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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章 심멸의 주인 (141/146)

第九章 심멸의 주인

쾅! 콰과광!

격한 폭음과 함께 허공이 바르르 떨렸다. 거대한 두 존재가 충돌할 때마다 땅이 전율하고 대기가 울부짖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기운의 파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충돌의 한가운데에 팔룡천법왕 나랍멸과 진운룡이 존재했다.

대단한 초식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격투는 기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 정도의 무인들에겐 더 이상 초식이나 기술은 큰 의미가 아니었던 것이다.

콰과과과광! 쾅!

전각을 밟고 주먹을 뻗는다. 날아드는 당수를 피하고 목젖을 노려 권을 지른다. 몸을 비트는 틈을 노려 깊이 파고든다.

나랍멸의 전투법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전부 정천의 가르침과 본인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공격도 방어도 더 이상은 허술하지 않았다. 그리고 십오 갑자의 내공이 있는 이상, 그 정도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이 되었다.

핏!

나랍멸의 손날이 진운룡의 뺨을 스쳤다.

작은 생채기인지라 금세 아물어 버렸지만 타격을 준 것은 분명했다.

“제법이군.”

흐르는 선혈을 닦아 낸 진운룡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럼 본격적으로 싸워 볼까?”

‘온다.’

나랍멸은 긴장했다. 확실히 그가 보기에도 진운룡은 여력을 많이 남겨 두고 있었다.

“이건 어떠냐?”

쾅!

질문과 동시에 나랍멸의 턱이 하늘로 치솟았다. 가벼운 뇌진탕에 나랍멸의 몸이 비틀거렸다.

‘어떻게……?’

한마디를 뱉음과 동시에 망치로 치는 듯한 충격이 턱에서 느껴졌다.

잘 제련된 쇠망치로 친다 한들 나랍멸에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으니, 실제로는 망치 따위와 비교할 게 아니긴 했다.

육체적 충격도 충격이지만 정신적 충격도 상당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 이런 타격을 입히다니.

‘이것이 바로 심멸인가?’

정천이 지나가는 투로 말했었다. 진운룡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궁극의 경지에 올랐노라고.

이것이야말로 그 경지일 터.

‘그러나 한계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의지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심멸의 경지라 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에게 통용되지는 않을 터.

애초에 모두에게 통용됐다면 나랍멸은 지금 숨도 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호신강기의 수준에 따라 타격 역시 다른 모양이다.’

약한 호신강기쯤은 심멸의 힘이 간단히 뚫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랍멸쯤 되는 이의 호신강기라면 그게 어려울 터.

조금 전과 같은 타격을 주는 것이 최대일 터였다. 그것만으로도 성가시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아직 싸울 수 있다.’

나랍멸은 그답지 않은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정천이 그에게 썼던 방법을.

“이것이 그 대단하다는 심멸입니까?”

“후, 그렇다. 감상이 어떻지?”

“생각보다 별것 아니군요. 시주도 무적은 아닌 모양입니다.”

나랍멸의 말에 진운룡의 미소가 일그러졌다.

“잘도 떠드는군. 그렇게 허세를 부려 봐야 타격을 입은 것을 누가 모를 줄 아나?”

“타격을 입었음을 숨기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도 말해야겠군요.”

“잘도 지껄이는구나.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이 입을 다물게 하려면 좀 힘들 겁니다.”

“흥!”

진운룡의 움직임이 한층 빨라졌다. 그는 삽시간에 나랍멸의 품으로 파고들고는 갈빗대를 향하여 일권을 내질렀다.

쿠웅!

묵직한 일격. 그러나 나랍멸의 왼손에 막혔다. 물론 이것 역시 진운룡의 예상 범위 내였다.

쾅!

나랍멸이 땅을 뒹굴었다. 그의 코가 깨어져 코피가 터져 나왔다.

“크윽.”

심멸은 서장제일의 무공인 현원청화공의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왔다. 게다가 이번엔 앞선 것보다 위력도 한층 강했다.

그러나 나랍멸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것은 맞을 각오를 한 것이었다.

“이래도 별것 아닌가?”

큭큭거리며 웃는 진운룡.

몸을 일으킨 나랍멸이 그답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진운룡을 도발하려는 것이었다.

“이게 전부입니까? 중원의 지존이라는 자 치고는 너무 시시하군요. 고작해야 코피나 터트리는 정도니, 어린애 싸움에나 어울리겠습니다.”

