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75화
“음? 진짜네? 킥킥 뭐 와봐야 별 볼 일 없는 태양궁 나부랭이들이겠지.”
“으하하! 맞네, 맞아! 아까 그 자식들 봤냐? 살려달라고 바짓가랑이 잡는 거? 큭큭 얼마나 웃기던지 눈물이 다 나더라.”
“킥킥.”
남자의 말에 주변의 무사들이 웃음보가 터진 것처럼 낄낄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태양궁의 무인들이 가까워지자 표정이 싸늘해졌다.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의 표정은 싸늘했고, 그들의 가장 앞에서 자신들을 쳐다보는 중년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앞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던 중년인의 입이 열리자 혈교의 무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본 궁의 장로인 강대만이다. 지금까지 네놈들이 제집처럼 날뛴 개가를 톡톡하게 치르게 될 것이다.”
“헹! 당신 따위…… 컥!”
강대만의 말에도 이죽거리면서 앞에서 깝죽대던 혈교 무사의 목에 강대만의 검이 틀어박혔다.
단 한 수에 자신의 동료가 저승길로 가버리자 옆에서 상황파악을 잘했던 이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고…… 고수!’
‘그것도 우리 같은 무사들로는 안 된다…… 최소 부단주님이…… 필요해!’
‘도…… 도망치자! 일단 살아서 단주님께 알려야!’
여태까지 유린만 하다가 본격적인 고수를 만나게 되자 혈교의 무사들의 머릿속에 생겨난 것은 자신들이 방금까지 비웃던 생존 욕구였다.
“으아아악!! 도망쳐!!”
“단주님!! 단주님!!!”
가장 앞에 있던 자를 죽인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남아 있던 혈교 무사들은 혼비백산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그 모습을 강대만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혈교의 무리들이 도망을 가자 강대만은 자신의 뒤에서 시립해 있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3인 1조로 총 5개 조로 움직인다. 지금부터 혈교 놈들을 소탕한다. 3인 1조로 다니면서 특별히 강한 이가 보인다면 2명이 막고 한 명은 나를 찾아와라. 알겠나!”
“예!!!”
강대만의 외침에 무인들이 즉답했다.
부하들의 우렁찬 대답을 들은 강대만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외쳤다.
“그럼 가서 혈교 놈들을 쓸어버려라!!”
“으와아아아!!!”
그렇게 본격적으로 혈교와 태양궁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읏차!”
태천의 등에서 내려 바닥에 착지한 화연을 보면서 진백의 입이 열렸다.
“화연아.”
“응? 왜 아빠?”
“아까 말한 거 있지 말고. 잘 붙어 있거라. 아빠는 가봐야 할 것 같다.”
“알겠어! 이겨야 해 알지?”
화연의 말에 진백은 피식 웃으면서 화연의 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아빠가 진 걸 본 적이 있어?”
“이히히. 없지!”
“그럼 이제 가봐야겠다. 기다리고들 있어서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진백은 성문의 앞에 오와 열을 맞춘 채로 자신을 기다리는 자신의 친위대를 향해 다시 뛰어갔다.
그리고 그런 진백을 쳐다보던 태천은 화연을 향해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
“일단 이건 알아둬.”
“음? 뭔데?”
“가장 많이 보이는 혈교의 단원? 녀석들의 경지는 대략 절정에서 일류 최상위권이다.”
“음음, 그 정도는 내가 가뿐히 처리할 수 있지!”
“단! 그 녀석들은 여럿이서 뭉쳐 다닌다. 괜히 혼자 잡을 수 있다고 무리하지 말 것.”
“쳇…… 알겠어.”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나도 많이는 못 봤는데 부단주라고 불리는 녀석들이 있다. 그 녀석들의 경지는 가장 높은 놈은 최절정이었고, 가장 낮은 놈은 절정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있는 녀석이었다.”
“……그건 좀 힘들겠네…….”
