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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章 천마의 사조 (137/146)

第五章 천마의 사조

끝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정천과 제갈살뿐 아니라 생존자들 전원이 이를 체감하고 있었다.

그들도 뒤늦게나마 무저갱 밑바닥의 존재를 감지해 냈다.

그리고 놈이 갈무리하고 있는 기운의 크기를 차마 가늠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대체 놈은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인가? 혹은 신선? 혹은 그 외의 무언가?

알 수 없었다. 그저 인외의 존재이리란 것만을 어렴풋이 추측할 따름.

그리고 놈과의 대면이야말로 이 수라도(修羅道)의 종점이 될 터였다.

살아남은 이는 이제 열 명뿐.

그나마 정천과 제갈살의 처절한 분투가 없었다면 이 인원 역시 전멸했을 것이다.

물론 희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습격해 오는 마수들도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토벌대가 기어코 진마동의 괴수들을 전멸시켰다는 사실이었다.

성취감은 없었다.

아직 끝이 아님을 알기에.

마지막이 남아 있음을 알기에.

그리고 이제 그 종막까지는 이제 몇 걸음도 채 남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오는군.”

제갈살이 중얼거렸다. 다른 이들도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이내 까달았다. 희미하지만 아래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아래에 거대한 공동이 있다는 의미.

지금껏 여러 번 경험해 본 일이었다.

대체로 공동이 있는 곳엔 마수들의 매복 역시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은 하나뿐이었기에.

나머지 아홉 사람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도 그들은 화륜패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화륜패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마당에까지 대주 노릇을 하라는 겐가?”

“시작한 일이니 매듭을 져야지 않겠수.”

오늘따라 더욱 퉁명스러운 듯한 정천의 대꾸. 아마도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화륜패는 나직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정천을 제외한 여덟 사람을 돌아봤다.

그는 정천에게 들키지 않게 전음을 보냈다.

—약속은 유효한 거겠지?

—물론입니다.

—분명히 기억하고 있소.

정천을 제외한 그들 아홉은 한 가지 약속을 정해 두었다. 당연히 정천 본인은 모르는 일이었다.

—만일 한 명만 살아남게 된다면…….

—저 녀석을 살린다.

화륜패는 긴장한 척을 하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얘기를 처음 꺼낸 사람은 제갈살이었다. 그의 성격상 별다른 생각 없이 꺼낸 말은 아닐 터였다. 분명 나름대로의 계산을 마친 뒷일 터.

‘그만큼 저 아래에서 우릴 기다리는 놈이 강하다는 뜻이겠지.’

다시 말해 자칫하면 그들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

화륜패는 제갈살에게 질문했었다. 그의 계산으로는 승산이 얼마나 되느냐고.

제갈살의 대답은 건조했다.

“전멸할 확률이 칠 할. 한 명이나마 살아남을 확률이 이 할. 나머지 일 할은 두 명 이상 살아남을 확률이라 해 두지.”

헛웃음이 나올 만큼 비정한 가능성이었다. 그래도 남은 이들의 결심을 굳히기엔 딱이었다.

‘녀석이라면 할 수 있다. 우리의 의지를 잇고 이 모든 것의 배후에게 한 방 먹여 줄 수 있을 것이다.’

화륜패는 처음 정천을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부모 없이 자라난 뒷골목의 애송이.

그냥 두었어도 파락호나 좀도둑으로 머물지는 않았을 녀석. 아마 악당이 되더라도 한몫 단단히 챙기지 않았을까.

하지만 놈은 시정잡배로 남지 않았다. 화륜패의 도움을 받았을지언정 천무맹 최고 타격대의 조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어떤 의미로는 화륜패의 아들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나도 어울리지 않게 멍청한 생각을 다 하는군.’

화륜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마 이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면 정천 녀석이 두고두고 놀려 먹었을 것이다.

“괜찮은 거요, 대주님?”

“흠흠. 나는 괜찮다.”

정천의 물음에 대강 대꾸하는 화륜패였다.

“정신 차리라고요. 그래도 아직은 대주님인데 짐이 되면 그게 무슨 망신이겠수.”

“시끄럽다. 네놈이야말로 준비는 다 된 게냐?”

“물론이죠.”

“좋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한 화륜패가 걸음을 떼었다. 그것을 신호로 다른 네 사람도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저갱의 끝, 진마동의 밑바닥으로.

후우우우.

내려갈수록 바람의 세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단순히 아래에 공간이 있다고 해서 벌어질 일은 아니었다.

자연적인 바람이 아닌 인위적인 무언가.

열 사람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수많은 전투 덕에 단련된 그들이었다. 지금 당장 중원으로 돌아가더라도 능히 일문의 사조가 되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아마 천마쯤 되는 이가 아니고서는 그들에 대적할 자는 거의 없을 터.

