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 네비게이션-69화 (70/139)

기연 네비게이션 68화

태천은 둘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설미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임신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소협.”

“자! 이제 자네가 가야 하는 이유를 알겠지? 빙과를 먹을 때는 빙공을 익힌 이가 보조를 해주어야 하는데, 태양궁에는 빙공을 익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그래서 자네가 좀 도와줘야겠네. 가서 빙과만 잘 섭취시키고 나면, 나머지는 전부 자유 시간일세.”

“휴우…… 알겠습니다. 가죠, 뭐.”

“고맙네.”

“아닙니다. 어차피 저도 소궁주에게 빙공을 배우고, 투왕께 권법과 각법, 그리고 신체 단련을 배웠는데요. 뭐.”

“그럼 부탁하겠네.”

그렇게 태천의 태양궁행이 결정되었다.

* * *

태양궁으로 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염백이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여독을 풀 시간으로 3일 정도를 잡았다.

그 시간 동안 태천은 정말 하루 종일 표태원과 붙어 다녔다. 아니, 싸웠다.

이제 만변혼천공으로 인해 빙하천류공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밤에 설미진에게 빙하천류공을 배울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정말 말 그대로 하루 종일 표태원과 쌈박질을 해댔다.

그걸 말려줄 설미진은 방에 틀어박혀서 태교 중이었다.

그렇기에 태천은 어쩔 수 없이 3일 동안 열심히 주먹에 맞았다.

길고 길었던(태천에게만) 3일이 지나고, 태천은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는 으리으리한 마차에 몸을 실었다.

역시 궁주가 타고 온 마차라 그런지 무척이나 안락했다.

자리에 앉은 태천은 품에 있는 빙과 반쪽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먹고 싶다.’

빙과를 두 개나 날름 먹었지만, 그래도 막상 눈앞에 빙과가 나타나자 식욕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치료제를 냉큼 먹을 정도로 태천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걸 먹어도 어차피 옆에 있는 염백에게 불타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태천이 열심히 식욕을 참기 위해 불경을 외고 있을 때, 마차가 출발했다.

마차가 출발하자 염백이 태천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곧 23살이 됩니다.”

“허어…… 23살에 화경이라니! 영웅이 될 사람이구만! 으허허허!!”

태천은 그런 염백의 말에 어색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영웅이라뇨. 과한 칭홉니다.”

“으허허! 그럴 리가! 세상 사람 누구에게 물어도 자네는 영웅이라고 할 걸세.”

“그렇게까지 말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태천이 어느 정도 수긍하자, 염백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영웅이라면 삼처사첩은 기본 아니겠는가?”

“예? 아니, 저는 제 정인 한 사람만 보고 살…….”

“어허! 영웅이 한 사람만 보고 살면 세상에 해악이나 다름없네! 무릇 영웅이라면…….”

“하하하…… 괜찮습니다…….”

“에잉…… 우리 연이가 얼마나 이쁜데…….”

그제야 태천은 염백이 왜 이리 영웅이니 뭐니 말하면서 자신을 추켜세웠는지 알아차렸다.

‘자기 딸이랑 엮으려고 했고만!’

그리 생각한 태천은 정신을 다잡았다.

‘이거 이거…… 잘못하면 코 꿰이겠는데……? 조심해야겠어.’

그렇게 코 꿰려는 자와 피하려는 자를 실은 마차는 빠르게 태양궁으로 향했다.

* * *

덜그럭 덜그럭.

태천은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편안한 표정을 지은 채 앉아 있었다.

마차는 계속해서 덜그럭댔지만, 고급 마차답게 마차 안은 편안했고, 혹여 조금 불편하다고 해도 현재 마차 안에 타고 있는 이들은 화경의 극에 이른 무인과 최소 현경의 무인이었다.

조금의 흔들림 정도는 그들에게 불편함의 축에도 들지 못했다.

그렇기에 태천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쉬어본 게 또 얼마 만이냐.’

목가장에서 북해빙궁으로 떠나기 전에 쉬었던 휴식보다 더 달콤한 휴식이었다.

그럴 만한 게, 태천은 정말 북해빙궁에 온 뒤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낮에는 표태원과 몸의 대화, 밤에는 그런 몸의 치료 및 빙하천류공의 수련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거기에 회복단을 먹으면 빠르게 회복되긴 했지만, 그만큼 체력을 많이 앗아갔기에 언제나 힘든 하루였다.

그런데 그런 생활을 벗어나고 하루 종일 마차에서 잠만 주야장천 자다가 밥때가 되면 호화로운 식사를 한 뒤, 다시 주야장천 자는 하루가 반복되자, 태천은 정말 행복했다.

물론 염백의 딸 자랑은 듣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태천이 잠을 자면 옆에서 떠들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태천이 다시 눈을 감을 때, 옆에서 염백이 그런 태천을 말렸다.

“그만 자게.”

“예? 좀 피곤한데…….”

“화경의 무인이 피곤은……. 궁에 거의 다 왔네. 옷매무새나 좀 다듬고 있게나.”

“음? 벌써 왔습니까?”

“벌써라고 할 것까지야…….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벌써는 아니지.”

염백의 말에 태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하긴 뭐 일주일 동안 내리 달려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태천은 염백의 말대로 옷매무새와 머리를 정돈했다.

이제 태양궁에 도착하면 염백의 딸이자, 오면서 주야장천 들었던 염화연을 만날 테니 말이다.

잘 보일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깨끗한 차림새로 가는 게 보기 좋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던 태천은 옷매무새를 마저 정돈하고 마차에 달려 있는 창문의 밖을 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태양궁이면 궁이 불타고 있으려나…….’

같은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말이다.

다그닥 다그닥.

