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81화
화연의 말에 태천이 고개를 끄덕거리곤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이제 밖으로 나가야지.”
“……아버지는 괜찮을까요.”
“괜찮겠지. 혈인 그 작자가 얼마나 강할지는 몰라도 궁주님도 현경의 무인. 그러니까 괜찮겠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태천의 표정도 그닥 좋지 못했다.
왜냐하면 혈인이 나타났을 때 느꼈던 기운은 절대 염진백과 동급을 놓을 수 없는 그런 포악한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잘해도 반죽음…… 못 하면…… 사망인가……?’
염진백이 제아무리 현경의 무인이라도 그 위에 존재들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들을 적으로 놓고 살아남기에는 무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초기 목적은 달성했으니 빨리 밖으로 나…….”
쾅!!
“뭐…… 뭐야?”
말과 함께 들리는 폭발음에 태천이 움찔했다.
그리고 그런 태천을 향해 저 멀리서 핏빛 머리를 한 누군가가 연신 폭발음을 내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크…… 크하하하!!”
혈인이었다.
혈인은 온몸에 푸른 불, 청염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혈인은 곧장 태천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혈인의 손에 잡혀 있는 사람을 본 태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궁…… 궁주님?”
“예? 저기 저 사람한테 잡혀 있는 사람이 아빠라고요?”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어떡…….”
태천에게 어떡하냐고 묻는 화연의 입을 막으면서 태천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야.”
“네?”
“준비해. 궁주님뿐만 아니라 우리도 같이 죽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 말하면서 태천은 멀리서 달려오는 혈인에게서 느껴지는 힘에 떨리는 몸을 다 잡으면서 천마검과 화룡도를 빼 들었다.
그리고 탐에게 말을 걸었다.
‘탐. 저자의 빈틈이 보이면 그림자에서 빠져나와 바로 씹어 먹어라.’
-알았다.
혈인에게서 느껴지는 힘에 탐도 평소의 장난기 하나 없이 태천의 말에 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준비를 끝낸 태천이 화연에게 말했다.
“후우…… 네가 가진 화령. 화령은 무슨 힘이 있지? 아까처럼 불덩어리만 날릴 수 있나 아니면 뭐 다른 능력이라도?”
“음…… 일단 청염으로 몸을 감싸는 갑주라든가 검이라든가를 만들 수 있어요.”
“갑주의 방어력은?”
“일단 갑주의 방어력은 관에서 사용하는 철제의 갑주보다 높고, 타격 시 불의 갑주의 불이 타격한 사람의 몸에 자연스레 옮겨붙어요. 검도 마찬가지로 벤 상대의 몸에 불이 옮겨붙고요.”
“그래? 일단은 갑주와 검을 만들어. 그래야 상대라도 되겠지.”
“네.”
태천의 말에 화연은 고개를 한 번 끄덕거리고는 화령의 힘으로 불의 갑주와 불의 검을 만들고는 태천에게 다시 말했다.
“준비 다 됐어요.”
“그거 다행이네. 저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거든.”
“네? 윽…….”
태천의 말에 의아해하던 화연에게 흙먼지가 쏟아졌다.
그리고 흙먼지가 걷히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온몸에 청염이 붙어 지금도 타닥타닥 타고 있는 혈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혈인을 보면서 태천이 물었다.
“궁주는 살아 있는 건가?”
태천의 말에 혈인은 염진백을 들고 있는 손을 들어 보이면서 물었다.
“음? 이놈 말하는 거냐? 글쎄다? 나도 모르겠는데? 함 알아봐주랴?”
그리 말하고 혈인은 염진백을 냅다 바닥에 던졌다.
혈인이 염진백을 바닥에 메다꽂자 그 주위에는 마치 크레이터처럼 움푹 파였다.
“쿨럭! 크억 컥컥…….”
그 고통에 염진백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혈인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끌끌. 명도 질기네. 네 말대로 살아 있는 것 같구나.”
“으득…….”
