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네비게이션 9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 3일이 지났다.
거리에는 오늘만을 기다려온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이보게 장 씨! 자네는 오늘 누가 이길 거 같나?”
“아 당연히! 무당일룡 아니겠는가?! 무려 절정일세! 절정!!”
“하지만 강태천이라는 그 친구도 만만치 않네!”
서로의 의견을 묻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들 거십시오!! 잘만 고르시면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습니다!!”
“나요! 강태천으로 하나 주시오!”
“에잇 밀치마!”
승패를 두고 돈을 걸기도 했으며.
“어머 얘 넌 누구 응원하러 가니?”
“너도 응원하러 가는구나? 난 강 소협 응원하러 가! 어쩜 그리 멋지실까…….”
“나는 풍 소협!”
서로 깔깔거리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응원하러 가는 여성도 무척이나 많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경기장 주변은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그런 시장통 속으로 태천과 호섬이 들어서자 사방에서 그들을 응원하던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면서 더욱 복잡해졌고, 굳이 여기만 보지 않아도 다른 진출자들이 있는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야! 저기에 강태천이 있대!”
“뭐? 저기는 화산의 김무학이!”
각자 응원하는 사람들을 찾아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진출자들은 웃으면서 악수해 주며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와 진짜 죽는 줄 알았네. 3일 전보다 배는 는 거 같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휴.”
태천과 호섬의 대화에 멀리서 천동이 다가오며 말한다.
“하하 너네도 사람들한테 휩싸였나 보구나?”
“어 진짜로 죽는 줄 알았다. 대회경기 치르는 것보다 힘드네.”
태천의 질색하는 말투에 천동이 웃으면서 그들을 데리고 대진표를 보러 갔다.
“자 이제 각자의 대진표를 봐보실까?”
[8강 대진표]
강태천 / 김무학
노천동 / 호명진
철호섬 / 이민성
풍철현 / 유천화
‘골고루 갈라졌네?’
“형님 그래도 준결승에서 만나겠습니다. 하하.”
마치 자신의 상대인 민성에겐 절대 안 진다는 듯이 말하는 호섬의 말에 둘은 피식 웃었다.
“임마 이민성도 너랑 같은 일류야.”
“그래도 이민성은 저처럼 형님과 훈련을 안 했잖아요. 윽.”
말을 하며 3일간의 특훈이 기억났는지 몸서리치는 호섬을 보며 태천과 천동은 파안대소했다.
“하하하 태천아 대체 어떻게 훈련시켰길래 저러는 거냐.”
“검술 2시간, 보법 2시간, 운기조식 2시간, 나랑 대련 3시간.”
그런 태천의 말에 천동이 의아해하면서 되묻는다.
“응? 그것밖에 안 하는데 그러는 거야?”
내심 천동에게 너무 심하니 줄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호섬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으로 멍하니 천동을 바라봤다.
‘역시 둘 다 괴물이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 훈련을 좀 더 늘려야겠다.”
“아 내가 하던 수련 방식은 말이야…….”
둘의 끔찍한 대화를 바라보던 호섬은 대화를 끊으면서 말한다.
“아니, 그런 말 하지 말고 경기나 하러 가시죠. 하하하.”
호섬이 둘을 질질 끌고 경기장으로 들어가자. 둘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풋 웃더니 호섬에게 어울려 주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니 16강전과 마찬가지로 나머지 진출자들과 사회자가 올라와 있었다.
“오늘부터는 조금 특별해질 겁니다! 심사위원으로 나오신 3분께서 차례로 사회를 봐주실 겁니다. 오늘은 화산의 매화검께서 사회를 봐주시겠습니다.”
“큼큼 아직은 많이 부족한 제가 이런 대회에서 사회를 보게 돼서 굉장히 기쁩니다. 대회의 남은 기간 동안 경기를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8강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매화검의 말과 함께 천동과 명진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경기장 아래로 내려갔고, 금세 열 명이 넘어가던 경기장 위에는 매화검, 천동, 명진 이렇게 세 명만이 남았고, 매화검은 살짝 뒤로 빠진 채 경기의 시작을 외쳤다.
명진은 제극권의 자세를 잡았고 천동 또한 태극검의 자세를 잡으면서 명진을 노려보았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천동과 명진이 서로에게 인사를 한 뒤 바람처럼 달려갔고, 서로의 검과 권갑이 부딪히면서 쇳소리를 내었다.
챙! 채앵! 챙챙!
하지만 역시 권이라는 무기는 사거리가 짧았고, 그 덕분에 검을 쥔 천동에게 승기가 점점 넘어갈 무렵 갑작스레 명진이 뒤로 몸을 빼었다. 천동에게 갑자기 거리를 준 명진을 사람들이 의아하게 쳐다볼 무렵 명진이 천동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아니, 그 거리에서 갑자기 왜 주먹을?!’
관객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생각했고, 그 대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흠칫한 천동이 검의 옆면으로 무언가를 막아냈고 그 순간 날카로운 금속성이 천동의 검에서 들려왔고, 사람들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매화검 김무천의 침음 소리였다.