단순히 무위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그들은 단련되어 있었다. 어지간한 사태가 눈앞에 닥쳐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을 만큼.

하지만 이건 달랐다.

다가갈수록 그들이 체감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존재감이었다.

크아아아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동으로부터 거대한 포효가 울려 왔다.

먹잇감을 눈앞에 둔 짐승의 포효. 차이점이 있다면 그 규모였다.

수천 마리 대호(大虎)가 동시에 포효한들 이에 견줄 수 있을까.

그들의 고막을 찌르고 들어오는 외침은 격이 달랐다. 사자후조차 이 앞에선 어린애 칭얼거림에 지나지 않을 터.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절대적인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미안하군.

제갈살이 정천을 제외한 여덟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를 아는 이라면 놀랄 일이었다. 천하의 제갈살이 사과를 다 하다니.

—우리가 전멸할 확률이 칠 할이라 했었던가? 내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 역시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기에.

—일 할. 우리 중 하나라도 살아남을지 모르는 확률이다.

제갈살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모두 여기서 죽게 될지도 모르겠군.”

모두들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제갈살이 이렇게까지 무력해 보였던 적이 있던가.

“그럴지도 모르지.”

정천의 목소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렇더라도 가는 수밖에 없어.”

정천이 바닥을 차고 경공을 펼쳤다. 단번에 공동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남은 아홉 사람은 당혹했다. 그러나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역시…….”

“녀석밖에 없겠지?”

화륜패가 짧은 대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녀석을 반드시 살려 보낸다.”

그들 아홉 사람도 몸을 날렸다. 여기까지 온 이상은 더는 지체할 것도, 주저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룡을 만났다.

* * *

정천 일행이 귀암산에 도착했을 때, 천마궁은 기이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마중 나면 제갈현에게 장유추가 물었다. 제갈현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나?”

“그것이…….”

제갈현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답답함을 느낀 장유추가 언성을 높일까 생각할 때였다.

“인질극이에요.”

모용린이었다. 그녀 역시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일행에게로 다가왔다.

“웬 노괴가 천마를 인질로 잡고 있어요.”

진백란은 분노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의 목은 교차되어 있는 두 자루 칼날에 의해 겨냥당하고 있었다. 그 칼날들을 뻗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귀도신마였다.

“이해할 수 없군요, 귀도.”

“저 역시 그렇습니다, 천마.”

“당장 칼을 치운다면 지금까지의 일은 불문에 붙이도록 하겠어요.”

“죄송하오나 그럴 순 없겠습니다.”

“정말 피를 보고 싶은 건가?”

“죄송합니다, 천마.”

귀도신마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의 돌발 행동보다도 그답지 않은 약한 모습이 더 의아했다.

‘대체 저 노인은 누구기에?’

진백란은 고개를 들어 귀도신마의 너머를 응시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그곳에 있었다.

처음 보는 작자다.

진백란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노인과 귀도신마는 다짜고짜 진백란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필 그때 운기조식 중이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귀도신마는 다짜고짜 진백란의 목을 칼로 겨냥했다.

예상치 못한 인물에다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기에 천마인 그녀로서도 속절없이 제압당하고 말았다.

천마궁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했다. 멸살독마와 구령마존 임철형을 비롯한 마교의 수뇌부 모두가 혼절할 듯 기겁했다.

게다가 귀도신마가 이에 가담했단 사실은 더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귀도신마! 이 개자식! 쓰레기 같은 새끼! 갈아 죽여도 시원찮을 놈! 이리 나와라. 네놈을 독에 절여 땡볕 아래 걸어 놓겠다!”

멸살독마의 분노는 특히나 컸다. 충성심도 충성심이거니와, 상대가 귀도신마였기에 더더욱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천마 진백란을 제압한 노인은 한 가지만을 요구했다.

“모두들 이곳에서 멀리 물러나라. 그리고 진운룡의 계획을 파훼한 자를 데려와라.”

“이놈! 천마님을 풀어 주어라!”

멸살독마가 길길이 날뛰었지만 노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물러나라고 했다. 이에 불복할 시엔 이쪽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

“이노옴!”

멸살독마는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기세였다.

그나마 다른 이들은 사리분별을 할 정도의 냉정이 남아 있었다.

“그만하게. 일단은 저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세!”

임철형의 말에 멸살독마가 칵 하고 일갈을 뱉었다.

“지금 역적 놈들의 뜻대로 하잔 말이오!”

“그럼 놈들과 싸우기라도 할 텐가? 천마님의 안위가 걸려 있는데도?”

“으음…….”

천마가 언급되니 멸살독마로서도 더 열불만 내고 있을 순 없었다.

결국 모두들 분노를 삼키고 물러났고, 당장의 사태는 그렇게 소강상태에 빠졌다.

