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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章 바람이 멎다 (134/146)

第二章 바람이 멎다

‘역시 형님답다고 해야 할지.’

전투 상황은 순조로웠고, 덕분에 모용훈은 적들을 베어 넘기면서도 잡념을 떠올릴 정도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끼어들지 말라 하실 땐 언제고 일각도 안 되어 번복하시다니.’

월골과 싸우던 중 들려 온 정천의 전음은 그야말로 간단했다.

—생각해 보니 너희가 돕는 편이 낫겠다.

단순히 월골을 상대하기 버겁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저 어느 쪽이 합리적인가를 따져 보았을 테지.

그것이야말로 진정 정천다운 것일 테고 말이다.

어쨌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대막 무사들의 이목이 정천에게 집중된 틈을 타 배후를 급습, 하필 활로 무장 중이던 그들을 가볍게 유린할 수 있었다.

단순한 정면 대결이었다면 이리도 간단히 승기를 잡을 수 없었으리라.

그만큼이나 위험하고 강력한 것이 대막인의 궁술이었으니까.

물론 대막인들도 간단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쨌든 수적 우세는 그들에게 있기도 했고.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자후에 맞먹는 포효에 말들이 순간적으로 요동쳤다. 그 진원은 월골이었다.

‘만만찮은 강자다.’

모용훈은 호흡을 다졌다. 저런 자를 상대로 수하들을 낭비할 순 없다. 상대를 한다면 자신과 관식이 협공을 하거나…….

—내가 간다.

정천의 목소리였다. 모용훈은 애써 다져 놓은 호흡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걱정할 것 없겠군요.

정천은 이미 월골의 앞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용검대와 강룡단 수하들이 자연히 두 사람으로부터 물러났다. 가까이 있다가 여파에 말려들리란 것은 뻔했으니까.

“흐읍!”

호흡을 끊으며 월골이 환도를 출수했다. 앞서와는 위력과 강맹함 자체가 수준이 달랐다.

그것은 정천도 마찬가지.

강룡수라마공의 강기를 주먹에 둘러 그대로 환도를 후려쳤다.

챙강!

기어코 환도가 부러져 나갔다. 애초에 앞선 공방에서 내구력이 닳을 대로 닳아 있었다.

월골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초원의 전사인 이상 무기 없이도 얼마든 싸울 수 있는 그였다.

쿵!

땅을 박차고는 그대로 정천에게 몸을 날렸다. 그의 거구 자체를 무기로 삼는 돌격.

수준 있는 초식은 아니다. 그래도 월골 정도의 외공과 내공이 바탕이 된 이상 초고수라 해도 대처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실전 경험이 전무하다면 당황하여 말려들 수도 있었으리라.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거지만.

휘릭.

정천은 몸을 낮게 깔며 박차를 가했다. 물러나거나 피할 생각 없이, 도리어 전진하여 월골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월골의 다리를 붙들어 그대로 허공으로 넘겼다. 돌진하던 월골보다 배는 빠른 움직임이었다.

‘큭!’

월골의 거구가 한순간에 균형을 잃고는 허공에 던져졌다.

설마 자신의 안쪽으로 파고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쉽게 당해 버렸다.

‘무인의 싸움이 아니다!’

월골은 다시금 후회했다. 한 번 당해 놓고도 놈을 중원 무인의 틀에 가두어 재단하다니…….

이미 늦은 뒤.

정천은 넘어진 월골의 후두부 위로 발꿈치를 내리찍었다.

“……!”

월골이 황급히 몸을 굴렀다.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두개골이 쪼개졌으리라.

쾅!

굉음과 함께 모래먼지가 치솟았다. 천근추로 땅을 내리찍어야 이런 위력이 나오지 않을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쩍!

월골의 머리가 크게 흔들렸다. 피할 것을 알고서 정천이 연달아 주먹을 날린 까닭이었다.

대단한 초식이 아니더라도 강룡수라마공의 내력이 담긴 이상, 간단한 주먹 한 방조차도 산을 쪼갤 수 있는 위력이었다.

“커억!”

턱을 격타당한 까닭에 월골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하늘이 샛노랗게 변하는 기분. 정신을 차리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월골은 내력을 끌어올렸다. 지금은 약간이라도 여유를 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압!”