“으음…… 백보신권…… 신권 이 녀석 제대로 작정했구나…….”
백보신권!
소림의 절기로 지금 소림의 이 무공을 익힌 자는 단 한 명! 신권 호대권이다.
그런 백보신권을 명진이 사용했다는 건 한 가지밖에 없다. 호명진이 신권의 제자다! 그것도 모든 것을 물려받을!
관객들 또한 그 사실을 알아채고 함성을 지른다.
와아아아아아 신권! 신권!
그런 그들의 환호에도 둘은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서로에게만 집중했다.
거리의 이점을 가지던 천동이 도리어 이점을 뺏기게 되자 명진이 여태까지의 한을 풀 듯이 엄청난 속도로 백보신권을 펼치기 시작한다.
차분하게 주먹을 막아내던 천동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이래야 재밌지!!! 으랴아아앗!!”
천동은 말과 함께 전력으로 무항보를 펼쳤다.
무항보는 이름처럼 빠르게 명진과의 거리 좁혔고, 그 엄청난 빠르기에 명진이 빈틈을 주고 말았다.
그 뒤부턴 천동의 독무대였다.
가까워진 천동은 태극검을 버리고 태극혜검을 꺼내 들었다.
천동의 현모한 태극혜검에 명진은 허둥지둥하다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누는 걸 허락하고 말았다.
자신의 목에 닿은 검이 살짝 찌르며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고선 항복을 선언했다.
“잘 배웠습니다.”
명진의 말에 천동 또한 놀랐다는 표정으로 명진에게 말했다.
“백보신권이라니! 저도 놀랐습니다!”
서로 즐거운 승부였다며 함께 웃고선 악수를 한 뒤 서로 단상에서 내려갔다.
관객들은 멋진 승부를 보여준 둘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냈고, 뒤이어 다른 참가자들이 경기장에 올라왔다.
다음은 철현과 천화의 대결이었다.
둘의 승부는 시작하자마자 갈렸다.
철현의 보법 때문이었는데, 보법을 펼칠 때마다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채찍의 타격점이 조금씩 빗나가며 철현의 몸을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채찍을 한 번씩 휘두를 때마다 천화의 몸에는 철현의 검으로 인한 자상이 하나씩 생겨갔다.
그래도 천화는 꿋꿋이 버티면서 채찍을 휘둘렀지만, 시간이 갈수록 철현의 보법으로 인해 부는 바람이 점점 강해졌고 얼마 안 가 결국 천화는 철현의 검이 자신의 목에 닿은 것을 느꼈고 항복했다.
사실 천화 채찍술도 수준급이었지만 철현의 실력 자체도 천화보다 뛰어났고 더 중요 했던 건 역시 보법 덕이 컸다.
그래서인지 천화는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철현과 악수를 하고선 민성에게 달려갔다.
민성은 달려오는 천화를 부둥켜안고선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다음은 자신의 경기였기에 천화를 풀어주고선 경기장으로 올랐다.
민성은 떨어진 천화를 생각하며 자신이라도 준결승에 오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상대는 태천의 특훈을 받아가며 엄청나게 강해진 호섬이었다.
호섬은 오랜만에 만난 자신과 비슷한 급의 상대에 즐거워하며 승부에 임했고, 민성 또한 긴장하며 자신의 연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 매화검 무천의 시작 소리와 함께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늘을 너풀거리며 날다가 벌처럼 쏘아지는 민성이 연검은 무척이나 빠르고 날카로웠지만, 호섬은 매일매일 그것보다 빠르며 날카로운 검들을 상대했고, 자신의 낭인보의 취약점을 태천이 고쳐주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민성의 연검을 피해냈다.
자신의 검이 스치지조차 못하자 조바심이 난 민성이 더욱 빠른 속도로 휘둘러댔지만, 호섬은 그런 그를 비웃듯이 단 한 대조차 맞지 않고 연검을 피해 다니며 중간중간 보이는 민성의 빈틈에 빛살 같은 속도 찌르기를 하며 민성의 체력과 정신력을 갉아먹었다.
자신의 공격 사이사이에 있는 빈틈만을 공략하며 공격하는 호섬의 모습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지경인 민성이었다.
그렇다고 호섬이 보법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그 빛살 같은 찌르기가 자신을 향해 찔러오면 어찌나 무서운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결국 반복되는 상황에 지친 민성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정말…… 무서운 찌르기였습니다. 그리고 보법도 대단하시더군요! 대체 어떻게 그런 찌르기와 보법을 가지신 겁니까?”
민성이 호섬에게 다가와 묻자 호섬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해주었다.
“형님이랑 같이 다니면 이렇게 될 수 있어…….”
자신과 비무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축 늘어진 호섬의 모습의 그 형님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진 민성이었다.
물론 태천이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애초에 호섬이 태천보다 나이가 많기에 선택지에 두지도 않았던 민성이다.
