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59화
그리 말한 태천이 품에서 자신이 먹으려고 하나 빼둔 태청단을 꺼내 보이자 철현은 입을 떡 벌렸다.
“정말…… 형님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대단하시네요…….”
“으하하핫! 형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래그래. 너넨 지금 너무 약해. 알지? 그거 먹고 좀 강해지자, 응?”
태천의 말에 철현과 호섬은 속으로 우리 정도면 어디 가서 꿀리지는 않는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태천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하면 태천이 태청단을 빼앗아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큼큼, 그럼 형님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북해빙궁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흠…… 거기 좀 추운데……. 겨울옷이라도 챙겨 가야겠네요.”
“응? 너네, 무슨 소리 하는 거냐?”
태천의 그 말에 둘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그럼은 무슨 그럼이야. 목가장으로 가야지. 강해지는 것도 강해지는 거지만…… 내 정인이 우선이지. 안 그러냐?”
태천의 그 말에 호섬이 울컥했다.
‘마교 때는 무당으로 가자며!!’
호섬의 마음속에서 메아리치는 말은 아쉽게도 태천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태천은 날듯이 무당산을 타고 내려갔다.
호섬과 철현은 그 뒤를 빠르게 뒤따랐다.
태천들이 전속력으로 경공을 발휘해서 그런지, 까마득하게 높았던 무당산을 내려오는 데에는 10분이면 충분했다.
물론 내려오는 사람의 체력 배분은 신경 쓰지 않았으니…….
“흐에엑…… 흐엑…….”
“허억…… 허억…….”
이런 상황이 됐지만 말이다.
“에라이. 그거 뛰고 힘들다고 헥헥대고 있냐. 팍씨, 태청단 내놓을래?”
태천의 무시무시한 발언에 철현과 호섬은 냉큼 땅바닥에서 일어나 말했다.
“……안 힘든데요? 하나도 안 힘든데?”
“큼큼…… 쿨럭…….”
둘의 그런 모습을 본 태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말했다.
“자. 그러면 강릉까지 뛰어가 볼까? 괜찮지?”
호섬과 철현은 빨리 기절하는 게 정답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 * *
다그닥 다그닥…….
호섬과 철현의 부탁(실제로 길바닥에서 무릎을 꿇었다.)에 태천은 어쩔 수 없이 말을 세 필 사서 각자 나눠 타고 강릉으로 향했다.
그게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저 멀리 강릉이 보이기 시작했다.
푸히힝…… 푸힝…….
물론 말들의 상태가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에잉. 또 이러네. 옜다, 이거나 먹어라.”
그리 말하며 태천은 자신의 기연 보따리도 아닌 그냥 보따리에서 산삼 하나를 꺼내 말에게 먹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퍽 자연스러운 게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말도 곧잘 받아먹는 것이 한두 번 먹은 모습이 아니었다.
“쯧. 이걸로 5개짼가.”
기연으로 취급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귀한 대접을 받는 수십 년 묵은 산삼답게 하나 먹일 때마다 말의 기력이 거의 다 회복되었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좋아졌다.
그렇게 말이 지칠 때마다 산삼을 하나씩 먹이면서 균현에서 강릉까지 달려온 것이다.
태천은 자신의 말에게 삼을 먹이고는 철현과 호섬에게도 산삼을 하나씩 던졌다.
자신의 말이 지쳤으면 그들의 말 또한 지쳤을 게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태천의 생각대로 그들의 말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철현과 호섬이 산삼을 먹이자 언제 거칠게 숨을 쉬었냐는 듯이 쌩쌩해졌다.
“좋아. 그러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전력으로 간다!”
그리 말하며 태천은 말의 옆구리를 탁탁 쳤다. 태천의 손길에 산삼을 먹어 힘을 얻은 말은 전속력으로 강릉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하아…… 강 가가는 언제쯤 오시려나…….”
붉은 앵두 같은 입술로 한숨을 내뱉는 묘령의 여인은 다름 아닌 태천의 정인인 목유화였다.
