼굴에는 흉터가 가득한 거한이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모습에 겁을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태천이었기에 뱃머리에서 킬킬거리더니 이내 배에서 뛰어내렸다.
그 모습에 표국주는 물론 밑에서 태천을 맞이하던 총채주도 당황했다. 하지만…….
뚜벅뚜벅…….
허공에 마치 계단이라도 있는 것마냥 뚜벅뚜벅 내려오는 태천의 모습에 둘은 기겁을 했다.
“허업! 과연 대협!!”
“……그놈들의 정말로 사실이었군. 허공답보라니…….”
부하들의 말이 사실임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총채주는 이내 두 무릎을 모래에 처박고는 고개 또한 마찬가지로 모랫바닥에 처박았다.
“시…… 십팔채에 총채주 고태훈이 인사를 올립니다!”
황제에게나 할 법한 예를 올리는 총채주를 보면서 허공을 뚜벅뚜벅 걸어 내려온 태천이 미소를 지으면서 생각했다.
‘어후, 내공 어마어마하게 빨리네.’
겉으로 괜찮은 모습을 취한 것과는 다르게 현재 바다와 같은 내공이 바닥을 보일 정도로 쉼 없이 빠져나갔다.
물론 여러 근원들의 의해서 빠르게 차오르고 있지만 고작 수십 초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빠져나간 내공량에 태천이 혀를 내두르면서 다시는 안 쓰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쓴 값은 제대로 했는지 총채주는 무릎을 꿇고 복종의 자세를 취하고도 두려운지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할 얘기가 많으니 먼저 안으로 들어갈까?”
“예! 제가 모시겠습니다!”
태천의 말에 몸을 떨어대던 총채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태천에게 길 안내를 자처했다.
그런 총채주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배 위에 서 있는 표국주에게 안심하라는 손짓을 보내고는 총채주의 뒤를 따라 섬의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찌 보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모양새였지만 실상은 토끼 굴에 호랑이가 들어가는 격이었다.
“자! 그러면 가볼까?”
* * *
후루룩-
“꽤 차 맛이 좋군?”
“하하하…… 그건 얼마 전에 지나가던 상단 하나를 털어서 나온 고급 찻잎을 우려서 만든 차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차이기도 하죠.”
생긴 것과는 달리 꽤나 고급스러운 취향에 태천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차를 우린 찻잎이 수적질을 해서 얻은 것만 아니었다면 완벽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차나 마시면서 담소나 나누러 온 것은 아니니 용건부터 말하지. 내가 타고 있는 배에 만년설삼이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그것을 누가 강탈하라고 시켰지?”
“저어…… 그게…….”
방금까지 부하들을 걷어차고 구타하던 총채주는 온데간데없이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한 평범한 거한이 된 고태훈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대답을 피했다.
하지만 태천은 그런 것은 가만히 두고 볼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 고태훈에게 나쁜 일이었다.
쾅! 쩌저적!
태천이 우물쭈물거리는 고태훈의 모습에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찍었고 주먹질 한 방에 강철로 만든 책상이 박살 났다.
“……사도련주! 사도련주가 시켰습니다!”
효과는 직빵이었다.
입을 닫고 땀만 삐질삐질 흘릴 것 같았던 고태훈의 입이 바로 열렸으니 말이다.
“사도련주? 사도련주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사도련 내에도 정보부가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표면상 경성표국은 사도련의 보호를 받는 처지인데 그런 그들을 자신들이 털 수 없으니 저희들을 시켜서 털게 한 것입니다!”
“……보기보단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