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102화
“에휴…… 맹주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나는 출장을 간다.
“너도 이리 와, 임마.”
“켁켁! 형님! 이건 좀 놓고…….”
호섬이를 데리고 말이다.
* * *
가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호섬의 귀를 붙잡고 나는 방금 알려준 길을 따라 맹주를 만나러 향했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
무당의 심처 중의 심처인 장문인의 집무실이 나타났다.
물론 집무실답게 그 앞에는 경비를 서고 있는 이들이 즐비했지만 부맹주인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그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집무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산더미같이 쌓인 여러 안건들을 처리하고 있는 맹주, 청운자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만약 내가 맹주였다면 지금쯤 저기 앉아서 저 망할 안건들이나 처리하고 있었겠지. 그래 부맹주로 끝난 게 어디냐. 만족하자, 만족해.’
한창 안건들을 정리하고 처리하던 청운자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열심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청운자가 나에게 말을 걸자 여태까지 나를 안내해 주던 경비들이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섰다.
“오오! 이거 우리 부맹주 아니신가?”
“쩝. 맹주님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부르시죠. 어차피 저희밖에 없지 않습니까?”
“끌끌끌. 아직도 그때의 애송이 같던 모습이 훤한데 이제는 나와 대등한…… 아니, 이제는 나보다 더 높은 곳에 있구만. 허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때 당시에 양의심공을 익히느라 죽을 뻔했었죠. 그러고 보니 장문…… 아니, 맹주님께서는 그때 이후로 뭐 더 얻은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내 말에 청운자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면서 내게 말했다.
“얻은 거라면 얻은 거겠지. 자네와는 다르게 완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몰아낼 수 있었네. 그저 공존하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하던 나와는 다르게 자네는 아예 소멸시켜버렸으니 말이야.”
큼큼, 탐이 다했는데 그리 말하는 무척이나 쑥스럽네요.
그래도 탐이랑 계약한 건 나니까 뭐 내 몫도 좀 있으려나……?
어찌 됐든 나 덕분에 어느 정도는 몰아내서 다행이네.
그래도 맹주 덕택에 양의심공도 얻고 도를 다루는 방법도 익혔으니 답례는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
“그리고 벽도 하나 넘었고 말이야.”
……예? 지금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지 말입니다……?
벽을…… 넘었다굽쇼? 현경 초입의 벽을?
“그…… 그 말씀은……?”
“허허허…… 평생 못 이룰 것 같던 경지에 이르니 꽤나 기분이 좋더군.”
“허어…… 정말로 중입에 오르신 겁니까?”
끄덕끄덕-
내 말에 청운자는 입으로 말하지 않고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만 찬찬히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말이다.
“이것…… 참 무림에 겹경사로군요.”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저도 이번에 벽을 넘었거든요.”
“……?!!”
그리고 이번에는 청운자가 놀랄 차례였다.
놀란 청운자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이젠 나도 당당하게 열 손가락에 꼽히는 무인이다, 이거야!
* * *
“자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벽을 하나씩 넘었으니 실질적으로 맹의 전력이 몇 할은 늘었겠구만.”
“그렇죠. 현재 무림에서 내로라하는 무인들이 대부분 맹에 소속되어 있는 실정이니까요.”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말일세. 가령 풍신이라거나 아니면 투신이라거나 말이야.”
청운자의 말에 나는 꽤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이름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풍신은 언제나 같이 다니던 풍철현의 아버지이자 스승이었고, 투신은 자신이 현경에 올라서도 유용하게 사용하는 신법인 추섬보를 가르쳐준 스승이었으니 말이다.
‘투신님은 잘 살고 계시려나…… 내가 황궁은 털지 말라고 했는데…… 죽었다는 말은 안 들리니 안 털었겠지?’
투신이 추섬보를 가르쳐주고 떠나기 전 내가 해준 조언은 하나였다.
황궁을 털지 말라는 것.
물론 투신이 지켰는지는 알 수가 없다.
워낙에 도벽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리고 풍신은…….
‘철현이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겠지. 워낙에 재능이 있던 녀석이었으니 말이야.’
풍신이야 뭐 자기 자식이자 하나뿐인 제자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을 테니 별걱정이 없었고, 나중에 철현이 볼 때 한 번 꼬셔나 볼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 청운자가 그런 나를 깨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 차리게나.”
“아……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어디까지 얘기하셨죠?”
“지금 현 무림맹의 무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청운자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현 무림맹은 구파일방 그리고 오대세가…… 아니, 육대세가와 새외무림인 북해빙궁과 태양궁 그리고 독왕과 투왕이 참전해 있는 상태였다.
일단 단순 계산만 해도 현경 초입의 무인이 무려 18명!
거기에 독왕과 투왕은 중입의 벽을 거의 깨부수고 극에 달한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인 데다가 거기에 맹주와 부맹주 또한 현경 중입의 고수였다.
이 정도면 정말 황실과 싸워도 비등비등할 정도의 전력이었다.
아니, 잠깐만.
“마교는요?”
“아! 그러고 보니 마교도 있었군. 얼마 전 자네의 목가장에 그…….”
“유홥니다. 목유화.”
“그래, 목 소저가 마교가 무림맹에 참전한다는 소식을 들고 온 것을 깜빡했군.”
휴우…… 그래도 유화가 마교에 갔던 일이 잘됐나 보네.
내가 하북으로 떠나기 전에 유화에게 신령을 쥐여주고 마교를 덜컥 보낸 게 껄끄럽긴 했는데 그래도 천동이 녀석이 잘 돌봐주긴 했나보다.
“천동이가 같이 갔죠?”
