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42화
“그런데 어쩌죠……? 지금 대사형께서는 요양 중이십니다.”
‘젠장! 늦었다!’
지혁의 말에 자신이 한발 늦었다는 사실에 다급하게 지혁을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왜? 대체 어디가 아파서 요양 중 이라는 거야?!”
태천의 질문 공세에 지혁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답하기 시작했다.
“그게 말입니다…….”
그 뒤로 이어진 지혁의 말은 이러했다.
약 한 달에서 두 달 전, 대사형인 천동은 연무장에서 수련을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했는데, 다음 날 그가 하도 나오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한 다른 직전제자가 그를 찾으러 그의 방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그의 방에서 그가 본 것은 독에 중독된 채 안색이 시퍼레진 천동이었다.
독에 중독된 천동을 발견한 직전제자는 다급하게 무당파 내부에 있는 의원에게 그를 데려갔고, 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은 없었지만 지독한 독에 당했는지 몸 내부에 독이 많이 남아 있어서 과도한 수련은 할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도 요양 중이라고 했다.
지혁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은 태천은 이를 뿌득 갈며 물었다.
“으득…… 범인은 누군지 밝혀졌나?”
“쩝…… 안타깝지만 범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대사형은 누구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범인을 특정 짓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사를 담당한 분께 여쭈어보니 아마 ‘질투’로 인해 저지른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아…….”
‘그 자식이네.’
자신을 전생에 무당에서 쫓겨나게 만든 걸로도 모자라, 내공까지 폐하게 만든 주범.
바로 그 자식이 천동의 독 중독 사건의 범인일 것이다.
“그래서 아마 대사형을 뵙지는 못하실 것 같습니…….”
태천은 자신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지혁에게 손사래 치면서 말했다.
“아니, 뭐 너 때문도 아닌데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지. 그런데 말이야…….”
사과하는 지혁에게 태천이 지혁에게 귓속말을 했다.
“내가 그 범인 잡아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예에??”
말을 하며 태천이 씨익 웃었다.
전생에서는 범인 때문에 파문에 내공까지 폐해졌으니…… 이번에는 자신이 탐정이 되어서 잡아줄 생각이었다.
* * *
태천의 말에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보려는 심정인지 아니면 진짜 자신을 믿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혁은 태천과 호섬, 철현을 데리고 무당산을 올랐다.
지혁의 뒤를 졸졸 쫓으면서 호섬과 철현이 태천에게 물었다.
“형님, 근데 정말로 범인을 잡으실 수 있겠어요? 형님이 범인을 잡는다는 게…… 상상이 안 가는데…….”
“맞아요. 괜히 갔다가 개쪽당하는 거 아니에요?”
자신을 믿지 못하고 계속 갔는데 못 찾으면 어쩌냐, 괜히 개쪽당하지 말고 천동만 잠깐 보고 오자는 둥 계속 궁시렁대자 처음에는 꽤 자세하게 답해주던 태천의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왔다.
“야.”
“예? 왜요, 형님?”
“닥쳐.”
“넵!”
그 뒤로 묵묵히 태천 일행은 무당산을 등산했다.
그리고 한참을 올라가자 그제야 무당파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당파가 보이자 태천은 꽤 오묘한 마음이 들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거의 20년 만에 다시 보는 무당파의 모습이었기에 태천은 자신의 눈에 무당파의 모든 것을 담기 시작했다.
연무장에 오와 열을 맞춰 서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무당파의 무인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무공사범들과 아직은 나이가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자신이 보아왔던 무당파의 모습들과 똑같았다.
하지만 감상은 여기까지,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자각하곤 태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감성의 젖어 있던 마음을 떨쳐냈다.
‘정신 차리자. 지금은 전생도 아니고 내가 무당파에 얽매일 이유 따윈 하나 없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나를 버린 사문이니 내가 정을 붙일 이유도 없지.’
그때 당시 태천은 자신의 사부와 무당의 장문인에게 정말 빌고 또 빌었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싸늘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아무리 자신이 무공을 잘 익히고 이름이 조금 날리긴 했지만, 그래 봐야 천동의 밑이었고 그런 내가 천동에게 앙심을 품고 독을 먹였다고 아예 확신을 한 채 진범은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방에서 나온 증거로 자신을 추궁하고 결국은 자신은 범인으로 단정 지어 내공을 폐한 뒤 자신을 파면시켰으니까.
‘뭐, 어차피 이제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가지고 추궁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애초에 독을 먹인 ‘그 녀석’ 때문이지 장문인과 과거 자신의 사부를 추궁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자식이 독을 안 먹였다면 그들이 자신을 몰아붙일 이유도, 내공을 폐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자신이 분노해야 할 대상은 ‘그 녀석’이지 그들이 아니었다.
‘어디 목 잘 닦고 기다려라.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못 빠져 나갈 거다.’
미래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았지만 ‘그 녀석’이 천동에게 독을 먹였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즉, 큰 틀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힘으로 잡는 게 아니라 증거로 잡아주마.’
자신은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으니 다른 이들과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범인의 왔던 길로만 되돌아간다면 증거를 찾기 매우 쉬울 테니까 말이다.
태천이 이렇게 증거를 찾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지혁이 태천에게 말했다.
“다 왔습니다. 이 안에 계십니다.”
그리 말하고는 유지혁은 뒤돌아서 걸어갔고, 호섬과 철현은 그에게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런 둘을 뒤로하고 태천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 태천이 맡은 것은 방 안 가득한 약 냄새였다.
