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17화
“그래서 계획은 있는가?”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천호패가 태천에게 묻는다.
“물론!”
씨익 웃는 태천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든든하게 느껴진 천호패와 천호진이었다.
* * *
“그래서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우린 이제 목가장으로 간다.”
“목가장? 강릉의 목가장?”
“오? 너도 아는구나?”
“당연히 알다마다. 강릉 하면 목가장 아닌가. 그리고 목가장은 우리 쪽이랑도 꽤 연관이 있거든, 근데 왜 목가장으로 가는 거지? 그들이 우릴 과연 도와줄까?”
천호진의 말에 태천은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아! 그 말을 안 해줬네. 목가장의 장녀인 목유화 알아?”
“당연히 알다마다 목가장만큼이나 유명한 게 목가장의 장녀지 중원일미는 아니지만 십미(十美)를 꼽자면 언제나 사람들의 손에 꼽히는 여성 아닌가? 근데 왜 갑자기 그녀 얘기를…… 아! 설마?”
“맞아 내 약혼녀야.”
태천의 말에 천호진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얼얼함을 느꼈다.
‘대체 이 남자는 뭐지……? 천마님의 후계자이질 않나, 18살의 나이에 절정 그리고 거기에 목가장의 장주를 장인으로 두다니 대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천호진을 보며 태천이 피식 웃는다.
“나 대단한 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그만 봐 닳는다.”
그런 태천의 말에 천호진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고, 태천은 그런 그를 못 본 체하며 말을 몰았다.
물론 산 쪽으로.
“어디로 가는 거야 강릉은 이쪽 방향이라고!”
“강릉은 거기지만 기연은 이쪽이다!!”
그런 태천의 모습을 보면서 호섬과 철현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생각했다.
‘어휴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이번에도 뭐 하나 주려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기연에 밀린 강릉이었다.
* * *
“하아…… 강 소협은 지금쯤 뭘 하고 계시려나.”
창밖을 보며 강호를 떠돌고 있을 태천을 유화는 생각한다.
“또 강 소협 생각을 하고 있느냐?”
그런 유화를 보며 유천이 안쓰럽다는 듯이 말하자, 유화는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네 그래야 조금이라도 마음이 안정된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이네요.”
말을 하며 유화는 자신과 태천의 첫 만남부터 천천히 곱씹었다.
처음엔 좋지 못한 상황에서 만나 자신을 구해준 것부터, 자신을 겁탈하려고한 혈검문을 아예 멸문시킨 것과 마지막에 자신의 마음을 받아준 것까지 차례차례 곱씹던 그녀의 귀로 태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 소저!! 저 왔습니다!!”
“아…… 아버지 강 소협을 너무나 그리워한 나머지 환청이…….”
그런 유화의 모습을 보며 유천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유화야 이건 진짜 강 소협 목소리인 거 같은데……?”
“에……?”
1년이 넘는 시간 만에 다시 만난 태천의 모습은 떠날때와 많이 달랐다.
“소협……? 왜 그런 모양새를…….”
“하하하…… 그게…….”
“아니, 글쎄 영초랑 영삼을 캐겠다고 이산 저산 다 돌아다니면서 다니니 거지꼴이 되지!!”
옆에서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던 천호진이 이때다 싶어 한마디 했다.
그 말에 태천이 싸늘한 미소를 띠며 대꾸했다.
“야…… 너도 뱉을래?”
“뭐…… 뭘 말이냐.”
“내가 준 것들 다 뱉고 싶지 않으면 저 아저씨처럼 조용히 앉아 있어.”
졸지에 아저씨가 된 천호패는 조용히 앉아 자신의 앞에 있는 차만 조용히 홀짝였다.
‘오면서 천년설삼을 캐서 줬더니 고분고분하네.’
사실 천호패는 가장 먼저 불만을 토로했었지만, 자신에게 던져지는 천년설삼에 합죽이가 되어 조용히 태천을 따라다녔다.
물론 천호진도 만만치 않은 영약을 얻어먹었지만 말이다.
“큼큼…….”
“그런데 저분들은 누구신가요? 일행이신 거 같은데……?”
“소개가 늦었군요. 저 사람들은 마교 쪽 사람들입니다.”
“아 그렇군요…… 마교 사람이구나…… 잠깐만 마교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수긍하던 유화가 벌떡 일어나 삿대질하며 말했다.
“큼큼 소저…… 삿대질은 조금은 실례가 아닐까…….”
태천의 말에 유화가 얼굴을 붉히면서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물었다.
“정말 마교의 인물인가요?”
“예 저기 젊은 친구는 마교의 소교주이고 저기 차 마시는 아저씨는 마교의 대장로이며 저기 우두커니 서 있는 아저씨가 수호천대의 대주랍니다.”
