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44화
법의 발을 밟는 법도 외우고 검을 휘두르는 것까지 모조리 외워야 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머리로는 제대로 외우지도 못한다.
그러니 고난이도의 검법이나 보법 등을 익혔거나 무공의 수위가 높은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가 좋다고 보면 된다.
아니면 정말 수천 번을 휘두르면서 몸에 체득시키거나 말이다.
뭐 이쪽도 다른 의미로 괴물이지만.
그런 무정선의 말에 태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제가 범인을 잡는 수사대에 포함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약을 팔기 시작하는 태천이었다.
* * *
태천의 환상적인 약팔이에 넘어간 무정선은 홀린 듯이 태천을 현재 범인을 쫓고 있는 수사대의 대장, 무성진에게 데려갔다.
무정선은 무성진에게 태천을 데려다주고 성진에게 태천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보게 성진! 이쪽은 이번에 중독당했던 천동의 친우인 태천이네. 그리고 태천 이쪽은 나와 같은 장로직에 있는 무성진이네. 자네가 부탁했던 수사대를 이 친구가 이끌고 있지. 인사나 나누게.”
무정선과 같은 무자 돌림에서 어렴풋이 눈치채긴 했지만 역시나 장로였다.
확실히 무당에서 이번 일에 정말 인력을 갈아 넣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긴 그때는 천동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지.
그런 생각을 하며 태천은 무성진에게 공손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일단은 수사대에 들려면 이자에게 잘 보이는 게 중요했으니까 말이다.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벽력도선님.”
무당에는 나이가 들거나 배분이 높을수록 신선의 칭호가 붙은 이들이 꽤 많았다.
아마 무당이라는 특성 때문이지 싶다.
그리고 태천이 자신의 별호를 알고 있자 무성진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 내 별호를 알고 있다니 너 꽤 맘에 드는걸?”
전생에서 꽤 얌전한 사람들만 모여 있던 무당에서 얼마 없는 호탕한 사람이었기에 이 사람이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던 태천은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무성진 이 사람은 남이 자신을 알아봐 주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일단 적이어도 자신을 알아보면 무척이나 좋아했으니 말 다했지 않은가? 물론 그 뒤로 전부 다 무성진의 도에 박살 나 죽었지만.
“무림에 널리 퍼진 벽력도선님의 별호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살살 아부를 하는 태천의 말이 기분 좋은지 성진은 껄껄 웃으며 정선에게 말했다.
“으하하! 정선! 이 녀석 마음에 드는데?”
“허허허…… 맘에 들면 다행이군.”
“그런데 나는 왜 찾아온 거지? 수사 때문에 요즘은 꽤 바빠서…… 아쉽게 되었군. 이만 가봐야…….”
수사의 일로 바쁘다며 수사대로 돌아가려던 성진을 손을 태천이 잡으며 말했다.
“그것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응? 그것 때문? 수사대 때문에?”
“예! 제 친우를 중독시킨 범인을 꼭 제 손으로 잡고 싶습니다!”
“오우!! 이 자식 우정을 좀 아는 놈인가?”
그리고 벽력도선 무성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태천이 파고들었다. 바로 우정과 의리였다.
“그래서 소면검선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부탁을 하고자 찾아왔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그리고 태천의 작전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크하핫! 당연 가능하지! 정선! 이 녀석은 내가 데려가지.”
“허허, 그러게. 내가 잘 말해주지.”
“내가 이래서 너를 좋아한다니까!!”
정선의 인가도 받았겠다.
성진은 태천의 어깨를 팡팡 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솥뚜껑만 한 손이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자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태천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성진의 장단에 어울려주었다.
“그럼 가자! 범인 잡으러! 크핫!!”
“옙!”
그렇게 태천은 수사대에 합류하게 되었다.
* * *
태천이 수사대에 합류하게 된 그 시작 호섬과 철현은 천동과 함께 있었다.
“에휴, 형님은 왜 우릴 두고 가신 거람.”
“뭐 우린 이런 쪽으론 별로니까.”
“큭…… 반박할 수가 없다…….”
호섬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이 범인을 잡는 모습이 상상이 안 갔으니까.
검으로 베어내는 거면 자신 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천동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몸은 괜찮으십니까?”
호섬의 걱정 어린 말에 천동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태천 녀석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태천과 대화할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답을 하는 천동이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그런데 태천이 두고 갔으면 방문인 숙소로 가시지 왜 여기에……?”
