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47화
“대환단…… 제조법?”
환단 제조서에는 다른 환단의 제조 방법이 적혀 있었지만 태천의 눈에는 오직 단 하나! 대환단 제조법에 눈이 고정되었다.
대환단!
무인이라면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먹어보고 싶은 환단으로, 언제나 손에 꼽는 환단으로 먹게 되면 혈도와 혈맥에 있는 불순물들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삼류 무인이 평생을 모아도 모으지 못할 만큼의 내공을 얻게 해준다는, 무당파 하면 생각나는 바로 그 환단이었다.
“역시!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어!!”
방금까지 죽을 뻔했다며 투덜거리던 것은 어느새 잊은 채 태천은 환단 제조서를 얼싸안고 좋아했다.
“자 그러면 재료는 뭐가 들어가려나…….”
좋아하던 것도 잠시 태천은 대환단의 재료 부분으로 눈을 돌렸다.
대환단의 이름값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 재료들도 범상치 않은 재료뿐이었다.
“어디…… 만년설삼 반 뿌리…… 천년하수오 반 뿌리…… 와이씨 이거 그냥 재료들만 먹어도 만수무강할 것 같은데?”
다행히도(?) 태천 자신에게 전부 있는 재료였다.
“크으! 기연 캐러 다니길 잘했다. 이번 일 끝나면 대환단이나 하나 만들어서 먹어야지.”
여태껏 기연을 잘 모아온 자신에게 칭찬을 하며 태천은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침울해졌다.
“아…… 또 여기 올라가야 되지…….”
휘오오오오오!! 후오오옹!!
동굴 밖으로 빠져나와 칼바람이 부는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을 보며 태천은 고개를 푹 숙였다.
“에휴, 내 팔자가 이렇지. 빨리 올라가야겠다. 늦겠는데…….”
남은 시간을 세보던 태천은 성진과 약속한 시각보다 늦은 것을 알게 되자 빠르게 절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 * *
탁탁탁…….
성진은 분명 두 시간 후에 연무장으로 오기로 한 태천이 오지 않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도망이라도 친 건가? 아니면 오는 길에 범인에게 급습을 당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발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러다 세 시간째가 되자 이제는 안 되겠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태천을 찾으러 가려고 할 때 멀리서 태천의 모습이 보였다.
태천이 보이자 성진은 바람처럼 태천에게 달려갔다.
태천의 몰골이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타다다닷!
“태천! 자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혹시 범인에게…….”
자신의 몸을 둘러보며 걱정스레 말하는 성진에게 태천이 아하하…… 하며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굴렀어요.”
“응?”
“그 시간이 좀 남아서 무당산을 둘러보는데 바람이 엄청 세게 부는 절벽이 있길래 신기해 보여서 주변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엄청 센 바람이 불어서 떼굴떼굴 굴러서 이렇게 됐습니다.”
“바람골이구만.”
태천의 말에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골이라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었다.
“예? 바람골이요? 그 바람 부는 절벽 말하시는 겁니까?”
“음음…… 옛날부터 거기서는 바람이 엄청 불었지. 그것 때문에 어린 제자들이 그곳에서 놀다가 목숨을 잃는 일도 비일비재했지. 거기에 무당에 단둘밖에 없던 환단 제조사도 죽었지…… 안타까운 일이야. 그자가 환단 제조법도 들고 있었는데…… 물론 다른 한 사람도 가지고 있긴 했지만 말이야.”
성진의 말에 태천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그 제조법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만…….’
물론 속으로만 말했다. 속으로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이걸 말하면 당연히 무당에서 어떻게든 찾아가려 할 게 뻔했기에 태천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꾸욱 눌러 담았다.
“하…… 하하…… 그거 정말 안타깝네요…… 일단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뭐 괜찮다면 됐다.”
“직전제자랑 속가제자 전부 모여 있나요?”
“아아…… 그래 저번에 무림대회에 나간 애들에게는 미리 언질을 줬으니 알은 채 하지는 않을 거다.”
“감사합니다. 후우…… 그럼…… 가보죠!”
연무장에 모여 있는 제자들을 향해 태천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나는…… 탐정이다…… 그것도 훌륭한……!!’
이제는 자신에게도 약을 파는 훌륭한 약팔이가 다 된 태천이었다.
* * *
뚜벅뚜벅…….
멀리서 걸어오는 태천을 보며 직전제자인 최진영이 투덜댔다.
“쳇, 왜 성진 장로님은 우릴 못 믿으셔서 외부인까지 들이신 거야.”
그런 최진영의 말에 같은 직전제자이면서 천동의 뒤를 이을 거라는 말이 나오는 하태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진 장로님이 말씀하셨잖아, 범인이 우리들을 노린다면 우리들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미안하지만 이해해 달라고. 장로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는데 믿어야지 우리는.”
“끄응…… 알겠어.”
흡사 성인이 어린아이를 타이른 것처럼 태로의 몇 마디에 금방이라도 성질을 부리려던 진영은 수그러들었다.
태로가 진영을 달래고 있을 때 마침 태천이 연무장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저는 강태천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장로님께 들으셨다시피 탐정입니다.”
태천의 말과 함께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무당파의 제자인 자신들을 믿지 못하는 건가? 어딜 탐정 따위가 우리를 조사하느냐. 등등 여러 가지 불만이 터져 나왔다.
옆에 있던 성진은 제자들의 반응에 이렇다 할 대처를 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자신이 가르칠 때는 언제나 말을 잘 듣고 불만하나 토해내지 않던 아이들이 태천을 잡아먹을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그때 하태로가 나섰다.
