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58화
“쯧, 됐다. 마지막 날이니 내가 참는다.”
“크으! 역시 대인배 강태천!”
태천이 주먹을 내리자, 천동이 물개 박수를 치며 태천을 치켜세워 주었다.
태천은 그런 천동을 뒤로한 채 심판을 봐주던 청운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땠습니까?
“많이 좋아졌더군. 일주일 전과는 다르게 말이야.”
청운자의 말에 태천은 머리를 긁적이며 일주일 전을 회상했다.
‘진짜 그때는…….’
일주일 전 양의심공을 익히고 처음으로 도를 잡았을 때, 태천은 도를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일주일 사이에 꽤 뛰어난 도법인 벽력도법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도법에 담긴 묘리까지 이해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그래도 이제는 오른손의 검처럼 왼손의 도 또한 마찬가지로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태천이 말했다.
“그때는 좀 심각하긴 했죠?”
“음…… 나 때랑 비교하면 좀…… 심하긴 했지.”
“큭, 너무 하십니다!”
“클클클, 그래도 이제는 한 일류 정도의 도법 수준은 되는 것 같군. 일주일 사이에 장족의 발전이야. 고작 일류라고 생각하지 말게. 무공에서 1 더하기 1은 무조건 2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게.”
청운자의 태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죠. 대표적으로 진법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소림 백팔나한진과 같은.”
“그래. 그 점만 명심하면 괜찮을 거다. 그래서 언제 떠날 생각인 게냐?”
“아마 오늘 짐을 꾸려서 나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갈 곳은 정해두었고?”
“목가장으로 가려고 합니다. 정인이 그곳에 있어서……. 요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문전박대당할까 봐 겁납니다.”
태천의 말에 청운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끌끌, 자네의 정인이 자네를 사랑하고 아낀다면 그런 일로 문전박대당하지는 않을 거네. 그래도 정인에게 줄 선물 몇 개 정도는 챙겨가는 게 좋겠지.”
“옙. 장문인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청운자의 조언에 태천이 감사를 표하자, 청운자는 품속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 태천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내 친우에게 전해주면 아마 자네에게 무공을 가르쳐 줄 게야. 내가 보아하니 자네는 외공에 관련된 무공은 하나도 익히지 않았더군. 그러니 외공을 익힐 마음이 있다면 이 친구에게 가보게.”
“혹 친우 분의 성함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자네에게는 꽤 익숙한 이름일 수도 있겠군. 표태원일세.”
“표태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청운자의 말에 태천은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다는 생각에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고민의 정답은 태천의 머리가 아닌 천동의 입에서 나왔다.
“투왕!!”
“……투왕? 아! 투왕 표태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친구가 투왕이라는 별호도 가지고 있지.”
“그런데 저, 찾아갔다가 맞으면 어떡합니까?”
투왕 표태원은 좀만 강해 보인다 싶으면 싸우자고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태천이 걱정 담긴 물음을 청운자에게 건네자 청운자는 껄껄 웃으면서 태천의 걱정을 풀어주었다.
“그 친구가 아무리 싸우기를 좋아한다고는 하나, 내 편지를 가지고 온 자네와 싸우려 하지는 않겠지…… 물론 외공을 가르침 받을 때는 모르겠지만…….”
청운자가 마지막 말은 흐리면서 말했기 때문에, 뒷말은 듣지 못한 태천은 좋아라 했다.
‘좋아! 투왕이라면 외공으로 이름 높은 고수! 이번 기회에 부족한 외공도 조금 보충해 보자.’
이런 생각을 하던 태천은 청운자의 편지를 품에 조심히 집어넣고는 청운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투왕께선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워낙 잘 돌아다니시다 보니…….”
“그러면 여기로 가보게. 여기에 그의 아내가 있으니까 말이야.”
청운자의 말에 태천이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내? 투왕께서 아내가 있으셨습니까?”
“암! 아내에게 잡혀 살지. 그 녀석, 팔불출이거든.”
