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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 네비게이션-78화 (79/139)

기연 네비게이션 78화

“분명…… 분명 같은 화경일진데…… 거기에 나는 폭혈단을 먹었건만…… 어째서 나는 너를 이길 수가 없지?”

“그것도 몰라?”

태천의 말에 혈일이 물었다.

“무엇이냐? 너와 나의 차이점이?”

혈일의 물음에 태천이 천마검을 횡으로 휘두르며 혈일의 목을 베면서 말했다.

“뭐긴 뭐야. 그냥 내가 센 거지. 넌 약한 거고.”

그리고 태천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혈일은 단말마와 함께 피로 점철된 생을 끝맺었다.

스르륵 허물어지는 혈일의 몸을 바라보면서 태천이 말했다.

“쯧. 늦겠네. 화연아 가자.”

“어? 응…….”

태천의 말에 이제는 죽어버린 혈일의 시체와 태천을 번갈아 보던 화연은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내성을 향해 달려가는 태천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다다다 쫓아갔다.

“가…… 같이 가!!”

* * *

내성에서는 혈교의 무리들과 태양궁의 무인들의 기묘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태양궁의 무인들은 청염을 등에 업은 채로 혈교의 무리들을 견제했고, 혈교의 무리들은 수적 우세와 질적 우세가 있었으나 태양궁의 무인들의 견제로 빙옥을 사용할 수 없어 청염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기에 대치 중이었다.

결국 이 기나긴 대치를 보다 못한 혈교 측에서 한 인영이 걸어 나왔다.

그 인영은 팔에 오(五)가 적힌 완장을 차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무리 헤쳐 나와 소리쳤다.

“곧 우리 중 가장 강한 일(一)단이 도착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이런 대치를 할 것 없이 우리는 힘으로 전부 취하고 네놈들의 목숨을 취할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내성 문을 연다면 네놈들의 목숨과 네놈들의 가족들의 목숨까지는 살려주마, 대신! 태양궁주, 염진백의 목을 내놓아라!”

남자의 말에 태양궁의 무인 측에서도 타는 듯한 머리를 한 무인이자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무인이자 태양궁의 전체를 이끄는 자, 태양궁주가 직접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자신을 향해 걸어 나오는 염진백의 모습에 남자는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염진백을 향해 소리쳤다.

“하! 드디어 직접 목을 내놓으러 나온 것이냐?”

남자의 말에 염진백이 피식 웃으면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지랄! 육시럴 놈이 어디 앞이라고 아가리를 여느냐! 내가 누구냐!!”

“타오르는 태양궁의 궁주 염진백 님이십니다!!”

“내가 패배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행할 것이 포기인가 아니면 전투인가!!”

“전투입니다!!!”

자신의 대답에 우렁차게 대답하는 부하들의 목소리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염진백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놈이 한 말에 대답을 해주마. 내 목을 가져가고 싶으면 직접 와서 가져가 이 새끼야. 쫄보 같이 말만 하지 말고. 가자!”

염진백의 말에 기겁을 하며 자신의 무리를 향해 남자가 돌아가자 그때가 기회라는 듯이 염진백이 혈교의 무리를 향해 사자처럼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혈교의 무리 뒤측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으아악!! 저 새낀 뭐야!!

-태양궁의 무인인가?

-붉은 머리의 여자를 잡아!! 저년을 인질로 잡아!

-아…… 안 돼! 저 여자도 고수야!

갑작스러운 소란에 앞쪽에 서 있던 혈교의 무리들도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뭐지? 뒤에서 무슨 소란이냐!!”

팔에 이(二)가 적힌 완장을 단 단주의 말에 그의 부하 중 한 명이 달려 나와 보고했다.

“뒤에서 검은 머리를 한 남자와 붉은 머리를 한 여자가 습격했습니다! 여자의 무위는 최소 최절정에 남자의 무위는 단주님들 이상인 것 같습니다!!”

