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71화
태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청염이 존재하지 않는 구역에 들어섰다.
마치 북해빙궁 눈보라 속에서 빙과가 있는 곳에만 눈보라가 불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생각해 내면서 태천이 쾌재를 질렀다.
“좋아! 여기야? 여기지? 그렇지 네비야?”
태천의 재촉에 네비가 답해주었다.
‘네. 여기서 강력한 양기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조으앗어!”
태천이 네비의 확답에 환호성을 지르면서 주변을 샅샅이 훑었고, 그 결과 지하로 향하는 계단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태천은 계단을 발견하자마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계단이 끝나자 태천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이유는…….
“와아…… 완전 용암 바다인데?”
계단의 끝에는 용암으로 이루어진 작은 바다가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용암 바다 한가운데에는 전에 보았던 빙룡보다 살짝 더 몸집이 커 보이는, 붉은 비늘을 가진 용이 보였다.
그 용은 태천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태천의 상체만 한 거대한 눈을 뜨고는 태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누구냐? 아니, 잠깐만 많이 익숙한 기운인데…… 아! 이거 설마 빙룡, 그 녀석의 기운인가? 말해보아라 인간. 네 몸속에 있는 그 기운, 빙룡 녀석이 준 게 맞느냐?”
용의 말과 함께 태천은 온몸이 타는 듯한 열기를 느껴야 했다.
용은 그저 자신의 붉은빛을 띠는 눈으로 태천을 바라보았을 뿐이지만, 태천은 용암을 앞에 두고도 못 느꼈던 열기를 느꼈다.
열기를 느낀 태천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답했다.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법을 하나 만들어 주셨죠.”
태천의 말에 태천을 불살라 버릴 것 같았던 열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고, 통쾌한 화룡의 목소리가 태천의 귀를 때렸다.
어찌나 컸는지, 태천은 내공으로 보호를 했음에도 우웅 하는 이명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는 화룡에게 물었다.
“그런데 빙룡 님은 어떻게 아십니까?”
태천의 말에 화룡은 유쾌한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친구지, 친구. 오랜 벗이랄까?”
“그런데 두 용께서 이렇게 한 분은 북해빙궁에, 한 분은 태양궁에 계신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태천의 말에 화룡이 빙룡에게 못 들었냐며 물었다.
“으잉? 빙룡 녀석에게 못 들었어? 초대 빙궁주 녀석에 대해서?”
“초대 빙궁주에게 빙궁을 만들어 주었다는 정도만 대충 들었습니다.”
“쯧…… 그 녀석, 대충 설명했구만, 어쩔 수 없지. 내가 설명해 주마.”
화룡의 말에 태천이 경청할 자세를 취하자 화룡이 입을 열었다.
“일단 태양궁의 초대 궁주인 염진백과 북해빙궁의 초대 궁주인 설진은 각각 극양지체와 극음지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본래대로라면 그 둘은 불타 죽었거나, 온몸이 얼어서 죽었을 운명이었지. 그런 둘을 본 나와 빙룡이 그 둘을 거두었다. 빙룡은 설진에게 극음지체의 막대한 음기를 다룰 수 있는 빙하천류공을, 그리고 나는 염진백에게 열화공을 만들어 주었다. 그 결과 둘은 음기와 양기, 그 두 분야에서 정상에 올랐고, 이렇게 번창할 기틀을 만들었지. 물론 대부분 그 이면에는 나와 빙룡의 도움이 있었지만 말이다.”
태천은 용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생각했다.
‘역시 대충 생각한 대로네.’
사실 태천은 빙룡이 빙궁을 만들어 줬다는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예상했었지만, 그래도 직접 들으니 신기하긴 신기했다.
태천이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화룡이 태천에게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음? 너는 신기하지 않으냐? 용이 인간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게?”
“신기하죠. 그런데 빙룡께 들은 말이 있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으래? 알겠다. 어디 보자……. 그럼 빙룡 녀석도 너에게 선물을 줬으니 나도 줘야 하는데……. 뭘 주지?”
