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 네비게이션-98화 (99/139)

기연 네비게이션 98화

내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넘어가려던 검황은 경악하며 내게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물어왔다.

뭐, 이제 스승이 된 것이니 나는 간략하게 내가 천마검법을 얻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짧은 설명이 끝나고 나자 검황은 어이없어하면서 말했다.

“허어…… 창천검을 알려주려 했건만…… 창천검보다 더욱 뛰어난 검법을 쓰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이 없군. 그렇다면 천마검법을 한번 펼쳐 보거라.”

까라는 데 까야지 별수 있는가?

태천은 검황의 말에 천마검을 빼 들고 천마검법을 처음부터 찬찬히 펼쳐 보였다.

그리고 태천이 천마검법을 끝마치고 납검하자 검황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아니면 제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내 말에도 검황은 답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답하지 않자 궁금해진 내가 검황의 중얼거림을 엿들었고 검황이 중얼거린 것은 다음과 같았다.

-흠잡을 곳이 하나가 없군…… 이거 내가 무언가 가르칠 것이 있긴 한 것인가…….

제일의 고수인 검황의 말에 담긴 진심에 나는 뿌듯함을 느끼면서 검황을 쳐다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에는 크게.

“제가 더 배울 것이 있겠습니까?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그 말은 용의 역린을 건드린 꼴이 되고 말았다.

꿈틀……?

“호오…… 검에 그렇게 자신이 있느냐?”

“예? 예에에…….”

내 말에 중얼거리던 검황의 입이 딱 닫혔다.

그리고 검황은 허리춤에 찬 평범한 철검을 빼 들어 나에게 겨누며 말했다.

“뽑아라. 역시 가르치는 데에는 매만큼 좋은 것이 없지 않으냐? 원래 무공은 맞으면서 배우는 것이다.”

……젠장맞을.

* * *

챙챙챙!!

“크흡…….”

망할! 만나보고 싶댔지 싸워보고 싶다고는 안 했다고!! 그리고 대체 저건 또 뭐야?

방정맞은 입 덕분에 갑자기 검황과의 대련을 하게 된 태천은 정말 복날에 개처럼 미친 듯이 얻어맞고 있었다.

‘대체 저건 뭐지? 희대의 보검이라도 되나? 대체 검기도 없이 내 몸에 상처는 어떻게 내는 건데?!’

태천이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니라 검황의 검에 있었다.

검황의 검에는 그 흔한(?) 검강…… 아니, 검기조차 서려 있지 않았다.

즉, 그냥 내공 하나 담기지 않은 평범한 검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검이 만들어낸 결과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 평범한 검은 태천이 전신에 촘촘하게 두른 천마강기는 물론이고 입고 있는 천마의를 넘어 금강불괴에 달한 단단한 태천의 금강석과도 같은 몸에 자상을 넘어서는 상처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가 바로 이랬다.

“이제 그만할 텐가? 자네의 그 검술로는 나를 이길 수 없네.”

“크으읍…… 아직 안 끝났습니다!!”

이것까지 안 꺼내려고 했는데…… 이대로는 못 져! 아니, 죽어도 못 져!!

검은 배우려고 와서 도를 쓴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처맞고 지라고?

혀 깨물고 죽는 한이 있어서 그건 절대 안 돼!!

그리 생각하면서 태천은 허리춤에 고이 모셔두었던 도갑에서 화룡도를 꺼내 왼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검황이 비죽 웃으면서 말했다.

“검을 배우러 와서 도라니…… 거 정말 신기한 발상이로군. 그 도라도 들면 나를 이길 수…… 이크!”

내가 도를 빼 드는 모습이 꽤 인상 깊게 보였는지 주절주절 말을 하는 검황에게 쥐고 있던 천마검과 화룡도를 냅다 던졌다.

당연히 천마검과 화룡도에는 새파랗게 타오르고 있는 검강과 도강이 있었다.

이 하나의 검과 도를 그래도 좌시할 수는 없었는지 검황은 자신의 평범한 검에 내공을 불어넣어 튕겨냈다.

챙 챙!!

두 번의 금속음과 함께 천마검과 화룡도는 허공을 날았다.

