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24화
두 번째 환골탈태를 마친 태천이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꼬박 하루가 지난 후였다.
“으음…….”
“이제 일어났냐?”
“어? 독왕 어르신? 여긴 웬일이십니까?”
“웬일은 이놈아 네가 10성에 이뤄서 환골탈태를 겪고 꼬박 하루를 잤다. 아느냐?”
“예? 하루나 잤다고요? 허어…… 오래도 잤네요.”
“끌끌 10성을 이룬 걸 축하한다. 이제 만독불침에 가까워졌구나.”
“오! 드디어…….”
독왕의 말에 그제야 실감이 된 태천이 손을 불끈 쥔다.
“그래도 독곡이나 당문의 독은 꽤 위험한 게 많으니 조심하도록 해라. 아마 12성, 즉 극성을 이루게 되면 정말로 네 몸은 만독불침에 이르겠지. 이제 10성에 이르렀으니 인독도 그저 수련 도구일 따름이구나. 가는 길에 몇 병 줄 테니 수련할 때 써먹거라.”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제 저도 갈 채비를 해야겠네요.”
침상에서 벌떡 일어난 태천은 이내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런 태천의 모습을 보면서 독왕은 끌끌거리면서 웃었다.
“당가 늙은이들이 저 녀석을 보면 어떨지 궁금하구나. 끌끌끌…….”
* * *
몇 시간 뒤, 태천은 짐들을 다 챙겨 말에 올라탔다.
그런 태천을 독왕과 독향이 나와서 마중을 해주었다.
“끌끌 잘 가거라. 나중에 또 보자꾸나.”
“안녕히 가십시오. 나중에 꼭 들려주십시오.”
“하하, 많이 배우고 갑니다!”
둘에게 인사를 하고는 태천은 말을 몰고 빠르게 오독문을 떠나 운남을 나섰다.
태천의 뒷모습을 보며 독왕과 독향이 이야기했다.
“끌끌 강호에 역사를 쓸 놈이 가는구나.”
“예? 강 소협이 그 정도입니까?”
“그래. 저 녀석은 무신지체를 가지고 있다.”
“허어…… 그 전설의 무신지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처음부터 남다른 독에 대한 저항력에 빠르게 습득하는 무공들을 보고 알았지. 아마 몇 년만 지나면 수백 년 만에 강호를 통일할 녀석일 게야.”
“……대단하네요.”
독왕의 말에 독향은 멍하니 태천이 사라진 곳을 쳐다보았다.
“그럼 이제 우리도 들어가자.”
“예.”
그리고 이내 둘은 오독문 안으로 몸을 옮겼다.
* * *
태천이 오독문을 나섰을 때 목가장은 태천과 약속된 1년이 되자 곧 올 태천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하 유화 아가씨 기뻐 보이십니다?”
“어머…… 그런가요?”
“예, 무척이나 기뻐 보이십니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셨어요.”
본가에서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호섬의 말에 유화가 볼을 발그레 붉히면서 말했다.
“강 가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하하하, 저도 형님을 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네요. 이번 본가에서의 수련으로 최절정에 한 발짝 다가간 것 같습니다.”
“어머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유화 아가씨 그런데 저 둘은 정말…… 으으, 떠나기 전이랑 바뀐 게 없네요.”
“호호 어때서요. 보기 좋은데요, 뭐.”
호섬이 목가장 한구석을 쳐다보며 질색을 하자 유화가 입을 가리며 호호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천 공자가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니 좋지 않나요?”
“……예, 뭐 그렇네요. 처음 만날 때는 다 죽어가는 모습에다가 교주가 죽어 꽤 힘들어했었는데 저렇게 웃는 걸 보니 좋긴 좋네요.”
이제는 공식 연인이 된 천호진과 독화향이 목가장 내에 있는 정자에 앉아 사랑을 꽃피우는 모습에 호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얼마 전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철현과 술이나 한잔 마시기 위해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으로 들어가자 바람을 몰고 다니며 연무장을 헤집고 다니는 철현을 볼 수 있었다.
“어이, 철현! 그만하고 술이나 한잔 하러 가지?”
“호섬이냐? 그래 오늘은 그만하고 나가자.”
이내 철현이 움직임을 멈추자 주위에서 몰아치던 바람이 어느새 사라졌다.
“크으…… 너도 강해졌구나. 무림대회 때는 솔개 바람이었는데 말이야.”
“이 자식이? 너도 똑같아 임마. 검이 어찌나 느리던지. 지나가던 파리가 앉는 줄 알았다, 임마.”
“해보자는 거냐?”
“왜? 내가 해보자면 물러설 줄 알았어? 지고 나서 말 바꾸지나 마라?”
“오냐 내일 연무장에서 보자고.”
둘은 툭탁거리며 연무장을 나와 강릉에서 유명한 주루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쇼! 어라? 또 오셨군요?”
“음, 언제나처럼 사람이 없는 자리로 부탁드립니다.”
철현이 점소이에게 은자 한 냥을 건네며 말하자 점소이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둘을 안내했다.
“넵! 저만 믿으시지요!”