“걱정 마라. 다음엔 네놈의 심장을 터트릴 테니!”

“어디 해 보시죠!”

이번엔 나랍멸이 치고 들어갔다.

막무가내로 진운룡을 도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흥분케 만드는 것은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랍멸의 진짜 의도는 따로 있었다.

‘이번에도 그가 내 생각대로 행동한다면…….’

진운룡의 시선이 나랍멸의 허벅지로 향했다.

콰직!

“크윽!”

나랍멸이 침음을 뱉으며 무릎을 꿇었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는데 그의 허벅지에 시퍼런 멍이 생겼다.

그사이에 달려든 진운룡이 나랍멸의 턱을 향해 발을 날렸다. 정통으로 맞는다면 호신강기고 뭐고 턱이 작살날 위력.

“큭!”

나랍멸은 땅을 뒹굴어 겨우 피했다. 그것을 본 진운룡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서장의 수호자께서 거지처럼 땅이나 구르고 계시는군.”

나랍멸은 그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희미한 미소까지 입가에 두르고 있었다.

‘생각대로다. 저자는 무의식적으로 심멸이 적중할 곳을 바라보고 있어.’

심멸의 원리는 나랍멸로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 경지에 다다른 자가 아니고서야 알 수 없을 테니, 진운룡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가설을 세울 순 있었다.

어딘가에 의지를 집중시켜, 그것만으로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

그렇다면 그 ‘어딘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의 두 눈!’

인간의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몸에 밴 습관은 아무리 대단한 존재라 해도 쉽게 지울 수 없는 법이었다.

심멸이란 게 눈알에서 쏘아 내는 장풍 따위는 아닐 것이다. 애초에 그런 게 있을 리도 만무하고.

그러나 어딘가를 노린다 치면, 당연히 눈으로 그 지점을 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저자의 시선만 읽을 수 있다면, 심멸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나랍멸이 세운 가설의 골자였다.

그리고 이젠 그게 맞는지 시험해 볼 때.

“아직 끝이 아닙니다!”

나랍멸은 내력을 힘껏 끌어올렸다. 허를 찌른다면 최대한의 힘을 동원하는 게 좋았다.

파바바바밧!

나랍멸에게서 흘러나온 청광이 구체로 화했다. 그가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절기, 찰타라(刹打羅)였다.

“받아 보시오!”

나랍멸이 손을 뻗었다. 찰타라가 진운룡의 복부를 노리고 쇄도했다.

“흥!”

진운룡 역시 멸마환영무를 극성까지 끌어올렸다. 무시무시한 기운에 휩싸인 그는 마치 백색의 작은 태양처럼 타올랐다.

“하압!”

진운룡은 기운을 격발시켜 일종의 갑옷을 만들어 냈다. 그것과 충돌한 찰타라가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과과과광!

황야의 지형이 바뀔 정도의 폭발. 소규모의 화산이 터지는 듯한 무시무시한 위력과 함께 주변의 땅이 크게 요동쳤다.

그 폭발 속에서 뛰쳐나오는 진운룡.

나랍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돌진해 들어갔다.

“건방진!”

진운룡은 반격과 동시에 심멸을 펼치려 했다. 그의 눈이 나랍멸의 이마를 응시했다.

‘온다!’

나랍멸은 있는 힘껏 몸을 움츠렸다. 심멸로써 이마를 후려치려던 진운룡은 졸지에 목표를 놓쳤다.

“뭣……!”

나랍멸이 앉았던 자세 그대로 몸을 펴며 뛰어올랐다. 그리고 당황하고 있는 진운룡의 얼굴 위로 주먹을 내리꽂았다.

쩌억!

진운룡의 몸이 수십 장을 날아갔다. 나랍멸의 내공이 한껏 담긴 주먹이었기에 그 위력도 엄청났다.

나랍멸은 주먹을 살짝 흔들었다. 마치 부서지지 않는 바위를 때린 것처럼 손목이 뻐근했다.

‘타격은……?’

진운룡은 날아가던 와중에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고는 바위 하나를 박차고서 곧장 되돌아왔다.

“쓰레기가!”

타격은 거의 없었다. 도리어 진운룡의 분노만 부채질한 꼴이 되었다.