기다리던 화룡의 말에 태천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이참……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래? 그럼 안 줄까?”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태천의 빠른 태세 변환에 화룡이 혀를 내두르더니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냥 주면 재미없지 않아?”
화룡의 그 말에 태천은 생각했다.
‘아따 망했네.’
* * *
“준비됐지?”
“……어휴, 됐습니다.”
“낄낄낄. 아유, 신나라.”
태천과 화룡은 용암이 사라진 동굴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대치하고 있을 때, 화룡이 허리춤에 있던 붉은 도갑에서 붉은빛이 은은하게 맴도는 도를 꺼내 들어 태천에게 겨누며 말했다.
“이게 뭔 줄 알아?”
“……보도 아닙니까?”
“맞아! 역시 알아보는구나?”
“그렇게 은은하게 붉은빛을 내뿜으며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그런 태천의 말에 신이 난 화룡은 연신 자신의 도를 자랑하는 데 빠져들었다.
“이 도가 말이야! 어떤 도냐면…… 내 뼈로 만든 거거든! 그리고…….”
그러다 화룡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태천의 몸이 우뚝 멈췄다.
“……지금 뭐라고……?”
“음? 내 뼈로 만들었다고?”
“바로 그 부분! 그 도를 화룡 님의 뼈로 만드셨다구요?”
“어! 대단하지? 크으…… 내가 이거 만드느라, 내 뼈를 생으로…… 아우…….”
화룡의 말에 태천이 눈을 반짝이며 생각했다.
‘네비야. 저거 등급 어느 정도인 것 같냐? 내 생각에는 특급인데?’
태천의 말에 네비가 눈에 띄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의 뼈로 만든 도라면, 못해도 특급! 아니, 측정 불가입니다! 저건…… 저건 꼭 가져야 합니다!!’
-크으…… 용의 뼈…… 맛있을까? 내가 먹어도 돼?
‘넌 닥치고 가만히 있어. 저거 먹으면 니 먹어버린다.’
-에라이…… 치사한 놈…….
탐의 투덜거림에도 태천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음 선택지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크으…… 화룡한테 염과나 받아먹을 생각 했지, 설마 화룡의 뼈로 만든 도까지 있을 줄이야! 저건 염과 수십 개보다 더한 가치가 있을 게 분명해! 그리고 저게 있으면 부족한 양기의 보충도…… 흐흐흐…….’
화룡은 태천의 사악한 속마음도 모른 채 자신의 뼈로 만든 도를 붕붕 흔들면서 재촉했다.
“빨리 싸우자!!”
그 소리를 들은 태천이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화룡에게 말했다.
“지금 갑니다!!”
‘화룡의 뼈로 만든 도에게!’
뒤에 나올 말은 생략하고선 말이다.
태천은 말과 함께 용천혈에 내공을 불어넣으며 추섬보를 펼쳤다.
추섬보는 빠르게 달리게 해주는 신법이지만, 응용하면 단박에 적에게 접근하게 해주는 보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속도에도 화룡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도를 휘둘러서 달려오는 태천을 쳐냈다.
태천은 화룡의 엄청난 거력에 눈을 찌푸렸다.
‘사람으로 변해도 용은 용이라는 건가? 힘 하나는 어마어마하네.’
화경의 극이라는 경지, 무신지체라는 하늘이 내린 몸, 거기에 이제는 10갑자가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내공까지 있지만, 그런 태천을 화룡은 어린애 상대하듯이 상대했다.
하지만 이렇게 한번 밀렸다고 포기할 태천이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천마군림보로 화룡을 압박하며 걸어갔다.
만변혼천공의 내공이 어느새 패도적인 마기로 바뀌어, 태천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기가 화룡을 향해 뻗어나갔다.
하지만 일반인은 물론 수련된 일류의 무인이라도 단번에 절명시킬 수 있는 천마군림보의 마기에도, 화룡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을 큼큼하고는 다듬더니, 곧 입을 열어 소리쳤다.
“갈!!!!”