끌어올린 내력을 뿌리 삼아 일갈을 터트렸다. 초원에서의 오랜 생활 덕에 별다른 수행 없이 사자후에 걸맞는 포효를 터트리게 된 월골이었다.

과연 포효의 위력은 대단했다.

주변의 모래가 순간적으로 치솟았고 지진이 난 듯 사위가 떨렸다.

“크악!”

“으으윽!”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싸우고 있던 무인들이 귀를 붙든 채 쓰러졌다.

그들도 꽤나 내공이 깊은 편인데도 귀에서 선혈을 흘릴 지경이었다.

정천의 몸도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게 전부.

“제법이군.”

“……!”

경악하는 월골의 얼굴에 다시금 주먹이 쏘아졌다. 월골의 거구가 여지없이 휘청거렸다.

“어, 어떻게…….”

“쓸 줄 알고 대비만 하고 있다면야 그 정도 외침이야 무리없이 받아 낼 수 있지.”

월골은 이를 악물었다.

‘놈의 내공은 깊고도 넓다.’

중원의 용이 경계할 만도 했다. 단순히 교활하고 영악할 뿐 아니라, 굳이 그런 영악함이 필요없을 정도로 강하기까지 하다니.

상대로서는 최악이라 할 수 있으리라.

퍼퍼퍼퍽!

월골은 쓰러지지도 못한 채 정천의 주먹에 난타당했다.

무릎이 풀린지 이미 오래였으나 날아드는 연격에 틈이 없어 쓰러지지도 못했다.

그렇게 엉거주춤 선 채로 수십 발의 주먹을 온몸으로 받았다.

“커허억!”

정천이 주먹을 거둔 뒤에야 허물어진 채 각혈하는 월골이었다.

지금껏 그 누구도 그를 이렇게 어린애처럼 가지고 논 적이 없었다.

그사이 대막인들과 용검대, 강룡단의 전투 자체도 끝나 가고 있었다. 죽은 이들보다도 월골의 패배에 전의를 상실한 이들이 더 많았다.

“강하구나, 중원인.”

찢기고 부서져 피투성이가 된 입으로 월골이 말했다. 정천은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나는 패했다. 나의 혈족 역시 패했다. 그러니 죽여라. 우리를 죽이고 승리를 취해라.”

“…….”

“나에게 걸맞은 최후를 선사해라. 너라면 그럴 자격이 있겠군.”

정천은 혀를 찼다.

“난 너 같은 놈들이 싫다.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에게 도취되어서 그딴 헛소리나 하는 놈들이.”

“……헛소리라고?”

“죽고 싶으면 혼자 절벽에서 뛰어내리든지 쇠사슬 감고 바다에 뛰어들든지 해라. 괜히 남더러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월골이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정천을 봤다.

“너는 정말 여느 중원인들과는 다르군.”

“웃기는 놈. 네가 중원인을 봤으면 몇이나 봤다고?”

“그건…… 그렇군.”

월골은 한심한 기분이 되었다.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은 직후에 나누는 대화가 이렇다니.

정천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간단히 하지. 꺼져. 네놈의 고향인 초원으로 돌아가.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

“내가 볼일이 있는 놈은 네가 아냐. 너뿐 아니라 다른 놈들 대부분도 마찬가지야. 난 한 놈만 상대하면 돼. 놈만 해치우고 나면 모든 게 끝이야.”

“중원의 용 말인가?”

“진운룡을 말하는 거라면, 그렇다.”

“나는 그를 만나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여타 무인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어쩌면 그야말로 중원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웃기는군. 놈도 너나 다른 멍청이들과 똑같을 뿐이다. 소위 무인이란 작자들과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이지?”

정천은 월골의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된 주먹을 허공에 털었다.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그냥 싸우려니 모양새가 빠지는 거지. 그러니까 구태여 거창한 이유를 갖다 붙이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거다.”

“…….”

“결국은 그뿐이야. 너도, 다른 놈들도.”

월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자신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증거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는 패배자일 뿐이니까.

“네가 옳을지도 모르지.”

침중한 월골의 말에 정천은 그를 돌아봤다. 생각한 것보다는 말이 통하는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네 전쟁은 여기서 끝이다. 살아남은 수하들을 데리고 돌아가라. 네가 가야 할 곳으로. 그곳에 가서 다른 전쟁이든 뭐든 마음대로 일으켜.”

“다른 전쟁이라고?”

