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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八章 공포의 주인 (115/146)

第八章 공포의 주인

태어난 지 다섯 번째 되던 해에 출가하여 머리를 깎았다.

이름도 모를 커다란 절에서 살며 하루에 수십 단의 땔감을 잘라 옮겼다. 그것을 다시 다섯 해 동안 반복한 직후에야 처음으로 보법이란 것을 배웠다.

수도승이란 이름 아래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단련했다.

험난한 과정이었다.

몇몇은 그 와중에 사소한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몇몇은 여인, 오락, 투전과 도박 등에 한눈을 팔아 파계했다.

그렇게 십여 년을 공부한 직후, 마침내 백팔나한의 이름을 계승할 수 있었다.

다시 이십여 년이 지났을 때는 소림을 대표하는 여덟 무승 중 한 명으로 추대되었고, 거기서 또 이십 년이 지났을 땐 주지승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의 반평생을 넘어가는 기나긴 세월.

심신을 단련하고 또 단련했다.

내뻗는 주먹은 그 자체로 섬전이었고, 내딛는 한걸음은 말 그대로 축지였다.

자신의 강함에 자만하진 않았으나 자부심을 느끼지 않은 것 역시 아니었다.

강해진다는 것. 온갖 잡념과 유혹에 시달리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무인의 길은 끝이 없음을 깨달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는 강해졌다.

이젠 어린 시절의 아명조차 기억나지 않는 한 명의 무승. 소림사의 방장인 철운은 스스로의 힘을 내심으로 자부해 왔다.

반 시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크아악!”

“아악!”

이제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오로지 비명뿐이다.

평소 무뚝뚝하지만 책임감이 강해 모두의 존경을 받던 무승도, 성격이 까다로워 중들에게 자주 시비를 걸던 무당파의 무인도, 내달이 아내의 출산이라며 수줍게 웃던 청성파의 무인도.

피를 흩뿌리며 죽어 가고 있었다.

그들만은 아니다. 사파의 무인들도 비슷한 비율로 널브러지고 있었다. 그들 역시 나름의 인생과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명. 모두가 생사의 경계에 몸을 싣고 있을 때 홀로 고고한 존재가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을 휘둘러 수십의 무인들을 비명횡사시키는 존재가.

그의 손에 죽어 가는 이는 비단 정파인들만이 아니었다. 그는 피아를 불문하고 눈에 보이는 생명은 모조리 제거하고 있었다.

“진운룡—!”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 철혈권왕 양무소의 외침이었다.

그는 온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조금 전 진운룡의 일권에 당하여 수십 장을 날아간 결과였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고 일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진운룡의 권격을 강력했으니까.

진운룡 역시 약간은 놀라는 기색이었다.

“몸뚱이 하나는 튼튼하군.”

“네놈의 주먹이 간지러운 거겠지!”

“그렇다면 네 주먹은 뭐지?”

양무소는 이를 악물었다. 호기롭게 일어서긴 했으나 그의 양 주먹은 모조리 으스러져 있었다.

진운룡의 권격에 똑같은 권격으로 맞섰던 결과다.

“주먹 좀 다친 것으로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렇겠지. 하지만 별 의미는 없다.”

진운룡이 나직이 말했다. 덤벼들던 무인 다섯을 동시에 베어 버린 직후였다.

손날에서 돋아난 강기만으로 사람 다섯을 일거에 베어 버렸다. 경이와 공포가 동시에 느껴지는 광경.

철운은 급히 양무소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만하시오, 권왕.”

“이제 시작일 뿐이오!”

“괜한 객기를 부려 명을 재촉할 생각이오?”

양무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목숨이나 연명하고자 이곳에 온 것인가!”

“무인이 호승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잖소!”

“무의미하다.”

진운룡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느새 그는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큭!”

철운이 전각을 밞으며 쌍장을 떨쳤다. 강기의 파동이 진운룡을 덮쳐들었다.