짝짝!!
하태로가 손뼉을 두 번 치자 불만을 토로하던 이들이 하태로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것을 확인하자 하태로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자자 왜들 그래? 탐정님이 범인인 것도 아니고 무당파 내에 있는 범인을 잡기 위해 오신 거잖아? 그런데 우리 무당파의 제자들이 이렇게 실례를 범하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라 장로님들…… 나아가서 무당파 전체에 먹칠하는 짓이라고.”
하태로의 말에 최진영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저 자식이 한 시간이 늦게 오고도 미안하다는 기색 하나 없다고!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결국 터졌네. 라는 생각을 하며 하태로가 입을 열었다.
“탐정님 행색을 봐. 무당파에는 절경이 많으니 남는 시간 동안 무당산을 돌아다니다가 변을 당하셨나 보지. 무당산에는 절경이 많은 만큼 위험 또한 많으니까 말이야. 대표적으로 바람골이 있잖아? 그리고 진영아 너도 바람골에서 놀다가 큰코다친 적 있지 않나?”
하태로의 지적에 최진영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태로의 말대로 어릴 적에 바람골에서 하태로와 같이 놀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했었는데 그때 하태로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살아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진영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하태로는 빙긋 웃으면서 태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탐정님?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으니 이제 시작하셔도 되겠네요.”
“아아, 고맙습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태천의 질문에 하태로는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하태로입니다. 무당파에 직전제자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아! 물론 천동 사형을 대신해서 말입니다. 저한테는 무척이나 과분한 자리지요.”
“그러시군요. 하태로 소협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별말씀을요.”
태천의 감사 인사에 하태로는 너스레를 떨면서 진영의 옆으로 돌아왔다.
“자, 그러면 이제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태천은 연무장 옆에 놔둔 책상과 의자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붓을 집어 들었다.
“처음에는 속가제자부터 시작하죠.”
태천의 말에 속가제자들은 불평을 터뜨리면서도 태천에게 가 어젯밤에 무엇을 했는지 소상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천은 그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종이 모두 받아 적었다.
사실 태천 자신도 이걸 한다고 해서 범인을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수사 범위는 좁힐 수 있겠지만 잡는 것까진 무리였다.
태천은 진짜 탐정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건 보여주기였다. 성진에게 자신이 이렇게 열심히 수사를 하고 있다는 보여주기 말이다.
실제로 태천은 범인을 알고 있으니 미행이든 뭐든 해서 ‘그 녀석’이 범인이라는 사실만 알아내며 되니까 말이다.
서른 명가량의 속가제자에 대한 조사를 태천이 끝마치자 그제야 태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일단 속가제자분들께서 조사는 끝나셨으니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럼 다음은…… 직전제자분들이 와주십시오.”
직전제자들은 속가제자보다 수가 적었기 때문에 시간을 훨씬 단축되었다.
중간중간 태천을 알아본(무림대회에 나왔던) 이들은 눈인사를 보냈고, 그런 그들의 눈인사를 대충 받아주며 조사를 계속했다.
그리고 길고 길었던 줄이 거의 다 끝나고 이제 딱 두 명만이 남았다.
최진영과 하태로였다.
하태로가 마지막 순번이었는지 최진영이 먼저 걸어왔다.
그러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쾅!!
물론 바른 자세로 앉았다고 말하진 않았다.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최진영은 껄렁대며 말했다.
“외부인이면 적당히 설치고 가지? 당신 이러다가 범인 못 잡으면 진짜 아주…….”
최진영이 하는 말을 싹둑 끊으면 태천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이름이?”
“윽…… 최진영.”
“음…… 어젯밤에는 뭐하셨죠?”
“쳇, 수련했다. 곧 있으면 벽을 깰 것 같았거든.”
“호오 젊어 보이시는데 절정의 벽을 깨신다니 대단하시네요.”
“대단은 개뿔이 대단하네. 당장 내 뒤에 있는 저놈은 벌써 절정에 천동 대사형은 최절정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진영의 말에 태천은 꽤 놀랐다.
“절정이라니 요즘 무당은 전성기로군요?”
태천의 말에 진영의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헹! 당연하지 우리 무당은 정파 최고의 문파라고!”
“그렇죠. 무당은 명문이죠…… 그래서 어젯밤에 어디서 수련하셨습니까?”
“어디긴 어디야. 여기 연무장에서 했지. 그리고 어제 독연을 솟아오르는 걸 보고 무슨 사건이 터졌나 해서 다시 내 숙소로 돌아왔고.”
“그럼 같이 있던 사람이 있습니까?”
“아아! 저 뒤에 있는 녀석이랑 같이 했는데 저 녀석은 어제 몸이 좀 안 좋다고 해서 일찍 들어갔어.”
“흠, 알겠습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진영은 의외로 태천의 질문에 대답을 잘해줬다.
처음의 싸가지 없는 모습으로 계속했으면 태천은 탐정이고 나발이고 한 대 때리고 시작하려 했는데 의외로 잘 풀리자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진영을 돌려보냈다.
“그럼…… 이제 마지막이네요. 하 소협?”
“빨리 끝내고 들어가시죠. 뒤에서 애들이 기다려서 말이죠.”
아까와 같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에 태천도 마주 웃으면서 말했다.
“예, 그러면 빨리 시작하죠. 이름은 뭐 알고 있고…… 어제 뭐 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