‘한 번 더 찰타라를 날렸어야 했나.’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위력이 큰 만큼 준비에도 시간이 드는 기술이었으니.

조금 전의 일격은 순간적으로 나랍멸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진운룡은 별 타격이 없었다.

‘아니. 아니다.’

육체에 새겨지는 상처만이 타격은 아니다. 진운룡은 육체의 타격보다도 큰 정신적 타격을 입었다. 그 누구도 깨지 못한 심멸이 깨졌으니 말이다.

“죽여 주마!”

무시무시한 포효와 함께 진운룡이 조법을 펼쳤다. 그의 손아귀 위로 맹수의 발톱 같은 백색의 강기가 뒤따랐다.

나랍멸이 두 팔을 교차해 방어 태세를 갖췄다.

진운룡은 그대로 발톱을 휘둘렀다. 나랍멸의 팔뚝이 갈라지며 피를 쏟았다.

‘내공은 내 쪽이 더 거대하거늘…….’

다루는 능력은 진운룡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강기를 펼쳐도 위력에서 밀렸다.

나랍멸에게 있어 우위라 할 게 있다면 지구력뿐.

그렇기에 더더욱 악착같이 버텨야 했다.

“죽어라! 죽어!”

진운룡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했다. 그 순간 나랍멸은 등허리로 돋아나는 오한을 느꼈다.

파파파파팟!

수십 발의 심멸이 나랍멸을 강타했다. 보이지 않는 허공으로부터 타격이 나랍멸을 무자비하게 두들겼다.

퍼퍼퍼퍼퍽!

“크으윽!”

나랍멸은 최대한 몸을 움츠려 방어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이 그의 몸을 연달아 엄습했다.

‘버틴다. 버텨야만 한다!’

이를 악문 채 스스로에게 되뇌는 나랍멸이었다.

진운룡도 아주 좋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나랍멸이 잘 버티고 있었던 까닭이다.

‘별것 아닌 놈인 줄 알았거늘…….’

정천과 싸웠을 때보다도 한층 성장한 진운룡이었다. 애초의 심멸의 경지 자체가 정천과의 싸움에서 죽음을 경험한 후 깨닫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나랍멸은 정천 이상의 강적은 결코 아니었다.

팔룡천법왕이니 뭐니 해 봐야 그저 무식하게 커다란 내공을 지니고 있는 애송이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고.

놈에겐 정천과 같은 살기나 집념은 없었다. 공격 역시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진 않았다. 진운룡을 생사의 경계로 밀어 넣었던 멸천에 비하면 찰타라 같은 기술은 애들 장난이었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정천보다도 진운룡을 더 괴롭히고 있었다.

‘어째서?’

진운룡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놈을 이토록 끈덕지게 버티게 한단 말인가?

주르륵.

진운룡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진운룡은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심멸 역시 무공. 무한정 써먹을 수 있는 신의 선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한계란 게 있었고, 남용했을 때의 부작용도 있었다.

실제로 지금이 그러했다.

심멸을 너무 남발한 나머지 진운룡의 뇌에 과부하가 걸려 버렸다.

심멸 자체가 극도의 정신력을 요구하는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크으…….”

진운룡이 비틀거렸다.

나랍멸 역시 비틀거렸다. 진운룡이 현기증을 느끼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데 비해, 그는 온몸에서 피를 쏟아 내고 있었다.

“헉…… 헉. 허억…….”

멸마환영무를 극성까지 끌어올린 상태로 펼친 심멸이었다. 그 하나하나의 위력은 여느 절초에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나랍멸의 시야는 이미 뿌옇게 흐려진 상태.

몸이 입은 타격을 회복력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었다.

‘위험하다.’

나랍멸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러고는 진운룡의 위치를 파악하려 했다.

그때 그의 우측으로부터 진운룡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퍼억!

턱을 걷어차인 나랍멸이 땅을 굴렀다. 헐떡이는 그를 향해 진운룡이 손날을 휘둘렀다. 그의 손날 위로는 검강과 같은 백색 기운이 맺혀 있었다.

멍하니 있으면 그대로 베일 터.

나랍멸은 다시 땅을 굴렀다. 그러고는 진운룡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서장의 수호자란 것이 도망치려는 거냐!”

진운룡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분노도 분노지만 놈을 여기서 확실히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컸다.

‘내 판단은 정확했다.’

