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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 네비게이션-65화 (66/139)

기연 네비게이션 65화

그곳에는 아까 위에서 봤던 나무와 비슷한 나무가 있었다.

하지만 이 나무는 전혀 앙상하지 않았다. 정말 크고 생기가 넘쳐흐르는 그런 나무였다. 그리고 나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우 잠깐만, 저거 뭐야.’

그 나무를 거대한 동체로 감싸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하얀색 비늘을 달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대한 용이었다.

‘야, 나갈까?’

-저거 맛있겠다.

‘야 이 새끼야 닥쳐, 목숨이야 배고픔이야. 골라봐.’

-……알겠다. 나가자.

‘그래, 완벽한 선택이다.’

탐의 대답을 통해 확신을 얻은 태천은 자신이 굴러서 들어온 구멍을 향해 조심조심 걸어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너는 누구지?”

용이 눈을 뜨면서 태천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 저는 위에서 신세 지고 있는 강태천이라고 합니다……?”

“위? 아아…… 빙궁을 말하는 거냐?”

“아마도……?”

“그러면 설진 그 녀석은 살아 있느냐?”

“설진?”

용의 입에서 나온 설진이라는 말에 태천이 의아해하자 용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너는 빙궁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빙궁에서 오긴 왔는데…….”

태천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낀 용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빙궁이 만들어진 지는 얼마나 되었지?”

“아! 그건 답할 수 있겠네요. 제가 듣기론 족히 수백 년은 됐다고 하던데요……?”

“수…… 수백 년?”

태천의 그 말에 용이 크게 당황해했다.

“그런데 용이 이곳에는 왜 있으신 겁니까?”

“하아…… 설진 그 녀석 때문이지.”

“대체 그 설진이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빙궁에서 산다는 녀석이 설진이 누군지도 모르느냐?”

“아하하…… 저는 식객 같은 거라서…….”

“쯧, 설진은 내가 만들어 준 빙궁의 초대 주인이다.”

이번에는 태천이 용의 말에 놀랐다.

그 아름다운 빙궁을 어떻게 만들었나 했더니, 전설 속의 동물인 용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니!

“아…… 초대 빙궁주의 이름이 설진이었군요……. 그럼 혹시 빙과에 대해서도 아십니까?”

태천의 말에 용이 끄덕이며 말했다.

“알다마다. 애초에 빙과는 내 기운을 먹고 자란 이 나무에 맺히는 과실의 이름이지. 그리고 설진에게 준 그 빙과도 내가 만든 것이지.”

용의 말에 태천은 나무의 가지에 맺혀 있는 열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 저게 바로 빙과입니까?”

“음…… 맞아. 꽤 많이 열렸군. 3개 정도인가?”

하나만 먹고도 벽을 뚫어버린 초대 빙궁주의 얘기를 들은 태천은 군침을 다시면서 말했다.

“그러면 혹시 저에게 그 과실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익히는 빙하천류공이 벽에 막혀서…….”

태천의 그 말에 용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지금 빙하천류공이라고 했는가?”

“예? 예에…….”

“옛날 생각이 나는군. 내가 설진 그 녀석을 위해서 만든 무공을 네가 익히고 있다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 게지.”

“예? 이 무공을 당신이 만드셨습니까?”

“간단하게 소일거리로 삼아 만들었지.”

용의 말에 태천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슨 소일거리로 만든 무공이 절세의 무공이 된단 말인가? 과연 용은 용이라는 생각을 하며 태천이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 무공을 조금은 개조하실 수도 있습니까?”

“응? 가능하긴 하다만. 이건 거의 완성에 가까운 무공인데, 뭐 고칠 이유라도 있는가?”

용의 말에 태천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빙공만이 포함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양공도 익힐 수 있는 몸이라서 말입니다.”

“호오…… 꽤 신기한 몸이로군. 좋아. 이리 가까이 와보게. 아예 자네의 몸에 딱 맞게 고쳐주지.”

용의 말에 태천이 반색하며 물었다.

“그런데 저에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태천의 그 말에 용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

“서…… 설마…… 죽…….”

“아니. 그냥 이제는 떠나야 해서 말일세. 우리 용들은 일정 기간 현계에 머무를 수 없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설진 그 녀석과의 약속 때문에 여기서 수백 년을 머물렀지. 이제는 그게 한계에 달했네. 그러니 자네가 저 빙과를 가지고 빙궁으로 돌아가 나누어 주게. 하나만 주고, 두 개는 자네가 가져도 좋네. 뭣하면 두 개를 건네도 좋고.”

용의 말에 태천이 쾌재를 지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용은 태천의 대답을 듣고 빙긋 웃으면서 자신의 손을 태천의 머리에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기운을 태천의 몸속에 보냈다. 그리고 감탄했다.

“호오…… 자네 몸은 꽤나 신기하군. 수천 년에 한 번 태어날 몸에, 단단한 뼈, 칙칙한 마의 기운과 독기, 그리고 두 개의 의지를 지배하는 하나의 자아를 가진 몸이라……. 대단하군.”

용은 그렇게 말하면서 태천의 몸에 넣었던 자신의 기운을 빼내곤 말했다.

“자! 그러면 잠시만 기다리게. 금방 자네에게 어울릴 만한 무공을 만들어 주지. 아! 혹시 그 칙칙한 마의 기운과 독을 다루는 법이 담긴 책이 있는가?”

용의 말에 태천은 품에서 천마신공과 섭독심법의 사본을 꺼내 건네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오호…… 마지막 가기 전에 꽤나 즐거운 일을 하게 되는군.”

