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112화
쾅!
“크으윽!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황실에 혈교가 침입을 하다니! 성 바깥에 상황은 어떠한가 금위의장!!”
“외성 바깥의 마을은……. 이미 초토화된 것 같습니다. 현재 외성도 극심한 피해를 입은 상태이지만……. 강태천……. 부맹주 덕분에 그래도 어느 정도 몰아내긴 했습니다…….”
“후우……. 그래도 부맹주 덕을 보는군. 그런데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는 겐가?”
황제의 침통한 목소리에 금의위장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나쁜 소식이 여러 개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나쁜 소식이 있단 말인가? 어서 해보게나.”
“현재 혈교의 별동대가 내성에 침투했다는 소식입니다.”
“……?!”
금의위장의 말에 더는 놀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성이 어딘가?
자신이 기거하는 궁을 비롯해서 황족들이 기거하는 곳 아닌가?
그렇기에 외성에 배에 가까운 경비인력과 단단한 성벽 등이 지키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곳이 뚫렸다는 말에 황제는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죽음의 공포 때문이었다.
“……후우후우! 그러면 다른 안 좋은 소식은 무엇이지?”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투신도 궁에 침입했다는 소식입니다.”
“……?!”
그 말에 황제는 정말 평생 놀랄 일을 오늘 다 겪는 기분이었다.
혈교에게 내성과 외성의 침입을 허용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황궁의 보물을 훔치러 온 투신까지 들이고 말았다는 사실에 뒷목을 잡으면서 물었다.
“크윽……. 그래서 투신의 위치는 파악이 됐나?”
“그게……. 투신이 부맹주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는 금의위에 말이 있었습니다.”
“부맹주와? 어째서?”
“멀리서 보았기에 자세한 대화는 듣지 못했지만 꽤나 친밀해 보였다고 하더군요. 설마 이번 침입도 부맹주가……?”
“아마 그건 아닐 걸세 투신이든 혈교든 침입을 도왔다면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없지. 나랑 대면했을 때, 자네를 묶어놓고 얼마든지 내 목을 날릴 수 있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지. 그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일단 혈교와 한패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네.”
황제의 말에 금위의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리쳤다.
“금의위! 황제 폐하를 보필해라! 털끝 하나 다쳐서는 아니 된다! 알겠나!”
그런 금의위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황제가 있는 궁을 가득 채우자 금실로 수놓은 옷을 차려입은 금의위들이 속속 나타나 금의위장의 뒤에 시립하기 시작했다.
“제가 마지막입니다. 대장님.”
“음? 문성과 진철은 어디 갔느냐?”
“지금 궁의 상황이 혼란한지라…….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궁이 혼란한 것이 너희들의 탓은 아니지 않으냐? 죄송할 것 없다. 지금은 사죄의 말보다 검을 뽑을 시간이다. 혈교의 무리가 황제 폐하를 노리고 내성까지 쳐들어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목숨을 걸고 그들을 막을 것이다.”
“예!!”
금의위장의 힘이 담긴 그 목소리에 모여 있던 금의위들이 큰 소리로 답하면서 자신들의 검을 뽑아 들면서 경계를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성왕 전하께서 알현을 청하셨습니다.”
“음? 태발이 그 아이가? 들라 하라.”
갑작스러운 알현 신청이었지만 황제는 대수롭지 않게 알현 신청을 허락했다. 하지만 그런 황제를 금의위장이 말렸다.
“폐하! 지금은 위급한 상황입니다. 알현을 거절하시지요.”
“허! 금의위장, 아비가 아들을 만나는데 위급하고 자시고 할 것이 뭐가 있겠나? 들라 해라!”
하지만 황제는 금의위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현을 허락했고, 어쩔 수 없이 금의위장은 다른 금의위들에게 눈짓을 주면서 경계태세를 갖출 것을 명령했다.
그런 금의위장의 명에 금의위들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게 검집에 손을 얹은 채로 대기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주태발이 곱게 차려입은 옷과 함께 문을 넘어 황제에게 뚜벅뚜벅 다가왔다.
그러고는 황제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대명제국의 황제 폐하께 인사를 올립니다.”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갑자기 무슨 일이더냐? 피해 있지 않고?”
황제의 말에 무릎을 꿇고 있던 주태발이 푸흐흐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왜 피해야 합니까?”
“뭣? 그게 무슨?”
“폐하! 물러서십시오!”
주태발의 모습에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금의위장이 황제를 뒤로 물리면서 검을 빼 들면서 외쳤다.
하지만 금의위장의 그런 모습조차 우스운지 주태발은 계속해서 웃다가 웃음을 뚝 멈추면서 말했다.
“늦었어.”
쾅!
“커허억!”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알현실의 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이가 주태발의 옆에 널브러졌다.
그 모습에 그제야 황제는 상황 파악을 하고 역정을 냈다.
“주태발 네 이노오오옴!! 혈교를 끌어들인 것이 네놈이었느냐!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한 게야!”
황제의 노여움이 담긴 목소리를 담긴 목소리를 들으면서 주태발이 먼지가 묻은 자신의 옷을 툭툭 털어내며 일어났다.
“황위를 계승 중입니다. 아버지.”
그 말을 하는 주태발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다.
* * *
“성왕……. 아니, 주태발! 지금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황위를 계승 중이라고 말입니다.”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이 황좌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황제의 노성에 주태발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언제 제가 적법하게 황위에 오르겠다고 했습니까? 전 힘으로 뺏을 겁니다.”
