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62화
팡팡!!
표태원이 자신의 솥뚜껑 같은 손으로 태천의 등을 팡팡 치며 말했다.
“청운자, 고 늙은이가 나한테 이렇게 편지까지 써서 보낼 일이 뭐가 있으려나 했더니만, 너를 강하게 만들어달라는 거였어?”
“예…… 예에, 잘 부탁드립니다.”
표태원이 손이 무척이나 맵다는 생각을 한 태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혹시 저도 투왕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냐?”
“그…… 금강불괴 말입니다.”
태천의 말에 표태원은 으하핫 웃으며 말했다.
“아가야, 금강불괴를 정말 가지고 싶으냐?”
표태원의 질문에 태천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러자 표태원은 씨익 웃으면서 태천의 팔을 덥석 잡았다.
“어어?”
“그럼 따라와라.”
그때부터 태천의 지옥문이 열렸다.
* * *
퍽 퍽 퍽퍽퍽퍽!!
빙궁의 연무장에서는 연신 가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소리의 장본인인 태천은 죽을 맛이었다. 그 이유는…….
‘검을 놓고 주먹으로 덤비라니, 그게 뭔 개풀 뜯어 먹는 소리야?’
하지만 표태원에 비해 절대적 약자인 태천은 결국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태천이 더욱 어이없었던 것은 다름 아닌 표태원의 말이었다.
“처맞아.”
“예?”
“처맞으라고. 처맞으면 알아서 생겨.”
태천은 그리 말하면서 웃는 표태원의 미소가 저승사자의 미소처럼 보였고, 태천이 잘못 본 게 아니라는 사실은 몇 분 만에 밝혀졌다.
“맞고! 맞고! 또 맞아! 그러면 알아서 금강불괴는 생겨 있을 거다! 크하하하하!!”
퍼버버버버벅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주먹의 연격에 태천은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채 본능에 몸을 맡겨 겨우겨우 피하고,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본능에만 몸을 맡긴 결과는 참혹했다.
퍽!
본능에 몸을 맡긴 채 연신 표태원의 주먹을 피하던 태천의 턱에 표태원의 주먹이 제대로 꽂혔다. 그리고 그 뒤로는…….
퍽퍽퍽퍽퍽퍽!!
연신 주먹에 자신의 몸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태천은 턱에 꽂힌 주먹 덕분에 골이 울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열심히 피해봤지만, 표태원은 한 방이 어렵지 두 방부터는 무척 쉽다는 것을 자신의 주먹으로 태천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주먹에 뚜드려 맞던 태천은 이내 정신줄을 놓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향해 표태원이 씨익 웃으면서 하는 말에 경련을 일으켰다.
“이거 오랜만에 쓸 만한 녀석을 건졌군.”
* * *
태천이 표태원의 주먹에 기절한 후 깨어난 곳은 난생처음 보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태천을 간호하고 있던 여성이 태천이 깨어나자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깨어나셨네요?”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백발에 백옥의 피부를 가진 미인의 등장에 태천이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그녀에게 물었다.
“여긴 어딥니까?”
“제 집인데요?”
“……죄송합니다. 금방 나가겠…….”
여인의 말에 태천이 몸을 추스르고 나가려 하자 여인이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푹 쉬세요. 남편 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그런 당신을 내쫓으면 사람들이 흉본답니다.”
“네……? 남편이요?”
“응? 모르고 계셨나요? 저는 투왕이라 불리는 사내의 아내인 설미진이라고 합니다.”
“구…… 구음선녀?”
태천의 말에 미진은 양 볼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과분하지만…… 그런 별호도 가지고 있답니다…….”
“그런데…… 구음선녀의 나이가 마흔이 넘었…….”
그리고 그 말 덕분에 태천은 구음선녀라는 별호가 왜 그녀에게 붙었는지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나이를 입에 담자마자 느껴지는 극한의 한기에 태천이 몸을 오들오들 떨며 말했다.
“……구음선녀께선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중원에 소문이 자자해서 말입니다…… 아하하…….”
“호호호, 감사합니다. 그럼 편히 쉬세요.”
태천의 말에 방 안을 꽁꽁 얼릴 것 같던 한기가 사라졌다.
그러고는 설미진은 총총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순간적으로 목숨의 위기를 느꼈던 태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꽁꽁 얼어 죽는 줄 알았네. 방이 얼어붙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어.”
태천의 그 말에 탐이 말했다.
-그거 착각 아닌데?
“음? 그게 뭔 소리…….”
그리고 탐의 말에 방을 둘러보던 태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태천이 느낀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방구석에는 성에가 껴 있었다.
“나 정말로 여기가 무서워졌어. 탐, 도망갈까?”
-네가 물 위를 달려서 도망갈 수 있다면 추천하마. 아니면 한서불침이라 얼음 바다 속에서도 죽지 않고 헤엄칠 수 있다면야.
그리고 이어진 탐의 말에 태천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나 다시 돌아갈래~~~!!!”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땐 아니었다. 낙장불입이라는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태천이었다.
하지만 태천의 고통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 태천은 다시 표태원에게 부름을 받고 다시 연무장에 섰다. 그리고 기겁했다.
‘아니, 무슨 이 날씨에 윗옷은 입지도 않고 반바지? 역시 한서불침이라 그런지 엄청나네.’
표태원은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에도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듯 위에는 천 하나 걸치지 않았고 바지는 반바지였다.
태천이 표태원의 옷차림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표태원이 말했다.
“네가 어제 말했지? 나처럼 되고 싶다고?”
