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九章 풍문의 여파 (116/146)

第九章 풍문의 여파

천무맹의 생존자들은 현재 귀암산 내에서 개별적인 자치구를 이루고 있었다. 진백란이 천마의 좌에 오르면서 만들어 준 것이었다.

천마 본인의 재산을 털어 만든 것인 만큼 시설과 설비 등은 훌륭한 편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거주 중인 정파인들에게 있어선 일시적인 도피처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들 지쳐 가고 있어요.”

모용린의 말에 남궁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테지. 아무리 좋게 생각하더라도 이곳은 적의 안마당에 지나지 않으니.”

“그뿐만이 아니에요. 군사와 장 선배의 행보에 불만을 품은 이들도 상당수예요.”

장유추는 그렇다 쳐도 제갈현은 천무맹의 군사다. 천무맹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 직위만큼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봐야 했다.

그런 입장임에도 천마의 요청에 따라 마교 장로의 자리에 올랐다.

정파인들의 눈에 좋게 비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남궁운으로서는 제갈현을 두둔할 방법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군사 스스로가 택한 일이니 우리가 뭐라 할 계제는 없겠지.”

“왜 군사께서 그런 선택을 하신 걸까요?”

“그야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네.”

본디 장로직의 제의는 남궁운에게 왔던 것이다. 남궁운은 당연히도 그것을 거절했다. 전대 천무맹주로서 택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놀랄 일이 벌어졌다. 제갈현이 스스로 청하고 나선 것이다.

“제가 하겠습니다. 천마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그 이후로 남궁운과 제갈현의 사이는 서먹서먹해졌다. 사실 지금까지도 왜 그가 장로 자리를 청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천무맹의 운이 다했기 때문에?’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천무맹이야 그렇다 쳐도 본가인 제갈세가가 멀쩡히 남아 있으니까.

모용린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결국 의문을 참지 못해 제갈세연을 찾아갔었다.

제갈세연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녀 역시 알 수 없다는 것.

“백부님께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숙부님께서는 뭔가 아시는 눈치지만, 역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모용린으로서도 더 물을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제갈현이 정파무림과 연을 끊으려 한다는 것.

‘천무맹 최고의 두뇌가 어째서…….’

사실 모용린과 모용세가로선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호재라 할 수 있었다.

제갈현이 없는 이상 천무맹 군사의 자리는 그녀에게 갈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남궁운 역시 실질적으로는 그녀를 군사로 대우하고 있었다.

‘그것도 천무맹을 재건할 수 있을 때의 얘기겠지만.’

생존자들을 중심으로 신생 천무맹이 만들어지고는 있었다.

본거지조차 없는 무리에 불과하긴 했지만, 첫 걸음이란 언제나 초라한 법이니 크게 낙심할 부분은 아니었다.

진백란은 그러한 움직임을 묵인해 주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안 보이는 곳에서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천마의 입장이 아닌 개인의 입장으로서.

어쨌든 제갈현의 이탈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얻게 된 것도 많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찝찝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어쨌든 이 얘기는 더 하지 않는 게 좋겠군.”

남궁운이 딱 잘라 말했다. 제갈현과 얽히기는 싫다는 뜻.

‘하긴 누구보다 큰 배신감을 느낀 건 저 사람일 테니.’

모용린도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정보망의 구축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령마객의 도움이 상당히 컸어요.”

현재 신생 천무맹은 어느 정도 가닥을 갖추는 단계였다.

진백란의 지배력이 공고해진 뒤엔 귀암산을 떠나기로 결정해 두었고.

중원 어디에 뿌리를 내리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재건에 모든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었다.

진백란은 그에 대한 도움의 의미로 유령마객을 붙여 주었다.

작은 무리일수록 정보에의 의존성이 큰 만큼,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유령마객은 스스로 기른 제자들을 내주었다. 이제 갓 열 살을 넘겼을 어린아이들이었지만 은신술과 추격술만큼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비영대원 출신인 담미화가 아이들을 맡았다. 어린 만큼 세력에 대한 거부감도 적기에, 약간의 시간만 있으면 천무맹에 녹아들 터였다.

