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121화
사파와의 동맹에 관한 회의가 마무리되고 나서부터 무림맹은 다시 한번 바빠지기 시작했다.
사파와의 동맹자리에 갈 인원들을 모았고, 동맹을 위해서 건네줄 성의 표시를 위한 물품 등을 준비하기 위해서 무림맹이 있는 무당산은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다.
다름 아니라 내부에서 사파와의 동맹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농땡이를 피우고 사파와의 동맹체결을 위해서 같이 가게 될 인원들의 모집이 턱없이 느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턱없이 느린 진행속도에 태천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사파에 가는 건 우리만으로 하자.”
“예에?”
“예?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거의 적진이나 마찬가지인 곳인데…….”
“흐으음…….”
내 말에 모여 있던 호섬과 철현 그리고 천동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만을 표현했다.
사실 말이 안 된다.
철현의 아버지인 풍신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도합 5명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여기 있는 개개인들의 실력은 무림맹에서 손꼽히는 실력이라고는 하지만 수가 너무 적었다.
현경 초입이 하나(천동이 초입으로 올라왔다.), 중입이 하나, 거기에 극이 하나였다.
나머지 철현과 호섬은 초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지만 아직은 화경이었다.
단일로는 최강이겠지만 사파 내로 들어가게 된다면 사방팔방이 적인 곳이라 수적으로 열세였다.
그렇기에 저런 불만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내가 너희 둘을 사파로 떠나기 전까지 현경으로 끌어올려 주지. 어때? 그러면 해볼 만하지 않겠어?”
“저희…….”
“둘을요……?”
나의 자신만만한 말에 호섬과 철현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물었다.
“물론…… 그렇게만 된다면야…….”
“해볼 만은 하겠죠……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냐고?”
“예…….”
그들의 말마따나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무림인들에게는 수련을 하다 맞닥뜨리게 되는 벽이 여러 번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이 좌절하는 벽이 화경과 현경 사이의 벽이다.
물론 수적으로 현경 초입과 중입 사이에 있는 이들이 적기에 그런 일이지만 어찌 되었든 수없이 많은 후기지수들이 화경까지 빠르게 성장하고 현경이란 거대한 벽에 맞혀서 좌절하고 화경으로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일들이 빈번했다.
그렇기에 태천의 말에 호섬과 철현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내가 영약 보따리를 제대로 풀어주지.”
“영약!”
“보따리?!”
내 영약 보따리라는 말에 걱정이 눈에 훤히 보이던 호섬과 철현에 두 눈에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평소에 내가 다니면서 캐는 영초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내 보따리에 들은 영약과 영초들의 가짓수가 얼추 예상이 되는 호섬과 철현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 모습에 내가 피식 웃으면서 둘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너희들이 내 수련에 잘 따른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어때 가능하겠어?”
“당연하죠!! 시켜만 주십쇼!! 사실 저는 사파에 가신다는 형님의 말에 이미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저도요!!”
둘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들의 말에 동참했다.
“암암! 나도 너희들을 믿고 있었다.”
“강태천!! 강태천!!”
“강태천!! 강태천!! 우와아아아!!!”
흡사 현대에서 아이돌을 보는 듯한 팬의 모습에 나는 떨떠름했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기에 웃으면서 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런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손길에 나는 고개를 돌려 옆구리를 찌르는 주범을 쳐다보았다.
“……나는 없냐……?”
천동이었다.
“없겠냐? 대신 너도 내가 시키는 수련…….”
“할게.”
“으응?”
친구의 명령을 들으면서 하는 수련에 그래도 거부감을 가질 줄 알았는데 곧장 하겠다는 대답이 입에서 나오자 나는 벙쪄서 천동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리고 그런 내 눈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을 부라리면서 나를 쳐다보는 천동이 보였다.
“한다고. 예전에 너보다 강해지겠다느니 그런 말을 했지만 어찌 됐든 지금의 너는 나보다 한 단계…… 아니, 적어도 두 단계는 위에 있잖아?”
“그…… 그렇지?”
“그러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가르침을 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러니까 나 좀 팍팍 굴려줘라. 그래야 다시 한번 너를 넘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지 않겠어?”
“……알겠다.”
천동의 마음가짐을 듣고 나도 다시 한번 나의 마음가짐을 점검했다.
처음과 삐뚤어지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객잔에서 천동과 나눴던 약속처럼 말이다.
그렇게 다시 한번 내 마음가짐을 다지면서 나는 천동과 호섬 그리고 철현의 수련 계획을 머릿속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최적화된 수련방법을 위해서 말이다.
* * *
“끄으읍…….”
“끄어어…….”
무당산 내부에 마련된 연무장에서 호섬과 철현은 등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들 얹고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옆에서는…….
카앙! 카앙! 캉캉캉!!
“크으읍!!”
“손이 느려. 거기선 한 발 빼고, 다시 찌르고, 거기선 멈춰.”
태천과 천동의 대련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신과의 대련에서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집어가면서 천동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었다.
태천의 가르침에 천동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태천의 가르침을 몸에 녹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대련은 천동의 검이 태천의 검에 의해 날아가자 끝이 났다.
