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99화
“저에게 그걸 가르쳐 주…….”
“쉿! 아직 내 말 안 끝났네.”
“합! 알겠습니다.”
결이라는 완벽한 무기를 손에 쥘 생각에 앞뒤 재지 않고 말했던 게 화가 된 것 같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검황은 딱히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결은 그저 지나가는 길일 뿐일세.”
“예? 그게 뭔…….”
“쯧. 자네, 내 말을 뭘로 들은 겐가? 심검! 심검 말일세.”
아! 맞다. 심검이랑 생사경에 이야기하고 있던 거였지…….
결이 너무 흥미로워서 깜빡하고 있었네.
“아! 예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이란 게 심검을 향해 가는 길이란 말이십니까?”
“자네도 방금 당해봤으니 알 것 아닌가? 분명 나는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뚫렸지?”
“……부끄럽지만 맞습니다.”
“심검은 결을 봐야지만 쓸 수 있는 기술일세. 심검은 그저 내 눈에 보이는 결을 향해 보이지 않는 참격을 날린다고 생각하면 되는 걸세.”
“……아!! 그래서?”
“그래. 맞네. 보이지 않는 참격을 어찌 맞을 수 있겠는가? 같은 공격이 아니고서야 말이야. 그러니 자네의 단단한 몸을 뚫고 검상을 입힌 게지. 그리고 방금 공격은 내가 힘을 뺀 거야. 자네의 팔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검황의 섬찟한 말에도 나의 귀에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직 하나, 심검과 결만이 내 귀를 맴돌았다.
“……저도 그것들을 배우고 싶습니다!!!”
일단 배우고 보자.
내 부탁에 검황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애초에 뭐 자네에게 알려주려던 것이었으니까 알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
“감사합니다! 그러면 뭘 하면 되죠? 검 휘두르기? 아니면 사물을 만지면서 그 결이라는 것을 느끼는 겁니까?”
내 말에 검황이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살살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 일단 하던 것은 마저 하고.”
“……제엔자앙!!!!”
쾅!!
검황은 그 말과 함께 땅을 박차고 내게 달려들면서 결에 대해서 설명했다.
챙챙챙!!
그리고 그런 설명을 하면서 검을 휘두르는 검황의 검을 힘겹게 막으면서 검황의 설명들을 머릿속에 새겼다.
“첫째, 결을 눈으로 보려 하지 마라. 어차피 눈으로 보일 것이면 진즉에 많이들 사용했겠지. 마음으로 봐라. 마음으로 보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쩌면 보일지도 모르지.”
챙챙챙!!
한 번의 설명에 하나의 상처가 몸에 아로새겨졌다.
지금 휘두르는 검은 아까와 같이 방어를 뚫고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검 자체가 위협이었다.
평범한 검이 태천의 몸을 한 번 지나가면 어김없이 하나의 검상을 남겼다.
상처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한 고통에도 태천은 이를 앙다물고는 검황의 설명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런 태천의 모습에 검황도 재밌는지 마주 바라보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마음에 드는 마음가짐이로군. 그럼 두 번째 설명이다. 결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라. 무작정 결만 보려고 하지 말고 그 결이 왜 있는지 무엇인지 근본부터 파헤쳐 보거라. 그러면 결은 어느 순간부터 네 눈에 보일 거다.”
……죄다 두루뭉술한 설명들이네.
하나 그래도 알게 된 건 몇 개 있네.
일단 결은 일반적인 방법으론 볼 수 없다는 점.
하긴 개나 소나 볼 수 있었으면 죄다 고수였겠지.
검을 다룰 줄 모르고 검식도 몰라도 결 하나만 볼 줄 알아도 능히 고수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검을 결대로 휘두를 실력이 있다는 게 전제로 깔리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설명인 결의 본질과 의미…… 이건 아직까진 감도 안 잡히네.
그래도 뭐 언젠가 알게 되겠지.
천천히 가야지 빠르게 가려고 한다면 볼 수 있는 것도 안 보이게 마련이니까.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면 언젠가 보이지 않겠어?
그리고 그럴 자질이 있다고 이미 결을 본 검황이 그랬으니까 말이야.
나는 그리 생각하면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검황의 검을 쳐내면서 검황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 일단 결을 느껴보라…… 이 말이네요?”
“그렇지. 일단 결을 느껴야 결을 볼 수 있고 결을 봐야지 결을 따라 휘두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느끼고 보고 베는 경지를 넘어서면 여러 개의 결을 볼 수 있게 되고 그 경지마저 넘어서게 되면 나처럼 심검의 경지에 살짝이나마 발을 들일 수 있는 게지.”
심검이라…… 아직까지 결도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내게는 멀디먼 경지다.
하지만 언젠간 도달할 경지이기도 하지. 아니, 해야만 한다.
이런 결도 못 느껴서 혈교주는커녕 그 밑에 혈교의 기둥이라는 인물들의 상대도 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할 때 나는 머릿속에 의문이 생겨났고 그것을 검황에게 물었다.
“그러면 현경의 극에 달한 무인들은 전부 결을 볼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 아마 보는 결의 개수의 차이가 있겠지만 볼 수는 있을 거다. 한 가지 설명을 추가하자면 결은 그 물체의 생명선, 혹은 약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게다. 아무리 강력한 존재이고 완전무결해 보이는 존재에게도 결은 있다. 그리고 그 결만 따라간다면 베지 못할 것 또한 존재하지 않지.”
“결이라…… 그렇다면 용은 어떻습니까? 검황께서는 용을 만나셔도 이길 수 있으시겠습니까?”
