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13화
낙양을 나와 어느덧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길을 가며 보이는 마을에 들려 쉬기도 하고, 근처에 영산들이 있으며 기연을 캐러 다니다 보니 시간을 꽤나 지체하고 말았다.
그래도 두 녀석은 군말하지 않고 잘 따라오고 있는 걸 보니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좀 가신다.
“나 때문에 일정이 늦춰지네 미안하다.”
내 말에 둘은 입안에 있는 걸 우물우물 씹으면서 답한다.
“우물…… 저흰 괜찮아요. 우물…… 형님!”
“우물우물…….”
그들의 우물거리는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렇게 영초가 좋냐?”
내 말처럼 그들이 지금 먹고 있는 건 내가 던져준 영초들이었다.
초반에 내가 하도 산에 틀어박혀 기연을 캐러 다니자, 구시렁대길래 영초나 산삼을 하나씩 던져주자 그들은 입을 딱 다물곤 그것들만 씹어 먹으면서 조용히 기다렸다.
지금도 구시렁대던 걸 하나 던져주니 또 조용하게 따라온다.
“그래도 얼마 안 남았으니 참…….”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눈에 보인 건 산적들에게 습격당하는 마차였다.
그 모습을 본 그들은 말을 주변에 묶어두고선 빠르게 산적들에게 다가갔다.
“크헤헤 가진 걸 다 내…… 크악!”
“너…… 너넨 누구냐! 우리가 누군…… 크아아.”
산적들에게 다가가 빠르게 정리하니 태천의 눈앞에는 한 명의 산적만이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목숨만은…… 목숨만은 살려주십쇼! 집에 토끼 같은 자식들이…….”
그 말에 마차 문이 벌컥 열리면서 후덕한 사내가 달려와 그를 냅다 걷어차기 시작한다.
“이 자식! 내 돈을 털어가려고 해! 죽어라! 죽어!”
갑자기 달려와 산적을 두들겨 패는 그의 모습에 태천 일행이 오히려 그를 말리기 시작한다.
“참으시지요. 이젠 괜찮습니다.”
태천의 말에 마차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발길질을 멈추곤 그들을 향해 인사를 한다.
“하이고……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셨군요. 저는 안서성에서 백가상회를 운영하는 백호송이라 합니다. 근데 젊으신 분들이 실력들이 뛰어나신데…… 저희랑 일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방금까지 죽다 살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태천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어이가 없었지만, 태천의 생각은 달랐다.
‘찾았다. 투신이 멸한 가문의 상회이름이 백가상회였지…….’
백호송을 바라보는 태천의 눈빛은 먹잇감을 바라보는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하겠습니다. 단 조건부로 말이죠.”
갑작스러운 태천의 말에 일행들이 놀란 눈으로 태천을 쳐다본다.
“형님……! 갑자기 그게 뭔 말이에요!!”
“맞습니다! 저런 상회에…….”
그렇게 말하던 그들은 태천의 다음 행동 때문에 입이 딱 다물어졌다.
“그냥 너희는 조용히 이거나 먹고 있어. 내 감이 말하고 있으니까.”
입안에 캔 지 얼마 안 된 삼을 쑤셔 넣어주자 둘은 웃으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입을 다물게 한 태천은 호송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한다.
“계약서부터 쓰실까요?”
* * *
따그닥 따그닥-
태천의 무리는 백호송의 마차를 따라 말을 타고 안서성을 향해갔다.
“아니, 형님 근데 진짜 무슨 생각이십니까?”
호섬의 물음에 태천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말을 몰아갔다.
그런 태천의 모습에 둘은 그저 답답한지 제 가슴만 쳐댔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 눈 어느덧 안서성의 성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이고, 여기까지 호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문 안으로 들어오자 마차에서 백호송이 땀이 흐르는 자신의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태천 일행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러면 볼일 보시고 백가상회에서 뵙겠습니다.”
다그닥 다그닥-
인사를 마치고 호송이 마차에 오르고 빠르게 그들의 눈에서 사라져 갔다.
“형님 이제 저흰 뭐 합니까?”
호섬의 물음에 태천은 말을 끌고 가며 말했다.
“객잔이나 잡으러 가자.”
* * *
안서성의 이름 딴 안서객잔이란 꽤 이름 있어 보이는 객잔에 짐을 풀고선 일행은 백가상회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이 백가상회에 들어서자 꽤나 소란스럽게 그들을 맞이해 주었다.
“이게 뭐야! 이 예고장은?!”
“저…… 저도 몰라요! 식탁 위에 있던 걸 펴봤는데…….”