점소이는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자리로 둘을 안내해 주고는 둘이 주문한 안주와 술을 가지러 갔고, 점소이가 사라지자 둘은 입을 열었다.
“어느새 벌써 일 년이네? 형님과 오독문에서 헤어진 지도 말이야.”
“허…… 벌써 그렇게 됐구나.”
“형님은 얼마나 강해지셨을까?”
“그러게나 말이다. 또 얼마나 괴물 같아지셨을지…….”
“내 생각엔 이번에 떡하니 나타나서 최절정이라고 하지 않을까?”
“큭큭큭, 그것참 말 된다. 형님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낄낄낄 그렇지?”
남들이 들었다면 입이 떡 벌어지다 못해 턱이 빠질 소리를 둘은 우스갯소리로 하고 있었으나, 둘은 실제로도 그럴 거라고 믿고 있었다.
태천의 괴물 같은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둘 아닌가?
그렇게 태천의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점소이가 안주와 술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 주문하신 술과 안주입니다. 그럼 재밌게 보내시고 가시지요.”
점소이가 다시 사라지자 둘은 이야기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오늘도 어때?”
“물론이다. 저번과는 결과가 다를 거다.”
“하하 낭인은 주량으로 계급이 결정된다는 사실만 알아두라고.”
“그 소리만 벌써 골백번은 들었겠다. 각오나 하라고.”
둘은 웃으면서 술의 병마개를 따고는 병나발을 불었다.
호섬과 철현이 주루에서 병나발을 불고 있을 때 유화는 창틀에 걸터앉아 태천을 생각하고 있었다.
‘후우…… 어느새 떠나신 지 일 년이나 지났네요. 가가, 하루빨리 보고 싶어요.’
“거기서 뭐 하십니까?”
상념에 빠진 유화를 깨우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천호진이었다.
“아 천 공자님, 안녕하세요. 화향 소저도 같이 계시네요? 요즘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은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으십니다.”
“큼큼…… 그런데 왜 그러고 창틀에 앉아 있던 겁니까? 태천이 녀석 때문입니까?”
호진의 말에 유화는 그저 얼굴만 붉힐 따름이었다.
그런 유화의 모습에 호진은 피식 웃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 녀석이 목 소저를 연모하는 마음은 잘 알고 있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리고 이제 약속한 날도 다 되었으니 아마 내일 당장에라도 목가장의 정문을 두들길 녀석이니 마음 편히 가지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렇게 걱정만 하다가는 마음의 병이 생길 겁니다.”
“맞아요.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믿는 것 또한 중요하지요. 그렇지요? 공자?”
화향의 말에 호진 또한 빙그레 웃으면서 그녀를 부드럽게 안으면서 말했다.
“그렇지요. 그러니 이제 마음 편히 태천을 기다리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녀석 걱정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불필요한 걱정이지요. 그럼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시지요.”
호진과 화향은 유화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신들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 역시 그렇겠지? 강 가가 하루빨리 돌아오세요.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밤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며 태천을 생각하며 유화는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천이 목가장을 떠난 지 일 년째의 밤 또한 저물어갔다.
* * *
유화가 달을 보며 태천을 그리고 있을 때 태천 또한 같은 달을 보며 유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달이 밝네…….’
밤하늘 아래를 혼자 이렇게 말을 타고 가고 있으니 뭔가 기분이 오묘했다.
회귀를 하고 난 이후로 이렇게 혼자 다니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딱 한 번 처음 마을을 나설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에는 이런 느낌이 안 들었는데, 자신도 꽤나 많이 바뀌었나보다, 사람들의 품에서 벗어난 삶이 익숙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품이 그리워지다니 말이다.
‘하아…… 역시 그래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꽤나 마음을 편하게 해주네.’
전생에서는 무당에서 파문당하고 내공이 폐해졌을 때 이후로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보냈었다.
그래서 더욱 쓸쓸했는지도 모른다.
천동 또한 그때는 자신의 곁을 떠났었으니까, 그래서 지금의 동료들과 연인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더욱 강해져야 한다.
전생처럼 누명에 씌어도 자신과 소중한 것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말이다.
“그럼 더 빨리 가볼까……?”
동료들과 유화를 생각하다 보니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진 태천은 말을 빠르게 몰았다.
언제나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응원해 주는 네비의 말소리와 함께 말이다.
‘강릉까지의 남은 거리는 총…….’
‘그래그래, 알겠어. 하지만 그런 말만 하지 말고 말동무라도 좀 해주라 너무 적적하다는 생각 안 하니?’
‘……알겠습니다.’
‘오! 웬일로 말동무를 다 해준대? 내가 절이라도 해야 하나?’
‘강릉까지는…….’
‘아,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한층 더 네비와 가까워지는 계기도 생겼고 말이다.
‘오늘도 고마워ㅡ,네비야.’
‘당연한 일입니다.’
‘킥, 너다운 말이네.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거지?’
‘물론입니다. 태천 님.’
‘그래 고맙다. 이제는 너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도 없다니까?’
‘흠흠……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으셔야 합니다.’
‘킥킥 알겠어. 그럼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고!’
태천은 밤하늘 아래에 말동무를 해주는 네비와 함께 강릉으로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