확실히 무정선은 태천을 데리고 가기 전에 방문인 숙소의 위치를 알려주고 갔지만 호섬과 철현은 이곳에 남아 있었다.
“아 그건 말입니다…….”
천동의 질문에 호섬이 답하려 할 때였다.
의원 안으로 무언가가 데구르르 굴러왔다.
그리고 이내…….
푸쉬이이익!!
“바로 이런 상황 때문입죠!!”
“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업어!”
“알았어! 넌 바람이나 만들어!”
굴러온 무언가에서 푸쉭하는 소리와 함께 보라색의 연기가 뿜어나오자 둘은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다.
호섬은 누워 있던 천동을 업고 철현은 풍신보를 밟으며 바람을 뿜어내며 연기의 전진을 막아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천동이 어리둥절할 때 호섬이 품에서 물이 묻은 수건을 꺼내 천동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걸로 입과 코를 가리십시오! 빠져 나갈 겁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저희도 모릅니다! 형님이 가지고 있으라고 했고 일이 터지면 건네라고 했습니다.”
호섬의 말에 천동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태천이? 대체 어떻게?’
천동이 생각을 할 때 호섬과 철현은 단숨에 독연을 뚫고 의원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오자 호섬과 철현은 참았던 숨을 내쉬며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시작했다.
“후욱후욱…… 아우씨! 진짜 왔네.”
“후우…… 그러게나 말이다. 정말 큰일 날 뻔했네.”
의원을 빠져나오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둘을 향해 천동이 물었다.
“대체 어떻게 저를 죽이려 할지 아신 겁니까?”
천동의 말에 호섬이 머쓱해 하며 답했다.
“저희도 몰랐습니다.”
“예?”
“형님이 그 소면검선님과 함께 가실 때 저희에게 귀띔을 해주시고 갔습니다. 친구분이 살아 있다는 걸 중독 시킨 범인 쪽에서도 알고 있으니 아마 다시 노릴 거라고……. 그러면서 수건을 건네주시고 물을 묻혀두라고도 말해줬습니다.”
태천의 안배에 천동은 적잖이 놀랐다.
‘이 녀석 머리가 이렇게 좋았나?’
다시 한번 습격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보다 태천의 비상한 머리에 감탄하는 천동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멀리 떨어진 숲속에서 복면을 쓴 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젠장! 지지리도 운이 안 따라주는군! 대체 저놈들은 뭐야?”
팍!
계획대로 안 풀리는 일 때문에 애꿎은 땅에 화풀이한 복면인은 어둠 속으로 몸을 돌렸다.
* * *
멀리서 보이는 보라색의 연기에 태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보라색 연기에서 느껴지는 저릿함은 아무리 봐도 독이었다.
옆에 있던 성진도 그것을 느꼈는지 연기가 솟아오르는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어이! 너도 범인을 잡고 싶다고 했지? 따라와!”
그 말만을 남기고 성진은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리고 태천이 그런 그의 곁에 바짝 붙어 달렸다.
분명 자신이 먼저 출발했는데 어느새 자신의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태천의 모습에 성진은 약간 놀랐지만 개의치 않고 속도를 점점 올리기 시작했다.
둘이 나란히 하지만 빠르게 달린 덕분에 1분 만에 연기가 솟아오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곳에는 역시 호섬과 철현 그리고 천동이 바닥에 누워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태천 자신이 안배해 둔 덕택 덕분인지 독에 중독된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누워 있던 호섬과 철현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이 있자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빼 들려 했지만 태천의 얼굴을 확인하곤 다시 땅에 드러누웠다.
“아으! 형님 오시면 말이라도 하지. 힘들어 죽겠는데 괜히 일어났네.”
“…….”
철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호섬과 똑같은 기분인가보다 하고 태천은 관심을 끊었다.
“천동은? 괜찮냐?”
“엑! 우리는 안 물어보는 겁니까?”
“늬들은 내가 말해줬는데 당했으면 그냥 나가 죽어야지? 그렇지?”
“네…… 넵! 당연하죠!! 저흰 건강하니 친구분부터 챙기세요!”
태천의 서늘한 미소에 호섬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천동을 가리켰다.
그런 호섬의 행동에 태천은 미소를 풀고 천동에게 다가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