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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 네비게이션-21화 (22/139)

기연 네비게이션 21화

매캐한 독연으로 가득한 방 안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이들이 있었다.

평범한 이들이 맡았다면 단번에 즉사할 만한 독연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방 안에 있는 이들은 그런 것에 아무런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저 서로에게 명령을 주고받으며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열중했다.

“거기! 조심해! 그거 분량이 얼마 안 남았으니 적당히 써.”

“그래 이제 이것만…….”

서로에게 말을 전달하며 바쁘게 돌아다니던 이들이 멈춰 선 것은 백발 노인의 등장 때문이었다.

“잘들 되고 있는가? 허허.”

“네! 잘 되고 있습니다. 독왕님 아니, 문주님!”

독왕!

지금 나타난 노인이 무림에서 쟁쟁하게 이름을 떨치며 1황 3왕 2마 중 3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독왕이었다.

“허허 그럼 계속 수고해 주게.”

독왕 독경천은 독연으로 자욱한 연구실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듯 크게 숨을 한 번 들이키곤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왜냐하면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향을 앞세운 채 찾아온 손님들은 태천 일행이었다.

“하하 자네들이 나를 찾아온 겐가?”

“네 그렇습니다. 독왕 어르신. 천마신교의 소교주 천호진이라 합니다.”

“호오 네가 그 천호영 녀석의 아들이로구나.”

“아버…… 아니, 교주님을 아십니까?”

“하하하 당연히 알지 자네 할아버지랑 나랑 막연한 지기였지. 그래서 그 녀석의 무공도 가끔 봐주기도 했지.”

“……그런데 왜 그러셨습니까?”

“응? 무얼 말인가?”

“독왕 어르신께서 부교주에게 주신 독 때문에 교주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뭣? 호영이 녀석이 죽었다고?”

“네…… 사인은 독극물로 인한 사망이라고 마의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독이 바로 이 독입니다.”

말을 하며 테이블 위에 독향에게 보여준 독을 꺼내자, 독왕이 냉큼 그 독의 뚜껑을 열고 확인하고는 탄식을 터뜨렸다.

“하아…… 정말 인독이 맞구나…….”

“그런데 왜 이 독을 부교주에게 주신 겁니까?”

“호평이 녀석이 긴히 쓸 때가 있다며 적당한 독을 원하더구나 그래서 요즘 진도가 나가고 있는 인독을 그 녀석에게 넘겨주었지. 그게 이런 일을 만들 줄은…….”

“혹시 그렇다면 그때 부교주와 연락했던 편지 같은 게 남아 있을까요?”

“아마 화향이가 가지고 있을 게다.”

“화향이요?”

“음 내 딸인데…… 아 이왕 이렇게 된 일 화향이도 데려가려무나.”

“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전 다시 교로 돌아가야 합니다.”

“끌끌끌, 그 아이도 절정은 되니 짐은 되지 않을 게다. 그리고 그 아이가 증거는 다 가지고 있으니 직접 데려가면 쓸모가 많을 테다. 내가 벌인 일이니 뒷수습도 내가 맡아야겠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화향아 들어오거라!”

독왕의 부름과 함께 독화향이 문을 열고 다소곳이 손을 모은 채로 들어왔다.

“소저 독화향이라 하옵니다.”

“아 저는 천호진이라 하고 이 뒤에 있는 녀석은 강태천이고…….”

천호진이 일행들을 차례차례 소개하자 화향도 소개에 따라 일행들에게 인사를 했다.

인사를 마치자 독왕이 화향에게 말했다.

“향아 너도 이제 강호에 나갈 때가 된 거 같구나. 내 불찰로 일이 벌어졌으니 네가 좀 도와주면 고맙겠구나.”

“아닙니다. 아버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버지의 일이 소녀의 일입니다.”

“하하하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그럼 저번에 천마신교의 부교주에게 온 서신을 좀 가져다주겠느냐?”

“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말은 마친 화향은 문을 열고선 총총 밖으로 사라졌다.

그런 화향이 나가는 모습을 천호진이 유심히 지켜보자 옆에서 그런 그를 바라보던 일행이 천호진을 놀려댄다.

“하하, 형님 소교주님께서 독 소저에게 많은 관심이 있나 봅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소교주 관심이 많으신가보오?”

“이익…… 아닙니다! 전 관심이 없…….”

“허어…… 우리 향이가 그리도 매력이 없던가, 소교주?”

관심이 없다고 말을 하려던 천호진의 입을 막은 것은 독왕의 한마디였다.

“윽 아닙니다. 독왕 어르신. 독 소저는 충분히 아름다우십니다.”

“하하하 그러면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떤가? 우리 향이도 어느새 시집갈 나이가 다 되었는데 마땅한 정인이 없으니.”

독왕의 물음에 천호진은 그저 얼굴만 붉힌 채 땅바닥만을 바라볼 따름이다.

천호진을 놀리며 하하호호 웃던 태천 일행을 갸웃거리며 바라보면서 문을 열고 들어온 화향이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응? 왜들 그러고 계시는지요?”