“음! 그렇지. 내가 같이 보냈네. 어차피 내가 같이 보내려 하지 않아도 따라갔을 것 같지만…… 녀석 친구의 여자는 잘 챙기더군.”
“보게 되면 고맙다고 말해야겠네요.”
천동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청운자에게 마교에 대해서 물었다.
“그럼 일단 마교가 맹에 참전한 것을 알겠지만 마교는 내전으로 살짝 힘이 빠졌을 텐데 현 전력이 얼마나 되죠?”
“으음…… 나도 그것에 대해서는 꽤 놀랐네.”
어라? 그 정도로 심각한 건가?
아무리 마교가 힘들어졌어도 마교는 마교일 텐데…….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마교의 전력은 어마어마했다.
“현경의 고수가 2명에 화경의 고수 또한 10명이 넘어가더군.”
“허어? 그게 대체 뭔…….”
내 예상과는 현저히 다른 무인들의 숫자에 나는 기겁을 했다.
아니, 내가 떠날 때까지만 해도 분명…… 삐걱거렸는데…….
“현 마교주와 대장로가 현경 초입에 올랐다더군. 천마의 비급들까지 있었으니 아마 다른 이들보다 훨씬 수월히 경지에 올랐을 게야. 하지만 그들의 노력을 폄하할 정도는 아니지. 아니,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제아무리 천마의 비급이 있었더라도 현경에 오르지 못했겠지.”
아…… 호진이 녀석 결국 현경에 올랐구만.
역시 어릴 때부터 각종 영약이란 영약은 다 먹고 자라고 좋은 스승에다가 내가 떠나기 전까지 천마의 무공에 대해 교습도 해주고 사본도 만들어주고 했으니…….
그래도 대단하긴 대단하네. 현경이라니…… 뭐 그래도 내가 한 단계 더 높지만?
“그러면 거의 대문파가 2개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전력이군요?”
“그런 셈이지. 하지만…… 이런 전력으로도 혈교 놈들과의 싸움에서 이길지 장담할 수 없겠군…….”
“…….”
청운자의 말이 옳았다.
무림인들의 전쟁은 일반인의 전쟁과는 사뭇 달랐다.
일반인들의 전쟁이 질보다 양이라면 무림인들의 전쟁은 오로지 질이었다.
화경의 무인이 절정의 무인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듯이 현경의 극에 달한 고수는 화경의 무인을 넘어 현경 초입의 무인마저도 2대 1…….
아니, 3대 1까지도 가능할지도 모르는 괴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질의 싸움에서 무림맹은 고작 현경의 극에 달한 무인이 검황 남궁진,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 우리와는 다르게 혈교는 무려 3명의 고수가 있었고, 거기에 혈교주의 능력 또한 하늘에 닿아 있었다.
그러니 이런 질을 누르려면 압도적인 양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직 우리 무림맹의 힘은 그런 질을 누를 정도의 양을 갖추지 못했다.
못해도 검황과 독왕 그리고 투왕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힘까지 끌어와야 비벼나 볼 수 있을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청운자가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나는 지금 황실과 손을 잡을 생각일세.”
“……역시 그 방법입니까?”
관과 무림은 서로 불가침조약을 맺고 서로에게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손을 대면 서로에게 어마어마한 피해가 가기 때문에 둘은 서로를 관여하지 않겠단 조약을 맺고 수백 년간 그 조약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조약을 청운자는 깨자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청운자의 말에 나는 무어라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 이대로 가다가는 혈교에게 무림, 나아가서 황실까지 빼앗기게 될 걸세.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뿐만 아니라 죄 없는 일반인들까지 피해를 보게 되겠지.”
“후우…… 뭐, 저는 사파와도 손을 잡을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맹주님에게 뭐라 할 말이 없군요.”
“뭐? 하하하하!!! 자네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구만.”
청운자는 내 말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황실만큼이나 데면데면하던 사이가 사파 아니던가?
그런 사파와 손을 잡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청운자는 썩 유쾌한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청운자는 서로의 속마음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일단은 황실부터.”
“그러죠. 황실은 저희와 완전하게 척을 지고 시작하진 않았으니까요.”
오랜 시간 치고받기를 반복하던 사파와는 다르게 황실과는 그래도 연이 있었다.
아니, 대부분의 거대 문파나 거대 세가에는 황실과 어떻게든 연락할 방법이 하나쯤은 있을 거다.
그게 양쪽에 도움이 되니까.
관에서 잡지 못한 범죄자가 무림에 숨어들면 그걸 돕는다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니 황실과 사파 둘 중에 누구와 손을 잡겠냐는 말을 하면 당연히 황실 쪽으로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황실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왔으니까 말이다.
“그럼 제가 할 일은 한 가지겠군요?”
“그래. 황제를 설득해서 혈교를 막는 것뿐 아니라 중원에서 몰아…… 아니, 박멸시키는 거지. 황실의 군대와 금의위들을 얻게 되면 우리는 최고의 공격 수단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지.”
황실의 힘을 받으면 질을 누르기 위한 양이 얼추 맞춰지기에 황제를 설득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내 어깨에 무거운 짐이 얹어진 기분이었다.
‘휴우…… 이래서 부맹주 같은 거창한 자리를 얻고 싶진 않았는데. 쯧 어쩔 수 없나.’
이제 와서 빼기에는 외통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일이 잘 풀리게 기도라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제가 빠르게 가서 설득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자네만 믿고 있겠네. 자네가 돌아올 동안 사파에 대해서 조사해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만…….”
“멀리는 안 나가겠네. 밀린 일이 많아서…… 허허허.”
청운자의 배웅에 나는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이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 호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