진운룡은 날아드는 파동을 넌지시 응시했다. 일순 파동의 중심이 깨어지며 철운이 뻗었던 강기가 봄날 미풍처럼 흩어져 버렸다.

심멸.

살기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생각만으로 기운을 흩는다. 의지만으로 만물을 부수는 무예의 궁극.

철운이 평생 목표로 삼았던 경지였다.

“대단하오. 진정 탄복할 만하오.”

철운은 진심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여 그 힘을 세상을 위해 쓰려 하지 않는 것이오? 어찌 살육과 참상을 위해서만 쓰려는 것이란 말이오?”

“선문답을 하자는 건가, 중이여?”

“시주는 스스로를 천무맹의 창시자, 최초의 맹주라 말했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만일 그렇다 한다면 어째서 자신의 유산을 스스로 무너트리려 한단 말이오?”

“처음부터 본좌에게 있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참으로 간단한 대답. 철운은 진운룡을 결코 설득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흥! 미친놈이 미친 짓을 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 저런 놈에게 필요한 것은 계도가 아니라 죽음일 뿐이다!”

양무소가 소리치며 다시금 달려들었다.

철운이 그를 막으려 했으나 진운룡의 시선이 먼저 움직였다.

퍼엉!

“컥!”

철운은 피를 토해 내며 밀려났다. 진운룡의 심멸안(心滅眼)은 그의 금강불괴공마저 꿰뚫고 들어왔다.

“타앗!”

그사이 접근한 양무소가 두 주먹을 떨쳤다. 이미 박살이 난 두 손을 완전히 희생할 각오였다.

진운룡은 그에게 심멸을 쓰지 않았다. 아마도 한 번에 여럿에게 사용할 순 없는 모양.

그러나 굳이 심멸이 없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팔을 뻗어 일장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으드득!

장력과 충돌한 양무소의 두 손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몸이 깎여 나가는 고통에 양무소가 부르르 떨었다.

“끄으으으.”

어마어마한 고통에 뇌가 타 버릴 지경. 양무소는 피 섞인 침을 흘리며 신음했다.

“훌륭하군. 두 번이나 살아남다니.”

진운룡이 담담한 어조로 칭찬했다. 그러나 적의 기개에 탄복하여 목숨을 살려 준다는 둥의 미담 따위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 번째는 없다.”

뻐억.

진운룡은 양무소의 머리를 발로 후려쳤다. 두개골이 부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양무소의 몸이 고꾸라졌다.

철혈권왕 양무소의 허무한 죽음.

철운은 뱃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성질이 난폭하여 그다지 좋아한 적 없었던 인물이었으나, 이렇게 참혹하게 죽어야 할 자는 아니었다.

“시주에겐 인간의 정조차 없는가!”

“너희 중원인에게 줄 정 따위는 없다.”

중원인. 그 단어를 통해 진운룡은 자신과 타인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었다.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는 철운이었다. 그저 진운룡의 무자비함에 치를 떨 따름.

‘그러나……!’

전황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두 배에 가까운 전력차도 그렇거니와, 진운룡의 존재는 일당천 이상의 전력을 내고 있었다.

그나마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은 정파 무인들이 그야말로 최정예인 까닭.

아마 진운룡만 없었더라도 이렇게 밀리진 않았을 것이다.

‘저자를 죽이지 않는 한 활로는 없다.’

철운은 그렇게 확신했다. 지금 어찌어찌 목숨을 건진다 하여도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그나마 희망을 만들 방도가 있다면 하나뿐.

‘우리의 목숨을 제물 삼아 저자를 소멸시킨다!’

철운은 소림의 백팔나한을 돌아봤다. 이미 상당수가 죽어 절반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러나 최후의 진법을 펼칠 수는 있을 터였다.

“멸마진(滅魔陣)을 펼친다!”

“예!”

철운의 외침에 따라 나한들이 진열을 가다듬었다. 하나같이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나 있었으나 이글거리는 눈빛만은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합!”

