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66화
태천 혼자의 힘이라면 턱도 없었겠지만, 그의 뒤에는 현재 최강의 존재인 용이 보조해 주고 있었다.
용의 보조로 힘을 얻은 태천이 기운들을 잘 뭉치고 있을 때, 빙과에서 나오는 막대한 음기가 태천을 방해했다.
‘컥!’
빙과의 음기는 과연 대단했다.
잘 합쳐져 가던 기운이 빙과의 기운 때문에 불안정하게 흔들리면서, 기운들이 태천의 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 기운들을 용이 막아내면서 다급하게 태천에게 말했다.
“정신 차려!! 이대로 정신을 놓으면 내공만 잃는 게 아니라, 죽을 수도 있다!”
‘크으윽……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고요!!!’
용의 말에 태천이 신음 소리를 삼키며 생각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지금 태천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폭주하는 빙과의 기운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용은 지금 기운들을 뭉치는 데 온 힘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빙과의 기운을 막을 수 없었다. 즉, 태천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때였다.
-오! 뭐냐, 이 시원한 기운은? 내가 좀 먹어도 돼?
탐의 태천에게 말을 걸어왔다. 탐의 목소리를 들은 태천은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잡은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바로 말했다.
‘먹어! 빨리 먹어! 나 죽는다!’
-크하핫! 잘 먹겠습니다!
태천의 허락과 함께 탐은 폭주하는 빙과의 기운을 와구와구 먹어치웠다.
열심히 폭주하던 기운은 탐이 물어뜯기 시작하면서 힘 자체가 약해졌다. 그 덕택에 태천은 약해진 빙과의 기운을 자신의 다른 기운들과 잘 융합시킬 수 있었다.
탐은 빙과의 기운으론 부족했는지 태천의 다른 기운들을 탐냈지만, 태천이 칼같이 거절하자 쳇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사라졌다.
태천은 탐의 도움 덕택에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무사히 자신의 모든 기운을 잘 통합할 수 있었다.
기운들을 잘 통합시킨 후 태천은 감았던 눈을 뜨면서 여태까지 참아왔던 숨을 파하 하고 내쉬곤 용에게 물었다.
“후우! 괜찮으십니까?”
그도 그럴 게 용의 상태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백옥 같은 피부에서는 땀이 연신 흐르고 있었고, 이제 백옥을 넘어서 창백해 보이기 시작했다.
“괜찮다. 그런데 폭주하던 빙과의 기운을 어떻게 잠재운 거냐?”
용이 괜찮다고 말하며 탐에 대해 묻자 태천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친구 덕분에 잘 잠재웠습니다.”
* * *
어느 정도 몸이 진정되자 태천은 전신에서 흘러넘치는 기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단전이 파괴되자 태천의 혼천기들은 태천의 단전에만 멈춰 있을 수 없게 되었고, 의식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몸을 순환하며 몸을 깨끗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내공들이 몸 전체에 퍼지자, 의식하지 않아도 바로바로 내공을 뿜어냈다가 거둬냈다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혼천기의 색은 회색이었다. 혼천기는 태천의 의지에 따라 마기가 되기도, 독기가 되기도, 음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 사실까지 확인한 태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용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뭐, 나는 보조만 해줬는걸? 그리고 솔직히 나도 내공의 손실이 전혀 없이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잘 돼서 다행이다.”
“다 용님 덕이죠, 뭐.”
“아, 그리고 지금은 하나의 기운만 바꿀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양한 기운을 한 번에 쓸 수도 있을 거다.”
“흠…… 돌아가면 열심히 노력해야겠네요.”
“그리고 벽 하나를 넘은 것을 축하한다.”
태천은 용의 말에 씨익 웃으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이번에 만변혼천공을 익히면서 단전을 부순 뒤, 기운을 전부 통합시킬 때, 태천은 드디어 벽을 넘어 고대하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그것도 화경 초입이 아니라, 단번에 극에 이를 정도로 말이다.
여태까지 벽을 넘기 위해 노력하던 것들이 한 번에 터져 나와서 단번에 극에 이를 수 있었다.
뭐, 결국 벽을 넘어도 다시 벽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래도 태천은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화경이다.”
꾸욱…….
태천은 주먹을 꾸욱 쥐면서 기분 좋은 마음을 표출했다.
용의 앞이라서 소리까지는 못 지르겠으니, 이렇게라도 표현을 해야 개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본 용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빙과를 가지고 다시 궁으로 돌아가거라. 가서 현 궁주에게 빙과를 전해주고. 위에 있는 눈보라는 사라질 테니, 편하게 돌아가거라.”
“감사합니다.”
용의 말에 태천은 빙과를 주섬주섬 챙기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자신이 들어왔던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태천을 향해 용이 말했다.
“나는 먼저 선계에 가 있겠다. 만변혼천공을 극성으로 익히게 된다면, 아마 너도 선계에 들를 자격이 생길 테지. 그때 가서 보자꾸나.”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제 이름은 강태천입니다.”
“그래. 잘 가거라. 짧지만 즐거웠다.”
용의 마지막 말을 뒤로하고, 태천은 공동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태천과 용, 둘 다 몰랐던 사실이 있으니, 바로 두꺼운 옷에 가려진 태천의 몸이 표태원과 같이 구릿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 태천은 새로 얻은 만변혼천공을 생각하며 가벼운 걸음으로 자신이 들어왔던 구멍으로 빠져나와 빙궁을 향해 바삐 발걸음을 놀렸다.
“그런데 처음 올 때보다는 좀 덜 추운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눈보라도 사라진 마당에 태천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추섬보를 극성으로 펼치며 달리던 태천의 눈에 저 멀리 북해빙궁이 보이기 시작했다.
