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80화
태천의 물음에 화연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왠지 될 것 같았어요. 느낌이 내성을 지켜주는 청염과 비슷하달까? 그런 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짜잔! 성공했죠?”
“어휴. 그거 성공 안 했으면 넌 죽었어. 알아?”
“이히히. 그래도 성공했으면 된 거죠. 안 그래요?”
그래도 화연의 말이 맞긴 맞았으니 태천은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고개만 저을 따름이었다.
그런 태천을 뒤로하고 화연은 사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라버니! 그럼 다녀올게요! 좀만 기다려요!”
“그래그래. 빨리 다녀와라.”
태천의 말에 손을 흔드는 걸로 답을 한 화연은 이내 사당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화연이 사당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태천은 몸을 풀면서 말했다.
“이제 나오지?”
태천의 말과 함께 태천을 몰래 쫓아온 태양궁의 배신자들과 혈교의 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 저 여자가 가지고 나오면 화령을 우리에게 넘겨라! 그렇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태천에게 말을 한 이는 흑색무복을 입고 팔에는 무(無)라 적힌 완장을 찬 이였다.
그런 그의 말에 태천이 물었다.
“그런데 배신자 놈들은 그렇다 치고 너네 들은 어떻게 들어왔지?”
태천의 물음에 남자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곧 뒈질 놈이 알아서 뭐하려고?”
“그거야 대봐야 아는 거고.”
“지금 이 인원수를 보고도 그딴 말이 나오는 건가? 만용이 심하군.”
“아 거참, 만용인지 아닌지는 대봐야 안다니까?”
태천의 이죽거림에 남자가 뿌득 이를 갈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닥쳐라! 나이도 어린 것이 아까부터 꼬박꼬박 말대꾸를…… 저 자식의 목을 가져오는 이는 혈인님의 직속 수호대 무혈대 대주의 이름을 걸고 이름 있는 자리 하나를 얻어주겠다.”
남자의 말이 시발점이 되어 태천의 눈치를 보던 이들의 눈이 회까닥 돌아가 태천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태천이 검과 도를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니들은 검이랑 도도 필요 없어.”
그와 함께 태천은 주먹을 말아 쥐면서 마주 달려갔다.
* * *
“흐음…… 엄청 넓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무척 넓은 사당의 모습에 화연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볼을 두어 번 착착 때려 정신을 차리고는 화령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넓어 봐야 사당이었기 때문에 사당 전체를 뒤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라? 분명 다 뒤졌는데…….”
사당을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화연의 눈에는 화령이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에 당황한 화연은 이제는 내공까지 써가면서 사당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뒤졌는데도 보이지 않았는데 두 번 뒤진다고 보일 리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화연이 당황하고 있을 때, 화연의 귀로 목소리 하나가 들리기 시작했다.
-……태양궁의 아이인가?
“으악! 누구야! 혈교냐?”
-태양궁의 아이야. 너는 왜 이곳에 들어왔느냐?
“……당신은 누구예요?”
적이 아니라는 생각에 화연은 상대의 정체를 물었다.
화연의 말에 목소리를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 나 말하는 게냐? 나는 이 사당이 있는 이유라고나 할까?
“사당이 있는 이유?”
-그래. 그리고 네가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하고.
“서…… 설마?”
목소리의 말에 설마 하는 화연에게 목소리가 답했다.
-그렇다. 내가 바로 네가 지금 찾고 있는 화령이다.
* * *
퍼억!
“후우 후우…… 이게 끝이냐?”
자신에게 달려든 모든 이들을 주먹과 발로 모조리 쓰러뜨린 태천이 쓰러진 그들의 뒤에 서서 고고히 서 있는 무혈단의 단주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실력은 있는 것 같구나?”
“차고 넘쳐서 문제지.”
“쯧, 그 입만 어떻게 하면 교에서 중히 쓸 수도 있을 것 같건만.”
“누가 간데? 그딴 쓰레기 집단 세상을 준대도 안 간다.”
태천의 이죽거림에 단주의 이마에 혈관 툭 튀어나왔다.
“오냐. 친히 이 몸께서 네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그렇게 말한 놈치고 고친 사람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지?”
“그 건방지게 나불대는 입은 내가 닫게 해주마.”
“할 수 있다면?”
그 말을 끝으로 둘은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쾅!!!
……단주에게 날라 온 불덩어리만 없었다면 말이다.
“끄아아악!!”
단주는 날아온 푸른 불덩어리를 맞고 타오르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천은 뛰어나가려던 몸을 멈추면서 불덩어리가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고, 거기에는 화연이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 * *
자신을 화령이라 말하는 목소리의 말에 화연은 목소리의 인도대로 사당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래. 거기서 오른쪽. 거기에 있는 벽을 누르고 나와서 왼쪽 방에 들어가 거기 책을 꺼내라. 그리고 또…….
한참을 목소리의 말에 따라 돌아다녔을까? 쿠구궁 작은 소리에 화연이 깜짝 놀라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화연의 눈에 보인 것은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이…… 이건?”
-그래. 거기로 들어오거라.
목소리의 말에 화연은 살금살금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계단이 끝나고 화연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공동과 그 한가운데에서 청염을 내뿜고 있는 화령이었다.
“이게 당신?”
-그래. 그게 바로 나 화령이다.
“그런데 저를 왜 부르신 거죠?”
화연의 말에 화령은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끌끌. 너는 나를 품기에 적합한 몸을 가졌다. 뭐, 그게 과해서 다른 기운도 섞이긴 했지만 변한 것 없지. 그래서 네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 너의 그 기운을 느끼고 말을 건 것이다.