“힘? 하! 지금 이곳에 있는 금의위들과 금의위장이 보이지 않느냐? 게다가 내 목소리 한 번이면 뛰어올 수많은 병사들 또한 마찬가지!”
“흐음……. 확실히 제 눈에 금의위들과 금의위장은 보이지만……. 황제 폐하의 목소리 한 번으로 달려올 병사들은 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뭐……. 뭣?!”
주태발의 말에 황제는 당황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큭큭 웃던 주태발이 손뼉을 두어 번 쳤다.
짝짝!
그 손뼉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휙휙 날아왔다.
“흐억……!”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죽음이었는지 잘린 머리에 담긴 표정은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다.
“설마…….”
“맞습니다. 바로 그 설마죠. 들어오시죠. 요즘 명성이 자자하신 혈교의 십이혈천, 그중에서도 일천과 이천의 자리에 계신 분들입니다.”
뚜벅뚜벅…….
주태발의 소개와 동시에 피로 물든 옷을 입고 등 뒤에는 혈(血)자를 새긴 노인 둘이 황제가 있는 대전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런 둘의 모습에 이미 검을 빼 들고 있던 금의위장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적어도 나와 동수……. 거기에 일천이라고 말했던 자는 나보다 윗줄의 고수다! 부맹주보다는 약하겠지만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강자다…….’
바로 일천이라 불린 노인에게서 느껴지는 강함 때문이었다.
적어도 방금 전에 만났던 태천과 비슷할 정도의 고수였다.
그 말인즉슨 초입과 중입 사이 중에서 중입에 더 가까운 인물이라는 말이었다.
그 정도의 차이로도 금의위장은 자신의 목숨을 하나도 간수하기 어려웠는데 그런 금의위장과 비슷한 실력의 고수가 한 명 더 있었고, 금의위장은 황제의 목숨까지도 같이 관리해야 했다.
접바둑으로 치자면 점수를 받고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점수를 주고 게임을 시작하는 경우랄까?
하지만 이건 접바둑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실제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따지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그래. 내가 거기까지 따질 필요가 뭐가 있겠어. 나는 내가 할 일을 하면 그만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뒤, 금의위장은 검에 내공을 불어넣었고, 이윽고 금의위장은 검은 활활 타오르는 검강으로 뒤덮였다.
금위위장은 검강으로 뒤덮인 검으로 주태발을 겨누면서 말했다.
“성왕……. 아니, 역적 주태발. 오늘 너는 여기서 죽는다.”
“하! 금의위장! 당신이 뛰어난 것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당신은 당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게 먹힐 운명입니다!”
그때 둘의 설전을 묵묵히 지켜보던 황제의 입이 돌연 열렸다.
“후우……. 그래서 대체 왜 이런 짓거리를 벌인 게냐?”
“지금 왜냐고 물으셨습니까? 저처럼 고귀한 몸이 비천한 놈에게 살해 협박에 모욕까지 당했습니다! 이런 사실만 보아도 이딴 나라를 갈아엎을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주태발의 입에서 튀어나온 역모의 이유를 듣고 나자 황제의 몸이 거세게 떨렸다.
“고작……. 고작 그까짓 하찮은 이유 때문에……. 이딴 일을 벌인 것이냐!!”
“그깟이라고 하셨습니까? 황제 폐하 저희는 고귀합니다! 백성 따위는 저희를 돋보이게 하는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저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만인지상의 존재이신 황제 폐하라면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 착각이었군요.”
그 말을 끝으로 주태발을 황제와 금의위들을 향해 손짓을 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는 주태발과 비례되게 일천들이 천천히 걸어왔다.
둘의 걸어오는 모습에 금의위장이 검강을 더욱 길게 뽑아내면서 경계했고, 금의위들도 자신들의 무구들을 꺼내 들면서 검사, 혹은 불안전한 검강을 만들어내면서 함께 경계를 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결연함이 맺혀 있었다.
“후우……. 전 금의위는 들어라. 내가 선두에 서겠다. 각자 2인……. 아니, 3인 1조로 조를 짜서 공격을 한다. 3조는 이곳에 남아 황제 폐하를 보필해라. 나머지 조들은 전부 나를 따라서 저들을 친다. 알아들었나?!”
“예!”
그와 함께 금의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금의위장의 말대로 조를 짰다.
그때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개미들이 발버둥 치는 모습이 퍽 웃기구나. 끌끌끌.”
이천(二天)이었다.
그런 이천의 중얼거림을 들은 금의위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혈교의 버러지야.”
“뭐라? 버러지? 지금 본 노를 무시한 것이냐?”
“훗, 뒷방 늙은이 주제에 낄 때 안 낄 때를 구별하지 못하는구나. 늙어서 그런 것이냐?”
“이노오오오옴!!”
“이천! 그만해라.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해라.”
금의위장의 이죽임에 노성을 터뜨리던 이천은 일천의 일갈에 입을 딱 다물었다.
하지만 얼굴에 서린 노기까지 지워지지 않았고, 타는 듯한 눈초리로 금의위장을 쏘아봤다.
그런 눈초리를 맞받아치면서 금의위장이 외쳤다.
“어차피 붙을 거 주절거리지 말고 덤비시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그렇게 양측이 맞부딪치기 직전에 달아오른 분위기에 물을 뿌리는 사람이 있었다.
“뭐야? 벌써 한바탕 한 거야?”
투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