“흠…… 빨리 가자.”
자신을 찾고 있을 표태원과 설미진을 생각하며, 태천은 용천혈에 불어넣던 공력을 더했다.
태천의 내공은 만변혼천공으로 인해 모든 내공들이 하나로 합쳐졌기 때문에, 단순 계산으로만 해도 2배 이상은 늘었다.
그렇기에 그다지 내공을 썼다는 기분도 안 든다는 생각을 한 태천은 빠른 속도로 북해빙궁을 향해 내달렸다.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북해빙궁의 정문에 도착한 태천을 경비 무사가 맞이했다.
“엇! 강태천 님 아니십니까?”
“절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지금 성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설미진 소궁주님께서는 울고, 난리도 아닙니다. 지금.”
경비 무사의 말에 태천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물었다.
“저어…… 표태원 님은…….”
설미진이 울고 있는데 애처가인 그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생각에 물은 것이었다.
그런 태천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어…… 만나시면 피하시는 게…….”
경비 무사가 태천의 눈을 피하면서 답하자, 태천은 한숨을 푹 내쉰 후 보따리 안에 있는 빙과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이거면 그래도 목숨은 건지지 않을까……?’
자신의 목숨과 직결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 경비 무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태천은 빠르게 궁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궁에 도착한 태천은 설미진의 방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용이 있는 곳에서 북해빙궁으로 달려올 때보다 빠르게 달려온 태천은 방문을 벌컥 열었다.
“저 살아 있습니다!!!”
태천의 외침에 방 안에서 울고 있던 설미진과 그런 그녀를 달래주던 거한, 표태원이 태천을 쳐다보았다.
설미진은 눈물을 닦아내던 손수건을 내팽개치고, 태천에게 달려가 끌어안으며 말했다.
“흑흑, 제가 한 이야기 때문에 소협이 눈보라로 향했다는 말을 듣고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어…… 어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것 좀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이번엔 진짜 죽을 것 같거든요?”
설미진이 태천에게 안겨 있자, 그녀의 뒤에 있던 표태원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태천을 쏘아봤다.
그 눈빛을 본 태천의 등 뒤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행히도 태천의 말을 들은 설미진이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휴우…… 그래도 이렇게 무사하신 것을 보니 마음이 진정되네요. 그럼 여태까지 뭐 하고 계셨는지, 말 좀 해주시죠?”
“아! 그건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설미진의 뒤에서 팔짱을 낀 채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표태원의 모습을 본 태천은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화경의 극이든, 만변혼천공이든, 화가 난 현경의 고수는 무서웠으니까 말이다.
* * *
태천의 설명이 끝나자, 설미진은 자신의 입가를 가리면서 놀랐다.
“정말 용을 만나신 거예요?”
“예. 이야기에는 안 나왔던 용이 있어서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태천의 말에 설미진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어…… 이야기에는 용도 나와요…….”
“예? 저는 못 들었는데……?”
“뒷부분에 나오는데, 제가 말하려 할 때마다 소협이 사라지셔서…….”
“아……!”
설미진의 말에 태천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용에게 이렇게 빙과를 얻어왔답니다.”
“저희를 위해서 이런 귀한 것을 가져오시다니……. 빙궁을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태천이 빙과를 꺼내 건네자, 설미진은 고개 숙여 태천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런 설미진의 감사에 태천이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미 하나를 먹어서…… 아하하…….”
“……그러시다면야……. 이건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려야겠네요.”
‘새로운 무공을 얻은 걸 안 말한 것은 좋은 판단이었겠지?’
사실 태천이 모든 사실을 설미진에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빙과가 2개가 아닌 3개였다는 점, 그리고 빙하천류공이 사실은 용이 만들어서 초대 빙궁주에게 준 것이라는 점과 용이 태천 자신을 위해서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까지 총 3개를 설미진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빙과를 줬으니까 이 정도쯤이야…….’
태천이 이런 생각을 할 때, 설미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손에는 빙과를 든 채였다.
“저는 일단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리고 오겠습니다.”
“아아…… 그러세…… 아니, 잠깐만, 같이 가시죠.”
설미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녀오라고 말하던 태천은 설미진의 뒤에서 옳거니!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표태원의 모습을 보곤 다급하게 설미진을 잡았다.
하지만 태천의 유일한 구세주는 그런 태천을 구원해 주지 않았다.
“아니에요. 방금 돌아오셨는데 여기서 쉬고 계시면 금방 다녀올게요.”
설미진은 그리 말하고는 방문을 열고 궁주에게 향했고, 방에는 표태원과 태천 단둘이서 어색한 침묵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침묵을 깬 것은 당연하게도 표태원이었다.
“……나가자.”
“예? 방금 소궁주님이 여기서 쉬라고…….”
“맞고 나갈까, 그냥 나갈까?”
“사실 저도 나가서 몸 좀 풀고 싶었습니다.”
태천은 표태원이 성인 머리통만 한 주먹을 들어 올리면서 말하자, 갑자기 밖에 나가고 싶어졌다.
절대 표태원의 주먹이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결국 태천은 타의에 의해서…… 아니, 자의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표태원은 연무장에 도착하자마자 겉옷부터 벗어 던졌다.
웬일로 겉옷을 입고 있나 했더니, 역시 설미진의 앞이어서였다.
태천이 금강불괴로 인해 구릿빛으로 빛나는 피부를 보면서 군침을 삼켰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 수 있겠지?’
자신도 언젠가는 저렇게 금강불괴를 이루겠다는 생각을하고 있을 때, 표태원 말이 태천의 귀에 박혔다.
“뭐 해? 너도 벗어. 안 덥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