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77화
조가 흩어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서쪽, 동쪽 남쪽 가릴 것 없이 전 방위에서 문엽 자신이 나누어진 신호탄이 쏘아졌다.
그 모습에 문엽의 굳건한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자신 또한 허리춤에 매달아 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바로 문엽 자신과 같은 장로들을 모으기 위한 장로 전용의 신호탄이었다.
문엽은 바로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는 자신과 함께 내성의 정문을 지키는 자신의 친위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보았다시피 순찰조가 위험에 빠졌다. 그러니 여기서 또다시 조를 나누느니 다 같이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신호탄이 쏘아진 곳으로 간다.”
“예!”
그리 말하고 문엽은 부디 아무도 죽지 않기를 바라면서 신호탄이 쏘아진 곳 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남쪽으로 향했다.
‘다른 장로들이 나머지 방위를 맡아주기를 바라야겠군.’
* * *
문엽이 남쪽으로 향할 때, 태천은 혈교의 무리와 맞부딪쳤다.
바로 내성으로 향하던 도중에 만난 이들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복장을 보아하니 태양궁의 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
앞장서서 태천에게 질문을 하는 남자의 완장에는 일(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모습에 태천도 물었다.
“그 일(一)자를 보니 너는 일단 소속인가 보군?”
태천의 말에 질문을 한 남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쯧. 어떤 놈이 얘기한 거지?”
“아아~ 그럴 필요는 없어. 내가 죽였거든. 그리고 그놈 말고도 많이 보내줬는데?”
태천의 이죽거림에 질문을 한 이에 뒤에 있던 혈교인들이 웅성거렸다.
“저 녀석! 저 녀석입니다! 부단주님!”
“맞아! 저 자식이 혁준을!”
“혁준뿐만이 아니야! 경성도 죽였습니다!”
단원들의 말에 앞에 서서 태천에게 질문을 했던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녀석들의 말이 정말이냐? 하룻강아지?”
“뭐? 하룻강아지? 크크크, 너 진짜 재밌다. 뭐 상황파악이 잘 안 되는 건가? 아 그리고 저놈들이 말한 이름은 모르겠는데 아이들을 죽이고 여성들을 강간하려는 X신들을 죽인 거라면 나 맞을걸?”
자신을 비웃는 태천의 말에 부단주라 불린 이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참을 생각이 없는지 자신의 허리춤에 메여 있는 자신의 도를 스르릉 소리와 함께 빼 들면서 태천에게 뚜벅뚜벅 걸어가며 말했다.
“나 혈인대 소속 혈일 단주님의 부하인 부단주 혈호ㅇ…….”
“어 ,그래. 나중에 혈인이든 혈일이든 싸그리 보내줄 테니 먼저 가라.”
그리고 태천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을 죽이려고 다가오는 이에게 어서 가져가십쇼! 하고 목을 내밀고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다가오며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그에게 천마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에 자기소개를 하던 부단주는 간신히 피했지만 도를 들고 있던 오른팔이 잘려나갔다.
“크아아악!! 이…… 이이 비겁한 자식이!”
“비겁? 비이겁? 지랄하고 있네. 힘없고 무공도 익히지 않은 민간인들을 죽이고, 가만히 있던 태양궁에 시비 털고 거기에 지금 니 뒤에서 다구리 깔라고 준비 중인 니 부하들은 눈에 안 보이나 보네?”
“…….”
태천의 신랄한 비판에 태천의 뒤에 서 있던 화연조차 물개 박수를 쳤고, 태천에게 비겁하다 외친 부단주라는 인물도 벙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내 이를 갈면서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닥쳐라! 전부 공격해라! 저 새끼를 죽여라!”
“에휴…… 불쌍한 부하 죽게 하지 말고 그냥 니 목만 주고 가지?”
태천의 비아냥거림에 부단주는 이를 뿌득 갈면서 다시 소리쳤다.
“닥…… 쳐라!! 네놈은 오늘 여기서 죽는다.”
그리고 그의 말에 태천도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오! 우리 좀 통하는 거 같은데?”
그리 말하면서 태천은 바닥을 차며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는 혈교인들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그리고 검과 도를 휘두르며 말했다.
“나도 너네 살려 보낼 생각이 없거든.”
스걱, 서걱, 서걱.
태천의 말과 함께 태천에게 달려든 혈교의 무사들은 몇 초 겨루지도 못한 채, 자신들의 오른팔을 잃고 바닥에서 끙끙거려야만 했다.
그 압도적인 모습에 태천을 향해 죽을 거라 말하던 부단주는 오른팔이 잘려 피를 많이 흘린 덕택에 안 그래도 창백해진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 모습에 태천이 빙글빙글 검을 돌리면서 말했다.
“그러면 이제 네 옆에 있는 사람이 나올 차례 아닌가?”
태천의 말에 그제야 부단주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자신의 상관이자 일단을 이끌고 있는 단주, 혈일이 있음을 상기했다.
그리고 이내 의기양양해졌다.
“하…… 하핫! 그래! 단주님! 저 자식을……!”
“꼴 보기 싫으니 빠져 있어라.”
하지만 이내 혈일에게 한 소리 듣고 뒤로 빠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천을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짝짝짝!
“크으…… 듣자 하니 단주급들은 다 화경의 고수라며?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네?”
“……네놈도 화경이군. 대단해. 아직 약관의 나이로 보이는데 화경이라니. 어때 교에 들어오지 않겠나?”
“하? 나는 네 부하들을 싹 다 반X신 만들었는데?”
태천의 말에 혈일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너 하나가 저딴 머저리들보다 가치 있다. 저 뒤에서 상대의 경지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깝죽거리다 팔 잘린 녀석도 마찬가지지.”
