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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 네비게이션-115화 (116/139)

기연 네비게이션 115화

“으으음…… 여긴 어디야?”

뇌룡과의 찜찜한 작별인사를 뒤로 한 채, 눈을 뜬 내게 보이는 것은 천장에 박혀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야명주였다.

-어디긴 어디야. 황궁 보물창고의 끝 방이지. 너 갑자기 왜 기절한 거냐?

“말하자면 길어. 내가 얼마나 기절했지?”

-얼마 안 됐어. 거의 기절하자마자 바로 일어났어.

“그래? 그 녀석 말이 사실이었나 보네.”

-그 녀석?

“그런 녀석이 있어.”

어차피 말해줘 봤자 이해 못 할 텐데 굳이 설명해 줄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돌은 어딨지?

“야, 그런데 내가 쥐고 있던 돌은 어디 갔냐? 설마 니가 먹은 건…….”

-개소리. 옆에 떨어져 있는 건 뭔데?

“……미안.”

탐의 말에 내가 머쓱해 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노란색의 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곧장 흡수하려 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네비가 만류했다.

‘태천 님! 기절하셨다가 갑자기 그런 강대한 힘을 흡수하시면 몸에 무리가…….’

“괜찮아, 괜찮아. 내가 이걸 수백 번 넘게 해봤어.”

‘예? 그게 대체 무슨 말…….’

“있어. 보기나 해.”

네비의 만류에도 나는 묵묵히 돌 안에서 느껴지는 뇌의 근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 안에 있는 근원이 천천히 내 몸으로 옮겨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빙그레 웃음 지었다.

“흐으음…… 역시 좋단 말이지. 이 기분은.”

새로운 것이 몸에 들어오는 기분은 퍽 좋았다.

더 강해지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기분 좋은 만족감을 느끼면서 나는 나머지 근원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을 잡고 얼마나 지났을까?

노란색의 돌이 평범한 돌멩이가 되고 나서야 나는 돌을 쥐고 있던 손을 뗐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돌이 파사삭 하고 부서져 내렸다.

뇌기의 근원을 오랜 시간 품고 있던 만큼 분명 꽤 대단한 돌이었겠지만 그 용도는 결국 보관하는 용도로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안타까워했다.

오랜 시간 뇌의 근원을 보관하고 있었으므로 어떻게 잘 제련해서 검이든 도든 만들어서 쓴다면 뇌의 기운을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이미 부서진 것을 돌릴 방법은 내게 없었기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흡수는 완벽하게 해냈지만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쾅!!

몸속에 있는 불과 물의 근원들과 충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과 물의 근원 서로 상성이었기에 얌전히 혼천기에 섞여들었지만 뇌의 근원은 상성이고 나발이고 없었기 때문에 불과 물의 근원과 정통으로 충돌했다.

그 충격에 나는 죽은 피를 퉤 하고 뱉어내면서 운기에 들어갔다.

우우웅…… 화르륵……! 쩌저정……! 파지직……!

내가 자리를 잡고 운기를 시작하자 불과 물 그리고 뇌의 근원들의 충돌이 더욱 거세지면서 내 몸 밖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창고 안에 불길이 치솟거나 아니면 온통 얼어붙거나 아니면 바닥에 전류가 흐르는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도 나는 묵묵히 운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세 개의 근원이 하나가 되는 그 끔찍한 고통 속에도 나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운기 했을까?

점점 불길과 얼음 그리고 전류 등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내 몸이 살짝 떠올랐다.

그리고 예의 근골이 다시 맞춰지면서 들리는 섬뜩한 소리가 창고 안을 가득 채웠다.

우득…… 우드득…….

한참을 허공에 떠 있던 태천의 몸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앉고 나서야 태천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그런 태천의 눈은 노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물론 한순간이었지만 말이다.

태천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휴우……그러면 이제 마저 정리를 해보러 가실까?”

이제 청소 시간이다.

* * *

채애애앵!!!

“이런 제길…….”

“이게 끝인 건가?”

“빌어먹을 늙은이 같으니.”

“허? 넌 안 늙을 것 같지? 너도 늙어. 아! 넌 안 늙으려나? 오늘 여기서 죽을 테니까 말이야.”

분한 듯 얼굴을 붉히면서 윽박지르는 이천을 보면서 투신이 이죽거렸다.

그런 이죽거림에 이천이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닥쳐라! 너 같은 늙은이를 죽이는 데에는 이 단검으로도 충분하다!”

“네 주 무기인 검을 놓고 나를 이길 수 있다? 오만하구나.”

단검을 들고 자신을 죽일 수 있다 말하는 이천의 모습에 투신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이천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냐. 어디 한 번 해볼 수 있다면 해보거라.”

“얼마든지!”

이천은 아까와는 달리 단검을 들고 투신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이천을 모습을 보면서 투신은 어디 재롱이나 한번 피어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단검을 역수로 쥐고 마주 달려갔다.

그렇게 둘이 다시 혈투를 벌일 때, 금의위장과 일천의 싸움은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푸화아악!!

“크으윽…….”

금의위장은 자신의 잘린 팔을 보더니 이내 잘린 팔의 혈도를 점하면서 일천을 노려봤다.

“어때? 지금은 죽을 것 같은가?”

“…….”

금의위장의 도발에도 일천은 말없이 금의위장의 검이 박힌 복부에서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피를 보면서 자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이렇게 죽지만 아직 내 뒤에는 내 동료들과 혈ㅊ…….”

