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48화
“저는 뭐 진영이와 같이 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진영이가 곧 벽을 부술 것 같기에 이미 벽을 부순 제가 옆에서 봐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일찍 들어갔다고 하셨는데…… 돌아가서 뭐 하셨습니까?”
“피곤하고 몸도 안 좋아서 일찍 잤습니다.”
“증명 가능하십니까?”
자신을 의심하는 태천의 말에 태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절정 이상의 제자에게는 따로 숙소가 주어져서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증명해 줄 사람이 없군요…….”
“음…… 알겠습니다. 이제 직전제자분들도 돌아가셔도 될 것 같군요.”
태천의 말에 태로는 가볍게 묵례를 하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돌아서서 태천에게 물었다.
“그런데…… 탐정님도 무공을 조금 익히신 것 같습니다? 검은 안 가지고 계시지만…….”
“아아~ 저도 호신용으로 조금 익혔습니다. 이류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검은 숙소에 두고 왔고요.”
“아하! 그래도 이류시면 대단하시군요! 속가제자들이 대부분 이류인데…… 과연 총명하신 것뿐만 아니라 무에도 어느 정도 재능이 있으셨군요.”
“하하하. 절정의 오르신 하 소협이 이렇게 금칠을 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럼 이만…….”
태천의 말에 태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직전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무언가 성과가 있었는가?”
태로가 돌아가고 멀리서 지켜보던 성진이 다가와 태천에게 물었다.
그러자 태천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예! 어느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음…… 네 아마도 제자들 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휴우…… 알겠네. 자네도 이제 들어가 보게.”
성진은 태천에게 그리 말하고 터덜터덜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성진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태천은 네비에게 말했다.
“네비, 내가 아까 말해둔 녀석 위치 추적 잘해.”
‘이미 실시 중입니다. 필요하실 때 언제든 말해주세요.’
“음음, 역시 네비는 믿음직스럽다니까?”
네비의 완벽한 일 처리에 태천은 빙긋 웃으면서 호섬과 철현이 기다리고 있는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럼 오늘 일도 대충 끝났으니 대환단이나 만들러 가볼까나.”
하루 일과도 끝났으니 이제는 기연을 만들 차례였다.
* * *
약 3시경에 연무장에 도착하여 약 2시간가량을 제자들을 조사하는 데 쓰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자 한 5시경쯤이었다.
태천이 숙소에 도착하자 천동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제 독은 잘 떨쳐냈는지 혈색도 좋았고 무엇보다 천동이 다시 쾌활하게 변해 있었다.
“왔냐? 어떻게 됐어. 범인은 잡을 것 같아?”
“당연한 거 아니냐? 이미 나는 범인 모가지 딸 준비하고 있다고.”
“호오 자신감이 어마어마한데?”
“됐고 밥이나 빨리 먹자.”
“엥? 벌써 밥 먹게? 아직 저녁도 안 됐는데?”
천동의 말에 태천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응, 빨리 밥 먹고 할 게 있거든.”
“음…… 뭐 수련이라도 하려고 하냐? 일단 알겠다. 준비하고 있을게.”
그리 말하고는 천동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명이 사라지자 두 명이 나타났다.
“형님! 오셨습니까?”
“잘 다녀오셨습니까? 어찌 범인의 윤곽은 보이십니까?”
“당연하지! 나를 뭐로 보는 거야!”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에 철현과 호섬이 오오!! 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당연히 저희는 형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음음!!”
“쯧 싱거운 녀석들 같으니. 일단 난 내 방에 있을 테니까 들어오지 마라.”
““넵!!””
둘은 동시에 차렷! 자세를 하며 대답하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뭐 한 번 말하면 잘 들으니까 상관없겠지. 들어와도 상관은 없지.’