“뭣? 갑자기 그런 이가 어디서 나타났단 말이냐!!”

“그…… 그게 검은 머리 남자는 아까 신호탄을 쏘기 전부터 저희들을 공격했다고 살아남은 이들이 말해주었습니다.”

“이런 젠장! 그러면 지금 이 상황에 일 단주는 어디에 있냔 말이다! 이 일은 혈인님에게 정식으로 보고를…….”

부하의 말에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일 단주를 욕하던 그는 이어지는 부하의 말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일 단주님은…… 죽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지금 검은 머리 남자의 손에…….”

부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아라! 이것이 너희들이 기다리던 일 단준가 뭔가 하는 놈의 목이다! 이걸 보고도 싸울 놈이 있으면 덤벼라. 이놈 곁으로 똑같이 보내주겠다!!”

그 목소리를 들은 이 단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서…… 설마 저놈에게 죽은 것이냐?”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일 단주님의 수급이 저 남자의 손에 있는 걸로 보아…….”

“이런 젠장!! 단주들은 들어라! 뒤에서 날뛰고 있는 저 천둥벌거숭이 녀석부터 친다!”

이 단주의 말에 상황을 지켜보던 나머지 단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단주의 곁에 섰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귀에 꽂히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있었다.

“모두 돌격! 지금이다! 놈들의 뒤쪽에는 우리 태양궁의 은인 강태천이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지금이 바로 저 씹어 먹어도 시원찮은 혈교 나부랭이들을 죽일 시간이다!!”

“우와아아아아!!”

바로 염진백의 목소리였다.

염진백은 검은 머리라는 말과 붉은 머리라는 말에 태천과 화연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깨닫고는 바로 공격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것은 꽤 정확한 판단이었다.

혈교의 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앞에 3자루의 검이 꽂히기는 전까지는 말이다.

키이이잉…… 키이잉…… 키이잉…….

……그리고 그 검들이 폭발하기 전까진 말이다.

쾅! 쾅!! 쾅!!!

폭발음과 함께 먼지구름이 휘날렸다.

그리고 그 먼지구름이 가라앉고 염진백의 눈에 보인 것은 부하들의 시체와 비명 소리 그리고 핏빛 머리를 한 노인이었다.

그 노인은 먼지구름을 헤치고 나오면서 혀를 차며 혈교의 무리 쪽을 향해 말했다.

“쯧쯧. 이것도 정리 못 하고 뭣 하는 게냐? 결국 내가 나서야겠느냐?”

노인의 목소리에 혈교 측에서 태천을 잡기 위해 모였던 4명의 단주들이 그 노인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교의 3개의 기둥 중 한 분! 혈인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그 노인의 등장으로 전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 * *

스걱 스걱 콰직 콰직.

달려가며 보이는 이들을 검으로 베고 도로 뭉갰으며 다수의 적은 탐으로 한꺼번에 정리하며 태천은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선 화연이 적들을 불태우고 얼려버리면서 태천을 따라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천이 화연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으니 저놈들이 할 것은 몇 가지가 있어.”

“그게 뭔데요?”

“일단 우리 잡으러 오는 거지. 그러면 대충 저 녀석들의 대장 격 인물이 몇 올 거야. 내가 이렇게 일 단주라는 자의 목을 들고 있으니 최소 2명에서 많으면 4명도 오겠지.”

“그러면 어떡해요?”

“어떡하긴 다 죽여야지. 내가 3명을 상대할 테니 너는 1명을 상대로 이길 생각하지 말고 버티기만 해.”

태천의 말에 화연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래. 그리고 아마 그들이 우리에게 오면 궁주님이 공격을 할 거야. 그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니까 말이야. 지금쯤 공격을 하겠지. 그러니 우리도 지금부터 대비를…….”