“됐고, 죽어라.”

스-걱!

더 들어줄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금의위장은 일천이 말을 하는 도중에 그의 머리를 날렸다.

그리고 그런 일천의 머리가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죽기 전까지 입에 달고 있던 자조 어린 미소와 함께.

그리고 그런 모습에 멀리서 투신과 싸우던 이천이 광분했다.

“크아아악!! 네놈이 감히 일천을…… 컥!”

“이런 너는 지금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지. 물론 봐줄 생각은 없다만.”

“컥…… 크흐억!”

하지만 그런 틈을 놓칠 정도로 투신은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방심하고 격분한 대가는 목숨이었다.

목에 단검이 박힌 채 이천은 분하다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입에 피거품을 물고 세상을 하직했다.

이천이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하고 투신은 이천의 목에 박힌 단검을 뽑아 피를 털어내면서 금의위장에게 말했다.

“너도 끝났냐?”

“……고맙다.”

“뭐라고? 잘 안 들린다?”

“…….”

팔이 잘리면서 피를 꽤 많이 흘린 금의위장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 들어놓고…….”

“잘 안 들려!”

“도와줘서 고맙다고 이 늙은이야!!!”

“낄낄낄, 알았다. 그럼 그 대가나 준비해 두라고.”

태천의 부탁으로 투신이 도와준 것을 모르는 금의위장은 분함에 몸을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어찌 되었든 투신 덕분에 이 위기를 넘긴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친 둘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니라 황제와 황태자의 싸움이었다.

둘의 싸움은 피 튀기는 혈투였다.

“후욱후욱…….”

“후욱…….”

둘 다 검에 베인 자상으로 인해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상태였다.

그런 탓에 둘의 호흡은 고르지 못했다.

그리고 둘은 서로에게 집중하느라 금의위장과 투신의 싸움이 끝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그렇게까지 하는 게 네가 추구하는 것이란 말이냐!!”

“……세상은 고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고귀한 사람을 받들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란 말입니다! 저는 그걸 이루어 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시체를 밟고 가거라. 그래야만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해야 한다면 그리 할 것입니다. 폐하.”

그 말을 끝으로 주태발은 황제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우뚝…….

“……금의위장, 또 당신입니까? 일천과 이천 그자는?”

“그들은 죽었습니다. 성왕 전하.”

금의위장의 말에 주태발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벌써……? 안 된다…… 나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이만 포기하시지요. 지금이라도 포기하신다면…….”

쿵……!

말을 하던 금의위장은 멀리서 들리는 폭발음에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투신도 마찬가지로 들었는지 귀에 걸려 있던 입꼬리가 우뚝 멈췄다.

그리고 싸늘한 표정으로 금의위장에게 말했다.

“……무언가 강력한 것이 온다. 대비해!”

“으음…….”

쿵…… 쿵…… 쿵…… 콰아앙!!!

멀리서 들리던 폭발음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황제의 알현실의 벽의 한쪽이 터져나갔다.

그리고 폭발과 함께 날아오는 돌조각들을 남은 한팔로 쳐낸 금의위장이 먼지구름에 휩싸인 곳을 째려보면서 외쳤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네놈의 손에 죽은 녀석들이 내 부하다.”

“뭣? 크윽……!”

먼지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말에 금의위장이 의아해할 때, 먼지구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날아오는 무언가를 검으로 쳐낸 금의위장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날아온 무언가를 확인한 금의위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돌조각?”

고작해야 돌조각에 불과한 것에 서너 발자국이나 밀려났다는 사실에 분해하기는커녕 금의위장은 긴장하면서 검을 들어 아직도 걷히지 않은 먼지구름 속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예의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았어? 역시 내 부하들을 죽일만한 실력은 있나 보군.”

“큭…… 네놈의 정체를 밝히라 하지 않았느냐!!”

“말하지 않았느냐 저기 쓰러져 있는 녀석들의 대장이라고…… 아니, 이러면 모르려나? 그러면 내 이름은 아나?”

“네놈 같은 혈교 나부랭이의 이름을 내가 알 턱ㅇ…….”

버럭 소리를 지르던 금의위장은 먼지구름 속 사내의 말에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내 이름은 혈천이다.”

혈교의 3개의 기둥 중 혈인을 제외한 나머지 2명 중 한 명의 등장이었다.

* * *

그 시각, 태천은 막 황궁의 보물창고에서 나왔다.

그리고 멀리서 느껴지는 막대한 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나랑 비슷…… 아니, 더 높나?”

이번에 뇌기를 융합시키면서 또 한 번의 환골탈태를 거쳐 현경의 극에 이른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면 같은 현경의 극밖에 없었기에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네비에게 물었다.

“네비, 지금 이 힘이 느껴진 곳이 어디지?”

‘저번에 간 곳입니다. 황제의 알현실입니다.’

“젠장, 큰일인데…….”

황실의 보물창고는 황궁의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알현실과는 거리가 무척이나 멀었기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추섬보를 펼치면서 달려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생각할 시간도 없네. 뛰자.”

생각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태천은 하던 생각을 멈추고 저 멀리 강대한 힘이 느껴지는 황제의 알현실을 향해 달려갔다.

“혈인이든 나머지 기둥들이든 이번에야말로 죽여주마.”

그리고 태양궁에서의 원수를 갚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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