“그런데…….”

모용린의 목소리가 살짝 작아졌다.

“그 아이들이 흥미로운 보고를 해 왔어요.”

“누구에 대한 보고지?”

“제갈 군사, 아니 장로에 대한 것이에요.”

남궁운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는 시험의 일종으로 아이들에게 한 가지 과제를 내주었다. 천마신교 내의 주요 인물 중 하나를 관찰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어린 인재들을 잃고 싶진 않았기에 너무 강한 무인을 관찰하진 말도록 엄포를 놓았었다.

“그런데 그중 제갈현에 대한 게 있었다고?”

“예. 듣고 싶지 않으시다면 더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

“얘기해 보게.”

고개를 끄덕인 모용린이 말했다.

“장로 자리에 오른 직후부터 한 가지 일에 본인의 권력을 사용하고 있더군요.”

“그 일이란 뭐지?”

“누군가를 수색하는 것이었어요.”

“수색이라?”

남궁운은 의아함을 느꼈다. 제갈세가 사람인 그가 마교 내에서 찾을 만한 이가 있단 말인가?

‘혹여나 옛날부터 마교와 내통해 왔던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내통 자체가 무의미해진 지금 상황이야 둘째 치고, 그런 짓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누굴 찾고 있는지는 알아냈나?”

“그것까진 알아내지 못한 모양이에요. 어떻게 할까요? 관찰을 중단하게 할까요, 아니면……?”

“기다려 보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남궁운이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계속 관찰하게 두게. 물론 발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같은 임무에 투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맹주와 군사이기 이전에 친구였던 두 사람이다. 그렇기에 남궁운이 느낀 배신감도 컸던 것일 테고, 지금 갖는 의문도 큰 것일 터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해 두도록 하죠.”

* * *

같은 시각.

제갈세연 역시 같은 이야기를 정천에게 하고 있었다.

“오빠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야기를 마친 그녀가 정천의 눈치를 살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화륜문의 장원이었다. 물론 정파 자치구 내에 마련해 놓은 곳이었다.

화륜문은 자치구 내에서 기이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정천의 존재와 신생 용검대의 이야기가 공공연히 알려진 까닭이었다.

때문에 요 며칠 동안은 홍역을 앓을 정도였다.

끽해야 수천 명인 정파인들 중 수백이 하루걸러 찾아왔으니, 거의 모든 정파인들이 들르고 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목적은 다양했다. 제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 손을 잡고 실세를 차지하자는 사람, 내부에서부터 천마신교를 뒤엎자는 사람까지.

정천은 그들 모두를 일일이 만났다.

피했다간 매일같이 찾아오기만 할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조건을 내걸었다.

“내 일격을 받아 낼 수 있다면.”

찾아온 이들 중 절반은 그 말을 듣자마자 포기했다. 정천의 살기에 질려 버린 까닭이었다.

나머지 중 절반은 정천이 강룡검을 꺼낸 순간 포기했다.

또다시 절반은 대치를 한 채 숨을 고르는 과정에서 탈진해 버렸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 정천의 일격을 받아 낸 사람은 십여 명이 채 안 됐다.

그리고 버텨 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당히 힘 조절을 했기에 죽은 이 역시 없었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 화륜문을 찾아오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예전에 오빠가 얘기했던 게 있었죠. 진마동 안에서 제갈세가의 사람을 만났었다고.”

“그랬었지.”

“혹시 지금 백부님께서 하시고 있는 일과 그 사람이 관련되어 있는 건 아니에요?”

“아마 그럴걸.”

정천의 대답에 제갈세연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역시 그랬군요. 그래서 숙부님도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았던 거였어.”

“네게 얘기해 봐야 좋을 게 없었을 테니까.”

“그 사람은 누구였죠? 오빠가 만났었다는 제갈세가의 무인은…….”

