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60화
목유천이었다.
“……아! 장인어른! 죄송합니다. 이거, 소저를 오랜만에 보니 다른 곳에 시선이 안 가서…….”
“하하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우리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할까?”
“큼큼…… 그러시죠.”
그러고는 유천의 손에 이끌려 태천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 안에는 이미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방금 만들었는지 따끈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태천이 군침을 삼키곤 말했다.
“이 음식들은 다 뭡니까?”
“우리 사위가 먼 곳에서 온다는데 장인 된 입장에서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유화도 조금은 거들었다네.”
“……네, 저도 조금은…….”
유화는 개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태천의 인간을 초월한 청력은 그런 작은 소리조차 잡아냈다.
“하하하! 그럼 잘 먹겠습니다.”
태천이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자, 그 옆에 호섬과 철현 또한 같이 앉아 수저를 들었다.
“저어…… 이것도 좀 드세요…….”
“감사합니다. 소저.”
밥을 먹는 와중에도 둘의 애정 행각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천은 이번에는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은 후 말했다.
“흠흠…… 나도 아내와 저랬던 시절이 있었지. 참 보기가 좋구만.”
둘의 애정 행각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밥을 먹는 사람은 호섬과 철현 단둘이었다.
‘켁켁…… 나 체할 것 같아.’
‘닥치고 빨리 먹기나 해.’
* * *
밥을 다 먹은 뒤, 태천은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태천이 들어간 방은 손님용 방이 아니었다.
“음? 뭐지?”
그때 태천의 뒤에서 유화가 태천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제 방이에요.”
“으헉! 소저?”
분명 누군가가 다가온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끌어안으니 천하의 최절정 고수도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사랑하는 연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아버지한테 부탁해서 가가를 제 방으로 오게 했어요.”
유화가 얼굴을 붉히며 말하자, 태천은 그런 유화가 죽도록 귀엽다는 생각을 한 후 유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소저에게 줄 게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태천은 자신이 목가장에 오면서 샀던 목걸이와 꽃을 꺼내 유화에게 건넸다.
“어머? 이건……?”
“그…… 오면서 소저 생각이 나서 샀습니다……. 한번 차보세요.”
태천은 그리 말하면서 목걸이가 든 상자를 열어주었다.
딸칵!
“어머…….”
그리고 유화는 상자 속에서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목걸이 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이런 목걸이는 처음 봐요!”
“이번에 서양에서 들어온 다이아로 만든 목걸이라더군요.”
“아아! 그래서 제가 몰랐군요…….”
역시 목가장의 딸이다 보니 웬만한 물건들은 다 가져봤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아름다운 목걸이를 본 유화의 손이 저절로 목걸이로 뻗어졌다.
그러고는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차고 태천에게 물었다.
“가가! 어때요? 잘 어울리나요?”
“음! 완벽하네요. 목걸이도, 그 목걸이를 찬 사람도.”
태천의 말에 유화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자요!”
“예?”
“밤이 늦었잖아요! 그러니 빨리 자야죠!”
유화가 그리 말하면서 자신의 방에 있는, 혼자서 자기에는 무척 큰 침대로 자신의 몸을 날렸다.
돈이 많아서 그런지, 침대까지도 마련했다는 사실에 태천은 속으로 연신 박수를 쳤다.
‘오늘은 푹신한 곳에서 자겠네.’
그리 생각하면서 태천도 조심스레 유화의 옆에 가서 누웠다.
태천이 자신의 옆에 눕자 유화는 태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손만 잡고 자야 해요!”
“하하…… 당연하죠.”
“약속!”
“약속.”
유화가 그리 말하면서 새끼손가락을 세웠고 태천은 그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면서 말했다.
그리고 태천은 정말로 손만 잡고 잤다. 정말로.
“가가……? 주무세요? 가가??”
그리고 태천은 참으로 오랜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역시 침대가 좋긴 좋나 보다.
* * *
다음 날 아침, 태천은 간만에 푹 잔 덕분에 깨끗한 정신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서 유화가 태천의 손을 꼬옥 잡은 채 코오코오 숨을 내쉬면서 곤히 자고 있었다.
태천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자고 있는 그녀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손을 빼내고는 자신의 무복으로 갈아입고 연무장으로 나갔다.
연무장에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호섬과 철현이 먼저 나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던 철현과 호섬은 태천이 나타나자 하던 수련을 멈추고 태천을 반겼다.
“형님! 어제는 형수랑 함께 잤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이제 결혼하실 일만 남았군요.”
그런 둘의 말에 태천이 짧게 말했다.
“손만 잡고 잤다.”
““예? 거짓말이죠?””
“아니? 진짠데?”
그리 말한 태천은 자신의 허리춤에서 천마검을 빼 들고는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그런 태천을 호섬과 철현이 이 사람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하는 표정으로 태천을 쳐다보았다.
* * *
태천이 목가장에 돌아온 지도 어느덧 6개월이나 지났다.
6개월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태천은 여태까지 하지 못했던 휴식을 정말로 충분히 했다.
물론 수련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수련이 주고 휴식은 뒷전이었던 것과는 달리 정말 몸이 녹슬지 않을 정도로만 수련을 했고, 나머지는 오로지 유화와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최절정으로서의 끝을 보고 화경의 벽에 가로막혔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틈틈이 호섬과 철현의 수련을 봐준 덕분에 둘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둘은 지난 6개월간 태천의 수련과 태천이 준 태청단 덕택으로 불완전하지만, 검사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태천의 휴식도 이제는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가가…… 이제 떠나시는 겁니까……?”
