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63화
본래 단전에서 시작된 내공이 백회혈 쪽으로 돌아서 발바닥의 용천혈을 돌아 다시 단전으로 돌아오는 일반적인 심법과는 다르게, 빙하천류공은 항문 쪽의 회음혈을 먼저 돈 뒤,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을 찍고 백회혈로 올라가 다시 단전으로 돌아오는 특이한 방식이었다.
설미진은 태천이 외우기 쉽게 몇 번을 반복해서 내공을 돌린 뒤, 내공을 거두면서 태천에게 물었다.
“자! 이렇게 내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얼추 알겠죠? 이제 그것만 외우면 빙하천류공에 입문…….”
박수를 짝! 치면서 말하던 설미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태천의 손에 생겨난 얼음덩어리 때문이었다.
“이러면 된 건가요?”
사상최강의 재능충을 보게 된 설미진은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자…… 잘했네요. 축하해요……. 빙하천류공에 입문하신 것을…….”
설미진은 나는 입문하는 데 1년은 걸렸는데. 라는 뒷말을 삼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태천의 낮에는 처맞고 밤에는 빙공을 수련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 * *
일주일 뒤
퍽 퍽 퍼벅 퍽!
얼음으로 만들어진 연무장에서 웃통을 까고 있는 두 명의 남성이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한쪽이 많이 맞고 있었다.
물론 태천이었다. 그래도 일주일 전과는 다르게 맞기만 하는 게 아니라, 버티고 한두 대씩 표태원의 몸에 자신의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오, 존나 아프네.’
때리는 자신 쪽이 아픈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금강불괴인 표태원의 방어를 뚫고 유효타를 먹일 방법이 태천에게는 없었다. 물론 강기라면 가능하겠지만, 아쉽게도 태천은 아직 권강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도리가 없었다.
일주일 전에 당한, 방어를 뚫고 공격한 방법이 발경이라는 사실을 듣고 그것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하며 발경을 열심히 연습하고는 있지만,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전과 같은 웃는 낯을 한 표태원이 태천을 때리고 있었다.
“으하하핫! 더 때려봐라! 더!”
다른 사람이 제반 사정을 듣지 않고 들었다면 심히 변태스러운 말이라고 느꼈겠으나, 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태천에게는 몹시도 괴물 같아 보이는 발언이었다.
그래도 3대 맞으면 1대는 때렸는데, 저 괴물 같은 인간은 아픈 기색조차 없었다.
그 모습에 태천이 이를 갈며 말했다.
“으득! 발경에 대한 설명이라도 좀 하고 때리십쇼!!”
표태원이 태천의 말에 크하핫 웃으면서 말했다.
“전력으로 때리되, 마지막에 힘을 빼봐.”
‘그게 뭔 개소리야!’
태천은 전력으로 때리면서 마지막에는 힘을 빼보라는, 심히 멍멍이 같은 소리에 속으로 욕을 했지만, 그래도 현경에 이른 고수의 가르침이었기에, 속는 셈 치고 태천은 표태원이 가르쳐 준 방법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전력으로…….’
태천은 표태원이 해준 방법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오른 주먹에 뿌득 힘을 주었다. 그리고…….
‘치면서…… 마지막에만, 힘을…… 뺀다!’
툭!
그리고 그런 태천의 주먹이 표태원의 명치에 닿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처음 해본 움직임에 태천의 자세가 무너졌다.
거기에 이어진 표태원의 주먹에 제대로 맞은 태천은 다시 연무장 벽에 처박혔다.
표태원의 말대로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태천이 자신을 누르고 있는 얼음덩어리들을 치우면서 버럭 소리쳤다.
“에이씨! 안 되잖…….”
“안 되긴 개뿔이. 잘했다.”
그런 태천을 보고 있는 표태원의 입가에는 한 줄기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 * *
표태원에게서 발경에 대한 실마리를 얻은 태천에게 이번엔 새로운 시련이 찾아왔다.
빙공에서 찾아온 시련이었다.
일주일 전 태천은 얼음을 만들어내는 빙하천류공 1성에 입문했고 그 뒤로 일주일간 노력한 결과 양손에서 얼음덩어리를 만들어내는 2성에 입문했다.