그래도 이왕 줄 거면 깜짝 선물이 좋지 않겠는가? 벌써부터 대환단을 받고 놀랄 녀석들의 얼굴에 태천이 키득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 * *
방으로 들어간 태천이 자신의 기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태천이 언제나 보따리에 기연들을 넣어두고 다니는 것을 알고 있는 탐이 잠에서 깨어나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뭐냐? 간식 주는 거냐? 오! 그거그거! 맛있겠다!! 나 그거 줘라!
이번에 무당산에 있는 기연들을 뒤지다 보니 저번에 구했던 흑삼 같은 것들도 꽤 구했기에 탐에게 간식거리를 줘도 상관없겠다 싶어 태천은 흑삼 하나를 집어 들어 탐에게 던져주었다.
“옛다! 오늘 내 목숨값은 그걸로 퉁이다?”
-쳇, 목숨값으로 영삼 하나라니 쩨쩨한 놈.
흑삼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탐이 태천에게 따지자 태천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뱉어.”
우걱우걱우걱…….
그 뒤로 탐은 말없이 흑삼을 씹었다.
그런 탐이 귀여웠는지 태천은 흑삼 하나를 더 던져주었다.
-오옷!!
‘왠지 이거 애완동물 하나 키우는 것 같은데?’
마치 고양이나 개를 하나 데리고 키우는 기분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왼팔에서 빠져나와 흑삼을 씹어 먹고 있는 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번째 흑삼까지 다 먹자 어느 정도 배가 찬 듯 탐은 다시 왼팔로 돌아갔고 그제야 태천은 대환단을 만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이제 탐은 들어갔고…….”
파라락…… 파라락…….
환단 제조서를 훑으면서 대환단이 있는 페이지를 찾던 태천에게 새로운 환약들도 눈에 띄었다.
“오! 먹으면 바로 피로가 사라지는 환단, 먹으면 하루 동안 배가 안 고픈 환단, 먹으면 몸의 재생력이 향상하는 환단. 이거 이거 대환단만 있는 게 아니었는데?”
피로가 사라지는 환단은 고된 수련을 마치고 먹으면 좋고 하루 동안 배고픔이 사라지는 환단은 만약 어딘가에 고립되는 상황이 생길 때 구조될 때까지 버티기에 좋은 환단이었다. 그리고 재생력이 향상하는 환단은 상처 회복을 빨리할 수 있으니 좋았고 말이다.
“뭐 그래도 일단은 대환단이 최우선이지.”
앞에 말했던 단들도 다른 여타 단들보다는 좋은 것은 확실했지만…… 그래도 환단의 꽃은 대환단과 소환단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번에는 대환단 제조법이 적혀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대환단 제조법]
재료는 만년설삼 반 뿌리, 만년하수오 반 뿌리, 청밀(푸른 꿀) 두 숟갈, 녹용, 공청석유.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만년설삼과 만년하수오를 곱게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준 뒤, 거기에 청밀을 넣어 잘 뭉치고 다 뭉친 뒤에 잘 갈은 녹용을 다시 뿌린다. 그리고 다시 뭉치기를 반복한다.
그 뒤로 어느 정도 뭉쳐졌다 싶으면 공청석유를 몇 방울 넣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뭉치고 난 뒤 약 하루 간 잘 보관해 둔 뒤 떼어내서 환단의 모양을 잡으면 완성이다.
거기에 효능을 더하고 싶다면 재료의 양을 늘리면 된다.
하지만 하나의 재료의 양이 늘어나면 다른 재료들도 똑같이 늘어나야 한다.
그리고 청밀의 경우에는 다른 꿀 종류가 있다면 넣어도 상관없다.
다만 청밀은 수기(水氣)를 머금고 있기에 재료들이 조화롭게 뭉쳐지게 하므로 웬만하면 청밀을 넣을 것.
위와 같은 재료로 만든다면 대환단이 총 두 알이 나온다.
태천은 대환단의 제조 방법을 꼼꼼히 읽고는 제조서를 덮었다.
“간단하네.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야.”
사실 대환단은 재료 때문에 귀한 게 맞았다.