기합성과 함께 발을 굴렀다. 순간적으로 강렬한 열풍이 몰아쳐 주변의 사파인들을 밀어냈다.

그 힘을 사방으로 발산한다면 수백의 멸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철운은 하나의 대상으로만 집중시켰다.

진운룡을 멸하기 위해.

“격멸!”

최후방에 위치한 무승들이 중간 열의 무승들의 등에 일장을 날렸다.

중간 열의 무승들은 그 기운을 받아들여 자기화한 후 최전방의 무승들의 등을 향하여 발산했다.

기운은 곧 거대한 폭풍이 되어 최전방 무승들을 떠밀었다. 그들은 기운을 거스르지 않고서 진운룡을 향하여 몸을 날렸다.

이십여 명이 한 몸인 양 동시에 뻗어 오는 권격.

위력도 위력이거니와 피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필살의 수법이었다.

“흥.”

진운룡은 구태여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강기를 온몸에 둘러 달려드는 무승들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그들을 해하려거든 내 시체를 먼저 밟고 가야 할 것이외다!”

철운의 외침이었다. 그는 멸마진과는 별개로 진운룡의 사각에서 기습을 감행했다.

“건방진……!”

진운룡이 멈칫했다. 무시하고 무승들을 치기엔 철운의 기세가 심상찮았다.

그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

“네놈도냐!”

시퍼런 후광이 철운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혼령연소. 그 역시 목숨을 불살라 진운룡을 해치우려 하고 있었다.

진운룡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이제는 저 푸른 불꽃만 보아도 온몸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중원인 주제에!”

무승들에게 향하려던 흑색 강기가 철운에게로 쇄도했다. 철운은 필사의 절초인 투천열파세(鬪川熱破勢)로써 이에 맞섰다.

콰앙!

콰과과과!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었다.

상당히 떨어져 있던 무인들조차 폭발의 기운에 휩쓸려 자세를 잃고 넘어졌다.

그 폭발의 중심에서 철운이 튕겨져 나왔다. 온몸으로 검은 피를 쏟으며. 앞선 양무소의 상처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다.

진운룡도 무사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철운의 절초에 당하진 않았다.

그의 흑색 강기는 압도적인 힘으로 투천열파세를 깨트렸다.

다만 그사이 멸마진의 합동 공격이 진운룡의 등을 강타하고 말았다.

금강불괴마저 능가하는 호신강기라 해도 완전히 방어하는 것은 무리였다. 진운룡의 등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백팔나한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철운의 참담한 모습도 그렇거니와 진운룡이 입은 타격이 생각보다 작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운은 희망을 보았다.

“그는 강하다! 그러나 무적은 아니다!”

검붉은 피를 흘리며 철운이 소리쳤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텐데도 그의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나한들이여, 이 자리에서 그를 격멸해야만 한다!”

그 외침을 끝으로 철운은 눈이 생기를 잃었다. 최후의 내력을 짜내어 유언을 내뱉은 것이었다.

나한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정파 무인들도 비애와 분노를 함께 느꼈고, 사파의 무인들은 그들의 기세에 움찔했다.

진운룡은 이를 갈았다.

“이래서 너희가 싫은 것이다. 약한 것들이 최후까지 발악한다는 것이.”

“그 발악이 네 목을 꺾어 놓을 것이다!”

“큰 스님의 원수를 갚겠다!”

나한들이 소리치며 진열을 가다듬었다. 그들의 멸마진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흥.”

진운룡이 코웃음을 쳤다. 등허리의 상처는 그새 아문 뒤였다.

“본좌를 이길 수 있다는 꿈을 꾸고 있느냐. 그 꿈이 너희의 목숨을 앗아가리란 것도 모른 채.”

“닥쳐라!”

“격멸!”

앞서와 같은 공세가 펼쳐졌다. 분노로 인해 배가된 기세. 암만 진운룡이라 해도 정면으로 맞서기가 껄끄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맞서지 않으면 그만.