1년 동안 태천이 마교에서 교주로 지냈다는 사실도, 그 뒤로 바로 그의 친우를 구하기 위해 무당으로 향했다는 사실도 편지를 통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방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세요?”
“애비다.”
자신의 아버지, 목유천의 말에 유화는 살풋 웃으며 말했다.
“들어오세요.”
유화의 허락이 떨어지자 유천이 유화의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드디어 왔다는구나.”
“예? 뭐가 왔다는…… 아!! 설마?”
유화의 탄성에 유천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가 방금까지도 기다리던 네 정인 말이다.”
“어머…… 들으셨어요?”
자신이 한숨을 내쉬며 했던 말을 아버지가 들었다는 사실에 양 볼을 발그레 붉히던 유화는 이럴 틈이 없다는 것을 상기해 내고는 자신의 아버지를 방 밖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저…… 저! 치장 좀 해야겠어요!”
탁!
유화는 방문을 탁 소리 나게 닫고는 분주하게 태천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 밖에서 유천이 멍하니 서서 생각했다.
‘딸 키워봤자 소용없다더니…….’
다그닥 다그닥.
말을 몰아 강릉의 정문을 넘고, 북적이는 시장 골목을 지나 태천은 목가장을 향했다.
그리고 그런 태천에게 호섬이 물었다.
“그런데 형님.”
“응? 왜?”
“형수님 드릴 선물 같은 건 안 사가십니까?”
호섬의 그 말에 태천이 자신의 이마를 탁 소리 나게 치면서 말했다.
“아…… 맞다!! 뭘 사야 하지? 추천해 봐. 뭘 사 가야 잘 사 갔다고 소문이 날까?”
“음…… 꽃?”
“그렇지! 일단 꽃이랑…… 또 뭐 사가지?”
“반지 어떠십니까? 이참에 청혼도 하시죠?”
“……그런데 내가 유화의 반지 크기를 몰라…….”
태천이 그리 말하자 호섬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그러면 이건 안 되겠네요. 그럼 목걸이 어때요? 목걸이야, 웬만하면 다 맞으니까.”
“오오! 그거 괜찮은데? 그럼 꽃이랑 목걸이 사 가면 되겠다.”
살 것을 정한 뒤 태천은 주위에서 목걸이를 파는 곳을 찾았다.
그러던 태천은 저 멀리 보이는 보석 가게를 보곤 그곳을 향해 말을 몰았다. 말을 몰고 가게에 도착한 태천은 말에서 내려 말을 호섬에게 맡기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어서 옵셔! 무엇을 찾으십니까?”
“음…… 정인에게 줄 목걸이를 찾는데…….”
“가격은 어떻게……?”
“가격은 상관없으니 예쁜 거로 주십시오.”
“흐음…… 아! 얼마 전에 서양에서 들어온 게 있습니다.”
“오오! 한번 보여주십시오.”
서양에서 들어왔단 말에 태천이 반색하며 말하자 주인이 창고로 보이는 곳에 가더니 목걸이가 든 상자 하나를 들고나오며 말했다.
“이게 그 서양에서 뭐랬더라…… 드이아? 다이아? 라고 하던데…… 꽤 비싸게 주고 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멋 하나는 정말…… 죽입니다!”
“다이아? 지금 다이아라고 했습니까?”
“예? 예예, 다이아라고 서양 상인이 그러던데…… 혹시 뭐 아시는 게 있습니까?”
주인의 말에 태천이 주인을 닦달했다.
“흠흠…… 그러면 빨리 목걸이를 보여주시지요.”
“성미도 급하셔라. 자, 그러면 한번 보시지요. 아! 그리고 때가 탈 수 있으니 눈으로만 좀 봐주시길…….”
주인장은 그리 말하면서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큰 다이아를 중심으로 조그마한 다이아들이 세공되어서 자신의 가치를 뽐내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잘 볼 줄 모르는 태천의 눈에도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일 정도였으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목걸이를 보자마자 태천은 이것을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가격을 물었다.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군요.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가격은…… 금자 50냥만 주시지요.”
