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104화
호섬이와 함께 산에서 내려온 내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니라 딱 보기에도 이거 황궁 겁니다! 하게 생긴 마차였다.
마차를 끄는 말은 당연하다는 듯이 네 마리였고 딱 보기에도 비싸 보였다.
하나같이 전부 흑마들이었는데 검은빛의 털은 윤기가 좌르르 흐를 정도였고, 말에게 얹어진 각종 장신구들은 하나같이 금이었다.
거기에 마차를 모는 마부의 모습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금실로 수놓아진,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무척 비싸 보이는 채찍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부라기보단 고위관료로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엇? 혹시 부맹주님 이십니까?”
그런 마부는 나를 보자마자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맞이하러 달려왔다.
이런, 굳이 이럴 필요는 없는데. 거의 다 오기도 했고.
내 생각처럼 나와 마부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마부에게도 가까운 거리지만 무인인 나에게는 더더욱 가까운 거리였다.
“이런, 안 오셔도 됐는데…….”
“하하하! 제가 어찌 황실의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못 본 척하겠습니까? 제가 못 봤으면 모르되 제가 봤는데도 무시한다면 이거죠, 이거.”
그리 말하면서 자신의 목을 손으로 슥슥 긋는 시늉을 하는 마부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마차를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시고 대기하고 계신 겁니까?”
사실 내려오자마자 보이는 그의 모습에 그게 가장 궁금했다.
나는 분명 딱히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고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대기하고 있는지가 말이다.
“예? 맹주님에게 들었습니다만……. 분명 아침에 부맹주님이 나갈 테니 맞이하라고 말입니다.”
“아……. 쯧! 아주 내 속을 훤히 꿰고 계시는구만.”
“그게 무슨 소리…….”
“아닙니다. 가시죠.”
이제는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청운자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몸을 부르르 한 번 떨고는 저 멀리서 내가 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휘황찬란한 마차를 향해 나는 발걸음을 뗐다.
* * *
“우와……. 이거 진짜 편하네요.”
마차에 오르고 난 뒤에 호섬이 한 말이었다.
확실히 많은 마차를 타본 내 기준에도 무척이나 좋은 마차였다.
아니, 가장 좋은 마차란 말이 맞으려나? 포장되어 있지 않은 흙길임에도 불구하고 마차에는 전혀 흔들림이 전해지지 않았고, 무척이나 조용했다.
거기에 내부도 무척이나 잘 꾸며져 있어서 내부 구경만 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 꽤나 귀한 집 자식인 호섬이가 저러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따악!
“악! 형님, 왜 때리십니까!”
“쪽팔려 인마, 조용히 해.”
쪽팔렸다. 아니, 무슨 애도 아니고 마차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맨날 이러네.
매가 약이라는 말은 정답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틀렸나 보다.
이 녀석한테 매는 전혀 안 드네.
맞아도, 맞아도 맨날 똑같아……. 한결같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으휴.
“크윽……. 형님 손은 살인병기입니다! 조심히 좀 다루세요!”
“어디 살인병기에 또 맞아볼래 아니면 조용히 할래?”
“……아. 경치 좋네. 음음! 공기도 좋고.”
내가 주먹을 들어 올리면서 말하자 호섬이가 진땀을 흘리면서 마차에 달린 창을 열고 바깥을 보는 시늉을 하며 못 본 척을 했다.
쯧! 싱거운 녀석. 시비를 걸었으면 끝을 봐야지.
“자리는 괜찮으십니까?”
“아, 예! 저는 괜찮습니다. 이 녀석도 괜찮다더군요.”
“저분이 그 이번에 오대세가에서 육대세가로 들어온 하북철가의 자제분이시라면서요?”
마부의 말에 나는 꽤 놀랐다.
정보력이 꽤 괜찮은데? 역시 황궁은 황궁이라는 건가?
그리고 이 마부도 평범한 마부는 아니겠지.
몸에서 느껴지는 내공은 없지만 몸 자체는 단련되어 있다.
즉, 수련을 하고 노력을 한 무인이라는 거지.
한 백인장? 정도 되려나? 이 정도라면?
물론 나는커녕 호섬이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겠지만.
“정보력이 대단하군요. 저는 그래도 부맹주라는 자리에 있어서 잘 알려져 있을 테지만 호섬이에 대한 것까지……. 역시 황실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하하! 사실 저분의 정보를 알게 된 것도 부맹주님 때문입니다.”
“저 말입니까?”
마부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호섬이의 정보를 알게 된 게 나 때문이라니?
내가 뭐 호섬이에 대해서 말하고 다닌 게 있던가?
내가 한참을 무엇을 말한 게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부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왔다.
“하하! 부맹주님이 어디에 저분의 정보를 말해서 저희가 알아낸 것은 아닙니다. 그저 부맹주님의 과거를 하나하나 짚어가던 도중 저분과 다른 한 분의 정보를 알게 된 것일 뿐입니다.”
“제 뒤는 물론 과거까지 캐셨다라……. 이건 좀 기분이 나쁜데요?”
흠칫……!
내가 말을 하면서 기세를 끌어올리자 아무리 단련한 무인인 마부라도 몸을 부들부들 떨지 않고는 못 배겼다.
이게 바로 내공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내공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것에 대항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없으면 대항할 방법이 없다.
물론 집단으로 뭉쳐 있다면 집단의 힘으로 떨쳐낼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가 되려면 군대는 되어야 한다.
그래서 관과 무림이 불가침인 것이기도 하고. 적은 수로 맞붙으면 무림이 손쉽게 이기겠지만 군대급으로 모이게 되면 무림 쪽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끄으응……. 절대 부맹주님에게 위해를 끼치려거나 아니면 약점을 잡으려는 생각은 없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조사를 한 이유는 어디까지 부맹주님이 혈교와 끈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혹시라도 부맹주님이 혈교에 연관이 되어 있다면 황제 폐하의 목숨이 위험하니까요. 물론 맹주님에 대해서도 조사했었습니다.”