그 모습에 검황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무기를 버려? 아주 무인에 대한 기본이…… 큭!”

무기를 튕겨내고 나에게 무어라 말하려는 검황에게 내 주먹을 선물해 주자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검을 들어 주먹을 막았다.

하지만 그래도 권강이 깃든 두 주먹을 막아냈는데 아무런 피해가 없진 않은지 검황은 침을 탁 뱉었다.

피가 섞인 침을 말이다.

“……역시 그래도 숨겨둔 한 수가 있긴 있었구나…… 흡!”

쯧, 아깝다.

그래도 동급의 무인에게도 잘만 통하던 기술인데…… 역시 두 단계 차이가 크긴 큰 건가?

신체 능력 자체도 차이가 꽤 나는 것 같고…… 나보다 못해도 수십 년은 더 살았는데 어떻게 나보다 신체 능력이 좋은지 이해가 안 가네…… 아! 환골탈태 덕분인가…….

검황은 그래도 나와 동급의 무인이었던 팽진효와 철대만에게도 먹힌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

그저 놀람만 주었을 뿐이었다.

쳇, 젠장할.

“……큼, 오늘 평생 놀랄 일을 다 겪는 것 같군. 그럼 나도 전력으로 가보지.”

섬찟…….

그 말과 함께 자세를 잡고 검으로 나를 겨누는 검황의 모습에 나는 무언가 섬찟함을 느꼈다.

살면서 딱 한 번 느껴본 바로 그 섬찟함. 바로 죽음이었다.

거기까지 느낀 나는 본능에 몸을 맡겼다.

검황을 노리던 두 팔은 내 몸을 감쌌고, 허공을 배회하면서 검황의 빈틈을 저 높은 창공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독수리처럼 노리던 천마검과 화룡도 또한 마찬가지로 죽음의 앞에서 하나의 방패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방어 준비가 끝나자 검황의 검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그리고 그 천천히 휘두른 어린아이조차도 손쉽게 막을 수 있을 법한 검은 태산이 쓰러져도 버틸 것 같았던 내 방어들을 모조리 깨부수고 내 두 팔에 깊은 검상을 남겼다.

푸화아악!!

베인 상처에서 붉고 따뜻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그 모습에 내가 느낀 감정은 고통보단 당혹이 컸다.

어떻게? 분명 내 방어는 완벽했는데?

발경의 묘리가 담길 것까지 감안해서 첫 번째로 천마검을, 두 번째로 화룡도를 방어막으로 내세웠고 그 뒤로 천마강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어떻게 검이 내 몸에 닿았지?

거북이같이 느린 검이었는데…… 나는 그 검에 베였고…… 그리고 이렇게 됐다고?

이게 말이 돼?

“끌끌…… 온몸이 아프구만 그래. 역시 미숙해서 그런가…….”

검황의 그 말에 나는 경악했다.

이게 미숙한 기술이라고?

대체 그러면 완숙한 기술은 뭔데 그래?

뭐 심검이라도 되는 거야?

“심검은 역시 아직 내 경지와 수련이 낮군.”

……진짜 심검이었어?

그런데 심검은 생사경의 경지의 무인이 사용할 수 있는 절기가 아니었나?

그리고 심검은 의지만으로 상대를 난도질하는 그런 절기가 아닌가?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검황은 내 피가 묻은 검을 털어내고 납검을 하며 말했다.

“자네의 얼굴을 보아하니 아직 생사경에 이르지도 못한 내가 어찌 심검을 쓸 수 있냐는 표정이군.”

끄덕끄덕.

내 끄덕거림에 검황은 피식 한 번 웃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화는 풀린 듯하다.

“자네 생각이 맞네. 난 아직 생사경에 오르지도 못했네. 하지만 내가 전설 속의 경지인 생사경이 어떻게 실존하는지를 알았다고 생각하나?”

“설마……?”

“그래. 방금 내가 펼친 심검 때문에 생사경에 대한 단서를 얻었지. 생사경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단서를 말이야. 아까 내가 말한 대로 나는 현경의 극에 오르고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네. 그리고 그런 와중에 ‘결’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

……결? 갑자기 심검에 대해서 얘기를 하던 도중 결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갑자기 나온 결이란 단어에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그것마저 눈치챘는지 검황이 다 이해한다는 눈치로 말을 이어나갔다.

