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연 네비게이션-1화 (2/139)

기연 네비게이션 1화

끔뻑끔뻑…….

눈을 뜬 나에게 보인 것은 벼락에 맞아 불탄 내 손도 아니었고, 내가 벼락을 맞은 자리인 황야도 아니었다.

여긴…… 15년 전 처음 무림에 끌려왔을 때, 신세 지던 객잔이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나는 분명 죽었을 텐데? 이게 주마등이라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리고 내 눈에 처음으로 보인 것은 천동이었다. 자신의 친구 천동…….

자신이 힘들어할 때마다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어주었던, 천동이 다시 한번 나에게 미소 지어주고 있다.

“천동아!!!”

나는 벅차오르는 감격을 참지 못하고 천동에게 달려가 와락 끌어안았다.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그런 나를 보며 천동이 당황하며 묻는다.

“야 태천아 너 왜 그러냐 갑자기 너 나한테 무슨 잘못 저질렀냐?”

천동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답한다.

“아니! 너를 다시 만나니 기뻐서!”

“허참, 아니, 어제도 봐놓고 뭘 다시 만나서 기쁘다는 거야?”

이상하다는 듯이 태천을 쳐다보던 천동은 빗자루를 들고선 객잔 내부를 쓸기 시작한다.

나도 천동을 따라 빗자루를 쥐고선 객잔을 쓸면서 상념에 빠진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다시 살아난 거야? 대체 무슨 일이지?’

그런 나의 상념을 부숴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귀에 들린 목소리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태천 님은 한 번 죽으셨습니다.’

‘으앗! 넌 누구야? 이건 또 어디서 나는 목소리야?’

‘저는 태천 님의 네비게이션입니다. 편하게 ‘네비’라고 불러주세요.’

자신을 네비게이션이라 말하는 목소리를 향해 태천이 묻는다.

‘네가 말하는 네비게이션이 내가 아는 그 네비게이션이 맞아?’

내가 네비게이션이라는 말을 듣고 떠올린 것은 지구에서 있던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이었다.

‘크게 본다면 태천 님의 생각도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언가를 찾는 네비게이션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나는 네비의 말을 들으면서 궁금한 점을 묻는다.

‘무언가? 네가 말하는 무언가라는 게 도대체 뭔데?’

‘기연입니다.’

네비의 한마디에 나는 처음 네비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보다 놀랐다.

그 예로 빗자루를 쥔 내 손이 벌벌 떨렸다.

‘진짜? 네가 말하는 기연이 내가 생각하는 그 기연이 맞는 거야? 심법이나 영약 같은?’

‘태천 님이 생각하시는 그게 맞습니다. 지금도 태천 님 주변에는 기연이 몇 개 있네요.’

그 말에 나는 간신히 유지하던 평정심이 깨어진 채 네비에게 물어보았다.

‘진…… 진짜야? 뭐가 있는데? 심법? 영약?’

기대감에 덜덜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나는 네비의 말을 기다렸고, 곧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두 가지 다. 주변에 있네요. 축하드립니다. 태천 님.’

그런 네비의 말에 나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툭 떨구었다.

“야 태천아 너 왜 그래? 멍하니 서가지고, 어디 아파?”

천동의 걱정 어린 물음에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 후 네비에게 다시 묻는다.

‘그러면 그 두 가지가 어디에 있어?’

나의 물음에 네비는 바로 답해주었다.

‘천산입니다. 그곳에 두 개의 기연이 존재합니다.’

천산(天山)!

천산은 이 허창이 생기기도 전부터 있던 산으로 왜 천산이라 불리냐면, 그 마교의 개파조사인 천마가 이 산에 있었다는 옛이야기 때문에 천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 천산에 기연이 있다니…… 옛날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저 천산에 있는 기연은…….

꿀꺽…….

천산에 있을 기연을 생각하며 침을 삼킨다.

‘천마신공!’

천마신공! 천마의 독문무공으로 천마를 천마로 있게 해준 절세의 무공 아닌가! 그런 무공이 저 천산 안에 존재했다니……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내 몸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당장에라도 천산으로 뛰어갈 것처럼 주체가 안 됐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진정한 뒤 네비에게 물었다.

‘혹시…… 그게 천마신공이야?’