‘귀도신마와의 대화는 무의미하겠어.’

진백란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의 귀도신마는 도저히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녀는 노인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그대는 대체 누구지?”

“그러는 너는 누구냐, 아이야?”

진백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멍청한 질문을 하는군. 본좌가 천마다. 그걸 알고서 온 것일 텐데?”

“그렇지는 않단다. 확실히 놀랐다는 것만은 숨길 수 없겠구나.”

진백란의 이마에 실핏줄이 돋았다.

“여자는 천마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미안하구나.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 놀라서 말이다. 설마 이렇게 어리고 여린 아이가 천마의 위에 올랐을 줄이야.”

“본좌를 능멸하려는 건가?”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네가 대견스럽구나.”

마치 손녀딸을 대하는 듯한 부드러운 어조였다. 진백란으로선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화가 났지만.

“본좌를 급습한 이유가 뭐지? 어째서 귀도가 당신을 따르고 있고?”

“네가 진운룡을 상대한 강자 같지는 않구나. 그렇다면 천마가 아닌 자가 진운룡의 계획을 파훼했다는 건데…… 이 역시 놀랄 일이군.”

진백란의 말을 무시한 채 중얼거리는 노인. 진백란은 기가 막혀 빽 소리쳤다.

“귀도! 이게 대체 무슨 장난이야! 해명하지 않으면 목을 쳐 버리겠어!”

“죄송합니다, 천마.”

귀도신마는 진땀을 질질 빼고 있었다. 배신자의 태도는 결코 아니었다. 그랬다면 차라리 의기양양해 했겠지. 그 편이 귀도신마의 성격에도 맞고.

진백란은 더더욱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무언가를 볼모로 잡힌 건가?’

진백란이 당황하고 있을 때, 노인이 귀도신마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칼을 치워도 되겠군. 엿듣는 사람은 없는 듯하니 말이야.”

그 말에 귀도신마의 칼날이 느슨해졌다. 그러자마자 진백란이 손날로 칼날들을 쳐냈다.

“가만두지 않겠어!”

그녀는 쌍장으로 귀도신마의 흉부를 강타했다. 칠성의 천마신공으로 펼쳐진 마룡광장타(魔龍廣掌打)에 귀도신마가 헛숨을 삼키며 밀려났다.

“큭!”

“다음은 너다!”

천마신공의 흉살스런 기운이 진백란에게서 격발됐다. 천마궁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강맹한 기운이었다.

그녀는 천마제전 때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정천의 도움을 받아 꽃을 피운 천마신공의 위력. 거기에 마교에 구비된 각종 영약과 내단의 도움까지 받았다. 그런 데다 게으름 없는 수련을 통해 천마신공의 상당 부분을 자기화하기까지 했다.

작금의 천마신교 내에서 그녀와 자웅을 겨룰 사람은 세 명도 되지 않을 터였다.

“흡!”

가볍게 숨을 뱉으며 진백란이 쌍장을 뻗었다. 귀도신마를 날려 버린 마룡광장타로 노인의 복부를 노리고 들어갔다.

“훌륭하구나.”

나직한 한마디와 함께 노인이 두 팔을 뻗었다.

쿠웅!

“……!”

졸지에 노안과 손바닥을 부딪치게 된 진백란이 깜짝 놀랐다. 노인이 펼친 장법은 분명 그녀와 같은 마룡광장타였다.

게다가 그녀에 비해 더욱 정갈한 이 기운은……!

‘천마신공!’

경악과 함께 그녀의 뱃속이 크게 요동쳤다. 노인의 장력이 팔을 타고 내려와 그녀의 내부를 진탕으로 만든 것이었다.

“큭!”

그녀는 침음을 뱉으며 끓어오르는 내력을 가라앉혔다. 그런 후 몇 걸음을 물러나며 노인의 역습에 대비했다.

노인은 그녀를 몰아치지 않았다.

그저 두 팔을 내린 채로 물을 따름이었다.

“괜찮으냐?”

“……당신, 대체 누구지?”

“이 대답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어서 대답하기나 해!”

진백란의 닦달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마. 내 이름은 진천백. 너 역시 여러 번 들어 보았을 것이다.”

“진…… 천백?”

여러 번 들어 본 정도뿐일까.

마교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지도록 들어 온 이름일 것이다.

홱.

진백란이 재빨리 귀도신마를 돌아봤다. 저 말이 사실이냐는 의미였다.

귀도신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 진천백의 말이 이어졌다.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기엔 시간이 촉박하구나. 지금도 진운룡은 다음 행보를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해 다오.”

“당신이…… 사조님이란 말인가요?”