화룡의 그 소리와 함께, 화룡을 공격하기 위해서 뻗어가며 몸을 압박하던 마기들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태천만이 고막을 찢을 것 같은 화룡의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후비곤 말했다.
“아으…… 귀청 떨어지겠네.”
“으하하핫!! 재밌다. 재밌어! 너 인간이면서 꽤 강하구나? 진백, 그 녀석보단 아직 약하지만, 싹수가 보여! 으하핫!”
“……예에, 그러면 더 재밌게 해드리지요.”
전력은 아니었지만 나름 힘을 담았던 공격임에도, 화룡은 그런 태천의 공격을 장난 취급했다.
그러자 태천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아…… 그럼 다시 갑니다!”
“오라!!”
이번에는 추섬보로 보법을 바꾼 태천이 다시 한번 화룡에게 덤벼들었다.
그 모습을 본 화룡이 코웃음 치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태천에게 말했다.
“흥! 똑같은 방법이냐? 그걸로 안 된다는 것을 알 텐…….”
하지만 화룡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다시 한번 오른손에 든 자신의 도로 태천을 후려치려다가 멈칫하곤 자신의 오른손을 보며 허탈해했다.
“허…… 그새 얼렸어?”
화룡의 말처럼 화룡의 도가 쥐어진 오른손이 어느새 꽁꽁 얼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태천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좀 재밌으십니까?”
그 말과 함께 태천은 오른손에 있는 천마검과 왼손에 있는 도를 폭풍같이 휘둘렀다.
태천의 검과 도에 담겨 있는 어마어마한 내공은 화룡이 서 있던 주변을 초토화했다.
그리고 공격을 마친 태천이 먼지구름 속에 있는 화룡을 지긋이 쳐다볼 때, 먼지구름을 뚫고 무언가가 날아왔다.
날아온 것은 다름 아닌 화룡이 들고 있던 화룡의 도였다.
카앙!
“크윽…….”
날아오던 도를 막았지만, 화룡의 도는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튕겨내도 다시 날아 태천을 공격했다.
그 모습을 본 태천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외쳤다.
“이기어검!!”
바로 이기어검이었다.
현경 하면 떠오르는 수법인 이기어검이 화룡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태천이 힘겹게 화룡의 도를 막는 동안, 먼지구름이 서서히 걷혔고, 그 안에서 화룡이 뚜벅뚜벅 걸어오며 말했다.
“그래. 좀 재밌네.”
그리고 그런 화룡의 피부에는 붉은 비늘들이 솟아올라 있었다.
* * *
“컥…….”
한참을 화룡의 도와 싸우던 태천은 피를 왈칵 토해냈다.
그 이유는 이기어검이라는 공격도 공격이지만, 화룡의 도와 태천의 검과 도가 부딪칠 때마다 엄청난 열기가 태천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다.
결국 태천은 피를 토해내며 무릎을 꿇었다.
그런 태천을 본 화룡이 도를 어깨에 척 걸치면서 웃었다.
“으하핫!! 재밌었다. 인마, 일어나. 선물 안 받아 갈 거야?”
피를 흘리면서 골골대던 태천은 언제 아팠냐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입가에서 흐르고 있는 피를 슥 닦으면서 말했다.
“받…… 받아야죠! 그런데 뭘 주실 겁니까?”
“옜다. 일단 이거 받아라.”
태천의 똘망똘망한 눈빛을 본 화룡은 적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염과를 따서 태천에게 던져 주었다.
염과를 받아든 태천이 화룡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일단은 이라면……?”
“쯧…… 니 얼굴에 이 도 좀 주세요~ 라고 다 적혀 있다, 인마.”
화룡의 말에 태천은 무안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하…… 하하하 그렇게 티 났나요?”
“그래. 쯧, 이게 그렇게 탐이 나냐?”
태천의 말에 화룡이 자신의 도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러자 태천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네!! 정말 그 도를 주신다면 제가…….”
“됐고. 빙궁에 가면 빙룡 녀석에게 인사나 전해줘라.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