호섬과 민성의 경기가 끝나고 마지막 경기인 태천과 무학이었다.
태천이 경기장 위로 올라가자 무학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이 뭘 잘못 먹었나? 이런 생각을 하던 태천의 눈에 심판인 매화검의 눈치를 힐끗힐끗 보면서 자부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무학의 얼굴이 보였다.
‘아 맞아 저 녀석 자기가 화산파라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녀석이었지. 그런 녀석이 자신의 사부 앞이니 얼마나 당당하겠어. 뭐 봐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말이야.’
태천의 생각은 정확했다. 악인들에게는 마귀라고 불리는 저 매화검이 무학에게는 한없이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매화검의 준비 소리와 함께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각자 내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학의 얼굴이 점점 자색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설마? 저 녀석 자하신공을 배운 건가?’
태천만의 생각이 아니었는지 심사위원석에서도 웅성거림이 들렸다.
“허 매화검 저 녀석도 만만치 않구만 자하신공을 전수하다니 말이야.”
“그러게 말일세 저렇게 제자를 사랑하는지는 몰랐네 그려. 하하하.”
둘의 떠드는 동안 무학은 완전히 운용을 마쳤는지 주변에서 자색 기운이 넘실거렸다.
‘호오 이번엔 좀 재밌겠는데? 네비 어때 천마신공에 비하면 역시 처지지?’
‘네 확실히 처집니다. 그런 걸 굳이 위험성을 감수하며 익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태천이 입을 열었다.
“잘난 자하신공 맛 좀 한 번 볼까?”
태천의 말에 무학이 단숨에 태천에게 달려왔다.
“네가 절정이라지만, 자하신공의 위력에는 못 미칠 거다!”
의기양양하게 외치며 달려온 무학을 본 태천은 피식 웃자 태천의 주변에서 검은빛 기류가 흘렀고, 그걸 본 무학이 멈칫했다.
“대체…… 그건 뭐냐…….”
검은빛 기류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포식자를 만난 피식자처럼 몸이 굳어버린 무학이 태천에게 부들부들 떨며 묻는다.
“이거?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이만 시작하지? 어디 자하신공 좀 제대로 보여달라고!”
태천이 자리를 박차면서 달려오자, 으득 이를 간 무학은 내공을 운용하며 굳은 몸을 풀어낸 뒤 함성을 외치며 자신의 사부님이 알려준 검법을 펼쳐나간다.
“차아앗!!”
챙!! 챙챙챙!! 챙!
생각보다 강력한 검초에 의아하던 태천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심사위원석에서 의자를 부술 듯이 일어난 두 명의 심사위원 덕분이었다.
“저…… 저 자식 독고구검까지 전수했어!!”
“크흠…… 그걸 장문인이 허락했단 말인가?”
그들의 말에 태천 또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독고구검(獨孤九劍)!!
자신이 익힌 천마신공의 창시자인 천마와 함께 시대를 풍미한 장삼봉 진인과 함께 언제나 같이 거론되는 독고구패가 만들어낸 희대의 검법이었다.
9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초식들 또한 다른 절세검법들의 밀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거기다가 오직 공격만이 있으며 방어적인 초식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척이나 패도적인 검법이다.
바로 그 검법을 태천이 보면서 느낀 감상은 놀라움과…….
‘잘 먹겠습니다!!’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시키는 것이었다.
무학의 검술을 머릿속에 기억시키는 한편, 몸은 천마검법을 펼치며 독고구검을 능수능란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세 명의 심사위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 어떻게 독고구검을 저렇게 막아내는 거지……?”
“아니, 대체 저 검법은 뭐지?”
“으으음…….”
세 명이 자신을 평가하든 말든 태천은 오랜만에 본 특급무공을 보며 기억하기 바빴다.
한참을 싸우며 머릿속에 기억시키던 태천은 멈춰 서더니 한마디를 무학에게 던졌다.
“이제 끝내자!”
씨익 웃으면서 달려드는 태천을 아까와 같이 독고구검으로 막아내려던 무학의 두 눈이 더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태천이 자신과 같은 독고구검을 펼치는 게 아닌가! 아직은 미숙해 보이지만 분명 그것은 독고구검이었다.
태천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뻐금거리며 자신의 검을 막은 무학을 보며 씨익 웃어주곤 다시 검을 휘둘렀다.
“너만 쓸 줄 알았냐?”
태천의 그 말에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일치했다.
‘그럼 너도 쓸 줄 알았겠냐?!’
독고구검을 펼치는 태천에 당황한 무학은 점점 밀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이를 악물고 더 싸워보려 했지만 태천과 눈을 마주친 순간 자신의 그런 감정은 썰물 빠지듯 싹 사라졌다.
그 눈빛은 포식자가 피식자를 바라보는 눈빛이었기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학이 기권했는데도, 주변은 고요했다.
그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매화검이 태천의 승리를 외치자 그제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손 인사를 해주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태천을 잡는 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