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10화
“자…… 자네는 대체 누군가?”
경기장을 내려가는 태천을 붙잡은 것은 매화검 김무천이었다.
김무천은 처음의 인자하던 미소조차 사라진 채로 다급하게 태천에게 답을 요구해 왔다.
그에 태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예? 저는 그저 평범한 무인일 뿐입니다.”
태천의 말에 속이 갑갑했는지, 가슴을 두어 번 두들기더니 매화검이 다시 말했다.
“아니, 대체 어떻게 독고구검을 펼친 겐가?”
매화검의 떨리는 목소리에 태천은 빙그레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그냥 보니까 되던데요?”
그러고는 태천은 뒤를 돌아 뚜벅뚜벅 걸어 내려갔고, 경기장 위에는 무천과 무학만이 덩그러니 남아 경기장을 내려가는 태천을 멍하니 처다 보았다.
“아니…… 그럴 수 없어 대체 뭐지? 대체…… 아! 설마!!!!”
멍하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중얼거리던 무천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어릴 적에 보았던 고서에 있던 바로 그것!
무신지체였다. 하늘이 내려준다는 천무지체보다 한 단계 높다 알려진 오로지 무를 익히기 최적화된 육체가 바로 무신지체였다.
바로 그 책에서 무신지체를 다뤘고 태천의 지금 이 모습이 바로 책에서 봤던 내용과 판박이었다.
“허허…… 수천 년이 지나고서야 드디어 무신지체가 나왔구나…… 저 아이 또한 역사를 써내려가겠군.”
독고구검의 창시자인 독고구패와 무당의 장삼봉 진인 그리고 소림의 달마대사 거기에 마교의 개파조사인 천마까지 모두가 무신지체를 타고났고 그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곤 결국 등선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바로 그 무신지체가 다시 한번 재림한 것이다!!
“어우씨 깜짝 놀랐나.”
매화검이 자신을 붙잡고 검법에 대해서 추궁할 줄 알고 살짝 쫄았던 태천이었지만, 좋게좋게 넘어가서 다행이었다.
“저 화산의 늙은이가 갑자기 왜 잡은 거지? 독고구검 때문이 아니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태천은 경기장에서 내려와 천동과 호섬에게 다가갔다.
“형님! 깔끔하게 이기셨네요!”
호섬은 태천이 한 일이 무엇인지 가늠하지도 못하고 그저 승리를 축하해 주었고.
“……너 방금 경기장에서 뭔 일을 벌인거야.”
천동은 어렴풋이 태천이 한 짓을 알고선 추궁했다.
“하하하…… 아니, 뭐…… 그냥 쓸 만한 검법이길래…… 익혔다.”
태천의 말에 설마설마하던 천동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너 진짜 독고구검을 배운 거야? 그저 본 것만으로?”
천동의 말에 태천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너 설마…… 내 태극혜검도 가져갔냐?”
천동의 말에 흠칫한 태천은 딴청을 피우며 대답을 회피했고, 그 모습만으로도 대답이 되었는지 천동은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죽도록 수련한 걸 그렇게 쉽게 가져가다니…… 세상 참 불공평하네.”
딴청을 피우던 태천은 천동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무슨 천무지체를 가진 녀석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어이가 없네. 허 참.’
물론 그러는 자신도 무신지체였지만 말이다.
천동과 태천이 툭닥거리고, 그런 둘을 말리던 호섬이 우뚝 멈춘 것은 무천이 4강에 진출하게 된 진출자들을 단상 위로 불렀기 때문이다.
“낭인 철호섬! 무당일룡! 노천동! 풍선 풍철현! 마지막으로 강태천! 위로 올라오십시오!”
그 말과 함께 4강 진출자들은 경기장 위로 뚜벅뚜벅 올라갔고, 위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천을 볼 수 있었다.
태천은 경기장에 올라감과 동시에 무천의 시선을 느껴야 했고 모른 척 피했다.
아까는 당황해서 검법을 뺏긴 것도 제대로 생각을 못 했는데, 시간이 좀 흐르고 나니 자신들의 비기를 뺏긴 기분에 허탈해진 무천이었다.
설마 무신지체를 가진 이가 이 대회에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4강 진출자들을 축하해 주었다.
“4강의 진출 한 4명 모두 진심으로 축하하네.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주길 바라면서, 4강 대진표를 여기서 발표하겠네!”
무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사람들이 환호했고, 그 결과 대진표는 이렇게 짜였다.
노천동 / 철호섬
강태천 / 풍철현
대진표 편성이 끝나고 경기장에서 내려와 호섬을 바라본 태천과 천동은 웃음을 터뜨렸다.
