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 네비게이션-105화 (106/139)

기연 네비게이션 105화

개봉(開封)

개봉이라는 이름은 대도시로도 유명하지만 명나라의 수도로도 유명했다.

그리고 그 위명은 이번 황제 대에 이르러서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백성들은 모두 황제를 칭송했다.

개봉 내에서는 정말 황제를 신격화하는 이들마저 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 정도로 황제는 개봉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 예로 개봉 내에는 배가 고파서 아사한 이들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고, 거기에 더해서 사람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걸려 있었으며 시장은 언제나 활기찼고, 곳곳을 메우고 있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깔끔하면서 멋이 살아 있는 하나의 예술작품과도 같았다.

그런 모습에 태천은 황제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황제인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인 건가.’

사실 전대 황제가 거의 폭군 수준인지라 백성들의 민심은 바닥에 닿은 것도 모자라 바닥을 뚫고 들어갈 정도여서 정말 반란이 일어나지 않은 게 용하다 할 정도였는데 그런 민심을 여기까지 끌어올린 것을 보면 정말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래도 성품 자체도 착한 것 같았다.

그저 민심만 잠재우려 한 것이 아니라는 게 이곳 개봉 곳곳에 물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첫째로 거리 곳곳에 병사들이 많이 보였다.

치안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소리였다.

둘째로는 황실의 인장을 달고 있는 가게들이 곳곳에 보였다.

시장에서 매점 매석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직접 황실에서 나섰다는 의미였다.

이것만 보아도 황제가 개봉에 얼마나 힘을 쏟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백성을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뭐, 그러니 이 양반도 그리 믿고 따르는 거겠지.”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아, 아닙니다. 혼잣말입니다. 혼잣말.”

귀도 좋네. 중얼거린 정말로 혼잣말이었는데.

그리고 황제에 대한 성품 같은 것들은 이 사람, 마경석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인품이 별로이고 폭군의 기질이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그리 좋게 대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종합적으로 모아 판단해 본 결과는…….

“합격이네.”

“또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하하하!! 제가 원래 좀 혼잣말이 많습니다.”

합격이었다.

이 정도라면 믿고 등을 맡길 강력한 우군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하게 황제를 만난다고는 하지만 태천은 그닥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궁내에서 태천 자신을 위협할 이가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도망가는 태천을 잡으려면 현경의 극에 달한 고수라도 불가(不可)했다.

거기에 생포라면 더더욱 힘들 거고 말이다.

그렇기에 태천은 마음 편히 황제가 정말로 동맹을 맺어도 될 인물인지를 주목했다.

그러기 위해서 마차를 타고 오는 동안 계속해서 마경석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마경석의 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황제의 업적과 칭송 그리고 칭찬들의 향연에 고개를 절로 내저었다.

그렇게 얻은 정보들과 지금 개봉의 모습들을 보아 태천은 결국 합격점을 내렸다.

“그래서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일단 제가 미리 예약을 해둔 객잔에 하루 머물 겁니다. 황궁에 인가를 받아야지만 궁에 입궐할 수 있기 때문이죠.”

“흐음…… 알겠습니다. 짐 좀 풀고 호섬이나 기다리다가 개봉이나 둘러보죠, 뭐.”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저깁니다.”

마경석의 감사 인사에 나는 손사래를 치고는 마경석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무척이나 으리으리하게 생긴 객잔이었다.

외관부터가 매우 고급스러웠고 무엇보다 그 객잔을 들락날락거리는 이들의 옷차림과 생김새부터가 나 고관대작이요~ 하는 생김새였다.

그들의 모습에는 마경석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깁니까?”

“예, 저기가 바로 개봉 최고의 객잔이죠.”

“그런데 매우 비싸 보입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예……? 하하하!!!”

내 물음에 갑자기 웃는 마경석의 모습에 내가 인상을 쓰자, 마경석이 웃음을 멈추면서 객잔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손끝에 있는 황실의 문장에 나는 아! 하는 탄성을 터뜨렸다.

아오 쪽팔려…… 황실에서 운영하는 곳이구나…….

“……크흠흠, 황실에서 운영하는 곳이라면 미리 좀 말씀해 주시지…….”

“하하하!! 죄송합니다. 이거 미리 말씀드린다는 것을 깜빡했군요. 아참! 이걸 받으시죠.”

“이건 뭡니까?”

“황실의 손님이라는 패입니다.”

“……패 말입니까?”

“네, 그 패만 있다면 황실에서 운영하는 곳은 대부분 공짜로 사용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사실 개봉에 오자마자 드렸어야 했는데…… 아까 그분을 기절시키는 모습에 그만…….”

“크흐흠…….”

……그걸 말하니까 갑자기 부끄러워지네…… 호섬이 이 녀석 괜찮으려나? 아니다, 곧 경비병이 업고 찾아오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태천은 객잔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러면 기절한 그 녀석은 잊고 일단 짐부터 풀까요?”

어디 개봉 최고의 객잔이라는 말이 어울리는지 확인이나 해볼까?

* * *

“……쩐다.”

과연 개봉 최고의 객잔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내부였다.

우선 1층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식당은 무척이나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은 식당 내부의 모습에 한 번 놀랐고 배정받은 방의 모습에 또다시 놀랐다.

“어떻게 이렇게 정갈하냐. 정말 호텔 같네.”

현대에서나 보던 호텔의 모습이 이러할까?

방 내부에는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침대가 있었고 바깥에서 사 오거나 1층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식탁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고급스러운 내부의 모습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이게 웬 호사냐. 역시 황실에 운영하는 곳이라 그런지 돈을 덕지덕지 발랐네. 여긴 내 돈 주고 묵으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나중에 유화도 데리고 와볼까.”