혈인의 비웃음 담긴 말에 화연이 이를 으득 갈면서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행동했지만 태천의 손에 제지당했다.
“멈춰. 같이 가서 사이좋게 인질이라도 되려고 그러는 거야?”
“하…… 하지만!”
“나도 알아. 하지만 그렇게 어영부영 달려들어서 구출할 수 있을 것 같아?”
“…….”
“그러니 차근차근…….”
화연에게 말을 하던 태천은 옆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냅다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런 태천의 검을 막으면서 혈인 킬킬대며 말했다.
“뭘 그리 재밌게 이야기하고 그러나? 나도 좀 껴주지?”
“쳇. 괴물 늙은이 같으니.”
“어찌 되었건 화령은 어딨나? 그걸 주면 나도 저 늙은이를 주지. 어떤가?”
혈인의 말에 태천이 피식 웃으면서 손가락을 퉁겼다.
“당신 줄 화령은 없어서 미안하네. 탐.”
푸홧!
태천의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혈인의 그림자에서 탐이 솟구쳐 올라 혈인의 불타고 있는 오른팔을 노렸다. 하지만…….
“어이쿠! 이건 또 뭐지? 꽤 신기한 걸 가지고 있구만? 끌끌끌.”
‘……그걸 피해?’
여태까지 탐의 공격을 피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그것을 피했다는 사실에 태천이 당황했다.
탐의 움직이는 속도는 정말 빛의 속도와 비견될 정도였다.
태천도 피하라고 하면 피할 수 있을지가 의심되는 속도인데 그걸 저렇게 피했다는 사실에 태천이 당황했다.
그리고 상대는 그런 사실을 감안해 줄 정도로 녹록지 않았다.
“그럼 나도 갚아줘야지.”
투쾅! 퍽!!
그 말과 함께 혈인은 눈으로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태천을 후려쳤다.
그 공격을 태천은 간신히 검을 교차해내어서 막아냈다.
하지만 충격까지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충격을 해소하지 못한 태천은 그대로 허공을 날아 벽을 부수며 날아갔다.
그리고 사라진 태천을 보면서 혈인은 화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호오, 그 불은 뭐지? 저 궁주라는 자는 그런 걸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익!”
그의 말에 화연은 이를 갈면서 청염으로 이루어진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내성과 같은 화력의 청염을 아직까지 몸에 달고 있으면서 전혀 고통스러워하지도 않고 타격도 없어 보이는 혈인에게 같은 화력의 청염으로 이루어진 검은 혈인의 몸에 제대로 타격을 주지 못했다.
펑!
휘두른 검을 잡은 혈인이 주먹으로 검을 터뜨리자 청염이 주위로 터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혈인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설마 그 힘이 화령의 힘인가? 그 정도 위력이면 실망인데…… 쯧.”
“닥쳐라! 혈교의 개! 피에 미친개! 너 같은 놈은 살아 있을 자격이…… 컥…….”
혈인의 말에 말을 토해내던 화연의 복부에 혈인의 주먹이 꽂혔다.
그러고는 혈인이 화연에게 물었다.
“네년이 나에게 무어라 하든 상관도 없고 내가 신경 쓸 이유 따위 없다. 지금 내가 네년의 장단에 맞춰 주는 것은 그저 화령. 그 화령 단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래서 화령은 어디에 있지?”
혈인의 말에 화연이 킥킥대며 웃으면서 혈인의 얼굴에 침을 탁 뱉으면서 말했다.
“너 같은 놈에게 줄 거라고 내 침 밖에 없…….”
쾅!
화연의 말에 혈인의 발길질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혈인의 발길질에 맞은 화연은 사당까지 날아간 것도 모자라 사당을 부수었다.
그리고 사당이 부서진 먼지구름 속에서 혈인이 뚜벅뚜벅 걸어오면서 말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여흥이라도 즐기다 가면 그만이지.”