“품어요? 그게 무슨 소리죠?”
-나는 이렇게 보관되고 있지만 너희 궁의 초대 궁주와 함께 했던 몸이기도 하고 용의 힘이 깃든 물건이기도 하지. 지금 너에게 말하고 있는 자아는 용의 편린이란다.
“용? 용은 전설상의…….”
화연의 말에 목소리를 큭큭 웃으며 말했다.
-네 몸에 있는 음기(수기)도 용의 편린이거늘 왜 용을 전설로만 생각하는 게냐?
화령의 목소리에 자신의 눈같이 하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용의 힘? 빙과가?’
화연이 묵묵히 생각하고 있자 화령은 혀를 차며 말했다.
-어찌 되었든 너는 나를 품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으니 나를 품어라. 그러면 너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화령의 말에 화연은 생각에서 깨어나 물었다.
“그럼 제가 당신을 품게 되면 안 좋은 점이라도 있나요?”
-그런 걸 용이 자신이 아끼는 이에게 줬을 리가 없지 않으냐?
화령의 말에 화연은 아! 하는 탄성을 내면서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그 힘은 어떤 힘이죠?”
-내 힘을 가지게 되면 너는 내가 만들어내는 청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청염으로 너는 불의 갑주를 만들 수도, 아니면 타오르는 불의 검을 만들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 불은 너의 앞을 막는 것들을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릴 것이고.
“……할게요.”
-훌륭한 선택이다. 그러면 이제 나를 집어라.
화령의 말에 화연이 뚜벅뚜벅 화령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어간 화연은 화령을 붙잡았다.
화령을 붙잡자 느껴지는 뜨거움에 화연이 인상을 썼지만 이어지는 화령의 말에 이를 악물고 참았다.
-뜨겁다고 손을 떼면 안 된다. 내가 너와 하나가 되기 위한 일이니 떼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좀만 버텨라.
“으그극…….”
화령의 말에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에 화연의 얼굴도 시뻘게졌고, 결국 화연이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손을 떼려 할 때 화령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휴우…… 일단 고비는 끝났군. 이제 천천히 하나가 되면 되겠군.
말을 하는 화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화연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어라? 어…… 어디 가신 거죠? 분명 방금까지 잡고 있었는데……?”
-나는 네 몸속에 있다. 이제 하나가 되었으니 천천히 내 힘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면 되겠지. 네 몸속에 흐르는 내 힘이 느껴지느냐?
“……힘?”
화령의 말에 화연은 자신의 오른손을 물끄러미 보면서 생각했다.
‘힘이라…… 뭐 불이라도 나오나?’
화륵…….
“어우! 깜짝이야!”
-오! 꽤 잘 다루는구만? 방금 얻은 것치고는 꽤 괜찮은걸? 물론 전대는 더 잘 다뤘지만 나쁘지 않군.
화령의 말에도 손에서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는 청염을 손을 흔들어서 끈 후, 화연이 화령에게 물었다.
“아우…… 이게 당신의 힘이에요?”
-그래. 그게 나의 힘. 청염을 다루고 나아가 이 태양궁의 모든 불을 다루고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렇구나…….”
화령의 말에 화연이 감탄하고 있을 때, 화령이 다시 화연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위에서 너와 같이 있던 남자가 싸우고 있는 데 안 가봐도 되겠나?
“아! 오라버니!”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화연은 위에 태천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내고 바깥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사당을 나오자 흑색 무복을 입고 있는 남자와 맞부딪치려는 태천을 볼 수 있었고 태천에게 달려들려는 남자에게 손을 뻗으면서 불이 날아가는 형상을 상상했다.
‘날아가라!’
그리고 화연의 생각대로 청염이 흑색 무복의 남자에게 날아갔고, 정통으로 맞았다.
그리고 불에 타들어 가는 몸을 보면서 고통스러운 남자를 한 번 훑어보고는 어정쩡한 자세로 태천에게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방금 그게 뭔…….”
무혈단의 단주와 싸우기 위해 속으로 탐에게 신호를 주던 태천은 갑자기 날아온 불덩어리에 깜짝 놀라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고개를 돌린 곳에는 어정쩡한 자세로 태천을 바라보고 있는 화연이 있었다.
그 모습에 태천이 놀라며 물었다.
“방금 그 파란 불덩어리 네가 한 거야?”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그게 화령의 힘인 거야?”
“네. 저도 들어가서 알았는데 이 화령이라는 게 용의 힘이 담긴 물건이래요. 그리고 제가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나? 그래서 제가 얻었어요.”
“아아 그렇구나…….”
화연의 말에 태천은 눈에 띄게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내 아쉬워하던 감정을 추스르고 화연에게 물었다.
“근데 아까 사당을 휘감고 있는 것처럼 아예 청염은 아니네? 내성을 휘감고 있는 청염처럼 말이야.”
“아! 그건 제가 아직 다루는 게 미숙하기도 하고 일정 힘 이상으로 힘을 끌어올리면 저한테 위험하다고 그래서요.”
“그래? 무조건 좋은 힘은 아닌가 보네?”
“네. 아마 그렇게 힘을 사용하면 제가 저렇게 될지도 모르죠.”
화연은 그리 말하면서 아직도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고 있는 단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모습에 태천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뭐 벌써부터 그렇게까지 쓸 일이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한계가 있는 힘이네.”
“맞아요.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 제가 점점 다루는 게 익숙해지면 최대치의 힘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그건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