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25화
태천이 오독문을 떠나 운남을 나온 지도 어느새 2주일이 되었다.
초반 며칠에는 말을 타고 이동했지만 가면 갈수록 목가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동료들 생각에 말은 중간에 지나가다 보이는 마을에 싼값으로 팔고는 추섬보를 활용하면서 뛰어왔다.
넘치는 내공에 무신지체의 엄청난 체력으로 달리면서 빠르게 가기 위해서라면 산을 넘는 것도 서슴지 않았고, 깎은 듯한 절벽조차 태천의 천마군림보로 가볍게 뛰어넘으면서 빠르게 강릉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태천의 노력 덕분인지 단 2주 만에 강릉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오랜만에 보는 강릉의 모습에 태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크으…… 진짜 오랜만이다. 강릉.’
‘그러게 말입니다.’
‘네비야, 처음 목 소저 만난 것 기억하냐?’
‘기억납니다.’
‘큭큭 그것도 다시 생각해 보니 기연이다. 그지?’
‘…….’
‘쯧쯧 사랑을 모르는 녀석 같으니…….’
네비와 얘기를 나누고는 태천은 강릉을 향해 추섬보를 펼쳤다.
* * *
호섬과 철현은 오늘도 밤새 주루에서 술을 마시고는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거리에 나섰다.
“어우, 죽겠다. 어제는 너무 달렸나?”
“끄윽…… 그러게…… 어우 속 쓰려. 가는 길에 국밥이나 한 그릇 할까?”
“크으…… 또 좋은 소리 하는구만. 가자! 국밥 먹으러!”
둘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곤 낄낄대며 강릉에서 유명한 국밥집으로 향했다.
역시 유명한 집이라 그런지 국밥집은 이미 숙취 해소나 아침을 때우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몇 분이십니까?”
자신들을 향해 총총 걸어와 주문을 받는 꼬마 아이를 보며 싱긋 웃어주며 말했다.
“이렇게 두 명이야.”
“넵,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자리로 안내해 주는 꼬마 아이의 뒤를 따라가며 호섬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다.”
“음? 왜?”
“이제 곧 형님이 오실 때가 다 됐는데, 이렇게 놀아도 되나?”
“뭐 어때, 우리도 밤까지 수련을 하고 이렇게 노는 건데 말이야.”
“쩝 그런가? 괜찮겠지? 난 형님과 대련하고 싶지 않다.”
호섬의 말에 철현 또한 질색했다.
“으으, 그건 진짜 힘들지. 형님과 대련하느니 절정 고수 여럿과 싸우겠다.”
“낄낄, 맞아 맞아. 형님은 봐준는 게 없으니…… 대련만 들어가면 맨날 두들겨 패고…….”
“야 그런데 우리도 이번에 꽤 강해졌으니 둘이 싸우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런가? 아무리 형님이라도 지난 1년 사이에 최절정에 도달하진 않았을 테니…… 해볼 만하려나?”
“그래! 나도 보법을 엄청나게 수련해서 풍신법 6성에 도달했다고! 너도 검법에 성취가 좀 있었을 텐데?”
“어? 어어 우리 집안 사람들이 힘이 좀 좋아야지…… 힘센 사람들이 싸우는 데는 이제 도가 텄다 텄어.”
“그래 이정도면 형님한테 비빌 만하다니까?”
“그래도…… 난 무서우니까 사리련다. 괜히 말 잘못 꺼내서 대련하고 싶진 않다.”
“하긴…… 굳이 안 해도 되는 대련을 사서 할 필요는 없지.”
한참을 얘기를 하며 낄낄대던 둘은 어느새 나온 국밥에 시선을 돌렸다.
“크으…… 맛있겠다.”
“그러게 말이다. 빨리 먹자.”
둘은 동시에 수저를 들었다.
그런 둘의 귀로 많이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맛있어서 보인다. 나도 먹어도 되냐?”
둘의 고개가 끼기긱 돌아갔다.
“혀…… 형님?”
둘을 보면서 태천은 싸늘하게 웃어주었다.
“오랜만이다?”
* * *
둘은 국밥을 먹는 내내 속에 돌덩이가 들어간 기분을 느꼈다.
‘혀…… 형님이 왜 여깄어……!’
‘내가 어떻게 알아 임마! 아오, 큰일 났네. 어디까지 들었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둘에게 태천이 국밥을 한 숟갈 뜨면서 얘기했다.
“밥 먹을 때 딴생각하는 거 아니다.”
태천의 말에 둘은 묵묵히 뚝배기에 코를 박고 국밥을 퍼먹었다.
정신없이 퍼먹던 호섬이 실수로 국밥의 뚝배기를 땅에 떨어뜨렸고, 이내 뚝배기는 파삭 하고 부서졌다.
“손님!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친 데는?”
“아, 미안하다 애야. 여기 뚝배기값이랑 국밥값이다.”