그리 말하면서 혈인은 쓰러져 있는 화연의 목을 잡고 서서히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어디 한번 보자. 네년의 그 알량한 자존심이 이기는지 아니면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 이기는지를 말이다.”
“켁…… 케윽…….”
그렇게 혈인은 화연의 목을 붙잡은 채, 허공으로 들어 올렸고 화연은 괴로운지 연신 켁켁거리면서 혈인의 팔을 쥐어뜯었지만 혈인의 아귀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이내 화연의 얼굴이 퍼렇게 질릴 때쯤, 혈인에게 검과 도가 날아왔다.
“후욱…… 그건 놓고 나랑 한판 하지?”
태천의 도발에 혈인이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고작해야 화경의 끝자락인 나부랭이가 주둥아리는 하늘에 닿았구나. 좋다. 덤벼봐라. 그 알량한 실력의 한계를 내가 보여주마.”
그리 말하면서 혈인은 잡고 있던 화연을 무너진 사당을 향해 집어 던지고는 태천에게 마주 달려갔다.
* * *
‘나는 왜 이렇게 약하지.’
‘나는 왜 이렇게 무력할까.’
‘나는…….’
‘나는…… 왜…….’
혈인에게 집어 던져진 화연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화연에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너는 나약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저 사람에게 졌는걸?’
-그건 너의 온전한 힘이 아니었기에 진 것이다.
‘……그러면 나도 저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거야?’
-물론이다. 다만 지금의 너로서는 불가능하지만.
‘뭐야. 그러면 안 되잖아.’
-하지만 나라면 할 수 있다. 나에게 잠시만 몸을 맡겨라. 그러면 네가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마.
‘그러면 태천 오라버니도…… 아빠도 구할 수 있는 거야?’
-그건 당연한 사실이다.
‘그래. 그럼’
그렇게 화연은 몰려오는 졸음에 눈을 감았고, 또 다른 무언가가 눈을 떴다.
* * *
“그게 고작이냐. 애송이? 그까짓 알량한 실력으로 나를 넘보려 한 거냐?”
“칫. 더럽게 강하구만.”
그렇게 말하는 태천의 온몸에는 피멍이 한가득하였다.
금강불괴가 아니었다면 정말 죽어도 몇 번은 죽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태천은 회복력을 올려주는 환단을 입안에 털어 넣으면서 생각했다.
‘저 괴물 늙은이를 어떻게…… 어?’
그리고 그런 태천의 눈에 사당의 잔해 파묻혀 있던 화연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했다.
‘후우…… 그래도 살아는 있었…….’
혹시 죽었을까 걱정했는데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태천은 혈인에게 불덩어리를 던지는 화연의 모습에 기겁했다.
혈인에게 불덩어리를 던져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불덩어리의 색이…… 파란색.
그것도 다른 색 하나 섞이지 않은 순수한 청염의 구가 혈인의 몸에 닿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혈인의 전신에 순수한 푸른 빛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혈인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태천은 화연을 보느라 거기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누…… 눈이?’
화연의 눈이 바뀌어 있었다.
평소에 보던 눈동자가 아닌…….
‘마치 화룡의 눈 같은데?’
화룡의 눈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내 화연의 눈동자는 평소의 눈동자로 돌아왔고 이내 허물어졌다.
“괜찮아?”
쓰러진 화연에게 다가가 태천이 화연에게 물었지만 화연은 답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몸을 잡고 있던 태천은 깜짝 놀랐다.
“몸이…… 불덩이잖아?”
화연의 몸은 마치 타오르는 불처럼 뜨거웠다.
금방이라도 온몸에 불이 피어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천은 화연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 그건 제가 아직 다루는 게 미숙하기도 하고 일정 힘 이상으로 힘을 끌어올리면 저한테 위험하다고 그래서요.
“그래. 분명 다룰 수 있는 힘 이상에 힘을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고 했었지. 그리고 저 모습을 보아하니 한계 이상의 힘을 사용한 건 확실한 같은데…… 반동이 온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