유화는 짐을 꾸리는 태천의 등을 보면서 말했다.
“네. 이제는 또 떠나야죠. 벽에 막힌 지도 꽤 됐으니까 말입니다.”
태천이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자신에게 휴식을 준 이유는 바로 벽 때문이었다.
벽을 앞에 두고 굳이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여태껏 미뤄왔던 휴식을 취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난 유화를 두고 한시바삐 북해빙궁으로 떠날 이유가 없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야 했다. 자신으로 인해 미래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혈교가 지금 당장 무림을 침공해도이상하지 않았기에 자신은 하루빨리 강해져야 했다. 그리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태천이 생각한 마지노선이었다.
“……꼭 건강하게 돌아오셔야 해요…….”
걱정 어린 말에 태천이 피식 웃고는 유화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가 언제 다친 모습을 보여 드린 적 있습니까? 언제나처럼 건강하게 다시 돌아올 겁니다.”
“……알겠어요.”
그리 말한 유화가 태천의 등에 매달리며 말했다.
“잘 다녀오세요, 가가. 그리고…… 남편이 하는 일을 아내가 믿고 따라줘야죠…….”
“하하하. 그렇게까지 저를 믿어주시고 따라줘서 감사합니다. 소저…… 아니, 유화.”
태천이 소저라 부르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유화는 움찔했지만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밤이 깊었는데, 빨리 주무세요! 내일부터 먼 길을 떠나셔야 하는데! 아, 맞다. 두꺼운 옷은 챙기셨나요? 북해는 무척이나 춥다는데…….”
그 뒤로 태천은 유화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유화의 잔소리에도 태천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 * *
다그닥 다그닥
“잘 다녀오게.”
“잘 다녀오세요.”
태천의 일행은 유천과 유화의 배웅을 받으면서 목가장의 정문을 나섰다.
정문을 나서고 어느 정도 걷자 호섬과 철현이 입을 열었다.
“형님.”
“응? 왜?”
“저희는 여기에서 헤어지겠습니다.”
둘의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태천이 당황했다.
“아니, 갑자기 왜? 내가 어제 너 먹던 거 뺏어 먹어서 그래?”
“크…… 크흠…… 그게 아니라, 저희 둘이 형님의 옆에 있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익힌 풍신보 같은 것들은, 물론 형님의 덕을 보긴 했지만…… 저의 아버지이자 풍신문의 문주이신 풍철군 님에게 배워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둘의 그 말에 태천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 그러냐? 에휴…… 그래, 알겠다. 가봐. 대신 내가 북해빙궁에서 돌아왔는데, 너네 이름이든, 별호든 유명하지 않으면…… 알지?”
태천이 주먹을 들어 보이며 말하자 둘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둘의 그런 모습을 본 태천이 피식 웃은 후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
““예!!!””
그렇게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말을 몰고 갔다.
* * *
철현, 호섬과 헤어지고 난 뒤, 태천은 네비, 탐과 조잘조잘 떠들면서 북해빙궁을 향해 말을 몰았다.
“네비. 이쪽 방향 맞아?”
‘예. 이쪽으로 가면 바이칼 호가 나옵니다. 거기를 넘어가면 북해빙궁이 있습니다.’
-언제 들어도 저 녀석은 신기하단 말이지.
사람, 기계, 괴물의 조합은 무척이나 특이했지만, 이 조합을 몇 개월이나 본 태천은 별 감흥이 없었다.
“뭘 신기할 것까지야……. 나는 뭐 매일 보니 신기할 것도 없구만.”
-쯧…… 니가 그래서 재미없다는 거다.
“네이네이. 저는 재미가 없습니다요~”
-마음에 안 들어…….
태천의 말에 탐이 툴툴댔지만 그런 탐을 무시하고 태천은 열심히 바이칼 호를 향해 말을 몰았다.
하지만 점점 바이칼 호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추위가 심해지자 말이 버티지 못했다.
결국 태천은 말을 풀어주고 자신은 두꺼운 겨울옷을 입은 채 걸어서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직접 추섬보를 펼치자 말이 달리는 속도와 비슷하게 달릴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었다.
한참을 네비의 지도를 보면서 달리던 태천의 앞에 거대한 얼음으로 이루어진 호수가 나타났다.
“오! 여기가 바이칼 호야?”
‘예.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건너가지?”
바이칼 호는 무척이나 컸다. 호수에 중간중간 얼어 있는 면이 있긴 했지만, 그 사이사이의 거리가 무척 멀었고, 그런 바이칼 호를 경공으로 건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물론 태천의 추섬보가 극성에 이른다면 물 위를 뛰어다닌다는 등평도수의 경지에 오를 수 있겠지만, 지금의 태천은 고작해야 7성의 경지였기에 등평도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이고…… 분명 북해빙궁은 여기 바이칼 호 한가운데에 있다고 했는데…….”
여길 어찌 건너가나…… 하며 태천이 고민하고 있을 때, 저 멀리 호수 한가운데에서 배 한 척이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호숫가로 다가오고 있었다.
“엇? 저기 누구 오는 것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