싱긋 웃으며 차를 홀짝이며 답해주는 태천의 말에 유화는 정신이 잠깐 나갔다가 들어왔다.
‘아니, 대체 소협은 1년 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신 거야!!’
유화가 이리 생각하고 있을 때 목유천이 먼저 인사를 했다.
“하하 이거 마교의 중추들을 이리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일찍이 마교와도 교류를 해왔던 목가장이기에 자연스럽게 인사하긴 했지만 유천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마교의 소교주에 대장로 거기에 대주급 인물이 강 소협과 왜 같이 다니는 거지……?’
둘이 각자 다른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태천이 그들의 고민을 풀어주었다.
“배신당했답니다.”
물론 짧게.
“예……? 배신이요?”
태천의 짧디짧은 답변에 어이없어하던 천호진이 자세하게 풀어나갔다.
“강 소협의 말대로 저희 천마신교 내부에 배신으로 인해 쫓기던 와중 강 소협을 만나게 되어 이리 목가장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추후 사례는 톡톡하게 하겠습니다.”
천호진의 말에 목유천이 짧게 침음을 삼키곤 천호진에게 물었다.
“사례라…… 어떤 사례를 말씀하시는지……?”
“부탁.”
“예? 무슨 말…….”
“부탁 세 가지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부탁이 아니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천호진의 말에 목유천은 고민에 빠졌다.
‘단일 최대 방파인 마교에 3가지의 부탁 할 권리라…….’
“대체 어느 정도까지의 부탁인지……?”
“제가 교주가 된다면 제가 앞장서서 부탁들을 들어드리겠습니다.”
“흐으으음…….”
천호진의 대답에 결국 목유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강 소협의 부탁이 있었다면 들어드리려 했으니,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목유천과 천호진은 서로 손을 맞잡고 흔들며 계약의 성립을 알렸다.
“그러면 저희가 도와드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 독의 출처를 알아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천호진의 품에서 조그마한 병 하나를 꺼내 목유천에게 건넨다.
“이건……?”
“제가 조사를 하다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게 교주님을 죽인 독이겠지요.”
“알겠습니다. 이건 제가 따로 조사해 보도록 하지요.”
목유천이 병을 품에 갈무리하면서 얘기한다.
“그럼 일단 여독부터 푸시지요. 방은 많으니 제가 안내해드리지요.”
그리 말하곤 목유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호진의 무리들을 방 밖으로 이끌었고, 방안에는 태천, 호섬과 철현 그리고 유화만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호섬의 눈짓에 철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섬과 함께 방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하하 형님 저희는 몸도 씻을 겸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형수님이랑 좋은 시간 보내십쇼!”
형수님이란 말에 유화는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둘 다 오랜만에 만난 지라 차만 홀짝이고 있던 때에 유화가 입을 열었다.
“소협…… 아니, 가가께서는 지난 1년간 무얼 했는지 궁금하네요.”
가가란 말에 태천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자신이 겪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자신이 강릉 떠나 낙양에 가 천하제일 무림대회에 출전한 것부터 시작해서 차례차례 상대들을 이기고 올라가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유화는 나지막이 탄성을 하며 기뻐했다.
결승에 가서 친우인 천동을 만나 대결을 할 때의 이야기를 하자 유화는 상기된 얼굴로 손을 꽉 쥐고는 눈을 크게 뜨고 한 글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볼 때는 태천도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크게 웃었다.
그리고 대회가 끝나고 철현과 같이 동행을 하게 되었고 안서성으로 가다 백가상회의 상회주인 백호송을 만나 그의 호위를 하던 도중 투신을 만나게 되었고 약간의 꾀로 투신의 제자가 되어 신법을 익히고 사람을 노예로 팔던 백호송을 단죄하는 얘기를 하였을 때는 분노에 찬 얼굴로 부들부들거리는 유화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투신이 전수를 마치고 떠났고 그 직후 천마신교의 무리들을 만났을 때의 얘기까지 끝내자 어느새 밖은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아! 제 욕심 때문에 가가…… 께서 힘드셨을 텐데 불편하게 해드렸네요. 어서 들어가셔서 편히 쉬십시오.”
아직은 가가란 말이 어색한지 띄워 말하는 유화의 말에 태천은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목 소저와 이야기를 해서 저 또한 지친 줄 몰랐으니 목 소저 탓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부드러운 태천의 말에 유화는 발그레 볼을 붉혔고, 그런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춘 태천은 씨익 웃고선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유화는 태천이 나가고도 한참을 방안에서 태천을 입술의 감촉을 생각하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