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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 네비게이션-85화 (86/139)

기연 네비게이션 85화

내 말에 세 사람은 각각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다.

표태원은 즐거워하는 표정을 궁주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마지막으로 설미진은 놀라워하는 표정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표정을 다과 삼아 내 자리 앞에 놓여 있는 차를 홀짝였다.

* * *

북해빙궁의 내성에 있는 연무장을 관리하는 최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최씨의 그런 모습에 그의 친구인 김씨가 최씨에게 물었다.

“자네 요즘 들어 왜 그렇게 한숨을 푹 쉬는 겐가?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아…… 김씨 자네인가?”

그리 말하면서 최씨는 고개를 들어서 김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든 최씨의 모습에 김씨가 깜짝 놀라 하며 말했다.

“자네 얼굴이 왜 그런가!”

김씨의 말처럼 최씨의 눈 밑은 거무죽죽한 게 당장 죽어도 이상할 정도로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씨의 볼은 붉게 상기된 게 생기가 도는 이상한 모습이었다.

김씨의 그런 물음에 최씨가 또다시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그게 말일세…… 이번에 강태천 대협이 돌아온 것을 알지?”

“응응 알고말고. 태양궁에 침입한 혈교 무리를 막아낸 것도 모자라 약관에 나이에 지고한 경지인 현경에 도달했다면서? 크으, 내 자식도 강태천 대협만큼은 아니어도 반만 닮았으면 좋겠군.”

“그래. 바로 그 대협 때문일세.”

“음? 그게 무슨 말인가?”

김씨의 말에 최씨는 한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자네 내가 요즘 무공이 벽에 막힌 것은 알고 있지?”

“그러엄. 그래서 요즘 궁 내에 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가르침을 받으려고 연무장 관리직을 맡은 게 아닌가?”

“그래. 맞네. 그런데 대협 때문에 최근 그 벽을 조금이나마 넘은 것 같네.”

“오! 그게 정말인가?”

최씨에 말에 김씨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자신의 친구가 일류의 벽에서 막혀 절정에 오르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렇게 실마리를 얻으니 죽마고우인 자신의 마음도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건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 왜 눈 밑이 그렇게 거무죽죽한 게야? 집에 누가 아픈가?”

김씨의 말에 실마리를 얻었다며 싱글벙글 웃고 있던 최씨가 또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어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쾅!!

“어이쿠! 이건 뭔 소리람?”

“하아…… 바로 저것 때문일세.”

“저 폭발음이 뭔데 자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겐가?”

“내가 실마리를 얻은 것은 대협이 현경에 오른 후 몸의 불균형을 맞추기 위한 투왕 어르신과의 대련 때문이었네.”

“호오 그렇구만? 그럼 저 폭발음이?”

친구의 말에 최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맞네. 저 소리가 투왕 어르신과 대협이 대련을 하면서 나는 폭발음이지.”

“그렇구만? 그래서 자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이유가 뭔가?”

“……힘들어서…….”

“뭐라고?”

“힘들어서!!!!”

“…….”

“아무리 연무장이 하루가 지나고 다시 원상복구가 되어도 그렇지 매일매일 박살 난 연무장의 잔해를 치우느라 나는 요즘 잠도 못 잔단 말일세!!”

그리 소리치고는 최씨는 터덜터덜 자신의 집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최씨를 붙잡지 못하고 최씨와 술 한잔을 하려던 김씨는 그런 최씨를 곱게 보내주었다.

* * *

투쾅!!

주먹 한 방에 단단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연무장 벽이 박살 나고.

투쾅!!

발차기 한 번에 단단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연무장 바닥이 쪼개졌다.

그리고 그런 참상을 만들어낸…… 아니, 계속 만들고 있는 둘은 당연히 투왕 표태원과 강태천이었다.

해가 뜨는 새벽부터 시작된 둘의 대련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정오까지도 쉼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둘의 투쟁심을 막은 것은 설미진이었다.