용은 그리 말하면서 사람으로 변했다. 그 모습에 태천은 무척이나 놀랐지만, 용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새로운 무공을 만드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태천은 사람으로 변한 용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는 태천이 건넨 섭독 심법과 천마신공의 비급서를 연신 들춰 보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어! 인간들이 대단하긴 대단하군! 용인 내가 만든 빙하천류공과 비교해도 흠이 될 게 전혀 없어!! 재밌구나 재밌어!”

오랜만에 재미난 장난감을 만난 표정의 용을 보면서, 태천은 어련히 잘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수련에 집중했다.

뭐, 수련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평소에 하던 대로 그냥 내공을 천천히 모으기 시작했다. 용이 집중하고 있는 와중에 큰 소리를 낼 수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자리에 주저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천마심법을 운용한 태천은 무아지경에 빠졌다.

오래간만에 빠진 무아지경에 태천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천마심법을 운용했다.

그런 태천의 무아지경이 깨어진 것은 용의 외침 때문이었다.

“다 만들었다!!”

“……벌써 다 만드셨습니까? 역시 용이시군요.”

“음? 일주일이 지났는데 벌써인가?”

“예? 일주일이나 지났습니까? 허이고…… 돌아가면 죽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표태원 생각에 태천의 표정이 시커메졌다. 그런 태천에게 용이 책 한 권을 던져 주며 말했다.

“자, 이게 네가 원하던 그 책이다.”

“호오…….”

용의 말에 태천은 눈을 반짝이며 용이 건넨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무신지체로서 뛰어난 오성을 가지게 된 태천의 머리로도, 용이 건넨 책을 이해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에 용에게 해석을 부탁했고, 용은 흔쾌히 해석을 해주었다.

“일단 정확한 이름은 마라빙염천독공인데…… 그냥 부르기 쉽게 만변혼천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정확한 기능은 무엇입니까?”

“지금 네 몸에는 독의 기운이랑 빙하천류공으로 생겨난 음의 기운, 그리고 천마심법으로 생겨난 패도적인 성향의 마기까지 있지?”

“그렇습니다.”

“그런 기운들을 그냥 하나의 기운으로 통합시킨다고 생각하면 돼.”

용의 말에 태천은 아하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같은 도가나 불가의 심법들도 각 파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서, 물과 기름같이 섞일 수 없다.

그런데 같은 도가나 불가의 심법으로 만들어진 기운도 아니고 아예 성향 자체가 다른 기운들을 하나로 통합한다니! 여태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이 박살 나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용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지. 너 나중에 양기도 다룰 거라며? 그 양기도 잘 혼합될 수 있게 손을 써놨다. 나중에 양공을 익혀도 다른 기운들과 잘 어우러지게 만변혼천공이 보조할 거다.”

용의 말에 태천은 다리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음, 왜 그러냐?”

“정말 그런 게 가능할지 상상도 못 했어서 말입니다…….”

“뭘 그런 것 가지고……. 좀 시간은 걸렸다만, 나는 용이지 않으냐?”

“하하…… 그러셨죠. 용…….”

용의 말에 태천은 나중에 다시 용을 만나게 된다면 절대 용과 대적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으면서 용의 설명을 계속 들었다.

“일단 책은 다 읽었으니 어떻게 되는지는 얼추 알고 있지?”

“네. 그런데 애초에 틀을 어떻게 만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아니, 책을 읽었으면서 왜 틀에 집착하는 거지?”

용의 말에 태천이 당황했다.

“무인이라면 당연히 단전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휴…… 이 화상아! 니가 엄청난 천고의 기재라서 단전이 다른 이들보다 몇 배는 더 크다고 하자? 그래도 언젠가 그 단전이 가득 차겠지?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야? 그냥 거기서 멈출 거야?”

“……아닙니다!”

태천의 용의 말에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태까지 자신은 다른 무림인들과는 다르게 크게 틀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도 다른 이들과 같았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런 태천을 향해 용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이제 단전을 부수자.”

“……잘 못 들었습니다……?”

“단전을 부수자고.”

태천은 고마웠던 감정이 싹 사라지고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 *

도망가려다 용의 손에 잡힌 태천은 용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런 태천의 눈앞에는 빙과 두 개가 자신을 먹어달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헤벌쭉한 표정으로 단숨에 빙과를 집어먹었겠지만, 지금은 마치 사형수로서 마지막 만찬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어 한숨만 푹푹 쉬는 태천이었다.

그런 태천에게 용이 말했다.

“단전을 부순 고통에 네 내공들을 잘 간수하지 않으면, 너는 내공 하나 없이 만변혼천공을 익히게 될 거야. 뭐, 애초에 이제는 단전이 사라졌으니 내공은 그렇게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없으면 네가 불편하겠지? 그러니까 고통에 휩쓸리지 말고 집중 잘해. 그리고 빙과에는 내 기운인 선기가 들어 있으니, 그걸 먹으면 고통이 줄어들 거다. 그럼 시작하자.”

용의 말에 태천은 한숨을 내쉬면서 빙과를 입에 털어 넣었다.

빙과는 태천의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았다. 빙과의 달콤함과 시원함에 태천이 미소를 지을 때 용은 단숨에 태천의 단전을 파괴했다.

단전을 파괴하자마자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태천은 단숨에 표정을 찌푸렸다.

하지만 매도 맞아본 사람이 잘 맞는다고, 이미 전생에 한번 단전이 박살 나본 경험이 있는 태천은 고통을 잘 참아냈다.

하지만 고통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단전이 박살 나면서 폭주하는 마기와 독기, 그리고 음기 때문에 태천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만변혼천공의 구결대로 그것들을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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