미안함에 호섬은 아이에게 국밥값에 세 배에 달하는 돈을 쥐여주곤 돌려보냈다.
그리고 바닥에 깨져 있는 뚝배기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 뚝배기가 내 머리가 될 것 같은데 기분 탓이면 좋겠다…….’
* * *
밥을 싹싹 비워 먹고는 태천은 목가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태천을 유화와 유천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태천 님!!!”
유화는 태천을 보자마자 태천을 끌어 앉으며 외쳤고, 그런 둘을 유천은 뒤에 서서 둘의 애틋한 모습을 쳐다보았다.
‘손주는 몇이 좋을꼬…….’
잡다한 생각을 하며 말이다.
둘이서 기나긴 해후를 나누는 동안 호섬과 철현은 어색하게 그 둘의 뒤에 서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유천이 의아해하며 둘에게 물었다.
“음? 자네들은 왜 거기서 서 있는 겐가? 들어오지 않고?”
“아하하…… 저흰 형님이란 할 게 좀…….”
“괜찮습니다. 어르신 저희는 여기가 편…….”
말을 하던 철현의 말을 막은 것은 태천이었다.
“하하…… 장인어른. 둘은 제가 조금 봐줄 게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먼저 들어가서 쉬십시오.”
“하하 그런 겐가? 알겠네. 천천히 해후를 나누고들 들어오게나.”
태천의 말에 유천은 허허 웃으면서 목가장 안으로 사라졌고, 호섬과 철현은 사라진 자신들의 구세주에 절망했다.
‘안 돼! 장주님 저흴 제발 데려가 주세요!’
‘가지 마요! 안 돼! 안 돼에에에엑!!’
둘의 애절한 목소리는 끝내 유천에게 닿지 못했고, 결국 유천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태천은 그런 둘을 보며 악마같이 웃음 지었다.
“어이고? 장주님에게 할 말이 많았던 거 같은데?”
“……하하. 아닙니다, 형님…….”
“저도 없습니다……. 제발 살려만…….”
그런 둘의 모습에 유화가 의아해하자 태천이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목 소저, 저는 잠시 둘과 할 일이 있으니 먼저 안에 들어가 계시지요. 금방 가겠습니다.”
“……알겠어요. 금방 오셔야 해요!”
그렇게 말하곤 유화 또한 도도도 하고 장원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철현과 호섬은 마지막 구세주마저 사라지자 절망에 빠졌다.
그리고 그런 그 둘을 향해 태천의 고개가 끼기긱 돌아갔다.
“그럼…… 시작해야지……?”
“하하…… 그럼요! 해야죠! 하하하.”
“아이 즐겁다! 하하하!!!”
둘은 태천의 손에 이끌려 연무장으로 끌려갔다.
* * *
둘은 태천의 손에 이끌려 연무장에 내던져졌다.
그리고 이내 검집에서 검을 빼내 손에 그러쥐고는 태천을 향해 자세를 잡고선 태천에게 얘기했다.
“형님…… 대련 안 하면 안 될까요? 저희는 이번 1년 동안 엄청 성장해서 자칫하면 형님이 다칠지도 모르니…….”
“……맞습니다! 맞아요! 저희가 아우 된 도리로 어찌 형님의 몸에 상처를…….”
“어. 내도 돼. 내가 사랑하는 동생들이 나를 뛰어넘는다면 기꺼이 웃으면서 내줄 수 있어. 그런데 너네 정말 나 이길 자신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내 마음에 안 들면 그땐…… 흐흐.”
둘의 일장연설에 태천이 웃으면서 말하자 호섬과 철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야 큰일 난 거 같은데?“
‘아이씨, 너때메.’
‘뭐 임마?’
서로 눈으로 투닥대고 있을 때 태천의 한 마디에 둘은 얼어붙었다.
“안 오냐? 내가 간다?”
“윽…… 저희가 가겠습니다.”
철현은 외침과 동시에 태천에게 달려들었다.
과연 풍신의 제자답게 빠른 속도로 태천에게 들이닥친 철현은 검에 검기를 뽑아내면서 태천에게 휘둘렀다.
‘제발…… 이걸로 쓰러져주세요.’
그리고 철현은 검을 휘두르면서 보았다.
자신을 향해 날라오는 실 같은 검기들을…….
‘망할…… 검사(劍絲)…… 최절정이구나…….’
쾅!!!
나풀거리는 실과 같은 검기였지만 그게 수십 가닥이 되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철현을 뒤덮었다.
검사에 맞은 철현은 빛살처럼 뒤로 날아갔다.
‘아…… 또 벽이네…… 반갑다, 벽아.’
쾅!
호섬은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에 입이 떡 벌어졌다.
“항복……? 역시 안 되겠죠? 에휴…….”
혹시 될까 싶어 말해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자, 호섬은 한숨을 쉬더니 몸을 날렸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호섬은 철현과 나란히 벽에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