말을 하던 태천은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는 느낌에 말을 끊고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태천이 마침 하늘을 볼 때, 3자루의 검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 모습에 태천은 불길한 느낌이 들어 화연을 들쳐 메고 저 검이 떨어지는 위치에서 벗어났다.

갑작스러운 태천의 모습에 화연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갑자기 뭐예요!”

“말할 시간 없어. 빨리 여기서 멀어져야…… 큭”

그리고 태천이 도망을 가기 시작함과 동시에 폭발음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쾅! 쾅!! 쾅!!!

“꺅!”

“쯧. 나쁜 예감을 틀린 적이 없냐.”

화연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도 태천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태천의 귀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인? 누구지?’

그리고 그와 함께 부복하는 소리와 함께 혈교인들이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교의 3개의 기둥 중 한 분! 혈인님을 뵙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태천은 생각했다.

‘아…… X 됐네…….’

* * *

두근 두근…….

염진백의 자신의 앞에서 껄껄 웃으면서 부하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노인을 보면서 떨려오는 몸을 다잡으며 생각했다.

‘큭…… 몸을……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현경이란 지고한 경지에 오르고 느껴본 적 없는 느낌에 염진백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리고 그런 염진백의 모습에 껄껄 웃던 노인, 혈인은 웃음을 멈추면서 염진백에게 말했다.

“왜? 본좌의 압도적인 힘에 경외심이라도 드는 게냐? 크하하하!”

혈인의 말에 염진백이 이를 뿌득 갈면서 외쳤다.

“갈! 내가 혈교의 나부랭이 따위에게 그딴 마음이 들었을 리가 있겠느냐? 그저 네놈을 어떻게 죽일지를 고민했을 뿐이다!”

“끌끌끌…… 고집만 센 녀석이로구나. 네 눈에는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압도적인 힘의 격차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냐? 쯧 그런다면 별 볼 일 없는 놈이구만.”

혈일의 말에 무어라 답하려던 염진백은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혈인의 진기에 말을 잇지 못했다.

“큽…… 내가 네놈에게 지든 이기든 네놈에게, 아니, 나아가 혈교에게 항복하는 일 따위는 없을 거다! 그리고 설령 나를 이겼다 한들 내 뒤에서 버티고 있는 청염을 네놈이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설마 그 알량한 빙옥으로 청염을 어찌해 보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자신의 진기에 저항하며 자신에게 소리치는 염진백의 모습에 혈인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저까짓 불이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나를 네까짓 놈의 잣대로 평가할 생각하지 마라.”

“뭣?”

“적염이든 청염이든 한낱 불 나부랭이. 그저 나의 몸을 덥히고 먹을 것을 먹는데 쓰는 그런 것에 불과하다. 그런 불로 이 몸. 교의 세 개의 기둥 중 하나. 천지인 중에 인을 맡아 인간들을 피로 뒤덮어버릴 혈인님의 몸에 상처하나 제대로 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혈인의 쩌렁쩌랑한 목소리에 폭발 속에서 신음 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기운 차려가던 태양궁의 무인들이 다시 귀를 부여잡으면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귀에선 피를 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끄아아악!! 귀…… 내 귀가!!

-소리가……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 모습을 보면서 혈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염진백을 보면서 말했다.

“아직도 내가 저까짓 불에 막힐 성싶으냐?”

“닥쳐라! 청염이 막을 수 없다면 태양궁의 10대 궁주 염진백이 네놈을 막을 것이다. 아니, 막는다. 무조건 막는다!!”

말을 하면서 염진백은 자신의 몸을 연신 짓누르는 혈인의 진기를 무시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검을 뽑아 들어 혈인에게 겨누며 말했다.

“태양궁을 가지고 싶다면 우선 나를 넘어서라. 나를 넘어선다고 궁을 가질 수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면서 말하는 염진백의 모습에 혈인 배를 잡고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큭큭큭. 뭐? 궁을 가지고 싶으면 너를 넘어? 하하하!! 궁 따위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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