내 말에 검황은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벨 수는 있을 것 같군. 어쨌든 용 또한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결 또한 존재하겠지. 흔히들 역린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바로 용의 결이겠지.”
검황의 말에 나는 내가 만나본 용들의 기운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만약 전력으로 맞붙는다면 이길 수 있는지와 그리고 그런 용들과 검황의 비교를 말이다.
그리고 길고 긴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나의 필패였다.
아직까지 결을 볼 능력도 없지만 용은 무공과는 다른 신묘한 능력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몸속에도 그들의 근원과도 비슷한 힘이 무려 두 개나 있지만 아직까지는 사용하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힘이었다.
그리고 용을 만나고 현경의 극에 달한 무인을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용들의 힘은 현경의 극의 무인보다 한 단계 강했다.
아마 생사경 무인 정도의 힘을 가진 것으로 아닐까 생각되었다.
길고 긴 무림사에서 세 명밖에 오르지 못한 경지인 만큼 용들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힘을 받은 나도 어마어마해지겠지.
“……조언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서 생각을 정리 좀 하겠…….”
“음? 어디 가는 것이냐. 대련은 이제 시작이다.”
‘……젠장할.’
그리고 그 날 태천은 피로 목욕을 하는 게 무슨 기분인지 알게 되었다.
* * *
검황에게 결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은 날 나는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하인들의 놀람이 담긴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숙소에 있는 내 기연 보따리에서 회복단을 입에 털어 넣고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나니 상처들은 대부분 아물어 있었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만변혼천공의 내공은 밤새 몸을 팽팽 돌았고 그 결과 아침에는 어렴풋이 남아 있던 상처들이 해가 머리 위에 뜰 때쯤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검황에게 가서 결에 대한 설명들과 대련을 반복했다.
그렇게 반복에 반복을 거쳐서 나는 어느 정도 결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 물론 결을 느꼈다는 건 아니고 그냥 결을 따라 공격하는 검황의 공격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수없이 결을 공격 당하다 보니 내 몸에 결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고, 그 결과 내 몸에 있는 결들을 검황의 검에 베여가서 외웠다.
다행히 내 뛰어난 머리 덕(?)에 한 번 당한 결들은 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결을 다 외우자 검황이 혀를 차면서 내게 말했다.
-쯧, 결을 느끼라니깐 결을 외우고 있구나. 뭐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어차피 결을 보게 되면 네 몸에 있는 결들도 보게 될 것을…… 쯧, 어쨌든 잘 해보거라.
……이랬다. 뭔가 맞는 말인데 기분도 나쁘고 재수가 없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어찌 되었든 결을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 이것도 결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런 나에게 돌아온 것은 그저 검황의 검이었다.
그리고 욕은 덤이었다.
멍청이라고 했었나?
어찌 되었든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내가 하북에 온 지도 어느새 한 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날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날이 되었다.
“……음? 이건 뭐지?”
검황의 가르침으로 몸으로 결을 느끼고 있을 때, 내 눈에 검황이 휘두르는 검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느리게 날아오는 검의 표면에 무언가 하얀색 선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선을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선을 따라 베었다.
서걱-
분명 천마검은 명검 중의 명검이었지만 현경의 극에 달한 고수가 사용하는 검을 벨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이 명검이든 평범한 철로 만들어진 철검이든 간에 말이다.
현경 정도쯤 되면 자신의 무기에 자연스레 내공을 불어넣는 것은 당연했고, 현경의 내공이 담긴 검이면 일반 검도 보검이 되는 효과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눈에 보인 선대로 검을 휘둘렀고, 보이는 바와 같이 검황의 검을 반 토막 내버렸다.
챙그랑!
반 토막 난 검을 손에 쥔 채 검황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그건?”
“어라? 저도 잘…… 그냥 결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는데 어르신께서 휘두른 검 표면에 무언가 하얀색 선이 보여…… 저도 모르게 그 선을 따라 검을 휘둘렀더니…….”
내 말에 검황은 자신의 두 토막 난 검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나에게 뚜벅뚜벅 다가왔다.
한 대칠까? 하는 생각에 주춤거리던 나에게 검황은 그저 어깨만 두어 번 툭툭 쳐주고는 토막 난 검을 수습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그 감각을 잊지 마라. 그러면 너도 어엿한 성과 하나는 가지고 무림맹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세가 전체를 통합시킨 것보다 대단한 성과를…… 그리고 내 눈앞에서 도사리고 있는 커다란 벽 하나를 넘을지도 모르지.”
“예? 그건 또 뭔…… 아니, 잠시만……!!!”
검황의 이해 못 할 말에 나는 검황을 붙잡으려 했지만 검황은 그 말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극상의 보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검황의 마지막 말에 나는 물끄러미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검을 보면서 방금 느꼈던 감각을 상기했다.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만이 남은 듯한 그런 기분…… 그리고 그 속에서 나만이 제대로 된 속도를 보여주었다.
내 눈에 보였던 하얀 선……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머릿속에서 반짝 생각나는 사실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방금 내가 본 게 결인가? 정말로? 그게 결인 거야?’
막상 보고 싶어서 노력할 때는 보이지도 않더니 검황에게 몸(?)으로 결을 느낄 때 보이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려고 하려 했든 하지 않았든 내가 결을 보았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역시 몸으로 느끼는 것도 결을 느끼는 것의 한 종류라는 사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방금 느꼈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주변에 있는 것들을 눈에 힘을 주면서 쳐다보았다.
나무, 돌 그리고 풀등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내 눈에 하얀 선은 다시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은 또다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