“후우……. 그런 거라면 알겠습니다.”
마부의 대답에 나는 기세를 거두어들이면서 말했다.
찌를 듯한 기세가 사라지자 그제야 마부는 참아왔던 숨을 파하하고 내쉬었다.
“쿨럭쿨럭……. 역시 부맹주님이 현경이라는 말은 사실이었군요. 직접 몸으로 겪으니 현경이라는 사실이 절실히 느껴지는군요. 천인장의 직위를 맡고 있는 저를 단숨에 제압할만한 기세를 내뿜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거두어들이는 것을 보니 역시는 역시군요.”
……천인장? 천인장이었어? 끽해야 백인장을 보냈을 줄 알았더니 천인장? 크! 황제 폐하께서 강수를 두셨네.
만인장, 즉 대장군의 바로 밑에 있는, 장군이라는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직위가 천인장이다.
그런 천인장을 고작 마부로 보내다니……. 배포가 크시구만.
그런데 장군급쯤 되는 자가 이런 하찮은 일을 맡는 것을 허락하다니……. 대단하네.
“허……. 천인장이셨습니까? 전 단련된 몸을 보고 기껏해야 백인장급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장군급의 위치에 있는 천인장이 마부로 오다니……. 자존심이 안 상하셨습니까?”
“지고하신 황제 폐하의 명이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리가 있겠습니까?”
과연 천인장다운 말이었다.
그것은 황실의 굳건함과 황제의 막대한 힘을 알리는 말이기도 했다.
천 명이 넘는 병사들을 다스리는 장군이 한낱 마부의 신분으로 관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무림을 대표하는 맹에 부맹주를 모시러 왔다.
한데 그런 사실에도 그저 황제의 명이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명예보다 황제를 생각하는 모습에 나는 닭살이 오소소 돋았다.
과연 현재 역대 최고의 황제라는 말이 도는 이다웠다.
이자와 같은 장군, 대장군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따르는 수만…….
아니, 수십만이 넘는 병사들이 보내는 충성심을 생각하면 정말 혈교와 한판 해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마부와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의 이야기는 내가 개봉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와의 얘기를 통해 얼추 황실의 상황이나 예절 등등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마차를 탄 지 약 일주일쯤 되는 시점에 나는 개봉에 도착했다.
* * *
“으갸갸갹!”
“그건 또 뭔 그지 같은 소리냐, 호섬아.”
“……형님, 자꾸 그러시면 저 상처받습니다.”
“남정네한테 인기 있고 싶을 마음 추호도 없다.”
“저도거든요, 형님?!”
자신을 남색가로 몰아가는 태천의 모습에 호섬이 분개했지만 태천은 그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차에서 내린 뒤 보이는 개봉의 풍경에 미소를 지었다.
“아, 형님! 저 남자 안 좋아한다고요!!”
……아, 거 시끄럽네.
“알아, 인마. 누가 몰라서 그래? 장난이잖아, 장난!!”
빠각!
“커어어억!!”
“후우……. 다신 깝죽거리지 마라.”
그리 말하면서 호섬의 머리를 내리친 오른손을 툭툭 털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마부이자 장군인 마경석에게 다가가 싱긋 웃었다.
“가시죠.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시겠습니다.”
“……저분 죽으신 것 아닙니까?”
마경석의 손끝이 향한 곳에는 내가 내리친 정수리를 부여잡고 땅바닥에서 흐느적거리는 호섬이가 있었다.
그런 마경석에게 나는 팔을 턱 올리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많이 해봐서 아는데 쟤 저런 걸로 안 죽습니다. 그리고 화경의 고수가 호신강기까지 둘렀는데 죽으면 이상한 일이죠. 곧 일어날 겁니다. 먼저 가시죠.”
“그……. 그렇습니까? 근데 아무리 봐도 기절한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제가 저 녀석을 많이 봤는데 저렇게 보여도 곧장 일어나서 쫓아올 겁니다.”
“ㅇ……. 예. 그럼 알겠습니다.”
내 말에 홀랑 넘어간 마경석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앞장섰다.
하지만 그런 마경석이 모르는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 호섬은 호신강기를 두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맞았다.
왜냐하면 호섬이 호신강기를 두를 시간조차 주지 않고 후려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사실 내가 이번에 후려칠 때 발경을 섞어 때려서 아마 뇌가 살짝 흔들렸을 것이다.
아마 일어나면……. 지금 해가 머리 위에 있으니 밤이 돼야 일어날 것 같네.
음. 이렇게 생각하니 좀 많이 불쌍한데…….
지금이라도 깨워줄까……? 아니다, 그래도 그것보단 딴 방법으로 가자.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저어기 있는 경비병에게 미리 말 좀 해놓고 가죠.”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금방 쫓아오신다고는 해도 처음 오시는 곳인데 길을 잃을 염려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긴 했는지 태천은 마경석에게 부탁을 했고, 마경석은 곧장 자신의 앞에 있는 경비병에게 뚜벅뚜벅 다가가 자신의 천인장 패를 보여주고는 호섬이를 가리키며 뭐라 뭐라 말하고는 다시 태천에게 돌아왔다.
“다행히 저 경비병이 근처 객잔에 맡아두겠답니다.”
“그래요? 그럼 먼저 가 있죠. 곧 깨어날 겁니다.”
그리 말하자 어쩔 수 없었는지 결국 마경석은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 뒤를 쫓으면서 나는 실실 웃으면서 생각했다.
그래 곧 깨어나겠지.
적어도 오늘 안에는 깨어날 테니 곧은 곧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