진운룡은 차갑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네놈들의 장단에 맞추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진운룡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주변의 무인들의 멱살이나 옷자락을 붙들었다.

“무슨……?”

모두가 놀란 사이, 진운룡은 그들을 닥치는 대로 내던졌다. 정파고 사파고 가릴 것 없이.

내던져진 무인들은 졸지에 멸마진의 공세에 휘말렸다.

“크아악!”

“커억!”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한들도 어찌하지 못했다. 애꿎은 무인들이 공격을 당하여 피를 게워 내며 죽어 갔다.

“저런 금수 같은……!”

“악귀 같으니!”

철운의 죽음으로 인해 뜨겁게 끓어올랐던 열기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잔혹무도하기 그지없는 진운룡의 판단 앞에.

같은 편인 명규조차 치를 떨 정도였다.

‘참으로 악귀 같은 판단력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명한 판단이기도 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이용한다. 설령 그것이 수하들의 목숨이라 해도!’

일견 잔인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합당한 판단이라 할 수 있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으나 이미 저자는 사파의 중심이고 우리의 군주다. 군주가 죽는다면 휘하 세력이 와해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그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수하들을 희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명규가 진운룡을 향해 소리쳤다.

“이 목숨을 바쳐 당신을 따르리다!”

모두의 시선이 명규에게 쏠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심지어 같은 편인 사파 군웅들조차 명규를 미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도리어 그랬기에 명규로서는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정파무림의 종언. 그러기 위해서는 그대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오! 이미 그대는 우리의 주인이며, 그렇기에 그대가 안위를 구하고자 하는 행동 역시 정당하오!”

“미친 소리!”

백팔나한 중 하나가 소리쳤다. 명규는 그 외침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너희들에게 죽었어야 한다는 소리인가?”

“저자는 악귀다!”

“참으로 비열한 사상이로군. 그저 그대들이 궁지에 몰렸기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소림의 방장이 같은 식으로 수하를 희생시켰더라도 그리 반응할 텐가?”

“큰 스님께선 그러실 리가 없다!”

“그래서 죽었지. 멍청했기 때문이다!”

“네놈!”

명규가 흑류검을 높이 들었다.

“네놈들은 이미 우두머리를 잃었다. 지금이야 분노로 인해 인식하지 못할 테지만 이제부터 깨닫게 될 테지. 머리를 잃은 무리야말로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것! 철운도 알게 될 것이다. 목숨을 버린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명규의 목소리엔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논리가 올곧고 정당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그의 태도가 당당했기 때문이다.

개인은 영악하더라도 군중은 멍청한 법이다. 명규의 외침을 들은 사파 무인들은 자신들에게 정당성이 생겼다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진운룡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제법이로군.

그의 전음에 명규는 딱딱하게 대꾸했다.

—이미 당신은 우리의 지도자니까. 같은 배를 탔으니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본좌가 너희의 도움을 바란다고 생각하는가?

—조금 전 수하들의 목숨을 희생시켰잖소?

—그냥 그곳에 있었으니 내던졌을 뿐이다.

차갑기 그지없는 말. 명규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으나 애써 분노를 삭혔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 역시 군주의 행동. 따르는 수밖에 없소.

—뭐, 좋다. 그렇게나마 자신들의 개죽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도 괜찮겠지.

—…….

—보상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도록 하지.

—재미있는 것?

그 순간 진운룡의 몸을 순백색의 기운이 감쌌다. 조금 전까지의 흑색 강기와는 전혀 다른 기운이었다.

심멸을 깨달음과 동시에 한 단계 진전하게 된 그의 절대신공.

멸마환영무가 펼쳐지고 있었다.

“무, 무슨……!”

백팔나한들은 당황했다. 지금 진운룡이 발하고 있는 기운은 사파나 마교의 그것보다도 정파의 심법을 닮아 있었다.

“말하지 않았던가? 본좌가 너희의 뿌리라고.”

파아앗!