“허어억…… 허억…… 쿨럭쿨럭…….”
날아간 검을 주을 생각도 하지 않고 천동은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면서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극도의 집중력을 가진 채로 한 시간, 두 시간도 아닌 네 시간 동안 한 번의 쉬는 시간조차 없이 대련을 했으니 그런 반응이 당연했다.
그리고 그런 천동에게 태천이 환단 하나를 던져주었다.
태천이 준 환단을 천동은 아무 말 없이 입안에 털어 넣고 으적으적 씹었다.
이내 환단을 꿀꺽 삼키고 천동이 다시 숨을 몰아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천이 준 회복단의 효능은 엄청났다.
장시간의 대련으로 근육이 찢어져서 근육통까지 날 정도였지만 회복단을 먹고 잠시간 숨을 고르자 그런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찢어졌던 근육들도 빠르게 붙고 있었다.
그런 천동을 보면서 태천은 다시 자세를 잡지 않고 천동의 어깨를 두어 번 쳐주고 호섬과 철현에게 걸어갔다.
“너희는 잘되어가고 있냐?”
“느웨에에엑…….”
“……우웁…….”
“……안 되고 있구나.”
호섬은 토하고 그 옆에서 철현은 토를 안 하기 위해서 열심히 참고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태천은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둘의 입안에도 회복단을 넣어주었다.
회복단을 넣어주기 무섭게 둘은 그것을 으적으적 씹더니 단숨에 꿀꺽 삼켰다.
그러자 둘의 얼굴이 편안하게 바뀌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태천은 둘의 등에 모래주머니 몇 개를 더 얹고는 천동에게로 돌아갔다.
태천의 그런 행동에 둘은 한동안 곡소리를 내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입을 여는 게 더욱 힘들어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쉴 만큼 쉬었지?”
“후우…… 그래 다시 하자.”
“그럼…… 간다!!”
“후웁!!”
그 말을 기점으로 둘은 다시 대련을 시작했다.
이때가 막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 * *
“어이어이!! 거기 조심해!!”
“어이쿠!!”
“힘내라고!! 오늘이 마지막이다!!”
무당산 아래에 있는 마차에 짐을 싣고 있는 사람들은 목청껏 소리를 지르면서 짐을 날랐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태천이 중얼거렸다.
“벌써 삼 개월인가.”
사파의 동맹을 위한 회의를 한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사파 측에 전달할 각종 무구들과 식량들을 구했다.
하지만 추수를 할 시기도 아닌지라 원하는 양을 맞추기 어려웠지만 황실 쪽에서 부족한 식량을 적정가에 팔아주었기에 간신히 원하는 양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지만 황실의 도움에도 원하는 식량과 무기들을 구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기에 정확하게 삼 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태천의 뒤로 호섬과 철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요. 삼 개월 전에는 진짜 이게 될까 싶었는데…….”
“맞아 맞아. 나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진짜 되더라고…….”
그런 둘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태천도 씨익 웃으면서 뒤를 돌아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준 게 얼만데 그거 먹고도 못했으면 사람이냐? 금수 새…… 여기까지 하마.”
“……형님 금수는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금수는…….”
“내가 준 거 하나하나 읊어볼까?
“……맞습니다. 그거 먹고도 못하면 금수죠, 금수!!”
“옳소!!”
빠른 태세변환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주었던 목록들을 주르륵 생각해 보았다.
인형설삼부터 시작해서 만년설삼까지 정말 고루고루 건네주었다.
덕분에 내 기연 보따리가 절반가량 줄어버렸다.
하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현경의 고수 두 명을 만들어내는데 그 정도 값이면 싸게 치른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들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거둔 이가 저 멀리서 뛰어오고 있었다.
“태천아!!!”
“어 왔냐. 이젠 너네 장문인보다 더 강해진 녀석아.”
“하하하…… 그렇게 말하지 마라. 어찌 되었든 무당에는 좋은 일 아니냐.”
“뭐, 그건 그렇지.”
내 말에 달려온 천동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지난 삼 개월 사이에 화경 초입에 오른 호섬과 철현보다 천동은 더욱 뛰어난 성과를 얻었다.
바로 초입에서 중입으로 오른 것이다.
무당의 현 장문인인 청운자가 아직까지 중입의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천동의 재능은 정말 상상이었다.
물론 재능도 재능이지만 내가 먹인 것들도 장난 아니지만 말이다.
막말로 호섬과 철현이 먹은 것들을 합친 것보다 더욱 많고 질도 더 좋은 것들이었고 말이다.
어찌 되었든 호섬과 철현 그리고 천동은 지난 삼 개월 사이에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덕분에 화경 둘에 현경 초입 하나, 중입 하나, 극 하나였던 무리가 이제는 현경 초입 둘에 중입 둘, 극 하나가 되었다.
현경부턴 단순히 단계 하나만으로도 배 이상의 힘을 낼 수 있기에 천동의 힘이 가장 기대되었다.
그렇게 지난 삼 개월을 추억하고 있을 때, 그런 내 귀로 인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났다!!”
“드디어 끝이다!!”
이제 사파로 떠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