정천은 턱을 괴었다.

그들을 추억하는 건 언제나 힘겨운 일이었다. 그들을 떠올린다는 건 그들의 죽음 역시 떠올린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제갈세연은 ‘그’의 얘기를 들을 자격이 있었다. 최소한 ‘그’는 그렇게 생각할 거라 정천은 생각했다.

“녀석은 스스로를 제갈살이라 칭했었지.”

“제갈……살?”

“멍청한 작명이지? 근데 녀석은 그게 자신과 딱 어울린다고 생각하더군.”

제갈세연이 시무룩해졌다.

“제갈세가에 대한 증오가 강했던 걸까요?”

“그건 아닐걸. 그런 의미로 지은 이름은 아니라고 했으니까. 마교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입장이라면 그런 이름을 지어도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하지만.”

“…….”

“녀석의 주장대로라면 녀석은 제갈현이나 제갈순, 그리고 네 아버지의 동생이다.”

“아버님의…….”

“어쨌든 녀석은 나와 함께 진마동의 사선을 넘나들었고, 결국은 불귀의 객이 되었지. 녀석의 이야기는 그게 전부야.”

정천다운 냉랭한 평가였다. 아마도 그것이 진심은 아닐 거라고 제갈세연은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분에게도 가족이 있었나요?”

“……모르지. 얘기한 적이 없으니까. 녀석과 나누던 얘기는 대부분 무공에 관한 것이었어.”

제갈세연은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정천이 제갈순과 담판을 나누면서 꺼냈던 이야기를.

“실전되었다던 제갈세가의 검법이란 그분께서 완성하신 거였나요?”

“응. 웃기는 일이지. 제갈세가와 격리되어 마교에 버려진 주제에, 바득바득 제갈세가의 검을 익혔으니.”

제갈세가의 검법은 생각보다 세간에 많이 알려진 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명문가의 검법 치고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갈살은 그 별것 없는 검법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그리고 악착같이 살아남아 강룡단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험난한 길이었으리라.

“백부님은 그럼 그분께 속죄하려는 것일까요?”

“그거야 모르지. 네 백부의 생각을 내가 알 수는 없는 법이니까.”

잠시 뜸을 들인 정천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가 굳이 나서서 장로의 자리에 오른 데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군.”

“그렇겠죠.”

제갈세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본디 쾌활하고 발랄한 그녀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 마당에 평소처럼 행동하는 게 더 이상할 터였지만.

사실 그녀는 많이 변해 있었다.

그녀뿐 아니라 그날 목숨을 건진 정파인들 대부분이 그러했다.

천무맹의 붕괴는 그들의 가치관마저 바꿔 버릴 정도의 일이었다.

어떤 이들은 절망했고 어떤 이들은 의지를 다졌다. 대세에 순응하게 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고집스럽게 변한 이들도 있었다.

현재 신생 천무맹의 이름으로 재건되고 있는 이 집단 자체가 그러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혼돈 상태.’

정천이 바라보는 신생 천무맹은 그러했다.

정파인들 중 상당수는 마교인들과의 화합을 꾀하고 있었다. 다만 세간의 시선이 껄끄러워 표출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리고 제갈세가의 경우엔 매우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제갈세가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본가야 호북성에 있다지만 실질적인 가주는 제갈현이었다.

그런 그가 마교에 흡수되어 버렸으니, 나머지 사람들의 거처가 애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중심이 될 인물이라면, 역시 와룡장의 부장주였던 그녀뿐일 터였다.

‘제갈순은 자기가 앞에 나설 유형이 아니니까.’

정천의 질문은 그러한 현실을 함축하고 있었다.

“저는…….”

머뭇거리던 제갈세연이 한숨을 뱉었다.

“모르겠어요.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답답하더라도 해내야 할걸. 앞으로 모용세가가 무섭게 치고 올라올 테니.”

본디 앙숙 관계인 두 가문이었다.

