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 네비게이션-76화 (77/139)

기연 네비게이션 76화

“1부단주. 지금 빙옥이 얼마나 남았지?”

“저희에게 할당된 빙옥은 현재 6할가량이 남아 있습니다.”

“다른 단들도 비슷하다면 대략 몇 개의 빙옥이 있는 거지?”

“음…… 5개의 단의 빙옥을 합친다면 약 300에서 400개가량이지 싶습니다.”

“알겠다.”

부단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혈일은 단들이 모인 곳에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가 섰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작전을 설명하겠다. 일단 우리 1단은 중앙에 있는 내성 주변을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4단들은 내가 각 단주에게 말한 방위를 맡아 천천히 태양궁의 떨거지들을 정리하면서 와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약탈을 하든 겁탈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지체된다면 주저 없이 그놈의 목을 벨 테니 알아서 해라. 그리고 빙옥의 사용을 제한한다. 외성의 불이 거의 다 사그라졌기도 하고 내성에 진입할 때에 필수적인 물품이니 이제부터는 사용을 제한한다.”

혈일의 말에 오와 열을 맞춘 수백 명의 혈교 무사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예! 모든 것은 교를 위해!! 그리고 교주님을 위해!!!”

“모든 것은 교를 위해. 그리고 교주님을 위해.”

단원들의 말에 같이 말을 한 뒤, 혈일은 속으로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뇌까렸다.

‘마지막으로 혈인님을 위해…….’

하지만 이내 고개를 털며 생각을 정리한 뒤, 단원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가라!! 가서 교에 방해되는 이들을 모조리 처단하고 그 우두머리인 염진백. 그 늙은 여우의 목을 들고 교로 돌아가자.”

“예!”

그리고 혈일의 그 말과 함께 피바다를 연상시키는 혈교의 무리들이 파도치듯 내성을 향해 각자의 방위로 단주들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혈일도 얼굴을 굳히며 자신의 단원들을 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간다. 우리가 제대로 성공해야 나머지들도 성공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일을 행해라.”

그 말을 끝으로 혈인은 저 멀리서도 보이는 푸른 불길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 뒤를 핏빛 무복을 입은 단원들이 빠르게 쫓았다.

* * *

“커억…….”

“잡았다. 요놈.”

태천은 자신에게서 도망간 혈교 무사 중 하나의 머리채를 틀어쥐며 말했다.

“그래서 그 신호탄은 뭐야?”

말을 하는 태천의 주위에는 혈교인들의 시체가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들과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태천을 한 번씩 훑어본 혈교 무사는 태천을 보면서 비굴하게 웃으며 말했다.

“헤…… 헤헤, 대협? 말하면 살려주시는 겁니까?”

혈교 무사의 말에 화연이 발끈했다.

“오라버니? 살려 주실 건 아니죠?”

“살려줄 테니 말해봐.”

“오라버니!!”

자신의 궁에 전쟁을 일으킨 교의 인물을 살려주겠다는 말에 화연이 광분했다.

하지만 태천은 그런 그녀를 제지하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첫 번째 조건이 뭐였지?”

“으…… 쳇.”

태천의 말에 화연은 입을 삐죽 내민 채 바닥에 굴러다니는 애꿎은 돌멩이를 툭툭 차며 화를 풀었다.

화연을 정리한 뒤, 태천이 다시 혈교 무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다시 묻지. 저 신호탄은 뭐지?”

“헤…… 헤헤 저 신호탄은 단주님들이 저희들을 부르는 용도입니다.”

“너희를 불러? 왜지?”

“저희는 처음에 마음대로 태양궁을 유린하라고 하셨는데…… 아마 지지부진해서 아마 단주님들이 직접 나서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을 모으는 것이고요. 아마 일점돌파를 하실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헤헤.”

비굴하게 답하는 그를 싸늘하게 노려보며 태천이 말했다.

“그러면 너희들의 무공 수위는 어떻지?”

태천의 말에 이것까지 말해야 하나라는 눈을 하던 혈교 무사는 우물쭈물하다 태천의 싸늘한 눈동자에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뗐다.