내 말에 네비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습니다. 천마신공이네요. 그리고 바로 그 옆에 있는 영약은…… 무신초로군요.’

‘무…… 무신초라고?’

천마신공을 들었을 때보다 더한 떨림이 내 몸에 찾아왔다.

무신초!

천 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하다는 그 희대의 영초가 바로 천산에 있었다.

무신초는 먹게 되면 단숨에 무공을 익히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천무지체를 뛰어넘는 희대의 무골인 무신지체로 만들어주는 영약이다.

그래서 나 또한 전설 속에서만 있는 영약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실존했었다니!

다시 한번 찾아오는 떨림에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객잔 밖으로 달려나가려는 나를 잡아 세운 건 어떤 도사와 얘기하는 천동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 오늘이 그 날이구나…… 무당으로 떠났던 날.’

아무래도 내가 돌아온 날이 무당으로 떠나던 날이었나 보다. 천동의 천무지체를 알아본 무당파 장로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된 바로 그 무당.

천동과 한참 말을 하던 도사가 나를 보더니 나에게 다가온다.

“자네 혹시 맥 한 번만 짚어봐도 되겠는가?”

늙은 도사의 말에 나는 흔쾌히 허락했고, 내 맥을 짚어본 그는 놀라워했지만, 그의 놀람 따위 내 알 바가 아니다.

“천무지체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는데, 이렇게 깨끗한 혈도라니…… 오늘 평생 놀랄 일을 다 겪게 되는구나…….”

도사의 말에 나는 역시…… 하며 내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역시 나는 이때 당시에 혈도가 매우 깨끗했어. 이럴 때 천마신공과 무신초를 얻게 된다면…… 흐흐흐.’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도사가 나에게도 무당에 가지 않겠느냐고 권유를 한다.

물론 나는 갈 생각이 하나도 없었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괜찮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저 친구라도 데려가세요.”

내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천동이 서 있었다.

내 완고한 태도를 보더니 도사는 다시 한번 물어온다. 아 거 되게 끈질긴 양반이네, 이거.

“정말로 가지 않을 생각인가? 나는 무당에서 온 사람일세, 이건 둘도 없는 기회야!”

급기야 그는 자신이 무당에서 왔다는 것까지 밝혀가며 나를 설득하려 들었지만 택도 없었다.

‘둘도 없는 기회는 지금 천산에 잠들어 있는 무신초랑 천마신공이 둘도 없는 기회다! 이 양반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얼굴에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었다.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저 때문에 제 친구가 안 간다고 하면 제가 설득해 드리겠습니다.”

역시 천동이 주목적이었는지, 내 뒷말에 그가 방긋 웃으면서 부탁을 해온다.

“큼큼…… 정말 그래줄 수 있겠는가? 저 친구가 고집이 좀 세야지…….”

나는 알겠다고 말해준 후 천동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천동을 구석진 곳으로 부른다.

“천동아, 이리 와봐.”

내 부름에 천동은 순순히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온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다가온 천동에게 다짜고짜 무당파로 가라고 말하자, 천동이 찡그린 표정으로 말한다.

“너도 같이 가자, 태천아. 내가 다 말해 놨어! 우리 둘다 무당파에 갈 수 있는 기회라고 태천아!”

그런 천동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내 대답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싸늘했다.

“아니, 천동 나는 무당파에 가지 않아, 나는 나만의 길을 걸을 거야.”

내 표정에서 고집을 읽었는지, 천동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니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방법이라도 있나보구나…… 그래 내가 강요할 수는 없지 너의 선택은 존중할게, 태천아. 나는 언제나 너의 편이다.”

천동의 말에 나는 웃으면 답 해줬다.

“큭큭 그래도 고맙다. 내 친구야.”

천동의 등을 팡팡 쳐준 뒤 도사에게 다시 걸어가, 그가 원하는 말을 해주었다.

“이제 천동은 무당으로 갈 겁니다.”

내 말에 도사는 무척이나 고마워하며, 도사는 내 손에 가진 돈주머니를 올려주더니 쌩하니 천동에게로 달려가 빨리 가자며 보채고 있었다.

저 양반도 꽤나 웃긴 양반이네 큭큭.