이번 일로 제갈현이 떨어져 나갔으니 모용세가로서는 좋을 터였다.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걸까요? 똑같은 천무맹의 사람들인데요? 천무맹을 재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인데요?”

“지금이야 그렇겠지. 하지만 여유가 생기고 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게 될걸.”

“그렇지만 린 언니는…….”

“앞으로는 개인적인 관계를 신경 쓰기 힘들 거야. 너는 제갈세가를, 모용린은 모용세가를 이끌게 될 테니까.”

“…….”

“무리의 주인이란 그런 거지. 개인의 생활은 사라지고 우두머리의 생활만이 남게 되는 법이지.”

“지금의 천마처럼 말인가요?”

“그래.”

제갈세연은 알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정천 나름대로의 배려라는 것을. 이 말이야말로 평생 기억해야 할 것이란 것을.

“고마워요.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인사를 끝으로 제갈세연이 방을 나섰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전적으로 그녀의 몫일 터였다.

가만히 앉아 있던 정천의 입이 열렸다.

“담미화.”

천장에서 대기 중이던 담미화가 방에 내려섰다.

기본적으로 옛 비영대의 일을 맡고 있는 그녀였으나, 정천의 수하로서의 일 역시 버리진 않았다.

다시 말해 모용린이나 남궁운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정천 역시 얻을 수 있다는 것.

거기에 유령마객 역시 정천에게 호의적이니, 마교 내의 정보란 정보는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얻을 수 있는 셈이었다.

“강룡단의 상태는 어떻지?”

“관식의 말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합니다.”

현재 멸살독마로부터 전달받은 강룡단 무인들은 전적으로 관식이 훈련시키고 있었다.

정천은 그들에게 천마신공의 일부를 전수해 주었다. 정수라 할 수 있는 심공은 제외하고, 비교적 소화하기 수월한 천마보 등을 전수했다.

나머지는 관식의 재량과 단원들 개개인에게 맡겼다. 누가 뭐래도 아류(我流)의 기반이 무엇보다 튼튼해야 하는 법이었다.

“용검대는?”

“궁후의 말씀으로는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본디 장유추가 맡고 있던 용검대였으나 현재는 요태희가 통솔하고 있었다.

‘장 선배…….’

정천으로서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게 장유추의 행보였다.

사실 그가 진백란의 제안을 받아들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장유추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신생 천마신교의 장로가 되었다.

‘귀도신마 때문이었을까?’

확실히 옆에서 보기에도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다.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나름대로 정이 들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앞으로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마교 역시 나름대로 바쁘게 돌아가게 될 테니.

생각을 마친 정천이 담미화를 쳐다봤다.

“넌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네?”

“천무맹으로선 인재가 부족한 상황이니 네게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새로운 비영대의 대주 자리가 네게 주어질지도 모르지.”

담미화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대주직에 대한 욕심 때문은 아니었다.

“혹은 마교 쪽에서 자리를 내줄 수도 있겠지. 네 실력도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상당히 향상됐으니까. 통천각주의 자리까진 힘들겠지만 유령마객의 바로 아래까진 올라갈 수 있을지 몰라.”

“정천 님.”

“반면 날 따라가 봐야 남는 건 하나도 없을 거야. 어쩌면 재수 없게 비명횡사하게 될지도 모르지.”

“…….”

“네가 바란다면 이곳에 남거나, 혹은 천무맹을 도와도 좋다. 솔직히 말해, 앞으로는 네 도움을 받을 일이 거의 없을 거야.”

약간은 냉담하기까지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정천의 화법이란 것을 담미화는 잘 알았다.

그녀는 선선히 고개를 저었다.

“정천 님께서 제 목숨을 구해 주신 적이 있었죠. 전 아직 그때의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전엔 마안으로 너를 구속하고 정신을 제약했었지. 고마워할 일이 아냐.”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정한 것을 바꾸고 싶진 않습니다.”

“내게서 보답을 바라긴 힘들 텐데.”

“이미 많은 것을 주셨으니 괜찮습니다.”