“그…… 저희 같은 일반 단원들은 대부분 일류에서 일류 최상위권의 실력입니다. 그중 좀 뛰어난 이들이 절정의 초반 정도의 수위입니다. 그리고 그런 저희 단원들을 관리하는 게 부단주님이신데…… 부단주님은 대부분 최절정 최상위권의 실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3부단주님부터 5부단주님들이 대부분 그 정도시죠. 그리고 나머지 2명의 부단주님들은 최절정의 무인이십니다.”

“그래? 그러면 단주라는 작자와 너희들의 대를 이끌고 있는 대주는 어떻지?”

부단주와 일반 단원들은 이미 잡아보기도 했고, 얼추 알고 있는 정보였기에 대충 넘겼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단주라는 작자와 그런 단주들을 이끄는 대주의 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였기 태천은 그를 재촉했다.

“으…… 그건…….”

이번에는 데굴데굴 굴리면서 눈치를 보자 태천은 망설임 없이 그의 왼손을 잘랐다.

스걱!

섬뜩한 절삭음과 함께 남자의 왼손이 뎅겅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 단면에선 피가 울컥울컥 솟아올랐다.

“끄아아악……! 마…… 말하겠습니다!!”

“그래. 다음에도 또 그러면 오른손이다. 손이 없는 무인이라…… 어떻게 될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태천의 섬뜩한 말에 남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열었다.

“그…… 저희 단주님들 같은 경우는 화경의 고수이십니다. 그런데 저희들도 초입인지 중입인지 아니면 극의 달했는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이건 정말이에요!”

“아, 알았으니 그럼 대주라는 작자는? 그자는 어느 정돈데?”

남자는 태천의 말에 팔이 잘렸을 때보다 더욱 무서워했다.

그 모습에 태천이 의아해하자 남자의 입이 다시 열렸다.

“……대주님은…… 끝을 모르겠습니다. 일단 화경은 아니신 것은 확실합니다. 아니, 그런 분이 화경일 리가 없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덜덜 떨어대는 그의 모습에 태천은 더 이상 그에게 얻어 낼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모습에 공포에 질려 있던 그는 반색하며 말했다.

“그…… 그럼 다 말했으니 살려주시는 거겠죠?”

“그래 ‘나는’ 살려줄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태천이 강조한 나는 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하던 그는 자신의 발부터 천천히 올라오는 검은색 무언가에 당황했다.

“이…… 이게 뭔! 이게 뭐야! 꺼져! 꺼지라고! 으가아악!”

아득…… 뿌드득…… 까득…….

남자는 자신의 발을 타고 올라오는 무언가에 천천히 발부터 씹혀 먹혔다.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하지도 않고 태천은 등을 돌려 멀리서 돌맹이를 차고 있는 화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돌맹이를 차고 있던 화연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져 있었다.

“으으…… 저거는 언제 봐도 끔찍하다니까…… 으으으. 그런데 저건 진짜 뭐야? 괴물인가?”

“알 필요 없다. 일단 대충 정보는 얻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뭐래 저건?”

“모으는 거랜다.”

“모아? 누구를?”

“누구긴 혈교 녀석들을 모아서 아마 내성으로 일점돌파를 할 생각인 것 같다.”

태천의 담담한 말에 화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빨리 가서 막아야지! 아저씨들 찾으러 가자. 빨리!”

“어차피 그들도 갑자기 사라지는 혈교 무리들에 의아함을 느끼고 가장 중요한 내성 쪽으로 모이고 있을 거다. 그러니 우리도 그냥 내성으로 가면 돼.”

태천의 말에 아! 하는 탄성을 내뱉고는 화연이 태천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그럼 우리도 빨리 가서 돕자!”

“그래. 그래 가자 가!”

그리 말하고 태천은 다시 내성을 향해 뛰어갔다.

이제는 죽어버린 남자가 한 마지막 말을 곰곰이 곱씹으면서 말이다.

‘압도적인 무력에…… 화경은 아니다라…… 또 다른 현경의 무인인 건가?’