“네놈이나 무인들이나 결국 같은 부류 아냐? 싸움의 길에서 벗어나는 건 결국 죽는 날에 이르러서 아닌가?”

“그건…… 그렇군.”

“그래. 그러니 다른 전쟁을 찾아 꺼지라고.”

말을 마친 정천이 몸을 돌렸다. 더는 싸울 필요도 의미도 없다는 듯.

그건 월골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용훈, 관식. 가자.”

짧은 한마디와 함께 정천이 창도의 성문을 넘어 들어갔다.

모용훈은 검을 회수했다.

이미 대막의 무사들은 월골이 패퇴한 시점부터 싸울 의지 자체를 상실한 상태였다.

“놈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는 건가?”

관식이 찝찝한 듯 중얼거렸다. 모용훈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형님 말씀이시니 뭔가 의미가 있겠지.”

“그야…… 그렇겠소만.”

“굳이 형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전의를 상실한 저들을 꺾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관식은 쓴웃음을 지었다.

천마신교는 예전부터 자주 대막과 충돌해 왔다. 지리적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이다. 어떤 의미로는 지난 십 년 동안 평화를 유지해 온 정파보다도 더한 앙숙이랄 수 있었다.

그런 만큼 대막인들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그들은 초원의 늑대고 사냥꾼이었다.

이대로 살려 두면 언젠가는 복수하러 돌아올지도 모른다.

더 강한 이빨과 화살로 무장한 채.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긴 할지도.’

관식도 결국 무정검을 회수했다. 그것을 본 용검대와 강룡단 단원들도 무기를 집어넣었다.

그들은 정천의 뒤를 따라 창도로 들어갔다. 마치 언제 전투를 벌였냐는 듯.

월골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러고는 엉망이 된 얼굴을 들어 수하들을 돌아봤다.

사실 실질적인 타격만 본다면 그렇게까지 궤멸적이진 않았다.

애초에 전투 자체가 짧았고, 대막의 무사들은 용검대를 상대하더라도 크게 밀릴 실력이 아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가장 엉망진창인 것은 그들의 왕인 월골이었다.

이미 온몸의 뼈가 박살이 나 비명을 지르고 있는 지경. 내력을 돌려 애써 몸뚱이를 유지하고 있을 뿐, 기운을 다 소모하면 며칠 동안은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 것이었다.

정천은 정말 일말의 자비도 없이 그를 난타했다. 살려 준 것 자체를 자비라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잠시 말없이 수하들을 응시하던 월골.

그가 입을 여니 기침과 함께 토혈이 터져 나왔다.

“대왕!”

역시나 엉망진창인 수하들 몇이 다가왔다. 그들의 두 눈에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다.

월골은 새삼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수하들의 동정을 산 적이 있었던가? 머리털 난 이래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돌아가자. 중원과의 전쟁은 여기서 끝이다.”

“대왕…….”

수하들이 말끝을 흐렸다.

이제는 끝. 그 한마디가 그들의 심장을 비수처럼 찔렀다. 모든 것을 버리고 부족 연맹에서 떨어져 나온 결과가 이것이라니.

왕을 원망하진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무력함이 한스러울 뿐.

월골도 그런 수하들의 마음을 알았다.

때문에 말을 잇는 데에 뜸을 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이젠 새로운 전쟁을 시작해야지.”

“……!”

“대왕!”

“놈이 옳은 말을 했다. 우리야 언제 어디서든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족속이 아니던가.”

월골이 핏물을 슥 닦아 내며 웃었다.

“이제 평화에 찌들어 있는 호화호특의 늙은이들에게로 돌아가자. 그들이 그동안 잊고 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우리의 칼과 활로 가르쳐 주자.”

수하들의 얼굴에 크게 밝아졌다.

월골은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성 하나, 왕관 하나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는 초원의 왕이었다.

“가자! 우리의 고향으로.”

대막의 무사들은 동료의 시신을 수습했다. 빠르게 창도를 벗어나는 그들의 모습은 패잔병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월골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 준 중원인의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긴 했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중원과 관계된 그의 전쟁은 일단 여기가 종막이었다.

이제 새로운 전장으로 향할 때.

그곳은 물론 대몽골의 초원이었다.

창도를 휩쓸 듯 몰아치던 모래바람이 멎었다.

그래도 바람은 언젠가 다시 불어오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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