그리고 이제는 만들어낸 얼음덩어리를 쏘아내는 3성의 경지를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설미진이 그런 태천의 곁에서 웃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잘 안 되나요?”
“휴우…… 역시 만드는 것까지는 되는데, 쏘는 게…….”
“강 소협. 그 얼음을 만들 때 어떻게 만들었죠?”
설미진의 질문에 태천이 곰곰이 생각한 후, 답했다.
“몸에 있는 수기를 사용해 공기 중에 있는 수기를 모아서 응축시켜서…… 만들었죠?”
“맞아요! 수기! 그 수기를 굳이 응축시킨다는 곳에서 끊지 말고, 그 수기를 터뜨린다고 생각해 봐요.”
“수기를…… 터뜨린다……?”
설미진의 말에 태천은 자신의 손에 둥둥 떠 있는 얼음덩어리를 바라보더니, 이내 얼음덩어리 뒷부분의 수기를 응축시키며 생각했다.
‘수기를 응축시키고…….’
우우웅…….
‘터뜨린다!’
푸슉! 팍!
태천의 생각과 함께 날아간 얼음덩어리가 연무장의 벽을 뚫었고, 빙하천류공 3성의 벽 또한 같이 뚫었다. 물론 2일만 3성의 벽에 막혔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기쁜 건 기쁜 것이었다.
빙하천류공 3성에 들어선 뒤, 태천은 설미진에게 빙하천류공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빙하천류공을 북해빙궁에 있는 모두가 익히고 있지만, 옛날에는 궁주의 직계만 익힐 수 있었어요. 빙하천류공은 추위에 내성을 주거든요. 제가 태천 님에게 가르쳐 준 건 심심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런 이유이기도 해요. 태천 님이 여기서 꽤 오랫동안 머무를 텐데, 어느 정도 추위에 면역이 있어야 하니까요.”
“음? 그러면 저 추위에 내성이 생긴 겁니까?”
“어느 정도는?”
“그러면 투왕께서도……?”
태천의 물음에 설미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이는 그냥 한서불침이라서에요. 빙공은 하나도 익히지 않았어요.”
“아…….”
‘역시 괴물이었네.’
라는 뒷말은 삼키면서 태천이 물었다.
“그러면 북해빙궁에 있는 이들의 평균 성취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 성인 정도 되면 3성에서 4성, 그리고 간혹가다가 재능 있는 이들은 5성까지 들어서고, 5성에 들어선 이들은 대부분 빙궁 소속 빙하창천대에 들어가요.”
“빙하창천대는 무슨 일을 하죠?”
“음…… 그래. 오면서 성문을 지키던 경비병들 봤죠? 평소에는 그렇게 생활해요. 그러다가 빙궁에 누군가 침입해 오면…… 뭐, 알겠죠?”
“확실히…… 그러면 5성 정도면 무림에서 일류 무사 정도 되는 겁니까?”
“아마도? 제가 8성에서 9성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저 정도면 화경의 무인 정도는 이기거나 비등할 거라고. 그러니까 아마 태천 님 말이 맞을 거예요?”
설미진의 꽤나 자세한 대답에 태천이 만족해했다. 지금 태천의 성취는 3성이니, 삼류 무사 정도의 경지였다.
“그런데 마흔…… 아니, 젊은 나이에 화경에 들어섰다면, 엄청 뛰어나신 것 아닙니까?”
물론 태천 자신은 약관이라는 젊은 나이에 화경 턱밑까지 와 있었지만, 설미진처럼 40살에 화경에 들어선 이는 극히 적었다.
“아? 그건 제가 좀 특별한 몸이라서 그래요.”
“특별한 몸?”
“구음절맥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설미진의 말에 태천이 무척 놀랐다. 그만큼이나 구음절맥은 희귀한 몸…… 아니, 병이었다. 구음절맥은 웬만하면 여아에게 많이 나타나는 병이다.
구음절맥은 태어날 때부터 엄청나게 강력한 음기를 타고나서, 그 음기 때문에 빙공 같은 무공에 소질이 뛰어나고 머리가 비상한 체질이다.