* * *

혈교의 무리가 사방에서 포위해서 내성을 공략하려는 사실을 안 뒤, 태천은 주위에서 보이는 민간인들을 수습해서 아까 만났던 강호대에게 넘겼다.

일단 민간인을 구출하기는 했지만 지금부터 태천이 갈 곳은 쉼터가 아닌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었기 때문이다.

태천에게 민간인들을 건네받은 강호대는 태천의 손을 잡으면서 고개 숙여 부탁했다.

“아까 목숨을 구해주신 것과 이렇게 궁의 주민들을 구해주신 것…… 나중에 꼭 제가 살아남는다면 사례를 하겠습니다.”

“그럴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다 돕고 사는 거죠. 그리고 혈교는…… 사라져야 할 악이니까요.”

태천의 말에 강호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잡았던 손을 풀며 태천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등을 돌려 자신의 부하들과 민간인들을 수습해서 안가로 향했다.

그의 등을 보면서 태천은 네비에게 말했다.

‘네비, 이제 저 사람 위치 확인되지?’

‘네. 태천 님. 이제부터 원하신다면 지도에 저 사람의 위치를 표시해 드리겠습니다.’

‘알았어. 그러면 나중에 찾아가는 건 문제 없겠네.’

보험까지 완벽하게 갖춘 뒤, 태천은 저 멀리서 푸르게 타오르고 있는 청염이 있는 곳, 내성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아! 같이 가!”

물론 화연도 함께였다.

화연은 저만치 사라지는 태천의 등을 잡기 위해 자신의 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쫓아갔다.

* * *

“흠…… 아까의 신호탄이 거슬리는군.”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남자는 태양궁의 장로직을 맡고 있는 김문엽이었다.

그는 혈교의 인물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쏘아 올린 신호탄에 자신들과 싸우던 혈교 무리들이 몸을 빼자 의아해했지만 곧 쫓아가서 죽였다.

하지만 죽기 살기로 신호탄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추적을 포기했다.

그들을 쫓아가 봐야 몇 명만 더 죽일 수 있을 뿐이었고, 그들이 향하는 곳에는 추적하는 이들보다 족히 배는 많은 이들이 있을 게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호탄이 도망가라는 신호탄일 경우 그래도 이득이었으니 말이다.

피를 보긴 했지만 그만큼의 피를 혈교도 흘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문엽의 걱정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저 녀석들이 이렇게 어중간하게 치고 돌아갈 리가 없는데. 그것도 그 비싼 빙옥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그냥 돌아간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문엽의 걱정은 당연했다.

태양궁의 수호하는 성화, 적염을 없애기 위해 혈교가 동원한 방법은 빙옥이었다.

그리고 빙옥은 북해빙궁이나 다른 냉기(음기와 수기)가 가득한 지방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값은 같은 무게의 은과도 같을 정도였다.

거기에 이렇게 더운 날에는 그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무려 같은 무게의 금과 같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빙옥을 정말 땅에 물 뿌리듯이 써대는 것은 혈교로써도 꽤 뼈아픈 지출이었을 텐데 그런 지출을 하고 고작 외성을 절반 정도만 들이박고 물러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문엽은 걱정을 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주변 경계를 열심히 했다.

“내성으로 들어가는 곳은 여기뿐이지만 다른 곳으로 우회해서 이쪽으로 올 수도 있으니 최절정의 무인을 중심으로 5인 1조로 각 방위를 돌아보며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한다. 그리고 각 조의 조장은 최절정의 무인으로 하고 조장의 명령은 절대적으로 따른다. 조장들은 위기 시에 사용할 신호탄을 한 개씩 가지고 순찰을 간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문엽의 말에 빠릿빠릿하게 조를 가르고 조장들을 구하더니 몇 분 되지 않아 몇 개의 조가 나누어졌다.

조가 나누어지자마자 각자 순찰을 할 방위를 정하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성의 정문에 서서 그 모습을 보던 문엽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부디 아무 일 없이 후퇴를 했다면 좋겠군.’

하지만 어디 사람 일이 뜻대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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