울 거 같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호섬의 모습에 둘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하하 호섬 왜 울려고 하느냐.”
“아니! 진짜 철현이었으면 그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라도 들 텐데 이건 아니잖아요!!”
셋은 킥킥 대며 장난치다가, 저번에 갔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자 먼저 와 있던 나머지 8강전 진출자들이 그들을 환영해 주었다.
“어이! 여기야 여기! 왜 이리 늦게 와.”
천화와 같이 앉아 있던 민성이 그들을 자신들의 테이블로 불렀고, 그들은 웃으면서 합석했다.
“호섬 때문에 웃겨가지고 좀 웃다가 늦었네.”
그들은 오늘 졌던 일들은 잊고선 신나게 마시고 먹으면서 8강 진출한 첫날처럼 즐겁게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고 태천에게 졌던 게 충격이었는지, 무학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 * *
즐겁게 놀고 배부르게 먹고 나온 태천 일행은 각자의 숙소를 향해 헤어졌다.
4일 뒤 열릴 4강전을 기약하며 말이다.
앞으로 4일간 철현과 천동을 만나 함께 수련하기로 하고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한 태천과 호섬은 각자 대충 물로 씻고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 벌써 4강이네요, 4강!”
호섬이 웃으며 즐거워하자 태천 또한 웃으며 생각에 빠졌다.
‘전생엔 2등이었지만, 이번엔 내가 1등이다. 천동!’
태천이 이런 생각을 할 동안 호섬은 다음날부터 하게 될 수련에 대한 걱정을 가득 안은 채 잠이 들었다.
다음 날부터 4일간 호섬이 걱정한 것처럼 천동과 태천의 괴물 같은 수련을 했고 그들의 수련양에 철현 또한 혀를 내둘렀다.
“너네들은 매일 이렇게 수련했었나?”
철현의 물음의 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 이상하다는 듯이 철현에게 되묻는다.
“이 정도면 평소보다 적지. 대회가 있으니 조금 덜 하는 거야.”
천동의 말에 태천 또한 동의했다.
“맞아 평소엔 이거보단 1.5배 정도 더 하지.”
그들의 말에 철현 둘을 괴물 보듯이 보고는 호섬과 따로 떨어져서 훈련을 했다.
그렇게 4일간 그들은 맹렬히 수련을 했다. 각자 대련도 하며 서로의 잘못된 점등을 지적해 주며 시간을 빠르게 흘러갔고, 결국 준결승의 날이 밝아왔다.
“으와…… 진짜 지옥 같은 날들이었…….”
말은 하던 호섬이 옆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태천의 눈빛에 헛기침을 하더니 빠르게 경기장으로 걸어간다.
“형님! 경기 늦겠습니다!”
꼬리에 불이 붙은 생쥐마냥 빠르게 사라져가는 호섬을 보며 피식 웃은 태천은 빠르게 호섬의 뒤를 밟는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관객들의 수가 두 배는 많아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와 형님, 관객들이 더 많아진 것 같은데요?”
호섬의 말처럼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이 관객들로 인해 꽉 막혀 있었고, 둘은 힘겹게 사람들을 뚫으면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멋쩍은 표정으로 사람들의 틈새에서 빠져나오는 천동과 철현을 보았고,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두 사람은 보곤 호섬과 태천도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준결승의 날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소림의 신권이라 불리는 호대권 님께서 사회를 맡아주실 겁니다!”
“신권이라는 과분한 별호를 쓰고 있는 호대권이라합니다. 오늘 경기는 저도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군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권은 4강진출자들을 쓰윽 훑어보았다.
“첫 번째 경기! 노천동과 철호섬!!!”
대권의 외침과 동시에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그 함성이 향한 주인공들인 천동과 호섬은 웃으면서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경기를 준비했다.
경기 준비를 마치고 서로를 마주 바라보는 둘의 눈은 투지로 불타올랐다.
지난 4일간 수 없이 대련했기에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둘은 지금 이 순간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대권의 호각소리와 함께 둘은 각자의 신법을 펼치며 달려들었고 챙 하는 쇳소리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둘 다 쾌검의 달인들이었기에 사람들이 눈 한 번 깜빡할 때마다 수초씩 검초들을 교환하며 화려한 경기를 보여주었다.
호섬 또한 분명히 천동에 비해 처지는 실력이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분전하며 천동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오! 이거 설마 내가 이길 수 있으려나?’
예상밖에 상황에 호섬은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며 천동을 몰아쳐 갔고, 호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것은 천동의 조그마한 혼잣말 때문이었다.
“다…… 파악했다…….”
그 한 마디와 함께 호섬은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지…… 지금 뭐라 한 거지? 내 검을 다 파악했다고 한 거야? 에이 설마!’