태천과 염백을 실은 마차는 천천히 태양궁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런 마차 안에서 태천은 창밖 풍경을 살피는 데에 집중했다. 왜냐하면…….

“와, 진짜 불붙었네.”

저 멀리서 보이는 태양궁에서 불이 넘실거렸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태천의 모습에 염백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신기한가?”

“신기하고말고요! 북해빙궁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이건 그냥 신기하네요. 그런데, 저 안에 있으면 화상을 입지 않습니까?”

태천의 말에 염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저번에 들어보니 용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내가 말해주겠네. 우리 태양궁에 관련된 용의 이야기를 말이야.”

염백의 말에 태천이 눈을 빛내며 염백의 말을 경청했다.

염백은 태천이 집중하자 천천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저기 태양궁을 감싸면서 타오르는 불을 우리는 용염이라 부른다네. 뭐, 용의 불이라는 뜻이지. 그리고 저 불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피해도 주지 않는다네. 그저 우리를 따뜻하게 하고, 작물 같은 것들을 잘 자라게 해주는 불이지. 거기에 추운 겨울이 되었을 때, 저 불은 더욱 따뜻하게 피어오른다네. 하지만 저 불의 진정한 효능은 지금부터일세.”

“그게 뭡니까?”

“바로…… 태양궁의 적들은 저 불에 닿으면 흔적도 없이 불타 사라진다네.”

“호오…… 그건 좀 신기하네요……. 그런데 용의 이야기는 뭔가요?”

“아! 그걸 깜빡했군. 저 불은 우리 태양궁이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했네. 그리고 이 태양궁을 만드신 초대 궁주 염진을 도와주신 게 바로 용일세.”

염백의 말에 태천은 생각했다.

‘염진? 이거 초대 빙궁주랑 이름이 비슷하네? 이거 이거…… 이러면 빙궁에 있던 용과 여기 태양궁에 있는 용도 어느 정도 연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태천이 물었다.

“혹시 태양궁에는 빙과와 같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까?”

“없기는! 빙궁에 빙과가 있다면 태양궁에는 염과가 있지! 그리고 염과가 절대 빙과에게 밀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물론 전설상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빙과가 있으니, 염과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염과의 효능이 무엇인가요? 무척이나 궁금하군요.”

태천이 염과에 관심을 가지자, 염백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자랑스레 설명하기 시작했다.

“염과를 먹게 되면 태양지체에 버금가는 양기를 얻을 수 있지. 신기하게도 몸에 부담될 정도의 양기가 아닌, 먹은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양의 양기를 선물해 준다고 알려져 있네. 거기에 염과를 먹게 되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기게 되는 혈도의 노폐물들을 양기로 싸그리 태워 버린다고 하지. 어떤가? 대단하지?”

염백은 그 말을 하면서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표정을 본 태천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속으로 네비에게 말했다.

‘네비야?’

‘네. 태천 님. 무슨 일이십니까?’

‘곧 태양궁이잖아?’

‘그렇습니다?’

‘가자마자 염과부터 수색해 봐.’

태양궁에 도착하기 전부터 염과를 찾을 생각으로 가득 찬 태천이었다.

그런 태천을 데리고 마차는 열심히 태양궁을 향해 달려갔다.

* * *

“허어…… 진짜 안 뜨겁네?”

태천이 마차에 달린 창문 밖으로 손을 빼내곤 성문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붉은색의 불을 만지면서 말했다.

그런 태천을 본 염백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한서불침이지 않은가? 뜨거운지, 안 뜨거운지,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아하하…… 그러네요…….”

태천은 무안했는지 염백의 말에 불을 만지던 손을 빼내고 마차의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런데 불이 붉은색이네요?”

“음…… 외성에는 붉은 불이 타오르고 있고, 내성으로 들어갈수록 주황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해가지, 결국 마지막, 내성에는 바다와도 같은 푸른 불이 타오르고 있다네.”

“혹시…… 푸른 불의 위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태천의 말에 염백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이내 눈을 뜨면서 태천에게 말했다.

“아마…… 5대 궁주 때였을 것이네. 아! 나는 10대일세. 그때 당시 오랑캐들의 세력이 급속도로 불어났네. 그리고 그들의 마수는 우리 태양궁에까지 미쳤지. 그들은 붉은 불의 외성을 넘어 푸른 불이 불타오르고 있는 내성까지 도달했네.”

“그때까지 피해는요?”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오랑캐들은 전진을 멈추지 않았네. 거기에 오랑캐 중에는 화경의 고수가 여럿 포진해 있었고, 현경의 고수가 대전사의 이름을 달고 있었지. 그리고 그들은 결국 내성으로 발을 뻗었다네.”

염백의 말에 태천이 침을 꿀꺽 삼키면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런 태천의 모습에 염백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어찌 됐을 것 같나? 그때 당시 5대 궁주께서는 병환으로 몸져누워 계셨고, 본 궁 안에 현경의 고수는 존재하지 않았네.”

“설마……?”

“맞네. 내성을 고고히 휘감으며 타오르던 청염이 그들의 뼈 하나 남기지 않고 불살라 버렸지. 대충 그 정도라고 생각하게. 아! 한서불침에 금강불괴인 자네라면 청염에도 버티려나? 껄껄껄.”

“……아하하, 괜찮습니다…….”

염백의 말에 태천이 식은땀을 흘리며 손사래 쳤다. 불확실한 것에 판돈을 걸고 싶진 않은 태천이었다.

그렇게 둘이 농을 던지며 놀고 있을 때, 마차가 멈추었다.

“오! 내성에 다 왔나 보군. 이제 내려서 우리가 여태까지 말하던 청염의 모습을 실제로 보게나.”

덜컥.

염백은 그리 말하고는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