금자 1냥에서 2냥이 일반적인 서민들의 일 년 치 생활비라는 것을 생각할 때 엄청난 액수였다.
하지만 태천은 마교에서 가져온 금자가 꽤 많이 남았기 때문에, 가격을 치르는 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여기 있습니다.”
태천이 금자가 담긴 주머니를 건네자 주인은 희희낙락하며 목걸이가 담긴 상자를 건넸다.
“흐흐…… 부자신가 보군요? 그 선물을 받으실 여성분은 무척이나 좋으시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태천은 그리 말하고는 보석 가게를 나섰다.
가게를 나선 태천은 말들을 돌보고 있는 호섬과 철현을 향해 말했다.
“자! 목걸이는 샀으니 꽃이나 사러 가자.”
“목걸이는 무슨 목걸이로 사셨습니까?”
“말하면 니가 아냐? 다이아다.”
“……가시죠. 오면서 꽃집을 봐뒀습니다.”
태천의 말에 호섬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앞장서서 말을 몰기 시작했다.
태천은 그런 호섬의 모습에 쿡쿡 웃으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호섬이 향한 곳은 꽤 큰 꽃집이었다. 호섬이 용케도 이런 곳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태천은 내심 놀랐다.
호섬도 그것을 느꼈는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때요? 엄청나죠? 으하하하”
“쯧. 그렇게 안 말했으면 완벽했는데 꼭 초를 치네.”
“……쳇”
“그래도 잘했다. 태청단 준 값은 하네.”
“헤헤헤…….”
태천의 칭찬에 호섬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이제 가실 겁니까?”
“응. 이제 가자. 집으로.”
태천은 그리 말하며 말고삐를 쥐었다.
* * *
태천이 목가장 정문에 도착하자, 정문에 서 있던 경비병이 태천을 알아보고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라? 어떻게 내가 온 걸 알고 있습니까?”
태천의 그 말에 경비병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강릉은 목가장의 손바닥 안입니다. 어디에나 목가장의 눈과 귀가 있죠. 거기에 개방의 강릉 분타주와도 연이 있으니, 대협의 소식은 진즉에 알고 있었습니다.”
“호오…….”
태천이 목가장의 정보력에 감탄할 때 경비병은 한마디 더 곁들였다.
“그리고 대협께서 아가씨께 드릴 선물을 샀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 물론 아가씨는 모르십니다.”
“큭큭큭. 그건 고맙네요.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 빨리 들어가 보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경비병은 정문을 활짝 열었다.
태천과 호섬 등은 경비병이 열어준 정문으로 말을 끌고 천천히 들어갔다.
그리고 말을 끌고 가는 태천의 눈에 유화의 모습이 보이자, 태천은 말에서 내려 전력 질주로 뛰어가 유화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목 소저!!”
“가가!!”
그리고 유화도 같이 말했다.
“여태껏 들르지도 않으시고…….”
“하하하…… 미안합니다, 소저. 이번에 제가 목가장에 들렸다 무당에 갔으면 아마 저는 제 친우를 잃었을 겁니다.”
태천의 그 말에 유화가 어멋! 하는 소리와 함께 변명했다.
“어머……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제 생각만 해서 죄송해요…….”
“그래도 소저가 저를 잊으셨을까 봐 내심 걱정돼서 쉬지도 않고 달려온 보람이 있네요. 아직 저를 기억해 주시다니 말입니다.”
“평생 잊지 않겠다는 제 말은 잊으신 거예요? 평생 잊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유화의 당찬 대답에 태천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근 1년 만에 만나서 그런지, 소저는 더욱 아름다워지셨군요.”
태천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유화가 양 볼을 발그레 붉히며 말했다.
“가…… 가가도 훨씬 늠름해지시고…….”
그리고 그런 둘의 애정 행각에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었다.
“흠흠흠…… 나는 안 보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