“독 소저! 우리 소교주님께서! 읍…….”

화향이 들어오자마자 고새 일러바치려던 호섬의 입을 틀어막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이 워낙 재미있는 사람들이라…….”

천호진의 말에 화향이 살포시 웃자, 천호진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난다.

“큼큼 사랑놀이는 그만하고 서신부터 보자고.”

태천의 말에 천호진과 화향은 서로 얼굴을 붉히며 손부채질을 하며 열을 식힌다.

그런 둘을 뒤로 한 채 태천이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다.

[독왕 어르신, 저 천호평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요즘 급하게 독을 쓸 일이 있는데 주변에 마땅하게 독을 구할 곳이 없습니다. 혹시 독을 좀 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은혜는 제가 잊지 않겠습니다. 답은 이 서신을 가지고 간 녀석에게 해주시면 됩니다.]

‘옳지! 찾았다. 증거물.’

서신을 읽어 내려가는 태천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자 호진도 재빨리 서신을 훑어내려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드디어…… 원수를 갚을 방도가 생겼다…… 드디어!!”

주먹을 불끈 쥐고 좋아하는 천호진을 주변 인물들이 축하해 주었다.

“축하합니다. 소교주님.”

“이제 부교주에게 본때를 보여줍시다!”

축하 인사가 끝나가자 독왕이 천호진에게 태천에 대해 묻는다.

“근데 저 아이가 누구길래 자네를 돕는 겐가?”

“하하하 저 녀석 말입니까? 천마님의 제자랍니다. 하하.”

“뭐? 천마의 제자란 말이야? 저 녀석이?”

“나이가 이제 열아홉이 되는데 벌써 절정이랍니다. 대단하지요? 거기에 무신지체이기도 합니다.”

“허어…… 천마의 무공에 무신지체라면 충분히 그 경지가 말이 되는군…… 자네 잠시만 이리 와보게.”

독왕의 부름에 태천이 걸어가 독왕의 옆에 앉자 독왕이 태천의 맥을 짚어보고는 감탄했다.

“세맥들이 엄청나게 깨끗하구만, 무신지체라 그런 건가…… 자네라면…… 만독불침을 이룰 수 있겠군.”

“예? 제가 말입니까?”

“그래 자네 나에게 만독불침을 배워볼 생각이 있는가?”

“당연하죠! 배우고 싶습니다!”

“하하하, 대신 만독불침을 이루는데 필요한 재료는 자네가 구해야 할 걸세.”

“물론이죠!”

“대신 기간은 1년은 잡아야 할 걸세 가능하겠나?”

“흐으음…… 천호진 네 생각은 어때? 그 정도 괜찮겠어?”

“음…… 괜찮을 것 같다. 네가 강해지면 우리가 계획을 이루기도 쉬워지니까. 네가 수련을 하는 동안 우린 목가장으로 돌아가 계획을 세우고 있겠다.”

천호진의 대답을 들은 태천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하하, 된다고 하는군요. 어르신.”

“그러면 자네 일행이 떠나고 난 후부터 수련을 하도록 하지. 아마 향이가 필요한 물건들을 다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하면 넉넉하게 일주일쯤 될 테니 그때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그렇게 태천의 잔류가 결정되고 일행들은 부지런하게 떠날 준비를 했다.

먼저 독화향이 가지고 갈 짐들을 챙겼고, 그런 그를 천호진이 도와주며 러브라인을 만들고 있었고. 호섬과 철현은 독향과 대련을 하며 시간을 보내며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고 있었다.

소화평은 태천이 준 영초들의 기운을 이용하여 화경의 경지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었고, 천호패는 천호진이 독화향과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으곤 그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태천은 원래 주기로 하였던 혈독초와 무향초를 건넸지만, 독왕이 웃으면서 이것들은 태천이 쓰게 될 거라며 거부했다.

그리고 그 뒤로 태천은 네비와 함께 운남을 돌면서 각가지 독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독왕의 조언 때문이었다.

일행이 떠나는 일주일 뒤까지 많은 독초들을 모아놓는 것이 좋다는 말에 그때부터 영초들도 캐지 않고 독초들만 골라서 캐러 다니는 태천이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빠르게 흘러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고, 태천은 일행들을 배웅하러 오독문의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천호진 계획 잘 세워놓고, 금방 익혀서 돌아가마.”

“그래 최대한 빨리 와주면 나야 고맙지.”

“목 소저에게 안부 전해주고, 사랑놀음도 적당히 하고.”

“뭔 사랑놀음이냐!! 독 소저와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목 소저에게 안부는 잘 전해주겠다.”

“큭큭, 고맙다. 그럼 대충 1년 뒤에 보자고.”

그 뒤로 태천은 호섬과 철현에게도 포옹을 하며 인사를 했고 천호패와도 간단하게 인사를 하곤 오독문 안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기연 먹으러 가볼까?’

기연 먹는 무림인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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