예고장에 대한 얘기로 부산스러운 와중 태천들을 보곤 한 꼬마 아이가 그들의 소매를 끌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아 백호송 씨와의 계약 때문에 왔습니다. 호위 문제 때문에요.”
아이는 백호송이 들어오며 해준 언질을 기억하곤 그들을 백호송의 방으로 이끌었다.
“여기가 가주님이…… 아니, 상회장님의 방이에요.”
그들을 안내한 후 아이는 총총거리며 사라졌다.
물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서 백호송이 격하게 그들을 반겼다.
“아! 오셨군요! 바깥이 조금 어수선하지요? 허허허.”
“예, 좀 어수선하더군요. 무슨 예고장? 때문인 것 같군요.”
태천의 말에 표정이 살짝 굳은 호송이 금세 얼굴을 피곤 답한다.
“하하…… 그게 투신이라는 자가 저희를 털겠다고 예고를 했지 뭡니까?”
“호오…… 투신이 말입니까?”
“예…… 그래서 말인데……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태천이 빙그레 웃으면서 답한다.
“그래드리죠.”
안에서 계약을 마치고 나온 태천을 철현이 조용히 귓속말을 한다.
“형님……! 투신님은 저희 아버…… 아니, 스승님이랑도 연이 있어서 아는데 무고한 사람들은 털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뭔가 뒤가 구려요.”
철현의 말에 태천도 싱긋 웃으면서 답한다.
“알아 임마. 걱정하지 마. 난 투신 때문에 승낙한 거니까.
“예? 뭐 때문에요?”
“그건 나중에 보면 알아.”
무언가 계략을 꾸미는 듯한 얼굴을 하는 태천을 보며 호섬과 철현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안서백가를 나온 태천 일행은 객잔으로 돌아간다.
“앞으로 약 2주는 넘게 남았는데, 뭐 하실 겁니까. 형님?”
호섬의 말에 태천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수련해야지.”
그리고 호섬과 철현은 말 한마디로 사람의 기분이 어디까지 떨어지는지 그 날 알게 되었다.
그 날 안서객잔의 뒤뜰에서는 두 명의 남성의 비명 소리와 한 남자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훗날 안서객잔에 전해졌다.
“와 진짜 죽겠다. 죽겠어.”
“그러게나 말이다.”
둘은 뒤뜰에 드러누워 휴식 아닌 휴식을 맛보고 있었다.
태천은 둘을 투신을 만나면 싸울 수 있겠냐고 몰아붙이면서 그들을 수련하게 했고, 그런 태천의 노력(?) 덕분인지 그들은 절정까지 단 한 발자국만을 남기고 있었다.
“와 근데 진짜 수련은 된다. 그지?”
호섬의 말에 철현은 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다그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일어나! 하루 종일 누워 있을래?”
태천이 으르렁대며 그들에게 다그쳤다.
“아 형님 좀만 쉬었다가 합시다. 예?”
“맞아요!! 맞ㅇ…….”
슈우우욱…… 팍!!
태천에게 항의하던 둘은 태천의 검이 날아와 자신들 사이에 박히는 걸 보고 냉큼 일어섰다.
“하하하! 형님 대련이 하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바로 대련해 주세요.”
“와 갑자기 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네…….”
둘은 조용히 태천의 검을 뽑아 다시 태천에게 갖다 주곤 자세를 잡았다.
‘에휴…… 폭력 반대!!’
‘아 진짜 죽겠다.’
물론 마음속으론 푸념을 하면서 말이다.
자신을 향해 거세게 몰아치며 공격하는 둘을 보면서 태천은 생각에 빠진다.
‘이제 슬슬 얘들도 얼추 된 거 같고…… 이 정도면 투신과 해볼 만하려나?’
투신이 살생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도전이었다.
‘으음…… 근데 투신은 화경의 고수인데…… 괜찮겠지? 뭐 될 대로 되라지…….’
둘이 듣는다면 기겁할 만한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정리한 태천은 웃으면서 자신을 몰아가는 둘에게 천마검법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보여줬고, 둘은 다시 한번 낙양에서의 데자뷰를 느끼며 날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씨 이럴 줄 알았어. 또 의원 신세 좀 지겠네그려.’
‘와…… 진짜 뭐 이리 강하냐. 분명 한 단계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말이야.’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날아간 둘은 뒤뜰에 처박힌 채로 기절했다.
“오늘 대련 끝!”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종료를 알린 태천은 둘을 뒤뜰에서 뽑아 어깨에 들쳐 메고는 객잔을 향해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셋은 하루가 멀다하고 대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날이 갈수록 실력이 일취월장해갔지만 태천은 무언가가 많이 아쉬웠다.