청운자의 말에 태천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싸움꾼 투왕이 팔불출이라니!
“아, 그리고 그의 아내에게도 한번 부탁해 보게. 그녀가 빙공의 고수니까 말이야.”
“예? 아내분도 고수십니까?”
“그래. 구음신녀 설미진이 태원, 그 녀석의 아내지.”
“음……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긴 어디야. 북해빙궁이지. 그녀의 아버지가 궁주일세.”
태천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진 순간이었다.
청운자에게 받은 편지를 품에 잘 갈무리한 태천은 자신이 여태까지 묵었던 숙소에 가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창 태천이 짐을 꾸리고 있는 와중에, 태천의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태천, 이제 정말 가는 거냐?”
천동이었다.
“아아, 너였냐? 응. 이제는 가야지.”
“그 예쁘신 정인 만나러?”
천동의 부러움 담긴 말에 태천이 큭큭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안 본 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나 잊은 거 아닌가 몰라.”
“아직까지도 신기하네.”
“뭐가 말이냐?”
“네 얼굴로 그렇게 예쁜 정인이 있다는 게 말이야.”
“이 자식이, 지는 잘생겼으면 얼마나 잘생…….”
천동의 놀리는 말에 태천이 발끈하며 반박을 하려 했지만…….
‘아놔……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저 얼굴은…….’
천동의 잘생김은 전생에도 유명했지만, 젊어진 지금은 더욱더 눈이 부셨다.
괜히 무당검룡이라는 멋진 이름 놔두고 옥면검룡으로 더 유명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태천이 울분을 삼켰다.
태천이 말하다 말고 다시 말을 삼키는 모습을 보고 천동이 파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장난이다. 장난! 너도 어디 가서 밀리는 얼굴은 아니지. 그냥 부러워서 그래, 부러워서.”
“……네가 말하니까 장난이 아닌 것 같다. 쯧, 그리고 잘나가는 후기지수인 네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나를 부러워하냐?”
“하? 22살에 최절정 무인이고, 목가장이라는 거대한 뒷배를 두고 있는 초신성께서 그리 말하니 쇤네는 접시 물에 코 박고 죽겠습니다! 어디 보자, 접시가…….”
그리 말하고 접시가 어디 있나 찾는 천동의 모습에, 태천이 실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천동을 툭 치곤 말했다.
“됐고. 본론이나 말해봐. 뭐 때문에 이제 떠나는 몸에게 찾아 왔는지 말이야.”
“내기 때문에 왔다.”
“내기?”
천동의 입에서 나온 내기라는 말에 태천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천동이 설명해 주었다.
“인마! 내가 무당으로 떠날 때 우리 둘이서 한 내기 말이다.”
천동의 그 말에 그제야 태천은 어릴 적에 천동과 한 내기이자 약속을 생각해 내었다.
“아! 분명 이맘때쯤에 만나 승부를 겨루는 거였지?”
“그래. 내가 졌으니까 이렇게 찾아왔다.”
“뭐…… 소원이라도 빌면 되냐?”
“바라는 거 있으면 말해라. 그래도 무당의 후기지수라 웬만한 건 구해다 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천동의 말에 태천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앞으로도 영원히 친구인 거다.”
“뭐? 그런 당연한 것 말고 다른 걸 말해봐.”
“어쭈? 그리고 네가 구해다 줄 수 있는 건 내가 다 구할 수 있어.”
“하? 네가 운이 좋은 건 알겠지만 나는 무당의…….”
천동의 말은 태천이 던진 목함 때문에 끊겼다.
자신에게 날아온 목함을 자연스럽게 잡아채며 천동이 태천에게 물었다.
“음? 이건 뭐냐?”
“우리 영원한 친구를 위한 절친의 선물이랄까?”
태천의 말에 천동이 의아해하며 목함을 열었다.
천동은 목함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청량감에 흠칫 놀라며 목함 안에 든 것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기함했다.