“생사경과 심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결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자네도 이상하지? 하지만 이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던 둘에는 연결점이 있으니 내 말을 계속 들어보게나.”

“……알겠습니다.”

일단 듣고 생각하자 듣고! 어찌 되었든 현 중원무림 최고수의 가르침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나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이어지는 검황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내 폐관수련 도중에 처음 보게 된 결은 이러했지. 물체에 하나의 선이 보이기 시작한 걸세.”

“선? 선 말입니까? 이런?”

그리 말하면서 내가 떨어진 천마검을 주워서 바닥에 주욱- 선을 그으며 물었다.

그러자 검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네. 바로 그런 선이지. 살아 있지 않은 물체, 즉, 돌이나 나무 같은 것들에도 이런 선이 있었고 살아 있는 물체,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선이 보이기 시작한 걸세. 처음에는 내가 헛것을 보나 싶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단련에 단련을 거듭할수록 보이는 선에 개수는 늘어갔네.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으로 말이야.”

“그런데 대체 그 결이라는 것이 뭡니까?”

“그 이야기는 지금부터일세. 처음에는 관심을 껐지만 점점 늘어가는 선의 개수에 나는 호기심을 느끼고 검을 휘둘러보았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나도 깜짝 놀랄 정도였지.”

검황의 그 대목에선 나도 꽤 놀랬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오만가지를 다 보았을 검황의 입에서 놀랐다는 말이 나오다니 말이다.

놀라 하는 내 모습에 검황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뭘 그리 놀라나. 나도 사람이 놀랄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을.”

“……하지만 좀 놀라긴 하네요. 솔직히 검황께선 오래 살아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그런 세월만큼 수많은 것들을 보셨을 테고요. 그런데도 놀라셨더니 꽤나 신기해서 말입니다.”

“하하하!! 맞아 자네 말이 맞지.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영물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보았고 남들은 기연이라 불리는 일들도 수없이 겪어왔네. 아니, 내 삶 자체가 기연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나에게도 ‘결’은 무척이나 특이하고 신기한 것이었네.”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이야기에 나는 피가 철철 흐르는 팔에 신경을 끄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물론 어차피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도 나을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으니까.

“아까 내가 결이라는 선을 따라서 검을 휘둘렀다고 말했었지?”

“예. 거기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직 뭘 향해 휘둘렀는지를 말 안 해주었군. 만년한철일세. 나에게 꽤 질 좋은 한철이 있었거든. 그것에도 결이 보이기에 휘둘러보았지.”

그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만년한철이 무엇인가?

검이든 도든, 아니, 그 어떤 무기를 만들어도 질 좋은 무기.

나아가서 솜씨 좋은 장인에게 맡긴다면 정말 보검이나 보도 정도는 가볍게 만들어지는 그런 철 아닌가?

그런 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그런 귀한 것에 검을 휘두른다니 검황도 보통 미친 게 아닌 것 같았다.

“……대단하시군요. 누구는 평생에 한 번 쥐어보지도 못할 물건을 향해 검을 휘두르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셨습니까?”

뭐, 당연히 한철은 멀쩡했겠지. 한철이 괜히 한철이겠는가.

“한철을 잘랐네. 정말 부드럽게 종이 자르듯이 말이야.”

‘……미친! 방금 뭐라고 한 거야 한철을? 그것도 한철 중에 제일인 만년한철을?!’

검황의 예기치 못한 미친 답변에 나는 벌벌 떨리는 손을 붙잡고 재차 질문했다.

“거…… 검은? 아니, 검강은 쓰신 겁니까? 아니, 하다못해 검기라도 쓰셨습니까?”

“쯧…… 굳이 왜 그런 걸 쓰나? 그저 평범한 검에 내공 하나 불어넣지 않았네. 그저 평범한 검을 잡고 휘둘렀을 뿐이지. 그렇기에 결이 대단하다는 것일세.”

진짜 미쳤네…… 잡검으로 한천을 베? 그것도 부드럽게? 허…… 이거 이거…… 탐나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