‘지금 우리가 계속 수련한다 해도 투신을 이길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였다.
최절정이라면 태천 혼자서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었지만, 화경은 말 그대로 급이 달랐다.
투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은 그의 일초지적 혹은 옷자락 한 번 건드리지 못하고 패할 게 분명했다.
‘약점…… 투신의 약점이 필요해…….’
그리고 그런 태천의 걱정을 해결시켜 줄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다.
씨익…….
“철현아 투신에 대해 아는 것 좀 있냐?”
슬금슬금 다가가서 산삼 하나 찔러주니 철현은 좋다고 술술 불었다.
“아 투신님은 제 스승님처럼 보법과 신법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투신님의 독문신법인 추섬보는 빛살 같은 빠르기로 유명한데 같은 화경이라도 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척이나 빠릅니다.”
“그래서 약점이 뭔데?”
우물거리면서 산삼을 씹던 철현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무언가 생각났는지 산삼을 꿀떡 삼키고는 답했다.
“아 맞아. 추섬보는 도는 게 잘 안 된답니다.”
“도는 게?”
“예 직진으로 달린다면 세상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지만, 골목길 같은 곳에서는 효력이 좀 많이 떨어진다고 하더라구요.”
철현의 말에 태천은 산삼을 하나 더 던져주고는 상념에 빠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철현이 우물거리던 산삼을 다 먹을 때쯤 태천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투신이 예고한 바로 그 날이 되었다.
안서백가의 내부는 호위무사들로 가득했고, 그 안에서 무사들이 긴장을 한 채 담벼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천 일행은 태천의 말만을 기다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형님 저흰 어디로 갑니까?”
태천은 호섬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네비와 대화 중이었다.
‘네비 지금 이쪽으로 달려오는 물체 있는지 확인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스캔 시작합니다.’
태천의 눈에만 보이는 파란 물결이 안서백가를 중심으로 쫙 퍼져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비의 스캔에 한 인영이 걸렸다.
‘찾았습니다. 남동쪽 방향 1㎞ 800m…… 600m……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비하십시오!’
네비의 급박한 말에 태천은 씨익 웃고선 남동쪽 방향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 주변에 무언가를 열심히 설치하고는 투신을 웃으면서 기다렸다.
* * *
타다닷…….
검은색 잠행복을 입은 한 인영이 안서백가의 담장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검은 인영이 침입했음에도 주변에서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극에 달한 잠행술과 보법에 발이 땅에 닿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쯧 백호송이…… 이 자식 그따위 짓거리를 벌였단 말이지…….’
검은 인영, 투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안서백가에 예고장을 날린 이유는 단 하나, 안서백가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벌이며 그 댓가로 돈을 벌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이곳에 예고장을 날릴 이유는 충분했다.
‘흥…… 이따위 경비들로 나를 잡으려는 게냐……? 나도 꽤나 얕보였구만…… 큭큭큭.’
짧은 상념을 마친 투신은 극성으로 추섬보를 펼치며 내부로 파고들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발에 걸리는 게 있었다.
‘어라 이게…… 뭐…… 야?!’
쿠당탕탕탕…….
“크아악…….”
날카로운 실들이 검은색으로 염색된 채 이곳저곳에 묶여 있었다.
‘끄으윽…… 이런 제기랄 이딴 함정을 파놓다니…….’
천만다행으로 발이 잘리진 않았지만, 꽤 큰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그의 귀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투신은 자신을 바라보는 젊은 남성 3명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서 있던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씨익 웃는 게 아닌가.
‘허…… 대체 이 녀석은 뭐지? 이 함정을 설치한 장본인인가? 아니, 대체 내가 이곳으로 올 줄 어떻게 알고 이딴 함정을…….’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보며 침음을 삼키던 투신은 그에게 호통친다.
“죽여라…… 나는 항복 따위 하지…… 어라?”
말을 하던 투신은 눈 앞에 펼쳐진 어이없는 상황에 눈만 껌벅껌벅거렸다.
자신을 바라보던 3명 중 2명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게 아닌가?
“사부님을 뵙습니다.”
가운데 있던 그놈은 자신을 사부라고 부르곤 얼굴을 들더니 씨익 웃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순간 가려져 있던 달빛이 그들을 비추었고, 달빛이 그들에 얼굴 비추자 투신은 그들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태천 일행이었다.
‘얘넨 대체 뭐야아아아아아!!!!!’
그리고 안서백가의 내부에서 투신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