“컥! 너…… 너! 이거 어디서 구했어!!”
“아? 그거 오다가 주었다.”
천동이 보고 놀란 것은 다름 아닌 태청단이었다.
“이건 오다가 주울 수 있는 그런 물건이 아니란 걸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쉿! 그냥 주면 처먹어, 인마!”
“이런 귀한 물건을 내가 어떻게 받…….”
이어지는 천동의 말에 태천이 품에서 3개의 목함을 더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래도 안 먹을래? 그럼 내놔.”
“……큼큼, 잘 먹을게 태천아.”
천동은 태천이 뺏기라도 할까 냉큼 품속에 목함을 갈무리했다.
못 받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냉큼 품속에 목함을 넣는 천동의 모습을 보고, 태천이 축객령을 내렸다.
“됐지? 이제 끝났으니까 나가봐라. 짐 싸야 돼.”
태천의 축객령에 천동이 품속에 있는 목함을 한 번 보고는 감사 인사를 하며 방을 빠져나갔다.
“고맙다, 태천아. 그리고 다음에 만날 때는 안 질 거다.”
“오냐. 그런데 다음에 만날 때는 화경이다.”
“뭐?”
“뭐? 는 무슨 뭐야, 다음에 만날 때 나는 화경일 거라고. 나하고 싸울 거면 못해도 최절정은 달고 와라.”
몇 년 만에 최절정에서 화경에 오르겠다는 태천의 광오하다면 광오한 말에, 천동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도 너의 뒤만 보고 있을 순 없으니 힘내야겠다. 네가 이걸 준 것은 실수였다고 땅을 치고 후회하게 해주지.”
천동은 그리 말하며 목함이 들어 있는 품을 툭툭 치며 말했다.
“쯧. 그거 하나 줬다고 따라잡힐 거면 내가 다 먹었다.”
“큭큭큭…… 그럼 나중에 보자고.”
“아! 그런데 무성진이랑 하태로는 어떻게 되었냐?”
태천의 말에 천동이 꽤나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두 사람은 어차피 단전이 파괴되어 무인으로서 죽었지만, 혈교에게 정보를 누출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아마 죽게 되겠지. 아니, 그럴 거다. 장문인이 그렇게 정하셨어. 아마 바뀔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단호한 장문인의 모습은 난생처음 봤으니까 말이야.”
천동의 단호한 말에 태천은 안심했다.
‘그래도 정에 휘둘리지는 않는군. 그나마 다행이네.’
태천은 정에 휩쓸려 그릇된 선택을 하는 경우를 곧잘 봤다.
그렇기에 장문인이 그릇된 판단을 할까 걱정했던 태천의 염려와는 다르게, 장문인은 공과 사를 구분해서 잘 처리했다.
일이 잘 처리된 것을 확인한 태천은 다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태천이 말없이 다시 짐을 꾸리기 시작하자, 천동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 * *
“잘 가게.”
“잘 가라.”
청운자와 천동은 짐을 다 꾸린 태천 일행을 배웅해 주었다.
그런 그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태천과 호섬, 그리고 철현은 무당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슬슬 청운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려오자 태천은 품에서 목함 두 개를 꺼내 호섬과 철현에게 각각 하나씩 건네주며 말했다.
“옜다! 받아라.”
“오옷! 드디어!”
“음? 이게 뭡니까?”
태천이 건넨 게 무엇인지 얼추 알고 있는 호섬은 희희낙락하며 목함을 받았고, 목함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철현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런 철현을 위해 태천이 설명해 주었다.
“그거 태청단이다.”
“예?! 이…… 이게 그 태청단이란 말씀이십니까? 무당의……?”
“응. 그거 맞아.”
태천의 즉답에 철현은 기겁을 하며 누가 볼세라 재빠르게 품에 목함을 쑤셔 넣으며 말했다.
“이…… 이렇게 귀한 걸 막 나누어 주셔도 됩니까?”
“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