“예. 저도 금강불괴를 얻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제 한 말도 기억나지?”
표태원의 말에 태천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처맞으면 된다고…….”
태천의 그 말이 마음에 드는지, 표태원은 입가에 함지박만 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 지론이 뭔 줄 알아?”
표태원의 그 말에 태천은 다음에 나올 말이 예상되었다.
“강철은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는 말처럼, 나는 사람도 처맞으면 단단해진다는 지론을 갖고 있거든.”
“…….”
“아! 물론, 처맞으면서 너도 때려도 돼. 물론…… 때릴 수 있다면 말이야.”
그 말을 뒤로 표태원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표태원이 몸을 풀기 시작하자 태천도 질세라 몸을 풀기 시작했다. 몇 분간 몸을 풀던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기 시작했다.
선공은 표태원이었다.
투쾅!
분명 사람의 다리가 땅을 박찼을 뿐인데, 포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태천은 그 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었다.
소리와 함께 표태원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리와 함께 나타난 표태원의 모습에 태천이 다급히 양손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런 태천을 향해 표태원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일단 한 방!”
고고고…….
고작해야 주먹 지르기일 뿐인데, 주위의 바람이 표태원에게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태천은 자신의 무신지체를 믿었다. 그리고 천마의도.
하지만 그것은 태천의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꾸우웅…….
거력이 담긴 표태원의 주먹이 태천의 양팔에 닿자, 태천은 의외로 아프지 않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
‘어라? 이거 좀 막을 만한…… 크억.’
물론 태천의 착각이었다.
표태원의 주먹에 담긴 거력은 태천의 방어를 뚫고 명치를 강타했다.
명치에 박힌 거대한 기운을 고스란히 막은 태천은 그대로 허공을 날아 연무장에 벽에 부딪혔다.
“커억…… 분명 막았는데……?”
태천의 생각대로 태천의 양팔은 아직 제대로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태천은 공격을 당했다. 그렇지만 태천은 의문을 가질 틈이 없었다.
어느새 표태원이 다시 자신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 머리, 다리, 팔, 다리”
“응?”
그리고 표태원은 태천의 앞에 서서 머리, 다리와 같은 말을 내뱉었다.
태천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고, 이내 표태원은 그게 무슨 뜻인지 태천에게 가르쳐 주었다…… 주먹으로 말이다.
표태원의 성인 머리통만 한 주먹이 태천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표태원은 양 주먹으로 머리를 공격한 뒤, 태천의 다리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고, 표태원의 머리 공격을 간신히 막은 태천은 뒤이어 날아온 발차기를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맞았다.
하지만 그 공격에 아파할 틈도 없이 다시 표태원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시작되었고, 몇 분이 지난 뒤 태천은 너덜너덜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표태원은 그런 태천을 앞에 두고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스윽 닦으면서 상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때, 좀 단단해진 기분이 드나?”
그런 표태원의 말을 들은 태천은 속으로 욕지거리 내뱉었다.
‘단단은 개뿔이…….’
-낄낄낄
탐의 비웃음은 덤이었다.
* * *
태천은 너덜너덜해진 몸을 붙들고 표태원의 집으로 돌아왔다.
태천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 것은 회복단을 먹는 것이었다.
태청단을 만든 뒤, 언제 필요할지 몰라 미리 만들어두었던 회복단을 이렇게 쓸 줄은 몰랐다.
그래도 먹으니 확실히 고통이 줄어들었고, 상처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아물어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태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회복단도 많이 만들어두어야겠네. 매일같이 이 짓거리를 하면 몸이 남아나질 않겠어.”
그런 생각을 하던 태천은 재료가 충분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보따리를 뒤적거렸다.
그때 태천의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어머,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이가 좀 험하죠?”
설미진이었다.
“아, 괜찮습니다. 효과가 좋은 환단이 있어서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저는 또 영락없이 침상 신세를 지실까 걱정이 됐는데…… 뭐, 제가 도와드릴 것은 없나요?”
설미진의 그 말에 태천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혹시…… 저에게 빙공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십니까?”
태천의 그 말에 설미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빙공을요? 남성분이라면 양공을 익히는 게…… 아! 그러고 보니, 소협은 양의심공을 익혔다고 했었지요?”
태천이 양의심공을 익혔다는 것을 상기한 설미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그래요. 요즘 할 일이 없어서 심심했거든요. 제가 배우고 있는 빙하천류공 정도면 될까요?”
“그거, 제가 익혀도 문제가 안 되나요?”
“궁주 직계들만 익힐 수 있는 거지만, 뭐…… 알 바 아닙니다. 아버지는 저라면 껌뻑 죽거든요.”
“아…… 예…….”
태천 자신에게는 좋은 일이었으니,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어차피 태천에게 해가 되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배워볼까요?”
설미진의 푸른 눈이 밝게 빛났다. 그리고 그런 설미진의 말에 태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설미진은 곧장 태천에게 가부좌를 틀 것을 요구했다.
태천은 그런 요구에 순순히 가부좌를 틀었다.
설미진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태천의 등에 자신의 새하얀 손을 대며 말했다.
“이제부터 제가 수기를 소협의 몸에 불어넣어 운기를 할 겁니다. 그 길을 외우시기만 하면 빙하천류공에 입문하게 되는 겁니다.”
그 말에 태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설미진은 자신의 내공(음기)을 태천의 몸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천은 음기가 움직이는 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 번 보면 뭐든지 익힌다는 무신지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우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내공이 가는 길이 조금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