빛이 주변을 휩쓴 순간, 진운룡이 가볍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파직!

멸마진의 최전방에 있던 나한 한 명의 머리가 폭발해 버렸다. 다른 나한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크으……!”

“이런 괴물놈!”

다급해진 나한들이 공세에 나섰다. 시간을 끌었다간 진운룡의 심멸에 당하고 말 터.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진운룡은 앞으로 손을 뻗었다. 주먹을 그러쥐었다. 멸마환영무의 기운을 주먹 속에 응축시켰다.

그것을 살짝 당겼다가 내뻗었다.

세상이 주먹을 따라 뒤흔들렸다.

콰아아앙!

백색 기운이 멸마진의 중심에서부터 격발되었다. 폭발은 삽시간에 나한들을 집어삼켰고, 그들의 몸을 산산이 조각내 버렸다.

콰과과광!

폭발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변으로 몰아치며 엄청난 열풍을 뿜어냈다.

몇몇 무인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것이야말로 황룡성을 집어삼켰던 소용돌이와 동일한 성질이라는 것을.

백팔나한은 그렇게 전멸했다. 사파 무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자는 괴물이다.

어쩌면 정파무림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있어서도 최대의 위험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들을 이끌고 있다.

불꽃의 뜨거움을 알면서도 그에 이끌리는 나방처럼, 사파의 군웅들도 진운룡에게 끌리는 것을 느꼈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절대적인 힘이 그곳에 있었기에.

진운룡이 주먹을 회수했다. 그의 이마엔 약간의 땀이 맺혀 있었다.

고작 그 정도만으로 백팔나한을 전멸시켰다는 뜻.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정파 무인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퇴각한다! 혈로를 뚫고 퇴각하라!”

모용중강의 외침이었다. 각 문파의 문주들이 그에 동조하여 소리쳤다.

“달아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오늘의 치욕은 훗날 반드시 갚으리라!”

정파 무인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진운룡은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팔짱을 끼었다.

그에게 다가온 명규가 물었다.

“뒤쫓지 않을 생각입니까?”

어느새 공손해져 있는 목소리. 진운룡의 힘에 완전히 복종하게 됐다는 의미였다.

“뒤치다꺼리까지 본좌가 해야겠나?”

“죄송합니다. 속하가 실언을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도 본좌에게 적의를 드러내더니 이젠 스스로를 속하라고 표현하는군.”

“…….”

“비굴하지만 현명한 판단이다. 그리고 비굴함이란 본디 오랫동안 기억되지 않는 법이지. 네게 자잘한 일을 모두 맡기겠다.”

명규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 말씀은……?”

“적당한 직위를 아무 거나 가져다 붙여 스스로를 치장하라. 앞으로 너를 본좌의 오른팔로 써 주지.”

이것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이리라. 명규는 고개를 숙여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주군!”

“쓸데없는 예를 갖출 시간에 적을 멸할 생각이나 하도록. 하지만 모조리 죽이지는 마라. 공포를 전달해야 할 목소리가 필요하니.”

“알겠습니다.”

명규가 앞으로 나서서는 사파 무인들에게 소리쳤다.

“놈들을 뒤쫓는다. 정파의 얼간이들에게 우리의 두려움을 똑똑히 심어 주도록 하자!”

사파 군웅들이 이에 호응했다.

어느새 진운룡에게 복종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 그들이었다. 그의 잔혹함을 보았음에도 말이다.

진운룡에게 진심으로 복종한다고 스스로를 세뇌함으로써, 그의 폭정에 맞서지 못한 자신들의 무능함을 애써 잊으려는 수작이었다.

‘얄팍한 수법이지. 그러나 유용하기는 하다.’

진운룡은 고요히 생각에 잠겼다. 바로 옆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쏟아졌지만 그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중원을 휩쓸 것이다. 나아가 귀암산에 있는 놈의 귀에까지 닿을 테지.’

그의 시선이 서쪽으로 향했다.

‘어떻게 나올 테냐, 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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