“난 뭔가를 준 기억이 없다만…… 뭐, 좋을 대로 하도록 해.”

정천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남은 것은 백미련인가.”

정천은 방을 나섰다. 그리고 백미련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 장원 내를 살폈다.

기척을 숨긴 건지 어쩐 건지 그녀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 화륜문을 잘 나서지 않던 그녀였기에 의아한 일이었다.

“왜 그러세요, 오라버니?”

마당에 나와 있던 화연란이 물었다.

“백미련 못 봤어?”

“언니라면 지금쯤 린 언니를 만나러 갔을 거예요.”

“모용린을?”

“네. 얼마 전부터 자주 서신이 왔었거든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는 뻔한 것이었다. 아마도 신생 천무맹의 연서(戀書)를 받은 것일 테지.

모용린의 제안은 백미련에게 있어서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천무맹으로선 한 사람의 강자가 아까운 실정이니 그녀에게 상당한 대우를 해 줄 터였다.

‘본디 천무맹에서 버려졌던 입장인 그녀에게도 나쁜 얘기는 아닐 테고.’

정천은 그녀를 굳이 만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신생 용검대와 강룡단의 진용이 갖춰졌다. 남은 일은 강룡단의 훈련이 끝나는 대로 귀암산을 떠나는 것이었다.

중원으로부터의 급보가 날아든 것은 이튿날의 일이었다.

* * *

마교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마치 중원이 그러한 것처럼.

철운대사가 이끌던 정파무림의 정예 병력이 전멸.

모용중강을 비롯한 극소수의 무인들만이 목숨을 건진 채 퇴각.

득세한 사파 무인들에 의해 호북성이 초토화.

고작 세 줄뿐인 보고가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다음과 같았다.

호북성에 적을 두고 있는 무당파와 제갈세가 등의 문파와 가문이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는 것.

경계가 맞닿아 있는 섬서성과 하남성 등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십대문파 중 절반이 사파무림의 가시권에 있다는 것이었다.

마교에 있어서도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예전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럴 수가 없었다.

사파를 이끄는 이가 누구일지는 뻔한 것이었기에.

“진운룡!”

멸살독마가 탁자를 내리쳤다.

“놈이 분명하네. 놈이 아니고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올 수 없지!”

긴급회의장.

소집된 이들은 마교의 실세와 천무맹 인물들, 거기에 정천을 비롯한 몇몇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멸살독마와 비슷한 반응. 간접적으로나마 진운룡의 무위를 목도했던 이들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어리둥절해 하는 이들. 천무맹과의 전쟁에 참가하지 못했던 이들이었다.

“진운룡이라는 자의 무위가 그 정도나 된다는 말씀인가?”

임철형의 물음에 멸살독마가 이를 악물었다.

“두 번 말해 무엇 하겠소?”

“이해하기 힘들군. 그토록 강한 자가 지금껏 웅비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까진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요태희의 말이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어요. 아마도 그에게 남은 것은 중원에 대한 복수심뿐일 테죠.”

“그대에게 묻지는 않았소만.”

까칠한 임철형의 반응에도 요태희는 물러나지 않았다.

“지금은 사사로운 감정싸움을 할 때가 아니라 보는데요. 그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입니다.”

“흥. 정파인인 당신의 말을 믿으란 말인가?”

요태희가 대꾸하려 할 때 진백란이 손을 들어 보였다. 요태희는 그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입을 다물었다.

진백란이 멸살독마에게 물었다.

“독마, 독마는 그자와 전대 천마의 무위를 모두 목도했었지요?”

“그렇습니다, 천마.”

“두 사람을 비교한다면 누구의 손을 들어 주겠어요?”

멸살독마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진백란의 저의를 깨닫고는 최대한 진중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진운룡 그자가 두 수 이상 앞서리라 여겨집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임철형을 비롯한 마인들이 기겁하는 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멸살독마의 말은 해석에 따라 반역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현 천마인 진백란이 묵인하는 이상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묵인했다. 애초에 원한 대답이 그것이었기에.