“그렇다. 믿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 말대로였다. 정말 믿기 어려웠다. 진백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초대 천마 진천백이 누군가. 수백 년 전의 인물이 아닌가. 그런 자가 이제 와서 후손인 그녀의 앞에 나타났단 말인가?

그렇게 따진다면 진운룡 역시 수백 년 전의 인물이니,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지만…….

더군다나 노인이 사용하는 무공은 분명한 천마신공이었다.

마룡광장타 역시, 강룡단에게 사사하거나 여러 경로로 유출된 무공들과 달리 천마에서 천마에게로만 전수되어 온 절예였고.

답은 간단하다.

천마가 아니고서는 펼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그것이 곧 받아들이기 쉬운 것으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았다.

진백란은 머릿속이 엉망이 되는 것만 같았다.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대체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어째서 이제야 나타난 것인지.

진운룡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와 진운룡의 관계는 무엇인지.

진천백 역시 그러한 진백란의 동요를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사전에 그녀가 질문할 여지를 차단하기로 했다. 일일이 묻고 대답하다간 밤을 새워도 부족할 터였으니 말이다.

“묻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으리란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그를 만나야 하니 말이다.”

“그라면……?”

“정천을 얘기하시는 겁니다.”

귀도신마가 대신 대답했다. 그 대답에 진천백의 두 귀가 종긋 섰다.

“정천? 그자의 이름이 정천인가?”

“정천을 만나 뭘 하시려는 거죠?”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다오. 그 정천이란 자가 진운룡의 계획을 막은 인물이 맞느냐?”

진백란은 잠시 당황했다.

솔직히 말해 그녀 역시 그날, 황룡성이 붕괴되던 날의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정천 본인을 비롯한 극소수에 불과했다.

“저도 자세히 대답해 드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아마도 사조……님께서 생각하는 사람이 맞을 거예요.”

사조라는 표현이 어색한지 잠시 주춤하는 진백란이었다.

정작 진천백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자를 지금 이리로 부를 수 있겠느냐?”

“지금 그는 이곳에 없어요. 중요한 일로 서장으로 향했어요.”

“으음.”

진천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겨우 귀암산까지 찾아왔거늘 정작 본인은 다른 곳에 있다니.

“하지만…… 어쩌면 곧 도착할지도 모르죠. 서장으로 떠난 지도 꽤 되었으니.”

“그렇다고 마냥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겠구나. 아무래도 나 역시 서장으로 가야겠다.”

“잠시만요. 곧장 출발하시려는 건가요?”

“그래야 할 것 같구나.”

“몸이 성한 것 같지 않은데, 간단한 치료라도 받고 가셔야지 않겠어요?”

진백란의 말대로 진천백의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소호에서의 전투로 입은 상처를 치료조차 하지 않은 채 달려왔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그녀를 압도하는 무위를 떨쳤으니 더욱 대단한 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간단한 치료라도 받고 가세요. 얼마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거예요.”

“그렇긴 하겠지만 그자를 되도록 빨리 만나고 싶구나.”

“치료 좀 받는다고 세상이 망하진 않아요. 게다가 무작정 서장으로 갔다가 길이라도 엇갈린다면 어쩔 생각이죠?”

당돌한 그녀의 말에 진천백은 잠시 당황했다.

“그건…… 그렇구나.”

“일단은 치료부터 받도록 해요. 게다가 혼자 정천의 행방을 찾는 것보다도 마교의 정보력을 동원하는 편이 더 빠를 거예요.”

“으음.”

귀도신마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거야 어느 쪽이 어른인지 모를 모습이었다.

진천백 역시 먼 후손에게 면박을 당한 게 우스운지 미소를 지었다.

“너는 훌륭한 천마로 보이는구나, 아이야. 나보다도 훨씬 훌륭한 천마 말이다.”

“칭찬하셔 봤자 콩고물 떨어질 일은 없을 거예요.”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진백란이었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선 어쩌면 이번 일로 타격이 생길지도 몰랐다.

상황이야 어찌 됐든 천마가 타인에게 제압당해 버렸으니 말이다.

아직 지지 기반이 미약한 그녀로서는 결코 좋지 않은 사건.

입막음을 열심히 해 봐야 이 소식이 퍼지는 데엔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목격자들도 너무 많고.’

몰래 들어왔다면 모를까, 진천백은 천마궁에 들어서자마자 말썽을 일으켰다. 거기에 귀도신마까지 연루되어 버렸으니…….

그때 방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세 사람은 흠칫 놀라 바깥을 보았다.

여기까지 다가오는 동안 느끼질 못했다. 지금의 인기척 역시 일부러 낸 것일 터.

천마 둘과 장로 한 명을 잠행으로 농락하다니. 필시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진백란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천? 당신이야?”

그녀의 물음에 퉁명스런 대꾸가 돌아왔다.

“그래. 이게 다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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