“호오? 그래? 그러면 내가 혈교로 가면 무슨 이득이 있지?”
태천의 말에 태천의 뒤에 서 있던 화연이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혈일의 살기에 움찔하면서 입을 닫았다.
“닥쳐라, 계집. 네년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으윽…….”
“자, 그러면 하던 얘기를 마저 하지. 일단 교에 오면 갖가지 영약을 줄 수 있다.”
“오오. 그래? 그리고?”
자신의 말에 태천이 관심을 보이자 혈일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교의 절세검법이나 도법을 줄 수 있다. 아니, 너는 도와 검 둘 다를 다루는 것 같으니 두 개 다 줄 수 있지.”
“오! 그거 정말이야? 크으, 내가 도법이 없어서 말이야. 찾고 있었는데.”
“그리고 네가 더 원한다면 무엇이든 줄 수 있다.”
거의 다 넘어왔다고 생각한 혈일이 자신의 마지막 한 수를 내보였다.
그리고 이 한 수에 태천이 넘어올 거라 생각했다.
무인은 어느 정도 자신의 가치관이 맞고 강해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족속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혈일의 생각대로 태천은 싱긋 웃으며 혈일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혈일도 마주 웃어주었다.
태천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는지 혈일은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로 태천을 향해 웃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태천의 입이 열렸다.
“그러면 이것도 줄 수 있나?”
“음? 뭐지?”
혈일의 대답에 태천이 더욱 크게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네 목숨.”
“뭣?! 이 자식이!”
태천의 말에 혈일이 발끈했다.
“여태까지 나를 놀린 것이냐!”
“에이, 안 돼? 그러면 안 갈래. 그 대신 팔 한쪽만 가져갈게.”
태천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담긴 살기에 흠칫한 혈일이 몸을 빼려 했지만 한 발짝 늦었다.
으적!
혈일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용과 닮은 검은 무언가가 혈일의 왼팔을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그리고 왼팔을 씹어먹은 그 무언가는 왼팔에 만족하지 않고 혈일의 몸뚱이를 노렸다.
그 모습에 혈일이 기겁하며 자신의 검으로 자신의 왼팔을 자르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태천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팔 하나만 가져가기는 좀 아쉬웠는데.”
“이노오옴……!! 비겁하기 짝이 없구나!!”
혈일의 말에 태천이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
“아니, 어째서 악당 놈들의 대사는 바뀌지가 않아? 그리고 말이야 너네가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그리 말하면서 태천은 혈일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태천에 혈일은 빠르게 왼팔의 혈도를 점해서 태천을 경계하려 했으나 코앞까지 다가온 태천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이기는 게 장땡이야 X발아!!”
그리고 왼손에 들고 있던 화룡도를 혈일에게 집어던졌고, 그와 동시에 혈일의 그림자에서 탐이 튀어나와 혈일을 집어삼키려 했다.
그 모습에 혈일이 몸을 앞으로 빼서 탐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그리고 탐을 피한 혈일의 앞에 있는 것은…….
“까꿍?”
스걱!
천마검을 휘두르는 태천이 있었다.
“컥…… 크윽…….”
태천의 천마검에 목을 베인 혈일이 컥컥대며 피가 흐르는 자신의 목을 한 손으로 틀어막으며 빠르게 태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정상일 때도 압도하던 태천이 이제는 정상이 아닌 혈일을 상대로 밀릴 이유가 전혀 없었기에 점점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많아지는 혈일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천이 피식 웃었다.
“그게 끝이냐? 그 정도면 굳이 혈교에 내가 들어갈 이유가 없네, 뭐.”
“그륵…… 교를…… 그륵…… 모욕하지 마라!!!”
“어우…… 짠하다 짠해.”
입에 피거품을 문 채 자신에게 반박하는 혈일의 모습에 태천이 혀를 쯧쯧 차며 말하자 혈일은 품을 뒤적거리더니 품에서 목함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륵…… 이걸로 죽여주마…… 넌 이걸로 나와 함께 죽는 거다!!”
그리 말하고는 혈일은 주저 없이 목함을 열어 안에 있는 환단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천이 피식 웃었다.
“그거 먹으면 이길 것 같지?”
“……?”
마치 자신이 먹은 이 환단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한 태천의 모습에 전신의 핏줄이 툭 튀어나오면서 괴물 같이 변해버린 혈일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그거 먹은 놈 한 번 만난 적 있거든.”
“……뭐라고?”
“그 뭐냐? 무당산에서 만난 적 있는데 혹시 알아? 무성진이라고?”
태천의 그 말에 혈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네가 무당에 있던 교의…… 으그극…… 이노오오옴!!!!”
그 말을 들은 혈일은 그제야 무당에서 안정적으로 무당의 정보를 보내던 성진이 갑자기 정체를 들키고 목숨을 잃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그가 한 일은 태천에게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태천이 바라던 사실이었다.
“그거 먹으면 다 머리가 어떻게 되는 건가? 이런 도발에도 다 걸려드네? 화경이란 이름값이 아깝다 아까워.”
“닥쳐라!!! 그아아아!!!”
태천의 이런 손쉬운 도발에도 격분하며 혈일은 무작정 달려들어 자신의 도를 붕붕 휘두르기 시작했다.
환단을 먹기 전의 혈일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었지만 태천에게는 아직 못 미치는 힘이었다.
거기에 환단을 먹고 나서부터는 초식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으니 태천은 오히려 환단을 먹은 후가 더욱 상대하기 편했다.
그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푸슉…… 푸슉 푸슉!
태천에게 미친 듯이 달려든 결과는 혈일 자신의 몸에 난 수십 개의 자상뿐이었다.
그리고 그 자상에서는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자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 분수에 혈일이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태천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