‘흐으…… 이 냄새도 오랜만이네. 옛날에는 진짜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에 왔었는데.’
무당파에 하나 있는 의원이기도 했고, 태천 자신은 정말 하루 종일 검을 휘두르고 대련을 했으니 상처가 온몸에 났었으니까 말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검을 휘두르는 게 정말 재밌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태천이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가 인기척이 느껴지는 방문을 열었다.
“어라? 태천?”
그리고 방안에는 천동이 침상에 누워 있었다.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침상에 누워 있는 천동을 향해 태천이 씨익 웃어주며 말했다.
“여어~ 꼴이 말이 아니네? 천동아 많이 아프냐?”
“아프긴, 형님이 아파 보이냐?”
“큭큭큭, 형님은 무슨 나보다 약한 게.”
태천의 말에 천동이 발끈하며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약하긴 누가 약해, 임마!!”
“약하니까 독에나 당하고 쯧쯧쯧.”
태천의 말에 천동이 흠칫하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여기로 온 거냐?”
“유지혁이 알려주던데.”
태천의 말에 천동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어휴…… 그 성실한 녀석 같으니.”
“근데 너 걔 알아?”
“응? 당연하지. 아마 내가 아니었다면 걔가 무당파의 얼굴이 되었을 텐데 아는 게 당연하지.”
“하긴 보니까 벌써 절정에 한 발 걸친 것 같더라.”
“큭큭큭, 이미 절정은 훌쩍 넘은 놈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임마? 그러는 자기도 넘었으면서!”
오랜만에 만난 둘은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침상 위라는 대화를 하기 썩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둘은 정말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이야! 벌써 최절정이야? 빠르긴 빠르구나?”
“너도 금방 올 거잖냐. 벌써 최절정의 벽을 부수고 있다며.”
“그래도 느리잖아. 하아…… 빨리 수련을 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으니…….”
태천은 천동과 이야기를 하며 천동이 어느새 최절정의 벽을 부수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자신이야 무공을 익히라고 하늘이 내려준 무신지체에 각종 영약에 기연들을 싸그리 흡수하고 있으니 23살에 최절정이라는 괴물 같은 경지에 올랐지만, 천동은 그것도 아니었다.
영약 몇 개에(물론 그 영약도 남들은 구경도 못 하는 거지만) 좋긴 좋지만 무신지체보다는 한 끗발 낮은 천무지체이니 자신보다 무공을 익히는 속도도 차이가 날 텐데 아직도 자신보다 한두 걸음밖에 뒤처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에휴, 얼마 안 남으면 뭐하냐. 몇 달 동안은 침상에만 누워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리고 이 손으론 검도 못 잡는데 뭐.”
그리 말하면 부르르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보이는 천동의 모습에 태천이 물었다.
“독 때문이냐?”
“어. 독이 아직 몸에 남았단다. 얼마나 지독한 독인지 의원이 혀를 내두르더라. 쯧.”
자신의 몸에 아직도 독이 남았다는 게 징글징글한지 천동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런 천동에게 태천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야, 내가 독 없애주면 나한테 뭐해줄래?”
“그럼 내가 너한테 형님이라고 부른다.”
천동이 어이없는지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천동의 대답을 들은 태천이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 잊지 마라. 무르기 없다.”
그리 말하며 태천은 독을 다스리는 심법, 섭독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어…… 야 너 뭐하냐? 그 손 뭐야! 야! 얌마!!”
천동은 태천이 갑자기 자신의 손을 서서히 들어 올리면서 흐흐흐하면서 웃자 불길함을 느끼고 기겁하며 도망가려 했지만, 독에 중독되어 신체 능력이 떨어진 그로서는 최절정에 이른 태천의 손을 피하지 못했고, 결국 태천에게 손목이 잡혔다.
“너…… 너 임마!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손목이 잡히자 천동은 체념한 듯 태천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했다.
그러자 태천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네 몸에 있는 독 뽑아내려고.”
“독을? 니가 어떻게? 넌 독공도 안 익혔…….”
태천은 천동의 말은 깔끔하게 무시하고는 섭독심법을 운용하여 기를 천동의 몸속으로 보냈다.
의원이 하는 진맥을 짚는 일과 비슷했다.
태천이 보낸 기가 천동의 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태천에게 돌아왔다.
천동은 자신의 몸에 다른 사람의 기가 들어갔다가 나가자 기분이 이상한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으…… 방금 뭐냐? 기분이 매우 안 좋아졌어.”
“어허! 지금 너를 치료하려는 사람한테 그런 말 하면 치료해 주고 싶을까?”
“에라이…….”
태천의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는지 천동은 고개를 삐딱하게 괴고는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천동의 표정을 읽었는지 태천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네 몸을 한 번 쓱 훑어봤는데. 왜 독이 안 사라지는지 대충은 알 것 같다.”
태천의 말에도 천동은 그러려니 하면서 말해보라고 했다.
아직까지도 안 믿는 눈치기에 태천은 속으로 참을 인을 새기면서 설명을 했다.
“독이 몸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이유는 간단해. 독이 니 피 속에 흡수되어 있어서 네 피를 아예 다 뽑아내지 않는 한 아마 완벽하게 다 뽑아내기는 힘들 거다.”
태천의 심상치 않은 말에 천동은 삐딱하게 앉아 있던 자세도 바르게 하고는 물었다.
“그…… 그럼 나는 계속 독을 몸에 달고 살아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