태천의 말에 이번에는 자신감 넘치게 답하지 못하는 화연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화연 자신은 최절정에 오른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자신보다 강하거나 비슷한 이와 싸워본 적이 별로 없었다.
또한 화연이 싸워야 하는 부단주라 불리는 자들은 화연보다 전투경험도 많을 것이고 살인경험도 월등하게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연은 주먹을 꽉 쥐면서 말했다.
“그래도 안 질 거야!”
“애초에 지면 죽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절대 질 생각은 하지 마. 그리고 진짜 위험하다 싶으면 내가 도와줄 거니깐 그렇게 걱정하진 말고. 그리고 태양궁 소속 무인들도 많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
태천의 말에 그래도 안심이 됐는지 화연은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그러면 우리도 가자. 저기 보이네.”
“빨리 가자!”
화연에게 필요한 지식들을 말해준 뒤, 태천은 멀리서 보이는 혈(血)자가 적힌 옷을 입고 있는 무인들을 보며 말하자 화연은 빨리 가자며 태천을 재촉했다.
“네가 말 안 해도 빨리 갈 거야.”
탓!
화연의 재촉에 태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으슥한 골목으로 젊은 여성을 끌고 가는 혈교의 무인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런 태천의 뒤를 얼굴이 붉게 상기된 화연이 뒤따랐다.
* * *
핏빛 막사 안, 6명의 인물이 막사 안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의자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오직 자신만 앉아 있던 핏빛의 머리를 한 노인의 입이 열렸다.
“아직까지 외성 정복을 못 했다…… 이건가?”
섬뜩한 말에 나머지 5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자리에 모인 나머지 5인의 혈인대의 5개의 단의 단주들이었다.
모두 화경의 무인으로 이루어진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앞에 앉아 있는 노인의 말에 화경의 무인들의 몸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은 말을 이어나갔다.
“현재 외성의 정복은 어느 정도 된 거지?”
“……현재 정복도는 약 7할 정도…….”
쾅!!
움찔…….
노인의 말에 답하던 5번째에 서 있던 남자이자 혈인대의 혈인오단 단주 혈오가 움찔했다.
“아직까지 7할? 네놈이 정말 죽고 싶은 게냐? 아니면 나를 혈지, 혈천 그 녀석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라고 이러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어찌 제가…….”
“그럼 닥치고 빨리 가서 염진백, 그 늙은이 모가지를 나에게 들고 오란 말이다!! 빨리 꺼져! 여기서 밍기적대지 말고!”
노인의 말에 담긴 살기에 혈오를 포함한 나머지 4명의 단주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몸을 돌려 막사를 빠져나가려 할 때, 그들의 귀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라도 말이야…… 염진백 그 자식의 목을 못 들고 온다면…….”
꿀꺽…….
“알지?”
끄덕끄덕…….
노인의 말에 5명의 단주들은 두려움에 몸도 돌리지 못한 채, 고개만 겨우 까딱거렸다.
그들의 모습에 노인은 혀를 한 번 차고는 축객령을 내렸다.
“꺼져.”
“…….”
노인의 축객령에 두려움 반 안도감 반을 가진 채 막사를 빠져나온 5인의 단주는 대책회의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일단을 맡고 있는 혈일이 있었다.
“혈이, 너는 서쪽 그리고 혈삼, 너는 동쪽. 혈사, 너는 남쪽 마지막으로 혈오, 너는 북쪽에서부터 각자의 단을 데리고 중앙에 있는 내성으로 태양궁 벌레들을 몰아넣어라. 나는 중앙으로 간다.”
맏이나 마찬가지이고 5인의 단주 중 가장 무공의 수위가 높았기에 나머지 4명의 단주들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자신들의 단을 부르기 위한 신호탄을 쏘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 죽여주마. 혈인님을 위해서.’
* * *
염진백과 헤어진 후, 태천은 화연을 데리고 본격적으로 혈교 척살을 시작했다.