달려가는 도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머니의 있는 돈을 세어보니 앞으로 객잔 일은 안 해도 될 정도로 충분한 돈이 들어 있었다.

‘오! 이 돈으로 기연들을 찾아다니면 되려나?’

곧 천마신공을 찾으러 산을 헤매 여야 하는데, 이렇게 돈 문제가 말끔하게 되니 기분 좋게 기연 찾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되자 나는 도사에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을 때 천동은 도사와의 대화를 마치고선 객잔 주인의 방으로 찾아갔다.

아마 객잔을 나가게 되니 말을 하러 가는 것이겠지.

내 생각처럼 천동은 객잔 주인의 방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홀가분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선 나에게로 뚜벅뚜벅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태천아, 이젠 나가겠다고 말도 다했으니 난 내 방에 가서 준비를 하고 바로 떠날 생각이다.”

천동의 말에 나는 꽤나 놀랐다. 전생에서는 며칠 시간을 두고 갔었는데 말이야.

아마 나 때문이겠지.

그런 천동에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자, 천동은 짐을 챙기러 방으로 올라갔다.

짐을 싸러 올라간 사이 도사와 대화를 나누며 천동을 기다렸다.

뭐 대단한 말을 주고받은 건 아니다.

그저 내가 천동을 잘 부탁한다, 말했고. 그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니까.

그리고 대화가 끝나갈 때쯤 천동이 짐 보자기를 메고선 내려왔다.

“이젠 정말 못 보겠네. 태천아. 너도 너 나름의 방법이 있다고 했으니 나보다 약하면 절대 안 된다! 나중에 커서 다시 만났을 때 나보다 약하면 혼날 줄 알아!”

천동이 주먹을 들어 올리면서 짐짓 무서운 흉내를 내지만, 나한테는 그저 귀여울 따름이다.

‘임마 난 천마신공을 얻고 시작할 거야…… 내 걱정할 때가 아니야.’

천동의 말에 알겠다며 내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천동은 도사와 함께 문을 걸어나가며 소리친다.

“5년 후 개봉! 20살이 되어서 개봉에서 만나서 겨뤄 보는 거다 태천아!”

그런 천동을 보며 나는 피식 웃으며 답해준다.

“너나 열심히 해라! 그때쯤 되면 나는 네가 쳐다보지도 못할 곳에 있을 테니까!”

그렇게 천동은 멀어져갔고, 나는 그런 천동이 점으로 보일 때까지 문에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았다.

‘이번에는 너를 실망시키지 않을게, 천동아.’

과거에 폐인이 된 내 모습에 천동이 적잖이 실망하고 떠났었지…… 하지만 이젠 그런 미래 따윈 없을 거다. 나는 이제 시작부터 다른 시작점에서 시작할 테니까…….

천동이 떠나고 나는 객잔 일을 시작했다.

테이블을 닦고, 손님들을 받으면서 있다 보니 어느새 객잔은 마감 시각이 다되었고, 나는 드디어 내가 고대하던 기연을 찾으러 갈 수 있었다.

객잔에서 나와 천산까지 곧바로 뛰어간 나는 천산의 초입에서 네비를 불렀다.

‘네비? 여기서부턴 어떻게 가야 하지?’

나의 물음에 네비는 새로운 기능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자동 길 찾기 시작합니다.’

네비의 말과 함께 내 시야 오른편에 천산의 지도가 펼쳐졌고, 내 눈앞에는 기연으로 이어지는 파란 선이 있었다.

기연을 찾아주는 파란 선을 바라보면 나는 씨익 웃으며 파란 선을 따라 천산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났을까, 파란색이 끝난 부분에는 까마득한 절벽이 있었다.

‘네…… 네비? 여기에 기연이 있는 게 맞아?’

‘네. 저 절벽 밑에 천마신공과 무신초가 있습니다.’

네비의 말을 들은 나는 이마를 탁 소리 나게 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맨몸으로 절대 못 내려가겠네…… 내일 가서 밧줄을 사서 다시 와야겠네…….”

기연을 가로막는 장애물 덕분에 나는 터덜터덜 산에서 내려가야만 했다.

천산을 내려와 객잔으로 돌아온 나는 내일 얻을 기연을 생각하며, 달콤한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기연을 얻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