“독마의 답변에 만족하든 하지 않든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의 존재가 우리 천마신교에 있어서도 크나큰 장해물이 되리라는 것.”

“…….”

“본좌는 이럴 때일수록 천무맹의 생존자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떻지?”

“거론할 가치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소리치는 이는 반대파의 실세인 영월신마(英月神魔)였다.

곧이어 그를 지지하는 반대파의 마인들이 동조하며 나섰다.

천마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무척이나 폐쇄적인 이들이었다.

“예로부터 천마신교와 정파는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앙숙 관계였습니다. 설령 본교가 멸망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치들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전대 천마께오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무덤 속에서 통곡하실 겁니다.”

진백란의 아미가 일그러졌다.

“감히 그분을 함부로 들먹이다니, 그대들이 무슨 자격이 있어 그분의 뜻을 헤아린단 말이지?”

“전대 천마께오선 스스로의 힘만으로 길을 개척하셨습니다.”

“결국 그분과 달리 본좌는 겁쟁이란 뜻인가? 저들과 손을 잡으려 하는 미약한 존재라는 것인가?”

“부디 재고해 주시옵소서.”

겉으로는 숭배하는 척하나 내심으로는 얕보고 있다. 저들이 진백란을 대하는 태도였다.

‘비겁자들.’

애초에 저들 역시 마교십존이 몰락하며 급부상한 무리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인지 많은 면에서 마교십존과는 궤를 달리했다.

마교십존은 거칠었다. 대부분의 일을 힘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옳고 그름조차 힘으로 판가름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천마에 대해선 무조건적으로 복종했다. 그가 자신들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저들은 다르다. 힘이 아니라 모략으로 천마를 휘두르려 든다.

‘저들을 숙청해 버리는 건 간단한 일이야.’

하지만 그래 봐야 어딘 가에서는 또 다른 반대파가 생겨날 것이다. 진백란이 아버지 진검운만큼 강해지기 전까지는.

그때까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라면 그래야 했겠지.’

그녀는 그때까지 참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녀는 천마였다.

“본좌는 그대들에게 휘둘리지 않아.”

“예?”

반대파들이 살짝 당황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대들의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마교는 강자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면 그에 따르는 힘이 따라야 하겠지.”

“처, 천마?”

“그대들에게 그런 힘이 있을지 궁금하군.”

진백란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안 그런가, 장로들?”

이제는 다섯 명이 되어 버린 장로들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만으로도 바르르 떨고 있는 일장로와 이장로. 그 뒤로 장유추와 귀도신마, 제갈현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이오, 천마.”

장유추의 답변에 진백란도 웃었다.

“그대들 중엔 누가 장 장로에 대적할 생각이지?”

“…….”

“나설 사람이 아무도 없는가? 그럼 본좌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고 해석해도 되겠지?”

“제가 나가지요.”

영월신마였다. 반대파 중에서는 최고의 무위를 지니고 있는 그였다.

진백란은 장유추를 돌아봤다.

“문제는 없겠지, 장 장로?”

“물론이외다.”

광천뇌도를 뽑아 든 장유추가 대답했다. 그런 그를 영월신마가 씹어 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정파의 수괴 놈.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으나 네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수작이라니. 노부는 그저 보금자리를 찾아왔을 뿐이다.”

파지직.

광천뇌도 위로 시퍼런 전광이 맺혔다.

“사투와 싸움이 가득한 보금자리를.”

“자기가 마인이라도 되는 양 지껄이는구나.”

“그러는 네놈은 꼭 정파의 정치꾼들 같구나.”

자리에 참석해 있던 남궁운이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장유추는 이제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분기탱천한 영월신마가 소리쳤다.

“죽여주마! 반 각 내에 네놈을 쓰러트리겠다!”

그리고 반 각 후.

장유추는 곤죽이 된 영월신마의 머리에 발을 얹고 있었다.

“……이제 불만은 없겠지?”

진백란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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