서장을 노린 것이 정답이었다. 멍청히 있다가 나랍멸과 정천의 협공을 받았다면 더 골치가 아플 뻔했다.

물론 그렇더라도 패배 따윈 당하지 않았겠지만.

나랍멸은 이를 악물었다.

‘이길 수 없다. 저자는 너무 강해.’

심멸은 그의 몸에 갖가지 골병을 만들어 놓았다. 몇 번만 더 비슷한 수준의 타격을 입는다면 정말 회생 불능일 터.

자존심 세워 가며 당당하게 싸울 상황이 아니었다.

‘쓸 수밖에 없나.’

나랍멸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파바밧.

그의 주변으로 세 개의 청광 덩어리가 나타났다. 찰타라를 한꺼번에 세 개나 불러낸 것이었다.

본래는 두 개가 그의 한계였다. 하나만으로도 대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데다, 유지하는 것 역시 힘들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려 세 개.

무시무시한 집중력이 낳은 결과였다.

“흥! 또 그 장난질이냐!”

진운룡은 두 팔을 크게 벌렸다. 마치 백색의 날개처럼 멸마환영무의 기운이 격발되었다.

나랍멸은 부조리를 느꼈다. 저렇게 사악한 존재에게 저리도 환한 순백색의 날개라니.

“이걸로 끝이다!”

진운룡이 순간적으로 가속하여 돌진해 들어갔다.

백색 날개는 순식간에 검의 형태로 화했다. 진운룡은 두 손으로 검형의 기운을 붙들고는 그대로 휘둘렀다.

최강의 위력을 지닌 그의 절초 무한천쇄격(無限天碎擊)이었다.

그 순간 나랍멸의 망막에 새겨지는 것은 절대적인 죽음.

하지만 그 이면엔 강렬한 삶의 의지도 있었다.

‘죽을 순 없다!’

나랍멸은 순간적으로 세 개의 찰타라를 합쳤다.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 셋이 억지로 섞이자 순간적으로 맹렬한 작용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것은 기운의 본 주인조차 해칠 정도로 무시무시한 원기의 폭발!

나랍멸은 그 폭발력을 이용해 진운룡의 무한천쇄격에 맞섰다. 자살특공이나 다름없는 수법이었다.

팟!

한순간 백색의 빛이 사위를 물들였다. 그리고…….

콰과과과과광!!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났다. 황야를 뒤흔들고, 나아가 서장 전체에까지 진동이 닿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폭발이었다.

치솟은 먼지와 흙, 모래 등이 거대한 구름을 만들어 냈다. 그 모습은 포달랍궁 쪽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그리고 고요가 찾아왔다.

* * *

나유타는 말에 오른 채 쉬지 않고 내달렸다. 그녀는 알지 못했지만 이미 나랍멸과 진운룡의 격전지를 훨씬 지나쳐 온 뒤였다.

이따금 바람에 실려 폭발음 같은 것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공기가 떨리고 땅마저 경련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했다. 나랍멸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럴 때마다 나유타는 눈물을 참았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무의미하고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서장은 드넓다. 또한 험준한데다 인간에게 있어 무자비하기까지 하다.

그런 곳을 주파하여 중원까지 간다니, 나유타 스스로 생각해 봐도 가당찮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는 법. 그녀에게 있어선 지금이 그러했다.

이내 그녀는 지쳐 갔다. 말 역시 탈진하여 침을 흘려댔다. 그리고 반 시진 뒤에는 완전히 힘이 다해 널브러졌다.

나유타는 말에서 내동댕이쳐져 땅을 뒹굴었다. 사람 한 명 없을 것 같은 차가운 황야 위로.

“아…….”

그녀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손만 움직였다. 그저 기어서라도 중원으로 가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중원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아마 이곳에서 죽어 자빠져 독수리들의 먹이나 되고 말겠지. 그녀가 시체가 되는 데엔 그리 긴 시간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게 끝이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고 체념했을 때였다.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나유타는 눈을 떴다.

복면으로 입 주위를 가린 사내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메마른 목소리로나마 나유타의 말문이 열렸다.

“도와……주세요. 포달랍궁을, 서장을 도와주세요.”

“아가씨는 포달랍궁의 사람인가?”

나유타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가 복면을 벗고서는 말했다.

“나는 천마신교 통천각의 요원이다. 자세한 얘기를 들려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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