그렇게 생각하는 태천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곳은 돈만 있다고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황실 내부에서 직급이 높고 힘이 센 관료들이나 그들의 가족들 혹은 태천처럼 초대받은 이들만 묵을 수 있는 최고급 객잔인 것이다.

물론 태천이 황실과 동맹을 맺게 된다면 이곳에 묵을 자격을 갖추는 셈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침대에 태천은 몸을 던졌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외관처럼 침대는 태천을 포근하게 안아주었고, 그런 포근함을 느끼면서 태천은 눈을 감았다.

‘크으…… 이 푸근함!! 오랜만에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있겠는데.’

그렇게 침대의 푸근함에 몸을 맡긴 태천이 일어난 것은 몇 시간 뒤에 들리는 소란 때문이었다.

* * *

웅성웅성…….

“끄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태천이 머물고 있는 방의 위치는 거의 꼭대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현경이란 지고한 경지와 무신지체라는 최고의 몸은 1층에서 들리는 웅성거림조차 잡아냈다.

“어휴…… 간만에 단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건 또 뭔…… 하아…….”

이왕 일어난 김에 태천은 한숨을 내쉬면서 잠결에 구겨진 옷을 탁탁 쳐서 피고는 1층으로 향했다.

“다짜고짜 왜 시비야!!”

“이런 무엄한 것!! 내가 감히 누군지 알고 이러는 것이냐?!”

“댁이 누군지는 상관할 바 아니고 사람을 치고 지나갔으면 사과를 해야 할 것 아니야!!”

“뭐…… 뭣?! 이…… 이이 비천한 놈이!!”

“비천? 나도 어디 가서 꿀리는 집안은 아니거든?!”

“오냐! 감 무사!! 저 녀석을 처리해! 감히 나를 모욕한 인간이다!!”

오! 뭐야? 싸움이냐? 크으, 역시 싸움 구경만큼 세상에 재밌는 게 없…… 저 녀석이 왜 저기 있어?

그리고 태천이 내려간 1층에서 보인 것은 다름 아니라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귀공자 한 명과 그 뒤에 서 있는 무사 서너 명 그리고 그 앞에 있는…… 호섬이었다.

* * *

“지금 그 검을 뽑으면 넌 죽는다.”

“닥쳐라. 고귀하신 분을 모욕한 네놈이야말로 오늘 여기서 죽는다.”

“하아…… 짜증 나게 하네. 야! 니가 나 쳤지? 그러면 거기서 사과하면 되는 일 아니야?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벌려?”

처음 보는 호섬의 화난 모습에 나도 꽤 놀랬다.

“이익!! 지금 비천한 네놈에게 고귀한 내가 사과하라는 것이냐?”

“비~천? 나도 어디 가서 안 꿀리는 집안이거든? 곱게 말할 때 사과하지?”

“닥쳐라! 감 무사아아아!!! 저 빌어먹을 놈을 내 앞에 무릎 꿇려!”

“예!!”

귀공자의 말에 감 무사라 불린 무사하나가 결국 검을 뽑고 호섬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어어? 저러다가 저놈 진짜 죽겠는데? 저놈은 아무리 봐도 이류, 잘 쳐줘도 일류다.

그런데 고작해야 일류의 무사가 화경의 극에 달한 호섬에게 검을 뽑고 대든다?

이거 완전 염라대왕 앞에서 장기자랑 하는 거 아니냐?

하아…… 이거 골치 아파졌네.

저 귀공자 같은 놈은 아무리 봐도 높은 집안 자제 같은데 그런 놈의 호위무사를 황제의 손님으로 온 호섬이가 죽여 버리면 문제가 돼버린다.

어쩔 수 없지.

내 생각은 그걸로 끝났다.

왜냐하면 감 무사라 불린 이가 호섬에게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우뚝……!

자신에게 날아오는 검에 화를 내면서 호섬도 마주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런 둘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검을 휘두르던 것이 허공에서 우뚝 멈췄기 때문이다.

갑자기 휘두르던 검이 멈추자 감 무사는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힘을 주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 그의 뒤에 서 있던 귀공자가 방방 뛰며 말했다.

“감 무사!! 지금 장난하는 건가?!”

“그…… 그게 아니오라…….”

하지만 그런 둘의 장단에도 감 무사와 같이 검이 멈췄지만 호섬의 얼굴은 평온했다.

화경에 달한 그의 검을 이렇게 내공만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은 현재 개봉에 단 한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형님!!!”

“오냐. 형님 오셨다.”

“왜 저 버리고 그냥 가셨습니까?”

“……큼큼! 거 그쯤하고 그냥 가시지? 내가 방금 댁 목숨을 구해준 거니까.”

하지만 이런 내 공손한(?) 말에도 귀공자는 더욱 날뛰면서 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삿대질을 해?

그냥 황제고 뭐고 다 엎어버려? 어 이거 열 받네?

그렇게 내가 화를 꾸욱 참고 있자, 만만해 보였는지 귀공자는 더욱 기가 살아서 나에게 계속해서 삿대질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어?!”

“후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주태발이다!!”

“그러니까 누군지 모른…….”

잠깐만 주태발? 고급스러운 옷에…… 곱상한 외모…… 거기에 현 황제의 성인 주 씨라…… 설마…… 아니겠지……?

“설마……?”

“그래! 그 설마다!! 내가 현 황제 폐하의 외동아들인 성왕 주태발이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았으니 네놈들 전부 무릎 꿇고 내게 사죄해라! 그렇지 않는다면 즉결처형이다!!”

하아…… 즉결처형이고 나발이고 이거 X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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