대환단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그냥 먹어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은 더욱더 완벽하고 안전하게 흡수하기 위해서 대환단이라는 이상적인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제조서를 다 읽고 태천은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재료들을 곱게 빻기 위해 주방에서 조그마한 절구 하나를 가져왔다.
그러고는 호섬을 불렀다.
“호섬아!!!!”
“왜요, 형님?? 저 지금 수련 중인데.”
호섬은 수련 중이었는지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야!! 빨리 빨리!! 진짜 급해 빨리!!”
태천이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자 호섬을 부리나케 달려와 방문을 열었다.
“허억 허억…… 무슨…… 허억……일이에요…… 허우…….”
정말 급하게 뛰어왔는지 호섬은 헐떡이면서 태천에게 물었고, 태천은 그런 호섬에게 돈주머니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뭐긴 뭐야 돈이지.”
“저 용돈으로 하라고 주시는 겁니까?”
“뭔소리야? 마을 내려가서 녹용 좀 사와라.”
태천의 말에 호섬은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제가 그걸 왜 사 와요!!”
“내가 불러서 왔으니까, 그냥 갔다 와.”
태천의 말에도 호섬은 억울하다며 계속 토로했고 결국 태천은 철현도 불렀다.
“형님, 왜 부르셨습니까?”
“너희들 중에 누가 녹용을 사러 갈지를 정하기 위해서 불렀다.”
“에?”
“가기 싫은가보다?”
철현이 온몸으로 가기 싫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사실 무당파는 산꼭대기에 있고 녹용을 파는 약방이 있는 마을은 산 중턱도 아니고 그냥 아래까지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둘 다 가기 싫으면 가위바위보 하자.”
““가위바위보가 뭐예요?””
둘은 동시에 그리 답했다. 그러자 태천이 아차 하며 말했다.
‘아 맞다. 여기는 이거 없지.’
가위바위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태천은 가위바위보의 규칙을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역시 절정의 무인답게 머리는 참 좋은 둘이었기에 이해가 빨랐다.
규칙을 듣고 나서 바로 가위바위보를 시작했다(물론 태천은 안 했다.).
““안 내면 진 거 가위! 바위! 보오오!!!!””
둘은 정말 진심을 담아서 가위바위보를 했고 태천은 태어나서 저렇게까지 가위바위보에 목숨 거는 것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가위바위보는 패자가 있는 게임이었고 이번 게임의 패자는…….
“끄으으윽…….”
가위를 낸 호섬의 패배였다.
“남자는 주먹이지, 임마!!!”
주먹을 내고 이긴 철현은 호섬의 면전에서 주먹을 흔들어 보이곤 재빠르게 방 밖으로 도망갔다.
물론 잘 다녀오라는 응원을 하면서 말이다.
“크으윽…… 바위 낼걸…….”
그리고 패자는 쓸쓸히 돈주머니를 들고 약방으로…….
“아, 그리고 녹용 사 오라는 이유가 대환단 만들려고 사오라는 거니까. 다 만들면 너도 하나 줄게.”
태천의 말에 세상을 잃은 것 마냥 터덜터덜 걸어가던 호섬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대…… 대환단이요?”
“그래. 대환단 만들 거니까 빨리 다녀와.”
“네…… 넵!! 저만 믿으십쇼!! 투신님에게 신법을 전수받은 철호섬 아닙니까!!!”
호섬은 그리 말하고는 바람처럼 숙소를 빠져나가 산에서 내려갔다.
“어련히 잘 다녀오겠지.”
이제 녹용을 사러 간 호섬은 잠시 잊고 태천은 먼저 만년설삼을 빻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냥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빻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먹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가루로 만들려고 하니 무척이나 힘들었다.
빻는 게 아니라 짓누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던 결국 태천은…….
“으아아아악!! 제발! 좀! 빻아! 져라!!”
콩콩콩…… 쿵…… 쿵…… 쾅 쾅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