하지만 그 강력한 음기가 독이 되어 커가면서 음기가 혈도를 막아 20살이 되기 전에 죽는, 병이기도 했다.
그런) 희귀한 병이지만, 그래도 고칠 방법은 존재했다.
강력한 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강력한 양기를 가진 무언가를 섭취하거나 얻으면 된다.
그럼 구음절맥이기에 받는 안 좋은 점들은 다 상쇄되고, 좋은 점인 막대한 음기(수기)와 비상한 머리로 다른 무공들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보이게 되는 것이었다.
설미진이 바로 그 구음절맥을 가지고 태어났었다니, 매우 놀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설미진이 태어난 곳은 북해빙궁. 막대한 양기를 가진 물품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의문을 가지고 태천이 설미진에게 물었다.
“그런데 북해빙궁에서 막대한 양기가 담긴 물건은 구하기가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치료하신 겁니까?”
태천의 말에 설미진이 그때 당시를 회상했는지, 살풋 웃으며 말했다.
“그이가 구해다 주었습니다.”
“그이라면…… 투왕께서?”
“맞아요. 제가 구음절맥을 타고났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버지는 정파와 사파, 마교 할 것 없이 막대한 양기를 품은 것을 비싼 값을 치르고 사겠다는 문서를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일반 무인들도 알 수 있게 전 무림에 문서를 만들어 뿌렸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날 때쯤, 그이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손에는 태양화리의 내단이 들려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
“그럼 투왕께선 무슨 대가를 요구한 거죠?”
태천의 말에 설미진은 꺄르르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그이가 제 아버지에게 저를 달라고 했답니다. 저는 그때 태양화리의 내단을 먹고 휴식을 취할 때라 못 들었지만 말이에요. 뭐, 아버지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제가 병을 털고 일어난 뒤부터는 두 손 두 발 다 드셨죠. 그렇게 혼인했습니다.”
“투왕께선……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으시네요…….”
태천이 젊은 날의 투왕의 이야기를 듣고 지금이나 그때나 한결같다는 말을 하자, 설미진이 꺄르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귀엽지 않나요?”
“귀…… 귀여워요? 그게?”
‘솥뚜껑 같은 주먹에, 군살 하나 없이 근육으로 가득한 근육남이 귀여워?’
설미진의 말에 태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그래서 신녀께서 어떻게 그렇게 강한지는 알았는데…… 혹시 빠르게 빙공을 익힐 방법이 없습니까?”
“흐음…… 딱히 그런 건 없는데…….”
“에휴……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일도 투왕과 대련을 해야 하니, 먼저 자러 가보겠습니다.”
딱히 방법이 없다는 설미진의 말에 태천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데 그런 태천의 손목을 설미진 탁 잡으면서 말했다.
“아! 맞다. 한 가지 있네요. 이건 전설이라고 해야 하나? 저희 북해빙궁의 초대 궁주께서 빙과를 먹으시고, 10성을 넘어서 12성의 성취를 이루셨다고 했는데……. 이건 뭐, 그냥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라…….”
그 말에 태천이 설미진의 손을 잡으면서 감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해요.”
태천은 그리 말하고는 방을 빠져나가며 네비에게 말했다.
‘네비! 빙과! 빙과를 찾자! 빨리 검색해 봐.’
‘그런데 지금 이 주변에는 얼음과 눈이 가득해서 검색이 쉽지 않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여기에 오래 있을 거니까, 시간은 상관없어.’
‘그러면…… 알겠습니다. 맡겨주세요.’
‘음음, 네비만 믿을게.’
그리고 태천은 급하게 방을 빠져나오느라, 설미진의 뒷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아! 이야기에서 빙과는 빙룡이 지키고 있다고 했…… 에휴, 벌써 갔네…….”
* * *
태천은 빙하천류공 3성에 들어선 후에도 열심히 수련했다.
매일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표태원과 무공 대련을 했고, 오후부터 밤까지는 설미진과 계속 빙하천류공을 수련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어느덧 태천이 북해빙궁에 온 지 반년을 채웠을 때였다.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