물론 혈교인의 척살도 중요했지만 주는 당연히 민간인들의 구출과 공격받고 있는 태양궁의 무인들을 구하는 것이었다.
민간인들은 저항할 힘이 없으니 그들을 우선시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같이 싸울 이들이 더 필요하기에 무인들은 2순위였다.
그래도 무인들은 대적할 힘이라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한 것은 태천의 발달된 청각과 내공을 퍼뜨려 주변의 사람을 알아내는 기감 때문이었다.
“동쪽에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거기로 가자.”
“알았어!”
이렇게 태천이 위치를 확인하면 화연과 함께 가서 구조 혹은 전투를 벌였다.
그렇게 수십의 민간인과 다섯 명의 무인들을 구출하고 그들을 추스르고 있을 때,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 시발점은 신호탄이었다.
푸슈우웅~ 팡! 팡! 팡! 팡! 팡!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5개의 붉은 신호탄을 기준으로 혈교인들의 모습이 바뀌었다.
신호탄이 쏘아 올려지기 전까지는 무인들을 공격하고 민간인들을 겁박하던 혈교인들이 신호탄이 터지자마자 그런 일을 모조리 팽개친 채로 신호탄이 쏘아진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태양궁의 무인들과 싸우고 있거나 여자를 끌고 가던 혈교인들 모두 마치 그 신호탄의 발생지가 각자가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인 것처럼 모든 걸 내팽개치고 달려갔다.
그것도 싸우는 도중에 몸을 돌리는 것까지 마다치 않았다.
그리고 태천에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신호탄!”
“그런데 어쩌지? 저 녀석은 강해 보이는데? 여기서 몸을 빼면 분명 몇 명은 죽을 게 분명한데…….”
“그럼 어쩌게? 늦으면 다 죽는 거야. 난 가겠어.”
“……그럼 가자.”
갑자기 자신과 대치하던 혈교인 여럿 중 둘이 이상한 소리를 하자 다른 혈교인들도 그에 동조한 뒤, 서로 시선을 나누더니 갑자기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대치를 하던 화연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저것들은 지들끼리 뭐라 속닥거리더니 갑자기 사라지네? 똥 마렵나.”
화연의 말에 태천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우리와 대치하면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저 신호탄이 바로 그 시발점이겠고. 하지만 우리가 곱게 보내줄 이유는 없지. 다 죽여.”
“알았어!”
저들이 저 신호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조리 죽여야 할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잡아서 물어보면 그만이었기에 태천은 빠르게 발을 놀렸다.
* * *
신호탄을 쏘고 얼마지 않은 개떼같이 몰려오는 자신들의 대원들을 보며 다섯 명의 단주들이 그런 그들을 보며 말했다.
“각자 단과 오와 열을 맞춰라!”
1이 적혀 있는 완장을 차고 있는 혈일의 말에 달려오던 혈교인들은 부리나케 자신의 주머니에서 각자의 완장을 꺼내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숫자가 적힌 완장을 찬 단주들의 앞에 오와 열을 맞추어 부리나케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모인 이들을 보고는 혈일은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것밖에 없나?”
“……이번에 저항이 거세서 많이 당한 것 같습니다…….”
“변명하지 마라.”
퍽!
자신의 말에 변명하던 단원 한 명을 발로 차 날린 혈일이 싸늘하게 답했다.
“나는 내 단원들을 그따위로 가르친 적이 없는데? 그리고 50명 중 10명이 죽고 부단주가 2명이나 죽었다. 그게 자랑인가?”
“컥…… 죄…… 죄송합니다…….”
“됐다. 자리에 서라.”
혈일의 말에 답했던 이는 고통에 컥컥 대면서도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섰다.
그가 돌아가자 혈일은 다른 단도 비슷한 상황인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쯧. 모자란 것들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겠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혈일은 자신의 오른팔인 1부단주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