하지만 천동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그 뒤로 단 한 번의 공격조차 허용하지 않으며 폭풍같이 호섬을 몰아쳐갔다.
그리고 그제야 호섬은 천동이 자신을 봐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천동은 지금 태극혜검조차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눈치챈 호섬은 자만하던 자신을 책망하면서 검 끝에 정신을 집중했다.
고오오오오오오오…….
호섬의 바뀐 기운에 흠칫하던 천동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같이 맞서주었다.
둘이 자신의 모든 정신을 검 끝에 집중하던 그때 호섬이 먼저 움직였다.
가히 빛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속도로 천동에게 검을 찔러 갔다.
‘내가…… 이겼다!!!’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호섬이 느낀 것은 자신의 목에 닿아 있는 차가운 감촉의 검이었다.
자신의 목에서 흐르는 한 줄기 선혈을 보면서 호섬이 망연자실하게 말한다.
“대체…… 어떻게…… 내가 한 발 더 빨랐는데…….”
호섬이 허탈해하며 묻자 천동은 검을 거두면서 답을 해준다.
“찌르는 건 분명 네가 빨랐지만, 그저 내 속도가 더 빨랐을 뿐이야.”
천동의 그 발언으로 호섬은 자신의 생각을 굳혔다.
‘역시 둘 다 괴물이야!’
* * *
천동과 호섬의 경기가 끝나고 태천과 철현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시작과 함께 철현은 자신의 보법을 극성으로 발휘했다.
지난 4일간의 수련으로 태천과 자신의 격차를 알고 있는 철현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기로 결정했다.
그와 함께 철현의 주위로 세찬 바람들이 웅웅거리면서 몰려들었다.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든 그 상황에서 태천은 씨익 웃으면서 검을 빼 들고 천마군림보를 펼치며 철현에게 내달렸다.
태천의 발걸음 하나하나의 담겨 있는 중압감을 느끼며 철현은 쥐고 있는 검에 힘을 주며 태천에게 맞섰다.
철현은 자신의 빠른 보법으로 태천에게 응수했지만, 태천은 그런 자신의 보법과 검을 피해내며 자신에게 검상을 남겼고, 그런 태천의 모습에 철현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속도로 밀리다니…….’
풍신의 가르침을 받은 후 힘으로 밀려본 적은 있어도 속도로 밀려본 적은 없는 철현에게 태천이란 존재는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호섬이 하던 말이 스쳐 지나간다.
‘둘 다 괴물이야! 괴물!’
호섬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가 한말이 머릿속을 스치자, 자신의 몸으로 호섬의 말의 의미를 느꼈다.
압도적인 강함!
그래선 안 되지만 철현은 자신의 스승인 풍신의 모습이 태천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걸 느낄 정도로 태천의 능력은 엄청났다.
이를 악물면서 태천에게 대항하려 하지만, 자연재해를 인간의 몸으로 막을 수 없듯이 철현은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태천을 느낄 수 있었다.
“졌습니다…….”
휘오오오오…….
철현의 주변에서 불어오던 세찬 바람들이 사그라지면서 철현은 자신이 검을 든 손을 추욱 늘어뜨렸다.
의기소침해진 철현에게 태천이 웃으며 인사했다.
“한 수 배워갑니다. 소협 또한 대단하시더군요. 바람 때문에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하.”
태천의 말에서 자신을 위로해 주려는 태천의 마음을 알고선 평소의 자신으로 돌아왔다.
“하하하 저도 강 소협에게 큰 걸 배워갑니다. 나중에는 지지 않을 겁니다!!”
철현의 말에 그저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 따름인 태천이었다.
‘풍신보 잘 배워갑니다.’
속으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하면서 철현을 데리고 경기장 아래로 내려가 휴식을 가진 뒤, 신권 호대권의 외침과 함께 천동과 경기장 위로 올라갔다.
“결승 진출자 노천동과 강태천!!!!!”
대권의 쩌렁쩌렁한 사자후와 함께 그와 비슷할 정도로 관객들의 우렁찬 함성 소리와 함께 축하 인사들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강태천!!!!!
-노천동!노천동!
-무당일룡 멋져요!!
-강태천 우승 가즈아!!!!
신권이 관객들을 진정시키면서 결승 날짜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결승은 일주일 뒤에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끼리 상의한 결과 둘 다 절정의 무인이므로 결승전만은 검기의 사용을 허가합니다! 그러니 더욱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오늘 준결승을 마칩니다!!!”
사람들의 우렁찬 함성 소리와 함께 준결승이 끝났다.
‘드디어 결승이다……!!’
태천과 천동은 같은 생각을 하며 준결승의 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