“밥 먹고 하세요!!”

그 한마디에 서로를 죽일 것처럼 달려들려던 둘은 우뚝 멈춰 서서 설미진을 향해 달려갔다.

이미 일주일 동안 반복되는 모습에 설미진은 한 번 웃고는 바구니에 담아온 새참(?)을 꺼냈다.

물론 새참이라기엔 어마어마한 양이긴 했지만 고된 대련을 거친 둘에게는 그것도 부족했다.

새참을 풀어놓는 설미진을 보면서 표태원은 바구니에서 고량주 한 병을 까면서 태천에게 물었다.

“너도 한잔할래?”

“좋죠.”

현경에 오르면서 완전한 만독불침을 이룬 태천에게 도수가 높은 술도 그저 음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저 흥을 돋우는 도구일 뿐이었다.

태천의 승낙에 표태원은 잔을 주는 게 아닌 고량주 한 병을 통째로 태천에게 던져주었다.

표태원의 그 모습에 태천은 피식 웃고는 고량주 병을 집어 들어서 단숨에 마셨다.

태천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표태원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끌끌…… 고놈 참 잘 마신단 말이지. 그래서 어때? 일주일의 성과는?”

말을 하면서 고량주를 입에 들이붓는 표태원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야 만독불침이 있으니 고량주를 마셔도 그냥 물을 마시는 기분이지만 표태원은 아니었다.

분명 알코올이 들어가 취기가 돌고 있을 텐데 일주일간 보아온 표태원은 정말 만독불침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술을 잘 마셨다.

“뭐 성과는 있죠. 일단 화경에 경지에서 벗어나 현경이란 경지에 안착했지만 아직 심, 기, 체 중에 체가 불안했는데 지난 일주일간에 대련으로 체도 심과 기와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내 말에 표태원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설미진이 꺼내놓은 새참을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이제 떠나겠구만?”

그리 말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짓는 표태원을 보면서 그래도 이 인간이 정이 있긴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에이씨 너 가면 누구랑 싸우지?”

……취소한다.

어찌 됐든 부족했던 체의 수련을 마친 지금 더 이상 북해빙궁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표태원과 대련을 하는 일주일 사이에 궁주에게 내가 만드는 맹에 참가하겠다는 편지를 받았으니 북해빙궁에서의 볼일은 이제 끝났다.

“뭐 혈교랑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하면 싸울 일은 넘쳐날 텐데요.”

“그렇겠지? 낄낄낄 좋아 좋아. 빙궁에는 안 오려나 그놈들.”

……내가 혈교여도 빙궁은 안 온다.

싸움에 미친 인간이 떡 하니 기다리고 있는데 미쳤다고 쳐들어오겠는가?

그리고 빙궁은 내가 준 빙과 덕택에 한층 강해진 빙궁주와 1황 3왕 2마…… 아니, 2마 중 하나인 전대 마교주가 죽었으니 1황 3왕 1마.

어쨌든 그중에 하나인 표태원이 도사리고 있으니 아마 태양궁에 쳐들어왔던 혈인이 와도 양패구상이 가능할 정도이니 혈교도 같이 죽자는 게 아닌 이상 북해빙궁에 쳐들어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호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북해빙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배가 필요하고 수상에서 잘 싸울 수 있는 이들이 필요한데 그런 이들은 아마 혈교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북해빙궁에 혈교가 선제공격을 걸 일은 없다고 보는 게 좋았다.

“쩝쩝…… 어쨌든 저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떠납니다.”

-이얏호!!

……내 말에 방금 누군가 환호성을 지른 것 같긴 한데 기분 탓이겠지?

“쩝. 알겠다. 네가 맹을 만드는 그때 나도 찾아가마.”

“……투왕은 어째서?”

“잉? 왜긴 왜야. 싸우는데 내가 빠지면 쓰냐?”

……이런 염병.

투왕은 분명 좋은 인재이지만 폭주 기관차나 마찬가지이다.

분명 맹이 결성되면 고수들이 맹에 모이는데 그런 고수마다 투왕이 싸우자고 하면…… 으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거기에 그런 투왕을 막을 사람은 중원무림에 단 한 사람이 있다.

1황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검황 남궁진 그 사람뿐인데…… 그 사람은 남궁세가 사람인 데다 세가는 구파일방을 전부 모은 다음에 모을 생각이기에 실질적으로 막을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게 좋았다.

그래도 만약에 사용할 패가 늘었으니 다행…… 이려나?

“……어쨌든 감사합니다.”

“그래서 너는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냐?”

“일단 운남으로 가려고 합니다.”

“운남? 아! 그 독 쓰는 늙은이 만나려고?”

……세상에 독왕보고 독 쓰는 늙은이라 말할 사람이 있다는 게 참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어쨌든 그건 맞습니다.”

“그 늙은이도 네가 만들려는 맹에 넣으려고? 그 고집불통이 과연 들어줄까?”

“그건 뭐 가봐야 알겠죠.”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독왕 어르신은 만독불침을 이룬 내 몸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라도 아마 맹에 들어올 것이다.

평생의 염원이었으니까 말이다.

내 몸을 담보로 불러들이는 셈이 되지만…… 해부해 보진 않겠지……?

“그래? 그럼 이거 받아가라.”

그리 말하면서 투왕이 자신의 바지춤에 손을 넣고 뒤적이더니 투(鬪)자가 각인된 패(牌) 하나를 꺼냈다.

잠시만 그거 어디서 꺼낸 겁니까?

“……이건 뭡니까?”

질색이라는 얼굴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투왕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곳에서 안 꺼냈으니 그런 표정 짓지 마라. 한 대 치기 전에.”

“아하하…….”

“그건 나를 상징하는 패다. 아마 다른 놈들도 이런 거 가지고 있을 거다.”

“오!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오냐. 네가 마음에 들어서 주는 거니까 그거 가지고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안 합니다. 안 해요!”

투왕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나는 빼액 소리를 지르고는 패를 슥슥 닦아서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투왕이 또다시 발작하려고 했지만 다행히 옆에 있던 설미진이 잘 막아주었다.

휴, 한 대 맞을 뻔했네. 식은땀을 닦고 있는 내게 설미진이 내게 물었다.

“우리 북해빙궁도 언제나 네 편이야.”

“감사합니다. 구음신녀님.”

장난스럽게 말한 내 말에 구음신녀, 설미진 어머어머 얘는! 하면서 나를 주먹으로 퍽퍽 쳤다.

……은근 아프네?

그런 장난을 뒤로하고 나는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왜? 벌써가려고?”

“아뇨. 가는 건 내일 가려고요.”

“그런데 왜?”

“그래도 갈 채비는 미리 해놔야죠. 내일 일어나서 할 수는 없으니까요.”

“쩝. 알겠다.”

그렇게 말하면서 표태원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와씨, 키 엄청 크네. 등치는 무슨…….

나도 어디 가서 키랑 등치로 밀려본 적이 없는데 투왕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투왕 솥뚜껑만 한 자신의 손으로 내 등을 팡팡 쳤다.

“윽!”

“큭큭큭. 죽지 말고 건강하게 보자. 그래야 나중에도 또 싸우지.”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싸움밖에 모르는 싸움광 같으니.

그런 표태원을 뒤로하고 나는 설미진에게 묵례를 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뭐 짐이랄 것도 딱히 없었다.

그냥 옷 몇 개랑 북해빙궁 주변에서 캔 음기가 깃든 영초들 정도?

그리고 태양궁에서 캔 양기가 듬뿍 담긴 영초들 정도밖에 없었다.

짐을 정리하다가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탐에게 영초 몇 개를 던져주면서 짐을 꾸렸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어 있었다.

창문 밖으로 달과 별의 모습에 나는 짐을 정리하는 것도 멈추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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